WINTER 2022

STORY

‘Enter’. 올해 봄 우리는 한예종 30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며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예술하는 즐거움과 괴로움 속에서 그 크기와 방향을 알 수 없어 헤매기도 했지만 반짝이는 빛과 번득이는 시선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빛나는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한 단락을 끝맺음하고 새로운 단락으로 들어가는 순간, 다음으로 진입하기 위한 엔터 키를 누릅니다.

예술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의 마음으로 30년의 여정을 마치고 새로운 항해를 준비합니다. 스스로를 성찰하며 각오를 다집니다. 거친 파도에 올라타 ‘예술의 새로운 기후’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변화하는 예술교육 환경에서 눈앞은 여전히 경험해 보지 못한 바다처럼 거대하고 막막합니다. 새로운 항해의 좌표가 될 한예종의 기상도를 펼칩니다. TV를 켜면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한예종 출신’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드라마, 예능, 교양 프로그램에서 어느새 대중의 울타리로 쑥 들어간 한예종의 현재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부유한 가문에 맞서는 세 자매의 이야기를 기존과 다른 여성 서사로 그려 낸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뛰어난 작품성 뒤로 감독, 작가, 배우 모두 한예종 출신이라는 사실이 눈길을 끕니다. 선생과 학생 간 내재화된 위계의 현실과 위선적 예술의 세계를 희곡 수업을 통해 전개하는 극작가 진주의 연극 <클래스>는 군더더기 없이 그 현장을 보여 주고 있어 인상적입니다. 공연 후에도 두 주인공의 대화는 살아 숨 쉬며 힘을 가지니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됩니다.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 지대에서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며 다음을 준비하는 예술가들을 주시합니다. 창작과 일상을 분리하지 않고 삶 속의 예술을 실천하는 MZ 예술가들. 공존을 위해, 재미를 위해, 그 무엇보다 창작을 위해 커뮤니티를 꾸리고 대안을 고민하며 공부에 몰두하는 그들에게서 예술이 삶 그 자체임을 포착합니다. 새로운 예술 매체로의 전환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서 흥미롭습니다. 한국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사물놀이를 XR 콘텐츠로 선보이고, 클래식 예술의 대표격인 발레가 실감형 메타버스 콘텐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다음의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상상해 보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동면冬眠에 들어가는 겨울, ‘다음의 예술’을 위해 뿌리를 단단히 하는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담았습니다. 전통의 정신을 잇는 열정과 신념의 한국무용가 이소정은 원형의 우아함과 품위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다양하게 배우고 경험하며 창작에 집중합니다. 영화, 연극, 무용, 미술 등 장르의 경계 없는 뮤지션 이민휘는 음악학도로서의 배움을 작곡가로서의 작업에서 끄집어내 쓰며 이론과 실기가 진실로 하나임을 증명합니다. 취향과 가치관에 영향은 물론 영감을 주던 ‘오빠’의 몰락으로 실패한 덕후였던 오세연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면서 성공한 덕후가 되는 과정은 듣는 내내 유쾌합니다. 덧붙여 유학 가지 않아도 되는 학교에서 해외에서 유학 오는 학교로 자리 잡은 한예종의 국제적 위상을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할 수 있어 좋다는 칭찬과 보다 튼튼한 외국어 기반의 교육을 기대하는 그들의 제안은 새겨야겠습니다. 한예종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후배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직원으로 돌아온 선배들이 전하는 예술학교의 변하지 않는 가치도 공유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만남의 시기만 다를 뿐 경지에 이른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습니다.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자기와의 싸움을 합니다. 주어진 조건에만 머물지 않고 낯선 것에 도전합니다. ‘예술의 새로운 기후’를 창조하며, ‘다음의 예술’을 열어 갑니다. 벽이 문으로 바뀝니다. Enter!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