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2022

K-ARTS 30

한예종, 또 다른 시작
나의 한예종 4:
한예종 출신 직원 인터뷰


‘입학’ 이나 ‘취직’ 등 인생의 기점이라고 불릴 만한 사건들을 지나면서 우리는 크든 작든 삶의 변화를 실감한다. 청춘의 한복판에서 맞이하는 한예종에서의 학교생활은 학생으로서, 예술가로서의 삶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한예종이라는 전환점을 거쳐 다른 장소로 나아가는데, 한예종을 졸업하고 이곳에서 다시 직원으로 일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임이 분명해 보인다.‘나의 한예종 4’에서는 한예종을 졸업한 이후 한예종의 직원으로서 예술을 이어 나가는 선생님 세 분을 만났다. ‘K-Arts 30’을 마무리하며 한예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비전을 들을 수 있었다.

먼저 학교에서 공부하셨던 전공과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박성희 무용원 실기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지금은 무용원 공연기획실 PD로 일하며 대관이나 공연 기획, 예산 편성, 지출 등 공연기획실의 전반적인일들을맡고있습니다.
이준용 2011년도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 입학하여 예술사와 전문사(입체조형)를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철공실, 조소실 기자재 관리, 목공실 보조 관리, 입체 파트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소정 전통예술원 음악과에서 해금을 전공하였고, 현재는 문화예술 소외계층 및 다문화 가정을 주 대상으로 6세 이상의 모든 시민에게 전통예술교육 및 공연을 제공하는 전통예술나눔센터의 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근무하기를 선택했던 특별한 동기가 있을까요?
박성희 졸업 후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기획 인턴으로 일했고, 이후에도 콘서트나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이나 행사 등을 기획하면서 상업화된 공연과 언론 매체의 양면성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낀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무용원에 올라온 공연기획 구인 공지를 접했고, 처음 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학교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준용 예술사 졸업 후 보조강사로 일을 하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공채가 생겨 지원하였고,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소정 전문사 합격 후 1년 동안 음악과 조교를 하면서 학교 행정 업무에 흥미를 느꼈어요. 마침 전통예술나눔사업 관련 공고가 났고, 2015년부터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근무를 하며 더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기도 했어요.

학생으로서 다녔던 학교와 직원 입장에서 다니는 학교는 어떻게 다른가요?
박성희 학생때는 학교의 혜택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직원으로 후배들을 대하며 일을 진행할 때는 무용수로서 공연을 대하는 자세나 무용수가 겪는 여러가지 상황과 같은 세상의 일들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가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준용 다른 일을 하다 20대 후반에 한예종에 입학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학교였고, 열심히 다녔다고 자부합니다. 신입생 시절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아직 졸업을 하지 못한 느낌도 듭니다. 함께 학교를 다니고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을 강사나 조교로 만나기도 합니다.
김소정 학생 입장에서 바라본 학교는 우리 학교의 장점인 우수한 실기 커리큘럼에 맞춰 전공 실력을 키우고, 다양한 교류 수업을 통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나를 채울 수 있는 곳이었던 반면 직원으로 바라보는 학교는 저의 능력을 나누며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는 곳 인것 같아요. 학교 운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학생 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부분을 지금은 ‘담당 선생님이 얼마나 고생하셨을까’라는 생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직원 입장에서 다니는 학교에는 좀 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돼요. 학교를 들어설 때 ‘아, 나도 우리 학교를 위해서 무언가 하고 있다!’라는 생각에 뿌듯한 기분으로 출근하고 있어요. (웃음)

졸업하기 전과 졸업 후 학교에서 근무하는 지금을 돌이켜 봤을 때 전공 분야를 대하는 방식이나 태도에 변화가 있으셨나요?
박성희 졸업 전부터 예술경영을 공부하면서 제3자 입장으로 전공 분야를 바라보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뭔가를 많이 보여주려고만 했던 것 같아요.한번에 이해하기 어렵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작품이 옳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무언가를 처음으로 시도하는 일이 정말 어렵고 힘들다는 걸 많이 느껴서, 공연에서 보이는 새로운 시도에 큰 박수를 보내는 편입니다.
이준용 저는 경제 원칙에 정신을 지배 당하지 않고, 사람답게 생각하며 살고자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예술 분야에서는 경제 원칙 자체에 초연 할 수 있는 대담한 사람들이 더 성공적으로 시스템에 안착하는 것 같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그런 꿈을 꾸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김소정 사람은 누구나 재능을 갖고 있죠. 졸업하기 전에는 제 재능은 연주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전공 분야를 통해서 연주뿐 아니라 교육, 기획, 제작 등 여러 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종종 마주하는 학생들에게 전공 외 새로운 경험을 꼭 해보라고 권유하고 있어요. 특히 우리 학교는 다른 원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전공분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가 가진 강점을 잘 누렸으면 좋겠어요.

실기를 배운 경험은 공연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나요?
박성희 공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해도 그를 대처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들 수 있을것 같습니다. 무용수가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빨리 눈치채고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공연을 기획 하실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기획을 준비하고 계신 작품이나 앞으로 더 시도 해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박성희 교내 공연은 학생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들을 시도 할 수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한예종의 다른 원과 함께하는 융합 공연을 시도해 보고 싶고, 창의적이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자연스럽게 무대화 될 수 있는 공연 환경을 만드는 기획자가 되고 싶습니다.

근무를하면서 개인 작업을 하는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작업에 대한 동력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혹은 작업을 꾸준히 하기 위해 지키는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준용 저는 드로잉을 하거나 글을 쓰는 작업을 주로 합니다. 시간과 공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매체이기에 병행 가능했습니다. 요즘엔 퇴근하고 한 두시간 책상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데, 딱히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못해도 원칙처럼 지키려고 합니다.

개인 창작 작업이나 학교에서의 직무를 통해 이루어 가고 싶으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준용 식구들을 살필 경제력을 획득하고 따뜻한 가족을 이루고 싶습니다. 온전히 작업으로 자립하여 고마운 학교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전통예술나눔센터가 일반적인 전통예술교육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나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소정 전통예술나눔센터의 주 과업인 전통예술나눔학교는 국악기, 전통연희, 무용, 성악, 유아반 등 47개 강좌를 운영하는데, 우리 학교처럼 전문 국악 실기교육과 대중적인 강좌를 동시에 하는 곳은 많지 않아요. 뛰어난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한예종 출신 강사들이 수업을 진행한다는 큰 이점도 있죠. 특히 문화 경험은 소득에 의해 그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력으로 문화예술을 경험하기 힘든 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가장 주안점을 둡니다. 수강생의 예술적 재능 발굴, 문화예술 향유 역시 사업 목표로 다루고 있죠. 실제 수료생중에서 전통예술나눔학교에서의 배움을 계기로 본인의 적성과 소질을 발견해서 대회에서 입상하고 예술영재발굴아카데미, 예술계 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사례도 있답니다.

한국문화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K-Pop이나 콘텐츠의 흥행이 전통예술교육이나 센터 관련 활동에 끼친 영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정 한국 콘텐츠의 흥행이 전통예술의 친근한 이미지를 고조시키는 데에는 확실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문화예술은 국경, 계급, 언어와 상관없이 누구나 느끼고 표현할 수 있잖아요. 다문화 가정, 재한 외국인 수강생분들은 한국 전통악기로 본국의 민요, 동요 등을 연주 할 때 수업에 더 흥미를 느낀다고 하세요. 그렇기에 수업때 활용 할 만한 음악 자료나 악보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산이 확보 된다면 교재 개발 등 여러 계획을 실행하고 싶어요. 한국문화의 글로벌한 인기가 여러 나라의 음악을 한국 전통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연주를 직접 해본 입장으로서 전통예술나눔센터의 프로그램을 구성하실 때 특별히 고려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담당하시는 일이나 전통예술나눔센터와 관련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소정 전공악기 외에도 여러 국악기의 특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 수강생들이 어떤 악기를 조금 더 쉽게 접하고,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낄지 알 수 있는것 같아요. 프로그램은 전통 악기를 처음 접하는 분들도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계획합니다. 앞으로도 문화예술 소외계층에 계신 분들을 비롯한 여러 시민들에게 전통예술과 관련된 문화적 수혜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어요. 서울 외 지역에서도 많이 오시고, 강좌를 증설해 달라는 의견도 많거든요. 특강을 진행한다거나 수료생 중심의 공연 팀이 나눔공연을 다니는 등 다양한 신규 사업도 진행해 보고 싶어요.

오랜 시간 동안 한예종의 현재를 지켜보셨는데, 한예종이 변함없이 지켜 가고 있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성희 교수님들의 열정과 학교에 갖고 계신 자부심이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에 그 힘이 학생들을 다시 학교로 불러 들이는것 같아요. 국가적인 지원도 그렇고, 춤을 추고 만들 수 있는 환경이 타 대학에 비해서 정말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준용 예술학교는 사회에서 당장 요구하는 기술이나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목장의 소떼처럼 풀을 뜯고 자유를 만끽 할수있는 곳입니다. 사물의 본질과 세상의 화두를 탐구하고 그 진리를 규명하는 일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요. 이것은 오직 학교에 학생으로 있을 때만 가능한 특권입니다.
김소정 예비학교부터 학부 졸업, 그리고 재직 기간을 포함하면 올해까지 약 16년 정도 학교에서 생활한 것 같아요. 정말 긴 시간이네요. 한예종이 변함없이 지켜 가고 있는 가치는 창의적 예술가 양성 아닐까요?

한예종이 올해 개교 30주년을 맞았습니다. 또 새로 다가올 30년의 모습은 어떨까요?
박성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예술’이 더 많이 만들어지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과학 기술의 발전이 생활의 다양한 변화를 불러 일으키듯이 예술 작품도 우리의 삶,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요. 전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문화를 향유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데 이바지하고, 한예종이 예술 교육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자 양성에도 힘쓰기를 바랍니다.
이준용 학교가 여기 남아있어야 하며, 제대로 된 부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의릉 복원 해봤자 건물 밀고 나무만 심을텐데요. 수백년 전 죽은 왕 때문에 지금 살아있는 학교가 이사를 가야 하나 싶습니다.
김소정 지금처럼 “제대로 예술하는 예술학교”였으면 좋겠어요. 최근 읽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하늘을 날 때는 눈부시지만 땅에서는 커다란 날개 때문에 중심도 못잡는 ‘알바트로스’라는 새에 예술가를 비유한 구절이 생각나요. 한예종이 지금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학생들이 하늘을 훨훨 날 때 가장 눈부신 예술가로 성장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있는 학교가 되길 바라요. 더불어 전통예술나눔사업처럼 예술인력이 교육, 공연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글 오서윤 사진 김경수
석관캠퍼스 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