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2022

ARTISTS

“내가 방화범이야!” 소리치고, 악기를 부수어 관중들에게 나눠 주던 대학생 듀오를 기억하는가? 그때의 열정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뮤지션이자 음악감독 이민휘를 만났다. 독립영화,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며 음악 작업을 이어 가고 있는 이민휘는 2016년 발매한 솔로 앨범 <빌린 입>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수상하며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선보이기도 했다.

생생히 기억하는 학교생활의 단편들부터 수많은 작업들과 나란히 걸어가는 지금, 또 예술 활동으로부터 존재에 대한 사유를 얻는 모습에서 그의 예술이 품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엿볼 수 있었다.

무키무키만만수의 시작
무키랑은 학교 신문사에서 만났어요. 무키가 신문사에 들어올 때 제가 면접을 봤는데, 그때 대화가 좀 특이하게 진행되어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었어요. 다닐 때는 부서가 달라서 그닥 친하지 않았는데, 제가 국장이랑 싸우고 신문사를 나온 후에 그 국장 욕을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학교에 있는 ‘돌곶이포럼’ 동아리가 그때는 ‘돌곶이 비스타 소셜 클럽(이하 ‘돌비’)’이라고 영화 감상 동아리였어요. 그걸 같이 하면서 더욱 가까워지기도 했어요. 거기서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랑 학교 안에서 학생들끼리만 예술을 하지 말고 이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하는 걸 한번 해 보자, 싶어서 신이문역에서 공연1을 기획했어요. 공연할 사람이 없어서 그냥 아무거나 두드려 보다가 둘이서 하게 됐는데, 그 친구랑 그런 걸 하니까 또 잘 맞더라고요.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 같아요.

학교생활의 기억
학교는 4년 반 정도 다녔던 것 같아요. 한 학기 정도 휴학했나. 학교생활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어요. 노는 것도 정말 열심히 놀았어요. 석관동에서 술을 마시면, 제가 그때 과천에 살았었는데 과천으로 돌아온 기억이 많지 않을 정도로. (웃음)
신문사 활동도 밤새 편집하고, 인쇄소 가고, 고생을 많이 했죠. 그때 원래 언론 쪽으로 가려고 준비하셨던 분이 신문사 부장이셨는데, 그분의 영향을 받아서 저도 졸업하고 신문사에 들어가야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캠퍼스가 서초동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맨날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석관동으로 가서 영화 하는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영화 음악 제작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던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재밌는 걸 했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게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전공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다양한 경험을 누리지 못하면 좀 아쉽죠.

대학의 자산
저는 4년제 종합대학을 갈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입시 할 때는 부모님께 한예종에 붙어도 다른 학교를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합격하고 나서는 바로 놀러 다녔죠. 저희 어머니는 한예종 가면 영화 하는 애들이랑 술만 먹고 다닐까봐 걱정하셨는데, 정말 그러긴 했어요. (웃음) 대학 다닐 때 만난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정말 큰 힘이 되고, 취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돌비, 신문사, 연극과 영화를 함께 만들었던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작업할 때 도움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지금 ‘노들장애인야학’이라는 곳에서 낮 수업으로 노래 만들기를 하고 있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음 주에 5일 정도 공연2을 하거든요. 어제 스태프 회의를 했는데, 12년 전에 제가 처음 연극원에서 김명화 선생님 음악 작업을 하면서 만났던 무대 감독이 그 회의에 있는 거예요. 너무 반가웠죠. 연극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그때 생긴 인연이 정말 많아요. 마음 맞는 선생님과 친구를 사귀고, 영원한 술친구를 만들기에 한예종은 정말 좋은 학교입니다. (웃음)

<2012> 무키무키만만수 정규1집 (2012)
무키무키만만수 시절 만수(보컬/기타)와 무키(보컬/장구)
<빌린 입> 이민휘 정규1집 (2016)

음악학으로
제가 6살 때 처음 동네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갔는데, 피아노 배우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근데 제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교에서 제일 키가 작았어서, 피아노를 치는 데 어려움이 많더라고요. 동네 대회만 가도 페달에 발이 안 닿고, 표현할 수 있는 레인지도 작고요. 어릴 때는 같은 나이라도 발육의 정도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피아노는 좀 어려운가 싶었고, 바이올린도 했었는데 그건 별로 안 좋아했고요. 근데 제가 또 글을 되게 열심히 썼어요. 용돈벌이를 하려고 글짓기 대회도 나가고 그런 경험들이 합쳐지면서 음악학과에 오게 됐죠. 학교 다닐 때는 음악학에 큰 뜻이 있었고(웃음), 음악미학 공부도 진지하게 해 보고 싶었거든요. 피아노 선생님들이 피아노 치기에는 제가 너무 작으니까 작곡을 추천하셨는데, 그것도 좋았어요. 작곡도 재밌고, 음악으로 글 쓰는 것도 너무 재밌고. 하나를 결정하지 못해서 한예종에 와서도 신문사 활동하고, 영화 하는 친구들이랑 영화음악 작업도 해 보고, 글 쓰고 음악 만들고 계속 같이 했던 것 같아요.

내 음악의 근간, 음악학
저는 음악학 전공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정말 모든 작업을 할 때 저의 근간이 되어 주는 게 음악학이에요. 어떤 작업을 하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서를 조금이나마 읽고 온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음악학 덕분에 생겼던 것 같습니다. 다른 장르와 협업할 때는 더욱더 그렇고요. 음악이 영화와 어떻게 만나는지, 음악을 어떻게 독해해야 되는지, 이런 것들이 중요하니까요. 사실 지금도 그 두 가지를 계속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 작업 할 때도 가사 쓰는 데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편이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아직도 있거든요. 저는 한예종에 각 원마다 이론과가 있는 게 굉장히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실기만 하는 친구들도 영향을 받을 거예요. 같이 공부해 나가는 거죠.

작업을 대하는 태도
저는 스무 살 때부터 계속 음악감독으로 일을 했다 보니 일과 공부가 분리된 적이 없어요. 유학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음악학 공부를 할 때나 파리에서 오케스트라 곡을 써야 될 때나 11시간 동안 시험을 봐야 될 때, 또 내일까지 마감해서 한국으로 넘겨야 되는 작업을 할 때.... 이런 것들이 촘촘하게 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니까요.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일하다가 과제 하고, 또 과제 하다가 일하고, 이러면서 일과 공부가 항상 혼재되어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실수가 용납되는데 일하면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든지 이런 것도 아닌 게, 저는 일이든 과제든 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유학은 일을 하다 간 거라서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교수님이 과제 보시고 너 이거보다 잘하잖아, 하시면 처음부터 다시 하고. 근데 다들 그렇게 할 것 같아요. 지금 한예종 다니는 학생들도 이건 학교 과제니까 대충 하고, 그런 사람은 한 명도 못 봤거든요.

유학, 배움의 확장
영화판에는 일찍 들어온 편인데, 오케스트레이션 같은 걸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보니까 약간 불안한 거예요. 처음 상업영화 음악 팀에 들어간 게 <고지전>이었는데 그때 오케스트라 경험을 처음 해 봤어요. 앞으로는 좀 더 편하게 오케스트라도 쓰고 그랬으면 좋겠다, 더 배울 구멍이 아직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학을 떠났죠. 뉴욕에서 했던 오케스트라 수업은 좀 소규모이기도 하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영화음악이 뭘까 하는 호기심에 오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까 이미 영화음악을 하다가 간 저랑은 원하는 커리큘럼에서 좀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게 아쉬워서 파리로 한 번 더 학교를 갔는데 거기는 정통 클래식 학교였어요.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악기 하나를 배워도 정말 다른 거예요. 학생들도 다들 너무 잘하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죠. 근데 그러다 보니 유학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힘들긴 정말 힘들었어요.

일하고 공부하며 얻는 것
이건 약간 제 영업 비밀 같은 건데, (웃음) 저는 모든 작업을 터닝 포인트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까 이 정도 하면 클라이언트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하고, 관객들도 만족할 거라고 짐작되는 지점이 올 때가 있는데, 항상 거기서 조금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송주원 감독님(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졸업)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무용음악을 부탁했을 때가 있었어요. 저는 무용음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속으로는 굉장히 불안했지만 “아, 무용음악? 잘할 것 같은데요?” 이렇게 얘기하고, 광고음악도 다다음 주까지 끝내야 된다고 의뢰가 들어오면 안 해 봤지만 잘 할 거라고 호언장담해요.
제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려는 의도이기도 하고.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속으로는 사실 좀 불안하죠. 근데 마감이 있으니까 또 해내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어려울 것 같은 작업을 받고, 그걸 어떻게든 해내면 나는 이제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매번 그렇게 도전하는 마음으로 해 왔던 게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항상 좀 편하지 않은 작업을 하려고 하는 거. 사실 그래서 사는 게 굉장히 피곤해요.

〈달이 지는 밤〉 ©(주)디오시네마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찬란
<상상도> 공동 프로젝트 ‘삼승’(2020)

작업을 시작하며, 나를 표현하며
저는 개인 작업도 하지만 영화음악, 연극음악, 미술음악 같은 것도 많이 하거든요. 전반적인 콘셉트, 이야기, 연출의 의도가 이미 다 있는 상황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처음에는 그 연출가의 생각과 작업에 대해서 이해하고 소통하는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매 작업마다 달라지기는 하는데, 제 개인 작업들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생기면 그 이야기 자체가 원동력이 되고요. 또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작업은 작업 특성에 따라 매번 다르지만 작업 자체에 대한 흥미일 때도 있고, 작업자에 대한 흥미로 시작할 때도 있고, 작업 캐릭터들에 대한 흥미일 때도 있어요.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는 방에 혼자 있을 때, 사람들 만날 때, 또 프리랜서로 비즈니스를 할 때, 술 마실 때. 그 자아가 다 다른 것 같아요. 결과물이 다양하다보니 ‘음악과 사람이 다른 것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는 것 같고요. 사실 그건 표현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인데, 저는 그걸 끄집어내서 보여 주는 거죠. 저는 <빌린 입>처럼 조용조용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굉장히 정제된 무언가로 보여 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지금 메탈 밴드(GAWTHROP)에서 베이스를 칠 때처럼 확, 무키무키만만수처럼 질러 버리는 것도 하고 싶고, 남과 함께 합을 맞추는 작업도 하고 싶어요. 이건 보여 주고 이건 숨기고, 뭐 이렇게 구분하지는 않아요.

현재의 작업
제가 참여한 영화가 올해 네 편(<달이 지는 밤>, <애프터미투>, <고속도로 가족>,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개봉해요.
영화는 작업하는 시점과 개봉 날짜가 다르잖아요. 이전에 작업을 마쳤더라도 영화가 올해 개봉한다고 하면 보통 음악을 추가로 작업하거나 믹싱을 손보는 일도 많고요. 올해 초에 공연도 여러 개 했고, 또 배우가 작품에서 피아노 치는 역할이라서 피아노 지도를해준다든지하는일도있었고요.지금은내년봄에 공개될 드라마 작업 중입니다. 올해 하반기는 개인 작업, 2집을 해 보려고 스케줄을 많이 비워 놨는데, 쉽지만은 않네요.

함께하는 예술 이야기
아까 얘기한 ‘노들야학’에서 하는 일은 정확히 말하면 ‘노들 노래 공장’, 줄여서 ‘노노공’이라고 발달장애인들과 같이 노래를 만드는 거예요. “오늘은 뭐에 대해서 노래를 만들까요?” 하면 이런저런 의견을 주시거든요. 그럼 그걸 제가 가사로 받아쓰죠. 그렇게 가사가 만들어져서 이걸 어떻게 노래로 만들까요, 하면 이것저것 흥얼거리세요. 제가 그걸 콩나물로 다 받아쓰면 노래가 완성되는 거예요. 매주 한 곡씩.
‘삼승’(판화가, 드러머, 작곡가의 공동 프로젝트)을 같이 하는 판화가의 작업을 처음 보는데, 동그라미, 세모, 네모, 선... 이런 게 많은 거예요. 그러면 평소에 ‘동그라미를 그려야겠다’, ‘세모를 그려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건가? 싶었어요. 저는 추상의 영역에서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으니까 그게 너무 신기했죠. 사실 피아노도 타악기의 일종이잖아요. 피아노도 드럼처럼 타악기적인 특성을 살려서 박자도 함께 쪼개 보고. 그걸 판화와 연결시켜서 판화 작업이나 스케치를 보고 음악으로 표현해 보면, 그 음악에 영향을 받아서 또 판화가 변형되고. 그걸 왔다 갔다 하면서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자꾸 같이 다듬어 가는 과정이 되게 재밌었어요. 혼자 할 때랑 다르게 이렇게 협업하는 일들을 하면 외롭지가 않아요. 혼자 작업하면 너무 외로운데, 어디 얘기할 사람도 없고 이해해 줄 사람도 없고 하니까. 그래도 그럴 땐 혼자 작업하는 다른 친구들을 생각하면 위안이 됩니다.

너와 내가 찾는 것
음악학 할 때도 그랬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계속 탐구하는 과정이 저에게 큰 재미로 다가오는 편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없는 게 아니잖아요. 보이지 않는 것들을 계속 생각하고, 중요하게 다루는 게 제가 작업을 계속하는 원동력이라면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나 해요. 또 저는 허상처럼 보이는 것들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노노공 활동도 그 연장선이고요. 저는 무균실 안에 있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항상 내가 어디 있는지, 내가 누구와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게 하는 작업을 좋아해요. 어떤 작업을 하든 그걸 자각하려고 노력하고요. 학교를 다닐 때는 주어진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내 일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갖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자기가 하는 작업, 자기 위치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학교 다닐 때는 최대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하면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큰 자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인상 깊게 읽었던 ‘삼승’의 앨범 <상상도>의 소개 글로 글을 마친다.

“작업을 만나는 분들이 저희 작업의 과정을 미루어 짐작하고 그것과 공명하기를,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자들이 오래간 좇고 있는 허상과 그 허상이 가진 힘에 대해 숙고하기를 희망합니다.”

글 오서윤 사진 김경수
1 2011년 5월 쓰레빠음악회
2〈등장인물〉(2022. 11. 16.~2022. 11. 20.)
* 이민휘 음악감독이 참여한 영화 <고속도로 가족> OST 중 ‘걷다 보면’의 가사를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