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BTS와 이날치 등 쟁쟁한 후보들 가운데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청파소나타>의 주인공. 다정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음악 뒤에는 끊임없는 질문과 탐색의 시간이 있었다. 미술원 조형예술과 출신 싱어송라이터 정밀아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노래의 이유
어떤 거대 담론이나 거창한 주제가 먼저 있어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던 건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늘 곁에 두면서 소리를 모아 어떤 순간을 만드는 게 좋다는 경험을 많이 했었어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재밌어 보였고 ‘내가 할 수 있을까’에서 시작해 ‘하고 싶다’ ‘해야지’까지의 과정이 있었죠. 노래 속에 담는 것들은 계속 바뀌어 왔어요. 어느 날부터인가 그리운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감정을 생각하게 되면서 1집 <그리움도 병>이 나왔죠. 앞으로 또 무슨 이야기가 담길지는 계속 연구해야 되는 부분이에요.
미술과 음악 사이에서
대학 가서 딴짓을 엄청 열심히 했어요. 동아리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인데 여러 과 애들이 모여서 음악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과제 하다가 도망가서 동아리 하고 점수도 시험도 없으니까 마냥 즐겁게 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연주를 하고 카피곡이지만 우리 스타일대로 편곡도 해 보면서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가늠해 보게 됐어요. 내 이야기를 노래로 창작하는 것도 어설프게 경험했죠. 그 경험이 사실은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돌아보니 미술을 하면서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볼 때 다양한 레이어를 두면서 360도에서 보는 훈련을 정말 많이 했어요. 온갖 방향으로 생각을 돌려 보게 되었던 것이 학교 공부의 장점이었어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 졸업을 한 게 아니라 그 질문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기초 체력을 키운 것 같아요. 아직 거창한 답은 없지만 미술 공부를 했을 때 가졌던 질문들이 오히려 음악을 하면서 많이 풀렸어요. 이런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게 즐겁습니다.
음악은 부르는 순간 바로 전달이 되지만 형태가 남아 있지 않고, 미술은 물질을 이용해서 무언가 만드는 행위라서 각 작업에서 오는 쾌감이 엄청 달라요. 노래는 공연 때 어떻게 보여 줄 것인지 연주나 퍼포먼스까지를 염두에 두고 만들고, 그림에는 조금 더 내밀하고 직접적인 표현을 쏟아부어요. 요즘은 특히 모든 장르가 적극적으로 교차하고 융합하는 일이 빈번하잖아요. 저도 시각 이미지를 음악과 접목하는 작업을 열심히 하려고 해요. 제 노래에 대한 영상(뮤직비디오)을 세 개 정도 작업해서올렸어요. 그 음악에 대한 이미지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나 자신이니까요. 물론 가장 힘을 싣는 분야는 있겠지만 ‘이 장르로 끝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쯤 뒤집어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고수했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니까요.
방랑의 시절
실패라고 이름을 붙이지는 않지만 헤매던 시간이 있었어요. 저의 경우 졸업하고 나서 주어진 좋은 기회들을 활용할 줄 아는 재빠른 대처 능력이 부족했어요. 창작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밀고 나가는 근육 같은 게 부족했다고 할까요. 갑자기 1년 동안 고향에 내려가 동해 찬 바람을 맞으면서 유물 발굴하는 일을 해 보기도 하고 서울로 돌아와서는 직장도 다니고 미술 교실 운영도 해 보고 이것저것 했었습니다.
재미있지 않았고 순간순간 드는 초라함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제가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나는 결국 즐거운 걸 찾을 거야’라는 마음이 저 밑 어디 한 구석에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 찾고 있구나’ ‘근데 좀 느리구나’ ‘더 적극적으로 헤매야 되겠다’ 그런 생각. 어쩔 수 없이 헤매야 하는 거라면 농도를 높여 ‘더 진하게 망쳐 보고 놀아 보고 헤매 봐야지’ 생각했어요. 이후 ‘방랑’이라는 노래가 나온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그 와중에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 음악이라는 매체 하나가 만들어 내는 풍성한 어떤 것을 봤어요. 날씨가 좋기도 했지만 공연마다 뮤지션들이 즐기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내가 이것을 하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굳어졌죠.
명랑하고 고독한 뮤지션의 일상
음악을 하게 되면서 제가 진폭이 되게 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명랑하기도 하지만 가만 놔두면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는 사람, 어지간한 감정들은 쳐낼 줄도 알지만 한 번 세게 오는 감정에는 몸이 휘청거리다 못해 넘어질 정도로 영향받는 사람. 그래서 되도록 둘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를 써요. 무거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써 버리기도 하고 <내 방은 궁전>처럼 기깔나게 ‘불러제끼는’ 노래를 하기도 하고요. 혼자 있을 때는 ‘오늘의 나는 어느 정도인가’ ‘혹시 덜 즐긴 건 없나’ ‘더 좋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오늘 해야 할 괴로운 작업이 있다면 충분히 괴로웠는지, 나한테 사기를 치면서 살짝 넘어가면 내일 찜찜하지는 않을까 돌아보고요. 기왕 태어난 거 있는 오감과 욕심 다 쓰고 싶어요.
산책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제 눈에 좋게 보이는 순간이나 장면, 유난히 그날따라 새롭게 보이는 글자들이 있으면 다 기록해요. ‘좋다’ 하고 넘기면 까먹더라고요. 책 읽기도 게을리하지 않는 편인데 그보다 다양한 읽을거리를 탐닉하는 편입니다. 창밖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도 들어요. 편의점 가는 와중에도 어떤 음악이 들리면 ‘여기서는 이런 음악이 들리네?’ 하고요. 뭐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합니다.
공동체와 이웃, 시대로 확장된 시선
사랑만 노래하는 음악가들도 있고 아니면 한평생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자연스럽게 제 호기심이 향하는 곳을 따라왔던 것 같아요. 1집은 완전히 사적인 이야기, 2집이 조금 고개를 든 정도였다면 3집에서는 내 감정, 내 기분, 내 이야기 파먹기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침 팬데믹을 관통하던 딱 그 시기에 청파동에 거주하게 되었어요. 주변으로 시선을 넓혀야겠다 싶었죠. 물론 창작은 나를 파먹는 일이긴 하지만 내 감정에 함몰되어 있는 상황을 벗어나야 하겠다는 자각이 합쳐져서 <청파소나타>가 나왔어요.
2021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
격려 같은 거죠. ‘괜찮아, 잘하고 있는 거야’ ‘영 별로는 아닌 거야’라며 툭툭 어깨를 토닥거려 주는 기분이었어요. ‘정말로 사람들이 내 음악을 내 창작과 활동을 다양한 각도로 보고 있구나’ 확실히 확인하게 된 계기랄까요. 아무래도 좀 더 다양한 기회를 열어 준 건 확실합니다. 인터뷰도 많이 하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저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해 주시기도 하고. 저도 더 다양한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독립 레이블 ‘금반지레코드’
음악 활동 초반에 이런저런 제안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소위 말하는 ‘데뷔’를 늦게 하는 거였으니 여러 방식을 연구했었죠. 주변에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참고도 하고, ‘창작’은 저한테 익숙한 활동이니까 그것을 기반으로 탐색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내는 음악과 음악을 보여 주고자 하는 방식을 고려했을 때 독립 레이블이 맞다고 판단했어요. 조금 어렵겠지만 내 몸에 더 맞춰 놓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맞춤 정장처럼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원래 약간 돌아가거나 ‘다른 길은 없을까’ 하면서 틈새를 찾는 습성이 있어요. 그렇다고 혼자 하지는 않고 많은 사람에게 민폐와 조언을 주고받으면서 해 나가고 있어요.
앨범을 내면 처음 한 해 정도는 그 앨범에 집중된 활동을 하고, 다음 1년은 공연을 많이 하면서 서서히 다음 앨범을 준비해요. 마지막 1년은 실제 작업을 하죠. 드로잉도 하고, 가사도 쓰고, 제작을 하고, 크루들 모아서 뭔가 조직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현재까지는 3년이 저에게 가장 적합한 작업 루틴 같습니다. 지금은 두 번째 해를 지나고 있어요. 공연을 많이 하고 있고, 4집 앨범을 서서히 준비 중에 있습니다. 여기서만 말하는 건데 이전 앨범들과 달리 타이틀이 이미 나왔어요(웃음).나를
지탱하는 동력
대중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팬이 정말 0순위예요. 노래를 들어 주는 팬들의 피드백과 공연에 와서 건네 주시는 박수, 그런 게 가장 큰 동력이에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잔잔한 노래가 흐르는 제 공연에서도 ‘떼창’이 가능해요.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불가했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공연에서는 같이 노래도 부르고 사인회도 했는데요. 관객들이 그 짧은 순간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어 하세요. 기억에 남는 일은 저로 인해 라이브 공연을 처음 와 보는 분들이 계셨다는 것. 어떤 분은 CD를 처음 사 본다고 하시기도 했어요. ‘홍대 처음 와 봐요’라는 분도 있었어요. 이런 것은 제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 중에 되게 좋은 부분 같습니다. 정밀아라는 작은 하나의 ‘휴먼’이 내놓는 것에서 사람들이 슬픔도 느꼈다가, 즐거웠다가, 또 어쩌다가 한동안 안 듣기도 하다가, 어느 날 다시 ‘오늘 정밀아 음악 들으면 좋겠네’ 했으면 좋겠어요. 공연할 때는 특히 신경 쓰는 게 많아요.
소리도, 제 컨디션도 좋아야 하고 연주도 훌륭해야 하죠. 농담 삼아 중간중간 관객들에게 등받이는 괜찮은지, 습도나 온도가 적당한지, 앞사람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지를 물어보기도 해요. 창작자로서 질문의 질문을 이어 가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것, 더 재밌는 것, 더 흥미로운 것을 ‘할 거야’, ‘하고 싶어’, 그리고 ‘해야 돼’라고 스스로 저를 밀어붙이는 욕망, 욕구 같은 것. 어쩌면 욕심. 그런 것들이 동력이죠.
한예종 입학식 축하공연: <서시>와 <꽃>
<서시>에 보면 ‘내 심장이 뛰는 곳으로 나는 나는 향하려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사실 이 노랫말은 2집을 만들 때 절반 정도 써 두었는데요. 3집을 내기 전까지 3~4년간 마음에 지니고 살았던 제 나름의 슬로건 같은 것이었어요. 예술가가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 친구들이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을 따라서 갔으면 좋겠다, 모든 면에서 열심히 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일에는 몰두하고, 그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누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불렀어요. 또 여러분은 아주 아름다운 ‘휴먼’이잖아요? <꽃>은 그 시 속에 있는 모든 말들을 정말 들려주고 싶어서 선곡했습니다. 엄청난 결과를 내야 된다는 부담이 없는 게 학생의 좋은 점이죠. 그때 가장 해도 되는 것이 바로 ‘경험’인 것 같아요. 끊임없이 탐닉하고 실패해도 되는, 그 길지 않은 시간을 오롯이 누렸으면 좋겠어요. 머지 않아 어떤 책임감이 주어지는 시기가 덜컥덜컥 쿵쿵 걸어올 테니까요.
오늘의 정밀아가 향하는 곳
요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초록색인 것 같아요. 이 도시에도 마음먹고 찾아보니까 초록초록한 곳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 매일 동네 나무 밑에 가서 한 바퀴 돌고 오고, ‘초록이 왜 좋을까’도 생각해요. 좋으니까 그냥 좋은 것일 텐데. 다른 도시로 공연을 가더라도 초록한 곳을 가 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오늘의 정밀아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좀 더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매일매일은 너무 짧은 거리라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안 보이겠지만, 아마도 조금 더 ‘나’라는 사람에게 가까워지고 있겠죠. 설마 나 아니게 살려고 이 많은 일들을 하는 건 아닐 테니까요. 매일 요만큼이라도 더 ‘나’로 살기 위해 나아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정밀아는 여전히 ‘나’에게로 가까워지기 위해 방랑하고 있다.
더 충실한 하루를 보내려고 발버둥치고, 반짝이는 눈으로 이곳저곳을 산책하고, 나뭇잎의 초록 빛깔에 감탄하면서.
주어진 삶을 최대한으로 누리고 싶은 마음, 불확실성으로 자신을 던지는 용기, 하루하루를 일구어 가는 인내가 빚어낸 멋진 ‘휴먼’을 본다. 엉망진창인 줄 알았던 순간들도 노래를 하면서 어느새 하나로 달라붙더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