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2022

ARTISTS

이채원 박세림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열렬한 성원을 보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성덕〉을 예매하려다 ‘광탈’했다. 1년이 지나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하기 직전에 개봉된 영화를 봤다. 그사이 오세연 감독은 그 자신도 스타가 되어 있었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누군가의 팬으로서, 또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특권을 얻은 ‘성덕’으로서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공개 이후 1년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를 상영하고 개봉 하기까지 1년 정도 시간이 걸렸어요. 이 시기 동안 한달에 한 번, 두달에 한 번 정도 간헐적으로 영화제에서 상영을 했는데 저한테는 그 시간이 되게 크게 다가왔어요. 저는 〈성덕〉이라는 영화를 2년 반에서 3년 정도 작업하고 있었고, 제 기준에서는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완성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반응들이 따라온 거예요. 마치 새로 탄생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다들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나셨어요?” 하시고. 저는 그냥 집에 있었는데. (웃음) 저로서도 생경한 하루하루들이었어요.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는 건 창작자로서 뜻깊은 일이잖아요. 꽉 찬 1년을 보냈죠.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도 하고, 연재한 내용과 제가 그동안 썼던 글들 포함해서 이번에 나온 에세이를 집필하는 시간도 보냈고요.
9월 28일에 영화 개봉을 해서 관객분들을 집중적으로, 매일같이 만나 뵙다가 이제 상영을 슬슬 끝내 가는 단계인데요. 딱 날씨가 추워지면서 이 영화가 끝이 나니까 올해를 마무리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올해 마지막 상영은 아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하는 독립영화 연말정산이 될 것 같은데, 정말 〈성덕〉과 함께 꽉 찬 한 해를 보냈구나 싶어요. 요즘엔 당시에 너무 바빠서 하지 못했던 생각 정리를 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팬들의 뜨거운 반응
화제가 된 시기가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가 공개됐을 때였어요. 엄청 붐이 되어서 리트윗이 많이 되고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됐었거든요. 그때는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세상에 아직 나밖에 없는데 왜 다들 화제작이라고 하는 거지? 아무도 못 봤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혼란스러웠어요. 막상 보고 나서 실망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반응들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기쁘지가 않았고 사실 너무 무서웠어요. 그러다가 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고 그날 극장에서 제가 직접 반응을 체험했잖아요.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극장에서 박수 치고, 웃고, 한숨 쉬고, 욕하는 소리들을 라이브로 들으니까 ‘이게 싱어롱 상영도 아닌데 이 정도의 반응이 나오다니?’ 싶어서 그때는 ‘아, 그래도 뭔가 정말 화제가 되고 있는 건가 보다.’ 생각이 들었죠.
GV에서 만난 관객분들이 “감독님, 사실은 저도 누구누구의 팬이었는데요.” 이런 말로 시작을 해서 자기 고백들, 성토들을 하시더라구요. 이 영화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자기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구나 싶어서 감사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또 좀 얼떨떨하기도 했어요. 이이야기에팬들이공감해주면좋겠는데그러지않을수도 있잖아요.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영화 만드는 중에 많이 했는데, 진짜 팬들이 공감해 주시는 걸 보고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고 감사했죠.

진솔한 이야기
처음에는 좀 유명한, 저처럼 ‘성덕’이었던 분들을 모셔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긴밀한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솔직한 이야기를 보여 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미 라포가 형성되어 있는 가까운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게 됐죠. ‘망한 덕질’을 한 팬들을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제 주변에는 너무 많더라구요. 섭외 목적이 아니라 고민 상담을 하듯이 “이런 영화 만들 건데 어떨까?” 했더니 갑자기 눈빛이 바뀌면서 “세연아, 언니 나가야 돼.” 하는 식으로. 다들 너무 적극적으로 의견을 줬고, 출연 의사가 되게 강력했어요.
물론 제가 설득한 친구들도 있었죠. 섭외 과정에서 불발된 분들도 계시고요. 그래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섭외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그동안 팬으로서의 말하기를 할 수 없었나 생각했죠. 얼굴과 목소리를 드러내고서는 이런 얘기들을 처음 하는 거니까 다들 쌓인게많았겠구나.하고싶은말이정말많았나보다.이영화가 좀 ‘웃픈’ 이야기지만 그래도 너무 슬프거나 분노에 차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제 의지만으로 그렇게 될순없는거잖아요.인터뷰이들이제가경험한것또는내심 바라 왔던 걸 그대로 잘 말해 주고 저한테도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줘서 인터뷰이들 각자의 고유한 캐릭터, 각자의 언어들이 이 영화를 완성한 것 같아요.

<성덕> 포스터 ©해랑사/오드(AUD)
<성덕> ©해랑사/오드(AUD)

좋아하는 마음
제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썼던 일기를 봤더니 거의 시인인 거예요. 꼭 덕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정말 사람의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많이 느꼈어요. 또 저는 덕질하는 대상의 좋은 부분들을 닮고 싶어 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다 보면 제 세계가 확장되는 것 같아요. 청소년기에도 그런 덕질을 했기 때문에 가치관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취향도 생겼을 거구요. 지금도 뭔가를 계속 좋아하면서 영감도 얻고, 제가 변화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유머와 성찰을 오가는 편집
〈성덕〉을 편집하면서는 정공법을 따르진 않은 것 같아요. “영화가 장난이냐?” 이런 말도 들었는데, 저는 장난이기도 한 것 같거든요. 이 영화는 저라는 사람이 어떤 사건을 경험한 후에 저와 비슷한 일을 겪은 친구들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고, 그 여정이 결국에는 다시 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되기도 해요. 그렇게 ‘기행문’이라고 생각만 하는 상태로 편집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학교 동기 중에 우주 언니라고, 편집 구성할 때 도움을 줬던 조연출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해 줬어요. 여행을 다녀와서 그 기억들이 시간순으로 완벽하게 배치되는 게 아니지 않냐. 우리 머릿속에서 그 기억들이 다시 편집되고, 조각이 나고, 내가 세운 기준 안에서 다시 연결이 되는 거니까 영화를 편집할 때도 그런 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저한테 그게 열쇠 같은 말이 되어서 정말 끝말잇기 하듯이, 꼬리 잡기를 하는 느낌으로 이 여행을 편집했어요.

소재의 어려움
영화를 만들면서 너무 곤란했던 게 레퍼런스 삼을 수 있는 작품이 거의 없다는 거였어요. 법률 자문을 받을 때 전례가 없으니까 변호사님들도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되게 곤란했던 기억이 나요. 영화제 버전과 개봉 버전에 2분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요. 제가 중학생 때 어떤 방송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그리고 현재 저의 심경을 담아 (그 노래를) 부르는 장면 이렇게 두 개가 있었어요. 만약에 그 노래를 실제로 삽입하고 싶으면 협회에서 음원을 구매하면 되는데, 제가 그걸 부르려면 노래를 부른 가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범죄자가 된 분들의 노래를 불렀던 거라 어떻게 허락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웃음) 그 2분이 저한테는 너무
크고 피 같고 절대 삭제하고 싶지 않지만 개봉을 해야 하니까 없앤 거였는데, 보신 관객분들은 뭐가 사라졌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고등학생 때 부산에 살아서 영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되게 많이 있었어요. 방송 쪽에 관심이 있었어서 카메라와 가까워질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찰나에 그런 걸 발견한 거예요. 몇 주 동안 영화를 만드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었는데, 방송 쪽에 갈 거니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갔죠. 그곳에서 처음으로 단편영화라는 걸 보고 독립영화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어요.
그 전까지는 ‘한국에 영화감독 2명밖에 없는 거 아냐? 봉준호, 박찬욱.’ 이렇게 생각하던 정말 무지한 학생이었는데, 그때부터 한마디로 영화에 미쳐 버린 거죠. 인터넷 강의 보는 척하면서 맨날 영화 두세 편씩 보고. 영화를 보는 게 너무 좋으니까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너무 좋아져서 평론 공부를 하러 다녔어요. 참 다행인 게 부산은 영화의 도시고, 영화의전당이 학교랑 가까이 있어서 거기에 아카데미 같은 게 되게 많았거든요. 거기서 막 공부하다 보니까 이 세계를 좋아하는 일이 결국 내가 이 세계에 들어가야지 완성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너무 자연스럽게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아서 〈성덕〉을 만들기까지 간 것 같아요.

커뮤니티비프 마을 영화 만들기 멘토로서
저희 집 유행어가 있거든요. “니가 왜?”라는. 니가 왜? 니가 거기 왜 껴? 제가 아직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않았는데 정신없이 빠르게 욕심을 내서 하다 보니 영화감독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긴 됐어요. 근데 저도 아직 되게 낯설고 제가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는 자각이 별로 없거든요. 제가 가르침을 받아야 되는데 가르쳐야 하는 일이 주어진 것 자체가 저한테는 좀 어려웠어요. 하지만 역지사지라고 할까요? 조금이라도 뭔가를 가르치는 입장에 놓이게 되면 배움에 대한 열정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뭔가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사실 ‘아,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 제일 많이 드는데,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열심히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빛이 나거든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스무 살 때 제일 많이 했던 고민이 ‘극영화를 공부하고 싶어서 온 건 맞지만 다큐멘터리나 실험영화도 영화인데 왜 이렇게 극영화만 할까?’였어요. 물론 스스로 개척할 방법이 많이 있지만, 기본 커리큘럼은 극영화를 만드는 거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는 학과니까요. 사실 그 경계라는 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었고,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을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 해서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데, 만들고 싶은데 내 이야기니까 이건 다큐멘터리여야 해.’

경계를 아우르며
제 입으로 말하는 게 웃기긴 한데, 제가 약간 인싸였거든요. (웃음) 두루두루 친구가 있어서 6개원을 통합하는 인물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잖아요. 동기들도 소중하지만 다른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랑 교류한다는 게 너무 즐거운 일이라 사적인 친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가 〈성덕〉이라는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부터 의지를 많이 했죠. 예를 들어 방송영상과의 새별 언니는 B캠 촬영감독으로 꽤 많은 촬영에서 카메라를 잡았어요. 또 제작지원 없이 독립영화를 만드는 게 힘들잖아요. 저도 여러 곳에서 지원을 받았는데 그런 과정들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먼저 해 본 선배들, 언니들의 도움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비평 공부를 하면서는 비평적 시각을 갖게 됐는데요. 영화를 만들 때도 그걸 인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좀 더 영화가 치밀해지는 방법이기도 하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비평을 공부하고 읽는 건 되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실험영화, 다큐멘터리, 극영화의 경계를 다 아우르는 영화를 작업하고 싶은 것도 결국 그것들이 다 영화이기 때문이에요. 아녜스 바르다 감독님을 엄청 존경해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요. 거의 80, 90살이 될 때까지 카메라를 잡고 있었던 것도 대단하고, 다큐멘터리, 극영화를 오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것도 너무 대단하고요. 나도 그렇게 계속 작업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능하면 글도 계속 쓰고 싶고요.

<성덕> ©해랑사/오드(AUD)
『성덕일기』 ©이봄

다른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경험
학교 동료의 현장을 네 번 정도 갔던 것 같은데, 다 각각의 의미로 기억에 남지만 스크립터로 갔던 현장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17학번 정빛아름 감독님의 〈안녕, 슬리퍼〉라는 단편영화였는데요. 스크립터는 감독 옆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그걸 기록하는 사람이잖아요. 카메라에 촬영된 배우들의 연기, 풍경들을 제일 먼저 큰 화면으로 보는 단 두 사람이 감독과 스크립터인데, 시나리오로 몇 번씩 봤던 장면인데도 연기로 보는 순간에 오는 감동이 있더라고요. 촬영 중에 감독님이랑 저랑 어떤 장면을 보다가 동시에 운 적이 있거든요. 극영화를 만들 때만의 감동이 아마 이런 건가 보다 느꼈어요. 그리고 〈성덕〉 후반을 촬영하고 있을 때라 영화 만드는 걸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좀 오랜만에 만났다고 할까요? 거의 혼자서 작업을 했다 보니까. 그런 현장에 가서 되게 힘을 많이 얻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외의 현장에서는 거의 다 연출부를 했어요. 연출부 막내, 연출부 막내, 연출부 막내....... 저도 조연출이나 PD 같은 중책을 해 보고 싶었는데, 아무도 맡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 했다. 〈성덕〉을 만들면서. (웃음)

학생으로서 오세연의 학교생활
영화과 1학년이 정말 악명이 높잖아요? 지금 이 스튜디오에서 엄혜정 선생님 수업 들을 때 기억이 많이 나는데, 제가 1년 내내 엄혜정 선생님 수업의 반장이었어요. 보통 반장은 친구들을 리드해야 되고 어느 정도 잘해야 되는데 전 너무 수업을 못 따라가는 거예요. 장비를 빼야 되는데 뭘 빼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학생이어서 저의 부족함을 애교로 무마하려고 했죠. “선생님, 죄송해요. 너무 사랑해요.” 이러고 도망치려고 하면 항상 선생님께서 “세연아, 나도 널 사랑하지만 그것과 성적은 별개란다.” 하셨었어요. 〈성덕〉의 색보정을 해 주신 김영희 실장님도 저희 학교에서 강의를 하시고 엄혜정 선생님과 친하신데, “도대체 촬영 수업을 누구한테 들으신 건지... 감독님은 앞으로 촬영하시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얘기를 되게 많이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성덕〉 작업을 위해 휴학한 직후에는 좀 학교를 싫어했던 것 같아요. 서로 경쟁해야 될 것만 같고, 친구들은 잘하니까 전 너무 기가 죽고, 내가 영화를 만들러 이 학교에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헷갈리고.......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잘 못한다’보다는 ‘아, 나는 그냥 대충 살 거야.’ 해서 못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노력해서 여기 왔는데 왜 이러고 있지? 사실 저 자신을 미워해야 되는 일인데 괜히 학교가 싫고, 친구들이 싫고 그랬거든요. 근데 이번 학기에 거의 2년, 3년 만에 대면 수업을 하면서 학교가 너무 좋은 거예요. 정말 열심히 하는 멋진 창작자들이 너무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고,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짜 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한 달 반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휴학할 때 사실 너무 우울했어요. 학교가 너무 좋고 지금 내 일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학교 다니는 건데, 제가 놓을 수 있는 게 학교밖에 없는 거예요.
이제는 제가 뭘 만들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갈 건지를 아주 약간은 더 아는 상태에서 학교를 다니니까 내가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조금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학교를 다니면서 무얼 내가 얻어 낼 것인가? 그리고 어떤 것들을 해 볼 것인가? 이런 것들을 좀 더 생각하죠.

앞으로의 활동 계획
다음 작품은 학교에서 찍는 내러티브 워크숍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동안 너무 급하게, 폭주 기관차처럼 ‘난 이걸 빨리 만들 거야. 더 젊을 때 성공할 거야.’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든 것도 있었는데 이제는 좀 차분하게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고,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그래도 학교를 제일 우선으로 두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이야기를 찍을지는 아직 고민하고 있는데, 제가 모순적인 이야기들에 되게 관심이 많더라구요. 〈성덕〉도 어떻게 보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고요. 계속 그런 것들을 파고드는 이야기를 쓰지 않을까 싶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책도 내고 싶은데, 진짜 여행 갔다 와서 쓰는 여행기를 쓰게 될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여행을 좋아하나 봐요. 뭘 해야 될지 고민이 많이 되는 시기지만, 지금의 제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따라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 한마디
학교 들어올 때 면접에서 “마지막 한마디 하고 싶으면 하세요.”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제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천만 명이 보는 영화는 못 만들겠지만, 만 명이 보더라도 그 만 명이 정말 위로받고 감동받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신기하게도 그 말처럼 된 것 같기도 해요. 제가 나중에 관객 수로나 금전적으로나 더 큰 결실을 맺는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성덕〉만큼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거든요.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서 받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을 이 영화로 되게 많이 받은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이 큰 한 해였습니다. 영화 하나를 만들었을 뿐인데 고맙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저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작업을 하려고 해요.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많이 생각하는데, 실제로도 그렇긴 하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다음 작품은 너무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거, 그런 걸 스스로 생각했으면 좋겠네요.

〈성덕〉을 본 팬들은 종종 자신들도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랑에 성공이나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완성이 있을 뿐이다. 지난 사랑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을 생각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날 인터뷰에는 오세연 감독의 동기인 전지윤 감독이 함께했다. 그가 봐 온 오세연 감독은 항상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세연이 사랑으로 통과해 나가는 세계를 지켜보고 싶다. 조금은 천천히, 하지만 열렬하게.

글 서연재 사진 김경수 영상 전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