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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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후손을 다룬 다큐멘터리라는 짧은 설명일 뿐인데 이미 많은 것을 느낀 듯하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라는 이름에 선명한 무엇 때문이다. 민족이란 말에 가슴이 뛰지 않은 지 너무 오래인 것 같다. 일제강점기의 암울과 애국지사의 무장투쟁을 선과 악의 싸움처럼 느꼈던 근현대사 의식은 고등학교 수업까지만 유효했고 난민추방이라는 왕따 놀이 구호를 보며 민족이란 거 아무것도 아니구나 실소한 적도 있다. 머릿속에선 이미 민족이란 개념이 추방된 지 오래라 전주국제영화제를 거쳐 유튜브에 공개된 <여파>(2021)는 난감한 판도라의 상자처럼 여겨졌다. 호기심은 민족문제를 향한 것이 아니라 EBS 지식채널e의 PD였던 김진혁 감독의 이력을 향한 것이었다.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인 김 감독은 PD로 재직할 당시 완성하지 못한 다큐를 10년 만에 완성하여 올해 1월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하였다.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은, 2008년부터 정부가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자행한 언론 탄압으로 프로그램이 검열을 받고 제작이 한번 좌절된 이력 때문이다.

생각보다 세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인물들이 말하는 것에 주석이 달리는 듯한 친절한 진행방식에 소화가 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면 무언가 영화가 일부러 결을 거슬러 쓰다듬는 지점을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5년 동안 다큐 제작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라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뒷이야기처럼 해도 될 말을 왜 영화의 오프닝에 썼을까.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제작되다 검열에 막혀 미완성으로 멈춘 다큐가 1막이라면, 2018년부터 재개된 지금의 <여파>는 2막이고 그 사이 5년은 긴 암전이었던 셈이다. 이 고백은 영화의 어떤 부분을 위해 마련된 것일까.

송명순 씨는 3분의 1지점쯤 등장한다. 시간이 흘러 다시 그를 만났을 때 감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송 씨는 남편이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끌려갔을 때 같이 경찰서에 끌려가 피를 토할 정도로 고초를 당한 인물이다. 국회 프락치 사건은 반민특위가 와해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인데, 1949년 당시 반민특위를 지지하던 국회의원 중 일부가 소위 빨갱이로 몰려 적법 절차 없이 체포된 사건이다. 이제는 97세의 고령이 된 그에게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6년 전과 똑같은 질문을 하지만 그런 적 없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정반대의 답변이 돌아온다. 옆에 있던 아들도 당황해서 카메라를 잠시 끄자고 하는데 감독은 클로즈업을 풀지 않는다. 질문은 계속해서 무력해지다가 자포자기한 채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럼 뭐가 기억에 남으세요?” 말문이 막힌 감독의 순간과 가까워진 송 씨의 얼굴이 충돌하며 카메라에 담긴 무력감은 ‘6년 전과 달리, 힘들었던 일들을 거의 다 기억을 못 하셨다. (...) 여사님 스스로를 고통스러운 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감독의 내레이션으로도 추스르기 힘든 여운을 남긴다.

이와 달리 아들 김진원 씨는 자신의 기억을 조리 있게 들려준다. 그러나 석사과정을 마치고 신원조회 문제로 하버드대 유학이 좌절된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사코 부드러운 이 얼굴을 보면 그가 피하려거나 택하지 않으려는 것이 원망의 서사임을 알게 된다. 원망할 힘을 옮겨서 자부심을 느끼는 쪽으로 감정의 물길을 가다듬어 왔을까. 민족이란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망을 녹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월북한 아버지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낙인찍힌 삶을 살았던 그가 이제는 같은 이유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기를 요청받고 있다.

단지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하나의 다큐멘터리 안에 모이도록 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많은 이가 기대할 ‘후손다운’ 모습이란 무엇일까? 그들은 영락없이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모습일 것인가? 영화 도입부가 조금 지나서, 중국집 원형 식탁에 후손들이 둘러앉은 장면이 있다. 카메라가 인물에서 인물로 건너갈 때 원 안에서 별을 그리듯 인물들의 관계가 이어진 모양을 상상할 수 있다. 원탁 가운데에는 동심원으로 겹친 더 작은 원판이 있어 돌리며 탕을 떠먹을 수 있다. 하나의 원을 둘러싼 더 큰 원. 아버지들의 원이 있었고 그 뒤에 자녀들이 이은 더 큰 원이 있고 다음은 손주들이 잇는 보다 큰 원이 있고... 이렇게 계속될 것인가?

후손 한 사람씩 이야기가 시작될 때 동심원은 차례로 흩어지려는 것처럼 보인다. 동심원이 풀리는 시작점은 인터뷰가 이뤄지는 장소에서부터다.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인터뷰지만 함께하는 장소는 단지 배경 이상의 의미를 띤다. 사실 인물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장소가 먼저 말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정륙 씨의 집에서는 전등갓 뜯긴 천장이, 정구충 씨의 강남 사무실에서는 사업 관련 책이 꽂힌 서가와 영문으로 된 문서를 띄운 모니터가 먼저 나와 이들을 말한다. 다른 이들은 분당의 한 학원에서, 또는 학교 교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감독이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시간을 이렇게까지 거리를 좁혀 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반민특위 후손들의 삶’에 접근할 때 ‘친일파 자식은 국회의원 되고, 독립군 자식은 국회 수위 된다’는 속설을 의식하게 되지는 않을까? <여파>에서 그 속설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속설의 어조에 들어 있는 자조 섞인 원망에 집중해본다면 새로운 질문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김홍현 씨는 후손들 중 유일한 제3세대이다. 다큐가 제작되지 못한 기간에 새로이 발견된 인물이다. 김 씨는 최근에야 할아버지가 반민특위 활동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에게 느꼈던 강한 원망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김 씨는 감정이 급격히 바뀌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구입하고 죽기 전 그것들을 전부 대학에 기증해버린 할아버지. 가족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았던 그에 대한 원망이 민족이라는 큰 글자를 만났을 때 파도 부서지듯 흩어졌던 걸까? 할아버지의 얼굴 사진은 작게 보였다가 점차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이는 김씨의 급격한 감정변화와도 맥을 같이한다. 어른이 된 후 임종 직전 딱 한 번 찾아갔을 정도로 소원했던 거리가 반전된다. 이 급격한 거리 좁히기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오랜 시간이 흘러 민족이란 테두리가 옅어진 것 같은 때에도, 역사로부터의 거리가 단번에 압축되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다큐 제작계획을 완전히 벗어난 현재의 사건은 나경원 의원의 반민특위 관련 발언이었다. 그의 발언은 과거 이승만 대통령의 시각을 그대로 옮긴 듯했다. 이를 비판하는 민족단체들이 국회 기자회견장에 모일때 김홍현, 김정륙 씨 또한 그 자리에 호출된다. 김정륙 씨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과 친일 경찰의 총체적인 훼방으로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좌절했습니다. (...)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나 의원의 말은) 완전한 거짓말입니다.”라고 발언한 뒤 다시 김홍현 씨와 함께 배경의 알아볼 수 없는 여러 얼굴들 사이로 사라진다.

이 장면이 영화 초반부에 나왔을 경우와 지금처럼 시간순으로 뒤에 배치할 경우의 차이는 무엇일까. 기자회견으로 영화를 열면 주의를 집중시킬 수도 있고, 다큐를 만든 명분도 부각할 수 있다. 어떤 사안이 뜨거운 감자인지 여부에 따라 중요도를 정하는 저널리즘적인 접근법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렇게 편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사건일수록 뒤로 몰았다. 이 경우 과거가 현재에 의해 불려 나오는 구도가 더 강조될 것이다.

이상한 일은 과거가 현재에 응답하고자 할 때 일어난다. 2019년 8월 후손들이 아베 정권 규탄 촛불집회에 초대되어 연단에 오른다. 집회의 면면을 담는 숏에서는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 시민들이 참여한 모습 등이담긴다.그러나깃발들은단체의이름이잘보이지않게접힌채 휘날리는 모습이고 시민들은 앉아 있거나 듬성듬성 서 있거나 촘촘히 모여있기도 해서 이것만으로는 집회의 규모를 잘 알 수 없다. 이윽고 사회자가 발언할 후손으로 김옥자 씨를 호명하는데 바로 다른 숏이 진행되며 김 씨의 발언은 생략된다. 일부러 클라이맥스를 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면이 추상화되자 집회의 구체적 내용과 후손들의 삶 사이에 빠진 고리가 생겨난다.

후손들이 참여한 인간 띠 잇기 행사에서도 집회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숏들이 계속된다. 행사에 반대하는 익명의 1인 피켓시위자가 갑자기 부각되며 전체적인 진행 과정이 모호해지기도 한다. 이때도 후손들이 구호를 외치거나 어떤 발언을 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들이 결코 완전한 것은 아니다’라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무슨 의미일까. 민족이라는 말에 기대어 본다면 ‘친일을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다잡는 일은 현재진행형이다’의 의미에 가깝겠지만, 후손들의 발언을 비워놓은 숏과 연결한다면 ‘현재가 과거를 불러내는 방식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쪽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다큐가 비워놓은 공간에서 다시 영화 시작부의 미스터리가 떠오른다.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잊고 잠들었던 여느 밤들 중 한 밤, 전화 한 통이 잠을 깨우고 말없이 끊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연락이 5년간 끊겼던 노시선 씨의 전화다. 감독의 말마따나 ‘잘못 거셨겠지’ 하고 넘기기엔 너무 깊은 새벽이다. 마침내 감독은 그가 혈관성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인은 안 그래도 요즘 그가 밤중에 이곳저곳 전화를 하는 것 같더라고 했다. 노 씨는 가족의 둘레에 속하긴 하지만 자녀가 아니라 조카이므로 직계 후손들이 앉은 테이블보다 상대적으로 미세하게 비켜난 원의 둘레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반민특위 활동을 했던 큰아버지가 떠오른 것은 그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가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들이 동심원으로 불리워 왔으니 감독 역시도 그의 전화를 통해 무수한 후손들의 원을 떠올린다. 그러나 원을 찾아놓고서도 그 중심을 하나의 고리로 고정하기를 망설인다. 어쩌면 고정될 수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다큐가 처음부터 어떤 외압도 없이 무사히 만들어졌다면 원들은 뚜렷한 일치점으로 고정된 형태였을지 모른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중심은 눈에 띄게 헐거워지지 않았나? 이것은 5년간의 암전이 만든 귀중한 틈이다.

글 김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