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2022

ARTISTS

이채원 박세림

제19회 베를린국제무용콩쿠르, 제59회 전국신인무용경연대회, 제1회 코리아 댄스 그랑프리 등 국내외 유수의 무용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돌아온 무용원의 이채원, 박세림 무용수를 만났다. 예술사에 갓 입학한 스무 살, 스물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예술에 대한 단단한 애정과 자기 확신을 기반으로 도전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세림: 안녕하세요, 한국예술종합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세림입니다.
채원: 안녕하세요. 타잔 보이 이채원입니다. 타잔 보이는 외모가 타잔을 닮았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고, 21살 낭만 소년입니다. 반갑습니다.

올해 콩쿠르에 참가할 때의 마음가짐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채원: 이번 제19회 베를린국제무용콩쿠르-탄츠올림프에는 수상을 목적으로 나가기도 했지만 제 춤을 해외에 알린다는 목적이 최우선이었어요. 그 때문에 제 자신을 해외의 친구들, 심사위원들에게 알리는 것에 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서
큰 부담감은 없었어요. 시니어 솔로 부문 금상 수상 소식을 듣고도 당연히 흥분되고 기뻤지만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 저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계단이 되어 준다고 생각했어요. 지나간 것은 잊자고 다짐하면서 앞으로 발전된 모습을 더 상상했던 것 같아요. 이번 수상은 제 목표를 어떻게 하면 달성할 수 있을지 깊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림: 제1회 코리아 댄스 그랑프리가 올해 처음 개최되기도 했지만 제가 대학에 입학하고 첫 콩쿠르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사실 별다른 기대 없이 경험을 쌓고 저 스스로가 만족하는 무대를 하려는 생각으로 나갔는데 오랜만에 관객들이 계신 무대에서 춤출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첫 콩쿠르이기도 했고 수상에는 전혀 기대를 안 해서 딱히 결과에도 연연하지 않았지만 전체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왜 이런 선물을 받았지?’ 하고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고, 그러면서 동시에 좋은 상을 받게 되어서 영광스러웠습니다.

이번 콩쿠르에서 특히 중점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부분이 있나요?
세림: 제가 준비해 간 작품 <그 꽃을 꺾지 마시오>의 주제가 홀로 남겨진 꽃이었어요. 그래서 작품을 준비할 때 저 자신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이라고 생각했고, 동작 연구하면서 꽃의 이미지를 주려고 손 모양 같은 섬세한 부분이나 감정에 많이 집중했었던 것 같아요.
채원: 제가 이번에 실연한 <Loosing Control>은 슬픈 감정에 기반을 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에 제 고모가 돌아가셨는데 입관 장면을 태어나서 처음 보게 됐어요.
그때 사람이 이성을 잃는다는 것이 뭔지 처음 느꼈던 것 같아요. 거기서 느꼈던 감정이 내재되어 있다가 무대에서 좀 더 폭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온전히 이성을 잃는 사람을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과 상반된 분위기 속에서 표현하려고 했어요.

춤을 출 때의 루틴이나 춤을 추는 원천은 무엇일까요?
채원: 춤을 추고 있으면 어느 순간 검은색 점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오롯이 저 자신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어요. 관객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내 숨소리와 그 고요한 분위기, 귀에 들리는 음악에 몰두하게 되는 그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아요. 그게 제 원천인 것 같습니다.
세림: 보통 춤을 추기 전에 몸을 푼다고 생각하실 텐데 저는 마인드 컨트롤을 중요시해요. 무용할 때 몰입감과 감정 이입에 집중하는 편이라서요. 춤을 추는 원천은 부모님이요. 부모님께서 제 공연을 많이는 보러 오지 못하시지만 어떤 공연이든 잘 해내서 부모님께 보여 드리겠다는 생각으로 춤을 추게 돼요.

박세림

두 분이 같은 작품에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작업인가요?
채원: 이번에는 안무가로 인사드리게 된 이채원입니다(웃음). 제가 이번에 창작 발표회에 안무가로 참여하게 됐는데, <푸아그라>라는 작품이에요. 푸아그라라는 음식의 제조 과정이 굉장히 잔인하고 인위적이더라고요. 쇠 파이프를 거위의 입에 넣고 살찐 간을 일부러 만드는 과정을 보고 저 자신이 생각났어요. 예를 들어 일방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필수 과목인 국어, 수학처럼 많은 사람이 어쩌면 심장이 뛰지 않는 일인데 강제로 살찌워지는 거위처럼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연스러운 상태로 존재할 때 가장 아름다운 동물인데 최고가 되기 위해서 본연의 내 모습을 포기해야 하나라는 의문점을 오류와 재작동, 기계적 미스라는 움직임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세림이가 참가한 콩쿠르를 보고 탐나는 댄서라는 생각에 곧장 캐스팅 연락을 했고, 또 세림이가 흔쾌히 승낙해 줘서 이렇게 같은 팀으로 작업하게 됐어요. <푸아그라>는 이미 공연에 올린 작품인데 단순히 무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 지난주에 카메라로 촬영했고, 댄스필름으로 곧 공개할 예정입니다.
세림: <푸아그라>라는 작품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진짜 멋졌어요. 제가 맡았던 역할은 인위적으로 살찌워지는 거위가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거위였어요. 그래서 저를 더 억압하지 않고 표출해 나가는 역할이라 더 부담이 적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댄서와 안무자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게 채원 오빠의 안무가로서의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품도, 안무도 좋고 정말 좋았던 작업이었어요.

이채원

서로를 어떤 무용수라고 소개하고 싶은가요?
세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요. 조언이 필요하다든가 아니면 뭔가를 진행하며 ‘누구한테 맡기지’ 할 때 딱 생각날 사람? 굉장히 자유롭게 춤을 추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맞춰 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춤출 때도, 대화할 때도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는 사람이에요.
채원: ‘스펀지’요. 제가 안무가로서 이런 느낌으로 해 달라거나 이런 표정, 동작을 해 달라고 하면 바로 설명한 대로 똑같이 표현을 해 줘서 스펀지가 생각났어요.

두 분 모두 학부 재학생이신데, 이 시기는 학생으로서의 나와 예술가로서의 내가 공존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재학 동안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요?
채원: 제가 제일 존경하는 예술가가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8)라는 팝아트 아티스트인데 그 작가의 그림을 보면 누구나 작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제 춤을 본 사람들이 ‘저건 채원이 춤이다’ ‘저건 채원이 색깔인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저만의 색깔을 찾고 제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세림: 전 일단 학교에 다니면서 제가 어디까지 춤출 수 있는가, 뭘 출 수 있는가, 그리고 춤 말고도 뭘 더 찾을 수 있는가 등에 중점을 두고 학교를 다니고 싶어요. 또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졸업 전에 제 마음에 꼭 드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돌이켜 봤을 때 학교를 헛되게 다니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싶습니다.

재학 중 기억에 남는 만남이 있을까요?
채원: 제가 태어난 연도이기도 한 무용원 02학번 성창용 선배님이요. 제가 무용을 좀 더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어 주셨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넓은 무대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나비가 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저에게 영감과 춤, 그리고 춤 이외의 모든 것을 알려 주신 스승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지원하게 된 계기도 선생님 덕분인 것 같아요. 아직 수학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학교는 단순히 춤을 배우는 학교가 아니라 예술을 배울 수 있는 한국의 유일한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을 꿈꾸는 친구들에게도 무용을 배우러 와서 예술을 배워 갈 수 있는 학교라는 것을 꼭 전해 주고 싶어요.
세림: 제게 무용을 처음 가르쳐 주신 무용원의 이인수 선생님이요. 이인수 선생님께는 무용뿐만 아니라 인성도 배웠고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폭을 넓혀 주셨어요. 그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 무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존경하고 의지하고 있는 분이십니다.

엔데믹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크게 위축되었던 공연 예술계도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두 분은 앞으로 무용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나요?
세림: 관객이 없는 무대에서 춤추는 것은 그 전과는 정말 달라요. 또 관객들도 이제는 무대에서 공연을 보길 바라고 계시고요. 최대한 많은 공연이 무대에 올랐으면 좋겠고, 앞으로는 무대를 더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채원: 팬데믹 초반에는 굉장히 우울했고 ‘라이브 공연이 이제 불가능한가’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러다가 시기 특성상 미디어 공연을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무용을 영상, 메타버스와 접목했을 때 어떤 새로운 콜라보레이션이 나올지 기대되기 시작했어요. 미디어를 잘 활용하면 국적과 상관없는 글로벌한 현대 무용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고요.
지금은 오히려 미디어를 이용해서 한국 현대 무용을 좀 더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도 듣고 싶어요.
세림: 원래 무용을 하기 전부터 컴퓨터나 기기 다루는 것을 좋아했었어요. 음향이나 조명, 촬영기기에 관심이 많았고 무대 장치를 공부하다가 무용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였는데, 만약에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무대 연출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채원: 현재 무용과 같이 패션, 연기 쪽도 병행하고 있는데요. 무용도 어떻게 보면 패션, 연기와도 되게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지금 아니면 언제’인데 이 말처럼 새로운 도전에 두려움 없이, 힘닿는 데까지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무엇까지 춤출 수 있을까, 춤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춤 이외에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본인에게 끊임없이 반문하는 젊은 예술가들. 수학하는 학생이자 창조하는 예술가인 그들은 우수한 성적과 수상 실적을 이미 뒤로한 채 본인만의 길을 찾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끊임없는 도전과 새로운 길을 제시할 이들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글 김수림 사진 김경수 영상 박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