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ING 2022

STORY

Origin

‘스무 살의 두드림,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매거진 <K-Arts> 1호는 한예종 개교 20주년을 기념하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간 구성이 조금씩 변화했고, 호마다 주제도 달랐으나 우리의 기원은 늘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K-‘Arts’. 바로 예술이었어요. 2017년 12월 발간된 24호 ‘Liaison’에서는 예술로서 세상에 빛을 더하고 예술로서 세상의 연결 고리가 되고자 하는 우리의 포부가 잘 드러납니다.
매거진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일단 책자를 들어 펼치고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것이겠죠. 독자를 행동하게 만드는 방법은 역시 열고 싶은 문을 보여 주는 게 아닐까요? 표지에 들어갈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이 되며, 언제나 매거진의 첫 장을 장식하는 매거진의 주제들은 바로 그런 문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지난 매거진에 사용된 키워드(주제)들로 매거진 1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Evolution

매거진의 지면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정해진 페이지 안에서 어떤 콘텐츠들을 각각 얼마나, 어떤 식으로 담아낼지 늘 고민해야 하죠. 올해 매거진 <K-Arts>는 각 호 주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담은 ‘편집실 노트’부터 주제에 따라 교내외 다양한 문화의 흐름을 느껴 볼 수 있는 ‘스토리’, 개교 30주년을 기념하며 관련한 기획 기사들을 싣는 ‘K-Arts 30’, 교수/동문/학생 등 예종인들을 만나 보는 ‘아티스트’, 표지 작품을 글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포토 에세이’, 예술 전 분야를 아우르며 전시나 공연, 영화, 도서 등을 소개하는 ‘뷰’, 주로 수업 취재로 채워지는 ‘클래스’와 해당 호 주제에 대한 ‘툰’을 포함해 교내 소식을 전하는 ‘뉴스’까지 다채로운 코너들을 준비했습니다. 전부터 매거진을 봐 온 독자들이라면 익숙한 구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개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코너의 신설과 본래 반 페이지였던 툰을 한 페이지로 확대한 것이 소소한 차이예요. 그리고 종이 매거진과 웹진 모두 디자인과 형식을 리뉴얼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해 만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은 것처럼, 지난 10년간 매거진의 모습은 처음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1호는 A5 정도 사이즈로 정말 ‘책자’에 가까웠어요. 코너도 지금과 달라서 툰은 없고, 뷰와 클래스 대신 ‘아트 앤 소사이어티’와 ‘글로벌 K-Arts’가 있었습니다. 아트 앤 소사이어티에는 이름처럼 지금의 뷰와 스토리를 섞은 듯한 내용의 기사들이, 글로벌 K-Arts에는 해외 활동 중인 예종인의 소식이나 교내 외국인 유학생 인터뷰와 같은 기사들이 실렸어요. 3호부터는 아트 앤 소사이어티의 분량을 일부 떼어 ‘아트 씨어터’라는 지금의 뷰와 같은 코너를 만들었고, 14호부터는 클래스가, 15호부터는 드디어 툰이 등장하게 됩니다. 아트 앤 소사이어티와 아트 씨어터가 사라지고 뷰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은 17호부터랍니다. 국내에서 해외로, 해외에서 국내로 유학하거나 활동 반경을 넓히는 일이 흔해지면서 글로벌 K-Arts도 16호를 끝으로 안녕을 고하게 됐어요. 초기에는 각 코너에 싣는 기사 수도 매번 조금씩 달랐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차 안정되어서 각 코너마다 서너 개의 기사를 싣는 지금과 같은 구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Love

지금까지 매거진은 한 해 네 번, 10년간 40번 독자 여러분을 만나 왔습니다. 40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500개에 달하는 기사를 전해 드렸어요. 그중에서도 독자들에게 조금 더 사랑받은, 그리고 저 또한 한 명의 독자로서 더 깊이 빠졌던 주제와 글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이어지는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매거진 제작에 앞서 기획 회의를 하게 되는데, 봄호 기획 회의에서는 봄호의 주제뿐 아니라 한 해 전체 매거진의 흐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깝게는 2020년의 A-R-T-S처럼 한 해의 주제가 서로 연결되도록 할 때도 있고, 멀게는 2014년의 Motive- Evolution-Ensemble-망(望, 忘, 亡, 莽, 網)처럼 각 호마다 독립성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016년의 호명-익명-작명-무명은 이 둘 사이에 있는 경우로, ‘이름’이라는 핵심을 공유하면서도 그 관점에 차이를 두었는데요. 작품에 이름을 붙이든 혹은 본인의 이름을 써 넣든 아무래도 예술과 이름은 뗄 수 없는 사이이다 보니 재미있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필명’, ‘익명’, ‘가명’으로 때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 글을 쓰는 이름에 대해 이야기한 「흐르는 이름」(김송요, 18호 익명), 한예종 학생들이 각자의 집만큼이나 오랜 시간 머무르며 때로 ‘모두가
잠든 가운데 홀로 눈을 떠’ 밤을 지새우기도 하는 장소인 과방을 취재한 「한예종 탐험기」(최윤지, 20호 무명), 그렇게 예종 생활을 마치고 이제 사회로 한 발을 내딛는 이들의 졸업사진 촬영을 다룬 「유난한 졸업사진」(박하빈, 20호 무명) 등이 있었네요. 필진들의 전공 예술 분야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학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주제들이었습니다. 주제에 맞추어 필진 각자의 개성과 풍부한 식견을 보여 준 스토리 기사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을 붙잡는 훈련」(정예은)은 8호의 주제인 Love에 맞춰 시인 실비아 플라스와 역시 시인이었던 그의 남편 테드 휴즈의 사랑을 다루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지만, 정예은 필진은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으로 사랑이 끝난 뒤 테드 휴즈의 작품 활동과 유고 정리 출간 작업에 주목하며 이를 예술에 연결 지었습니다. 이지웅 필진의 「상처에 소금 문지르기」는 상충하는 듯 보이는 예술과 윤리가 실은 공생 관계임을 주장하며 미카엘 하네케의 말¯“예술가는 사회의 상처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영원히 소금을 발라대는 존재다.”¯을 인용해 26호 주제인 Movement, 예술계 안팎의 움직임과 생동하는 삶들의 연관을 드러냅니다. 신기철 필진은 아예 제목에 32호 주제였던 [ ], 공백을 넣어 두었습니다. 「공백을 위한 리얼리즘」. 작업을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공간은 부족해지고, 새로운 창작을 위해 인위적으로 공백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즉 이전의 작품을 어떻게든 ‘처분’해야만 하는 예술인들의 현실을 돌아보는 글이었는데요. 정작 글은 공백 없이 빼곡해 지면 기사는 “여기까지다. 제대로 끝맺음을 할 수 없다. 여기까지가 내게 주어진 공백이다.”라는 말로 끝내고, 전문은 웹진에 실어야만 했어요.

Deadline

이렇게 다양한 주제와 글감은 어떻게 정해질까요? 매거진 발행을 준비하는 첫 단계는 기획 회의입니다. 기획 회의 일자가 확정되면, 필진들은 해당 분기에 전하고 싶은 예술 관련 소식이나 만나 보고 싶은 예종인, 스토리 글감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정리해 편집실에 보냅니다. 해당 호의 주제가 될 만한 키워드 아이디어도 같이 보내지요. 회의 당일에는 각자 보낸 아이디어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고, 그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그럼 편집실에서는 회의 내용을 정리해 주제를 선정하고, 해당 호 콘텐츠를 구성해 필진들에게 적절히 분배해 줍니다. 그리고 마감 기한을 알려 주지요.
그러면 이제 필진들은 글을 써야 합니다. 아티스트나 뷰를 맡으면 어쨌든 사람을 만나 보고 작품을 접해 봐야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인터뷰 일정이나 공연 및 전시 등 일정에 따라 마감 기한이 연장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마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16호의 기사 「마감 앞에서」(김윤영)는 마감을 대하는 여러 예술가들의 자세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거칠게 나누자면 ‘영감을 기다리는 방식’과 ‘영감이 없어도 시작하는 방식’이 있다고 했는데, 매거진의 평균 마감 기한은 2주 정도이므로 영감을 기다리기에는 다소 모자란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각자 받은 글감에 따라 직접 예종인들을 취재하기도 하고, 제도나 현상에 대해 자료를 수집해 분석하기도 하면서 글을 완성해 냅니다. 매거진 가장 뒤쪽에 들어갈 후기도 쓰고요.
편집실로 모인 원고는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여러분이 지금 보고 계시는 종이 매거진과 웹진의 형태가 됩니다. 물론 엄청난 횟수의 시안 수정을 거쳐서 말이죠. 분량이 넘치거나 모자라면 필진에게 연락해서 적당히 내용을 덜어 내거나 더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필진들이 미처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오타나 띄어쓰기 등도 바로잡습니다.

기사를 더 풍부하게 전달할 이미지 자료 수집도 필수입니다. 인쇄소에 넘기는 그 순간까지 검토, 또 검토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인쇄소에 넘기고 나면 남은 일은 완성된 매거진을 교내외에 배포하고, 웹진도 발행한 뒤 이번 호 기사는 어땠는지 합평을 하는 것뿐입니다. 원래는 모여서 하기 때문에 기획회의 때 아이디어를 미리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합평의견도 미리 보내야 하는데,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합평과 기획 회의를 온라인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합평에도 마감 기한이 있다는 사실!

Trace

그간 만나 온 예종인들은 기사 수로만 단순 계산해 보아도 141명입니다. 여러 명을 한 번에 인터뷰한 경우도 있으니 실제로는 조금 더 많겠죠. 이중에는 강화길 작가나 윤가은 감독, 신지아 바이올리니스트처럼 학생 때 인터뷰를 했다가 졸업 후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동문으로서 다시 한번 인터뷰를 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김대진 총장의 경우 3호에서 제자인 문지영 피아니스트와 함께 사제 인터뷰를 한 뒤, 총장이 되면서 39호에서 두 번째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어요. 이종필 감독, 박소담, 박정민, 김고은 배우는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즈음에 인터뷰를 한 뒤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 오며 학교의 이름을 빛내 주고 있습니다. 양손프로젝트는 10호에서 신생 극단으로 소개되었는데, 작년에 창단 10주년을 맞이했어요. 그 외에도 국악 밴드 상자루와 이수빈 발레리나,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활동하는 김보라, 신창호, 가상과 현실을 주제로 영상 작업을 계속하는 김희천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동문들을 만났습니다. 남화연 작가는 미술원 동문으로 전시 리뷰가 먼저 실린 후에 교수가 되어서 인터뷰로 새롭게 만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이력으로, 벌써 두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여러 권의 에세이를 펴낸 이길보라 감독은 매거진 4호부터 8호, 그리고 10호에 참여한 매거진 필진 출신입니다. 아쉽게도 아직 아티스트 코너에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14호와 34호의 뷰를 통해 이길보라 감독의 두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와 <기억의 전쟁>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Signature

매거진의 모든 기사 마지막에는 기사를 작성한 필진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 글의 끝에도 제 이름이 붙게 될 겁니다. 보통 서명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서명은 그 대상의 소유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대상이 여럿인 경우 그 사이에 어떤 연결성을 부여하는 인장의 역할도 합니다. 간략하게나마 역사를 정리하고 보니 궁금해지네요. 매거진이 지나온 10년의 시간들, 앞으로 지나게 될 무한의 시간들에는 어떤 이름이 붙게 될까요?

이 글의 제목인 ‘무한의 장’은 사실 매거진 창간준비호의 주제,‘0’에서 왔습니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매거진은 여러 변화를 거쳤고, 다양한 주제를 소화했지만, 글을 시작하며 밝힌 것처럼 그 기원은 언제나 예술이었습니다. 한결같으면서도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을 지닌 수, 0.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이 되어 끊임없이 순환하는 수. 그게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의 고유한 특성이자, 우리가 지금 넘기는 장의 이름입니다.

글 서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