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2022

K-ARTS 30

또 다른 문을 위한 엔터
K-Arts가 궁금한 외국인 유학생들:
AMA+ 장학생, 교환학생, 일반 유학생 인터뷰

키보드의 엔터 버튼을 누르면 새로운 문장 혹은 단락이 시작된다. 이런 엔터 버튼은 문장, 단락을 여는 하나의 문과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고유한 예술 교육 환경을 이유로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이곳으로 입학(enter)하고 있다. 이들의 유학은 키보드의 엔터 버튼처럼 이들이 써 내려갈 새로운 이야기를 여는 문이 된다. 이 인터뷰에서는 AMA+(Art Major Asian plus Scholarship)1 장학생인 전통예술원 음악과 타악 전공 전문사 과정 Bao Khan (바오칸), 낭트 건축학교에서 온 교환학생 Lea Barthlemi (레아), 그리고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예술사 과정 4학년에 재학 중인 일반 외국인 유학생 José Enrique Valdeiglesias Oliveira (호세), 이 세 명의 유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유학의 장소로 한국, 그중에서도 특별히 한예종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입학을 준비하셨던 과정도 궁금합니다.
레아 제가 처음 전공했던 건 공간 디자인이었어요. 공간 디자인 과정을 공부하다가 이 전공만 공부하기 보다는 건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건축을 공부하고 있어요. 원래 다니던 학교에서는 교환학생을 가거나 혹은 인턴십 과정,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저는 교환학생 과정을 선택해 오게 되었어요. 제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시아에 관심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교환학생 장소를 아시아에서 찾아보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에 한예종을 알게 되었어요. 한예종에는 건축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예술 관련 전공이 있었고, 그 점이 좋아서 이 학교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호세 저는 원래 공대를 나왔어요. 공대 졸업 후에 취직을 준비하던 중에 공대와 관련한 일이 저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정말 원하는 공부는 애니메이션 공부였어요. 그런데 페루는 애니메이션 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유학을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좋아하는 시리즈를 만드는 스튜디오가, 물론 스크립트는 미국에서 쓰지만 아웃소싱(하청)으로 대부분의 제작 과정이 한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결정했어요. 한국에 와서는 입학 시험을 준비하는 방법을 몰라서 애니메이션 입시 학원을 다녔는데, 저는 페루에서 드로잉을 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한예종 입학 시험을 결정한 거였어요. 그래서 처음 학원에 들어갔을 때 다른 학생들은 저와 달리 어떤 걸 해야 할 지 알고 있었고, 또 다른 친구들과 나이 차이도 매우 크다는 게 느껴졌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드로잉 연습을 하는 거였지만 너무 지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8개월 정도 준비를 했어요.
바오칸 저는 원래 호치민 국립 음악원에서 베트남 전통 악기를 전공했어요. 베트남에서는 양금과 대나무 실로폰을 전공했고, 이 악기들은 유율타악기(음정이 있는 타악기)예요. 그런데 한예종에서는 타악 전공이 하나로 묶여 있어서 이곳에서 장구를 중심으로 배우고 있어요. 베트남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할 생각이 있었는데, 전통 악기 전공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 문화적 공통점 때문에 보통 중국이나 한국으로 유학을 가요. 저는 5년 전에 호치민 평화재단의 추천으로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의 장학생이 되어서 그때 한국어를 조금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 한국에 인연이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래서 유학 장소로 한국을 선택했어요. 유학 장소를 결정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 한예종에 AMA+ 장학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베트남 교수님들에게서 추천서를 받고, 포트폴리오 만들고 서류를 써서 다행히 합격했네요.

Bao Kahn 공연 모습

그 이전에도 다른 학교(혹은 기타 기관)에서 학업을 이어 나가고 계셨다면 한예종과 이전의 학교는 어떤 점이 같고, 또 다른가요?
레아 일단 전공이 다양한 게 가장 다른거 같아요. 원래 다니던 학교에는 정말 건축만 있었는데 여기는 전통예술, 애니메이션같이 다양한 전공들이 있잖아요. 건축 전공에 한해서는, 물론 언어적인 한계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약간 수업 진도가 빠르다고 생각했어요. 더불어서 되게 좋았던 점은 원래 다니던 프랑스의 학교에서는 수업 인원이 많아서 교수님과의 관계가 긴밀하지는 않은데, 여기는 소수 정예이다 보니까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님과의 관계가 조금 더 친밀한 것 같아요.
바오칸 처음 한국 음악의 장단을 배울 때, 베트남 음악의 장단과 많이 달라서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개인 시간에 지도 교수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는데, 베트남에서는 그렇게까지 열정을 가지고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많이 안 계셨던 거 같아서 그런 점에서 차이를 조금 느꼈어요. 그리고 한예종에 와서는 이론 과제를 그룹으로 같이 해야하는 기회가 엄청 많았던 것도 좀 다른 부분이었어요. 또 인상 깊었던 점은 이론 수업 교수님이 “하고 싶은 것은 한예종에서 하세요.”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지난 학기에 졸업 공연을 준비 할 때 5곡 중 2곡을 자유롭게 작곡했어요. 운라(작은 꽹과리가 여러 개 있는 악기)를 개량해서 작곡하기도 하고, 아쟁을 양금 연주법으로 작곡해서 곡을 만들기도 했어요. 새로운 아이디어였는데, 그런 아이디어로 졸업 공연을 만들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베트남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과정은 아마 어려울 거 같아요.

수강해 보신 한예종의 수업 중에서는 어떤 수업이 가장 좋으셨나요?
레아 저는 전통회화 수업이 좋았어요. 제가 프랑스에서도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한국에서 그림 그릴 때는 붓이나 종이 같은 도구도 매우 달라요. 그리고 전통회화 수업에서는 2시간 동안 오직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명상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더 좋은것 같아요.
바오칸 저는 전문사 과정을 진행 중인데, 원래 전문사 과정에는 다른 학생과 함께 하는 수업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 학기에 있는 <산조 합주>라는 수업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진행하는 수업이에요. 저는 장구를 치고 다른 친구들이 가야금, 거문고와 같은 악기를 함께 연주해 주는데 그 수업이 너무 좋아요.
호세 수업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애니메이션과 학생들은 다 들어야 하는 3학년 과정의 수업이 있어요. 1, 2학기에 걸쳐서 진행되고 2학기 말 쯤에 1년 동안 자기가 한 작업을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이 그 수업에서 치르는 시험의 전부예요. 이 수업에서 교수님이 수업만 하시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진로에 대해서 많이 질문해 주시고, 제가 제출한 자료에 대해서 추가적인 레퍼런스도 많이 소개해 주셔서 즐겁게 들었어요. 좋은 선생님, 수업들이 너무 많은데 하나만 이야기해야 해서 좀 아쉽네요. (웃음)

수업 이외에 한예종에서의 가장 즐거운 기억에는 무엇이 있으실까요?
바오칸 저는 저희 학교 학생들이 만든 공연을 보는 걸 정말 좋아해요. 특히 이번 달에 연희과 친구들의 졸업 공연이 있었는데, 되게 멋있었고,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잘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연주하고 공연하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았어요.
호세 저는 도서관을 정말 좋아해요. 도서관에는 정말 희귀한 애니메이션 관련 책들이 많아요. 또 제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책들을 알게 되는 순간도 있고, 그런 경험을 주는 도서관을 정말 사랑해요. 도서관의 굉장히 다양한 책들을 좋아합니다만 한 가지 굳이 꼽자면 영화 매트릭스의 제작 과정과 콘셉트 아트를 담고 있는 아트 북을 좋아해요. 영화의 전체 스토리보드, 대본뿐만 아니라 제작 비용 때문에 구현하지 못한 장면들까지도 담고 있거든요. 또 프랑스 삽화가 뫼비우스의 만화책도 도서관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데 정말 멋져요.
레아 저는 이번에 연희과 학생들이 하는 전통 무용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학교 학생들이 만든 공연을 보는 시간은 제 전공인 건축 관련 프로젝트를 하는 중에 큰 휴식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이런 종류의 공연을 좀 더 보고 가고 싶어요.

Lea Barthlemi 작업 이미지
José Enrique Valdeiglesias Oliveira 작업 이미지

입학 과정 혹은 수업 과정에서 조금 보완되었으면 하는 점이나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 있을까요?
호세 입학 지원하는 과정에서 모든걸 다 한국어로 써야 하고, 영어로 기입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요. 그런 부분이 외국인 학생으로서는 장벽이 높은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학교의 한국어 수업의 반이 여러 개로 나누어 개설되어 있지 않아서 조금 힘들었어요. 여러 수준의 학생들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커리큘럼만 있다 보니까 선생님이 지도해 주시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거든요. 또 그 수업이 일주일에 3번 정도 있으면 괜찮은데 일주일에 한번만 있다보니까 한국어를 공부하는 과정이 조금 더 어렵게 느껴졌어요.
바오칸 베트남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웹사이트로 과제 제출하거나 웹사이트에 공지를 올리는 일은 많이 없어요. 그에 비해 한예종에서는 누리(학교 인트라넷)를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웹사이트를 확인하는 일을 자주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과제 제출을 잘못할 때도 있었고, 졸업 관련해서도 여러 공지를 놓쳐서 마감 시간을 넘긴 적이 있었어요. 이런 점이 학교에 와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고, 그래서 조교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레아 일단 프랑스에서 졸업 논문을 써야 해서 졸업 논문에 집중을 좀 많이 할 거 같아요. 그 외에는 한국어도 늘었으면 좋겠고, 한국에서 서울 이외의 지역을 좀 여행해 보고 싶어요.
바오칸 12월에 한예종 전통예술원 교수님들, 학생들과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 대학과 교류하는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어요. 가서 공연과 더불어서 제 한국 악기 전시회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전문사 과정을 하는동안 한국 악기를 30개 정도 수집했고, 그걸 계속 베트남에 보내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모은 한국 악기를 이번에 베트남에서 전시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 한국에서 박사 과정에 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실 한예종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정말 밟고 싶지만, 지금 학교에는 박사 학위가 없어서 참 많이 아쉽고, 꼭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호세 학교 다니면서 있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아무래도 언어였어요.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걸 이해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수업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한국어를 더 공부하고 싶어요. 그리고 취직을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어요. 학교에 와서 더 많은 회사를 알게되어 아직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하지만 어디가 되었든지 애니메이션과 3D 모델링 쪽으로 한국에서 일을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에게 편하고 익숙한 바운더리를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학업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결정은 큰 용기일것이다. 그렇게도 착한곳에서는 학업뿐만 아니라 생활에서의 어려움을 맞닥뜨릴 수도 있고, 때때로 무언가가 그리워질 수도 있고, 어쩌면 어둠속에서 끝없이 벽을 더듬으며 걸어가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벽은 문이다(Every Wall is a door).”2 라는 문구가 그 과정에서 조금의 힘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이들이 짚어 갈 모든 벽에서 또 다른 문을 발견할 수 있기를, 학교에서의 경험들이 그 문의 손잡이를 열어 새로운 예술의 경로로 향하게 해 주는 엔터 버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응원한다.

글 오지은 사진 김경수 영상 엄혜진
1 문화체육관광부 국비 전액 장학제도. 각국의 예술 인재들을 장학생으로 유치하여 학비 전액과 한국어 연수비용, 체제 비용, 항공료 등을 지급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자세한 내용은 https://30th.karts.ac.kr/ articles/20040801.html 참조.
2 https://pdweek.or.kr/2022/ offline_ko/p014_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