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2022

STORY

음대 나와서 무얼 할까. 몇 년 전 한예종 음악원에 합격한 뒤 비장한 마음으로 사 들고 왔던 책의 제목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묻지 않아도 마주치는 사람 모두가 그 ‘무엇’을 물어본다. 너는 나중에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고 싶냐고. 질문에 대한 답은 늘 막연하거나 임시적이다. 명확한 장르 구분이 없어진 작업들, 급변하는 트렌드와 산업, 다층적 정체성이 기본값이 된 사회에서 특정 직업이나 역할로 나의 미래를 한정하거나 상상하기 어렵다. 예술의 영역에서는 더더욱. 같은 고민을 통과했을 각 원의 졸업생을 만나 물었다. 졸업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무엇을 지속하도록 하는 건 또 무엇인지.

회사 생활과 예술, 공존할 수 있을까: 직장인으로서의 예술가
취업률을 논하는 것이 왠지 어색한 한예종에서도 곧바로 취직 후 개인 작업을 이어 가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재학 시절 경험했던 밀도의 작업을 회사 생활과 병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철저한 시간 관리와 추진력, 탁월한 균형 잡기의 솜씨뿐만 아니라 창작에 대한 ‘부지런한 사랑’1을 실천하는 인내가 필요하기에.

“피곤해도 즐겁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재히일기’를 연재 중인 김재희2는 재학시절 친구들로부터 ‘인생은 재희처럼’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다방면의 교내 활동을 해 왔다. 대외협력과의 비디오그래퍼로 매달 1편씩 학교 관련 애니메이션(‘예종괴담’, ‘졸업하고 뭐하지?’, 각 과의 학교생활 등)을 제작하거나 학교 홈페이지에 ‘예종일기’라는 만화를 통해 학교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일찍이 4학년 2학기에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했다. 원하던 일이었지만 회사에 적응하는 기간 동안 작품활동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작업에 대한 갈망을 크게 느껴 자거나 먹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퇴근 후 창작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현재 그는 ‘재히일기’와 더불어 지원 사업에 선정된 중편 만화를 작업하고, 동기들과 이어 가고 있는 만화스터디의 결과물을 엮어 잡지로 내고자 계획 중이다. 과거 타과와의 교류가 즐거웠다고 회상하며 그는 ‘가족의 소중함’을 가장 큰 주제로 삼아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기대한다.

“어떻게든 계속해서.” 졸업 직후 문화재단에 취직한 김하은3은 예술사 3학년부터 예술경영 수업을 찾아들었고, 예술정보관 근로와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업무를 익혀 왔다. 여태 배운 것들과 음악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 지금은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는 공연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일과 작업을 같이 하는 예술가로서 가진 목표에 관해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어떤 분야에서도 최고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거죠.” 회사 생활에 충실히 임하는 동시에 매년 각종 공모전과 ‘부산작곡마당’ 정기 연주회에 참여하는 모습과 일면 상충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해 온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하는 데서 고유한 목표를 향한 열망을 느꼈다. 언제나 유지하고 싶은 태도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무엇도 쉽게 놓지 않는 것이라 답했다. 재능의 파이프라인을 끊임없이 구축하고, 그 과정을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예술가의 삶이다.

불안이라는 파도를 타고: 프리랜서 예술가의 작업하기
프리랜서 예술가들에게는 또 다른 녹록지 않은 현실이 기다린다. 유동적인 시간 활용을 위해 안정성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불규칙한 생업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고 궁극적으로는 창작을 최우선 순위로 놓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그들의 작업을 지탱한다.

“‘이 끝에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 영화가 돼요.” 방송국 취업과 유학 사이에서 긴 방황의 시간을 거치던 김건희4는 르완다로 떠난 여행에서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내 고민이 너무 좁은 범위인 것 같다’는 깨달음에 ‘그냥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2019년 5월부터 장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제작비 지원을 받았음에도 생활비 목적으로는 또 다른 사이드 잡을 구해야 해서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며, 그는 장편 작업에서 체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밤샘이 당연시되었던 재학 시절에는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자신을 돌보는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외주 작업을 거절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든 작업이 먼저’라며 창작의 영역을 지키는 이유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다. 도시와 역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는 자신에게 중요하게 다가온 사회적 사건들을 파고든다. 다큐멘터리는 그 과정의 끝에 만들어지는 결과일 뿐이다.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고 싶다’는 그는 현재 작업 중인 <여공의 밤>(가제) 완성 후 관심사에 대한 더 깊은 탐색을 위해 유학을 떠날지, 또 다른 작업으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 갈지 고민해 보려 한다.

“예술을 접해 보지 않은 이들의 에너지가 무용과 미술의 형태로 나타나는 걸 보며 창작의 순수한 원형을 확인해요.” 몸의 범주에 대해 탐구하는 김성연5은 3학년 2학기 교환학생으로 갔던 독일에서 작업에의 의지를 다지고 돌아왔다. 곧바로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했으나 팬데믹으로 인해 계획이 지연되었다. 다음 단계를 도모하면서 그는 재학 중 취득한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불안감을 조절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일의 양과 빈도를 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 했다. 현재 그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 2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작업과의 연계성을 우선으로 선택한 외부 프로젝트는 의외의 영감을 주기도 한다. 생계 활동과 시너지를 내며 꾸준히 작업을 진행한 그는 올 초 온수공간에서 《바디다운로드매뉴얼》 전시를, 지난 7월에는 갤러리175에서 《Veggie Love》 전시를 마쳤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 워크숍 기반의 프로젝트를 완성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다양한 피드백을 제공해 줄 새로운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느껴 해외 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김하은의 부산작곡마당 정기연주회 곡 발표 <Une merveilleuse journée>(2022)
김재희의 애니메이션과 정기작 〈노을빛 물드는〉(2부작, 2020~2022)
김성연의 〈검은 바다(Black Sea)〉(퍼포먼스 비디오, 9분 50초, 2021)
김건희의 〈여공의 밤〉(가제)
임지지가 운영을 맡은 예술순환로 웹진 믿미 ©2020 Art Soonhwanro Inc.

고민도 표류도 함께: 창작 공동체의 가능성
프리랜서 예술가들이 토로하는 ‘동료 없음’의 고충은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해서는 일정한 소속감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혼자서는 다다르기 어려운 곳도 있는 법. 타인들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스스로를 믿고, 만족보다 이념을 추구하며 언제나 위험을 감수하며 살자고 말하고 싶어요.” 자신을 ‘논바운더리 기획자 겸 창작자’로 부르는 임지지6는 여느 프리랜서 예술가들처럼 생계와 작업 커리어를 동시에 키워 가는 것이 힘들다고 고백한다. 어린이, 청소년, 노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예술 수업을 하고, ‘비디오 아트’ 전공을 살려 촬영일을 한다. 이와 더불어 참여 중인 프로젝트 중 성북구의 예술활동거점지역 활성화사업 ‘예술순환로’ 활동(웹사이트 총괄/기획, 로컬 문학 ‘웹진 믿미’ 운영)은 의지할 만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다. 과거 공공예술 전반에 비판적이었던 시각은 우연히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에 접속하게 되면서 달라졌다. 초반에는 순수예술과의 차이에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지역공동체 동료들과 전시와 책 읽기 모임을 하면서 다른 지역과 공간, 사람들에게도 다채로운 예술 세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주변이라 간주되는 곳에서의 활동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길이자 대안 장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지속 가능한 예술가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지역과 연결된 그는 이전보다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이 무얼 하는 사람인지 말할 수 없을까 봐 두렵다고 하지만, 여러 프로젝트에서 만난 이들에게 신뢰를 얻고 독립적인 생활을 부양하고 있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다. 보다 확장된 관점을 토대로 그는 프랑스 현대철학과 페미니즘, 미학 등이 교차하는 학문을 찾아 공부를 이어 가고자 한다.

아마씨(AMA-C, 백소망, 심소라, 이보나)의 단독 콘서트 〈발아(Budding)〉(2018)
양손프로젝트의 〈죽음과 소녀〉(2012) ©양승호
이재하의 필름 사진 아카이브 ‘35 to 120mm’

“익숙해진 고유성 속에 있고 싶지 않고, 모호하지만 우리만이 갈 수 있는 길을 성실하게 찾아내고 싶어요.” 배우 양종욱, 손상규, 양조아와 연출가 박지혜로 구성된 양손프로젝트는 벌써 12년 차 극단으로 <개는 맹수다>(2011), <마음의 오류>(2014), <여직공>(2015), <데미안>(2021), <전락>(2022) 등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팀으로 오래 활동하던 양종욱과 손상규가 졸업 후 양조아와 박지혜를 만나 〈개는 맹수다〉를 함께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분명한 계획 아래 결성된 팀이 아니었음에도, 연이은 재공연 기회가 구심력이 되어 그들을 묶어 주었다. 졸업할 때쯤 있었던 각자의 계획은 양손프로젝트에 몰두하면서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다. “네 명 다 뒤처지지 않고 각자만의 유머를 가지고 있어요.” 양조아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멤버들 간의 균형을 이렇게 표현한다. 양종욱이 팀의 방향성을 강하게 잡아 준다면, 손상규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박지혜는 배우가 가진 기존의 매력 이상의 것을 끌어내고, 양조아는 텍스트에 대한 탁월한 이해로 관객을 설득한다. 치열한 대화를 통해 작업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멋진 것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뜨겁게 연극을 만들던 시기를 지나 현재 양손프로젝트는 재미의 차원이 이동하는 경험 중이라고 고백한다. 삶의 관점이 바뀌게 되면서 과거의 방식에는 재미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양손프로젝트가 걸어온 궤적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매일 연습실에 가고 싶을 만큼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것이라는 믿음과 새로운 작업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태도가 결국 양손프로젝트만의 또 다른 고유성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잘하기 위해: 다시 만난 한예종
졸업 후 학교 밖 세계를 경험하다가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한예종으로 돌아온 졸업생들도 있다. 그들에게서는 익숙한 곳으로 귀환한 안도감보다도 새로운 표현의 방식과 도구를 배우려는 초심자의 생명력과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찾은 데서 비롯된 작은 확신이 느껴진다.

“뭔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 자체가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내년에 미술원 미술이론과 전문사 과정에 입학 예정인 이재하7는 예술사 졸업 후 프랑스에서 MBA 과정에 지원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진정 원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1년 만에 귀국했다. 이후 미술품 관련 법을 다뤘던 졸업논문을 떠올리고 로스쿨 진학으로 방향을 틀어 보기도 했으나 그 길도 순순히 열리지는 않았다. 이런 시행착오 뒤에는 실기 전공이 아니었기에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취업 문제가 있었다. 일반 기업까지 선택지에 포함하면서 주변의 여러 취업 준비생들과 자기를 비교하게 되어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돌파구는 ‘그만이 걸어온 흔적’에 있었다. 사진, 문학, 퍼포먼스, 미술에 대한 흥미를 글과 사진, 팟캐스트 등으로 성실하게 아카이빙해 온 동시에 여러 미술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그에게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소화한 시간이 축적되어 있었다. 이제는 본 것들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다는 생각에 자기만의 언어를 찾고자 미술이론과 전문사에 지원했다. 이전의 선택들에 관해 설명할 때와는 다른 설렘이 느껴졌다. 목적지를 향해 돌아가는 것만 같은 불안을 겪는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그 어디든 종착지가 아니라 거쳐 가는 과정이기에, 더 나은 선택이란 건 없지 않을까요.”

“글쓰기와 노래 모두 창작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아마씨’라는 그룹에서 노래하는 백소망8은 올해부터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예술사 민요 전공으로 졸업 후 공연예술계에서 일을 구해 보기도 했지만 ‘좋은 학벌을 가지고 왜 이런 데서 일하려고 하냐’는 시선을 받곤 했다. 막막해하던 와중 친구들과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에 지원했다가 선정이 되어 ‘맨땅에 헤딩’으로 창작을 하게 되었다. ‘몰랐기 때문에 뛰어들 수 있었다’는 말에서 이후의 지난한 과정이 그려졌다. 동시대 사회 이슈들이라는 확실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런 음악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검열해야 했던 게 초반의 어려움이었다. 공동 창작 과정에서 불가피한 관계 문제도 종종 창작의 동력을 떨어트렸다. 무엇보다 공연예술가들에게 직격탄이었던 팬데믹이 도래하면서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전환점이 된 것은 그즈음 한국예술학과에서 열린 학술 심포지엄이었다. 전통예술계 내 부조리함과 젊은 예술가로서의 고충을 경험한 당사자로 섭외되어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풀어낼 수 있었다. 당시 발제를 계기로 생긴 비평에 대한 열망은 전문사 진학으로 이어졌다. ‘노래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먼저라는 그는 건강한 전통예술 생태계를 고민하며 표현의 도구들을 갈고 닦은 뒤 학문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다시 창작을 해 나갈 예정이다.

각기 다른 전공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졸업생들의 기쁨과 슬픔을 다 듣고 나니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되레 의문을 가지게 된다. 무엇을 하겠다고 다짐과 선언을 해도 삶은 원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예측했던 불안과 예측하지 못했던 재난들이 동시에 닥쳐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갖춰야 할 무기는 재미의 감각을 갈고 닦는 성실함, 그리고 매일 끝까지 해내는 하루들이다. 결국 ‘어떻게’의 싸움이다. 실패하지 않을 몰입의 대상을 선별하느라 태도에 대한 고민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술 작업을 해 나가는 사람들은 지속하는 법을 배운 이들, 정확히 말하자면, 멈추지 않는 법을 배운 이들이다.”9 이미 현장에서 각자 분투하고 있는 한예종 출신 예술가들과 같이, 미래의 졸업생들도 자기 이야기를 잃지 않고 어떻게든 세상에 들려주기를. 앎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 가기를. 그 여정이 단절 없이 이어질 수 있을 때 새로운 세대의 초입에 선 한예종의 결실이 배로 풍성해질 것이라 믿는다.

글 황은율
1 이슬아가 쓴 동명의 책에서 따왔다.
2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예술사 18(22년도 졸업)
3 음악원 작곡과 예술사 16(20년도 졸업), 전문사 20(22년도 졸업)
4 영상원 방송영상과 예술사 12(19년도 졸업)
5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 18(21년도 졸업)
6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 14(19년도 졸업), 전문사 19(21년도 졸업)
7 무용원 이론과(예술경영 전공) 예술사 13(18년도 졸업)
8 전통예술원 음악과(민요 전공) 예술사 09(14년도 졸업), 한국예술학과 전문사 22(재학)
9 Bayles and Orland, Art& Fear: Observations On the Perils of Artmaking,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