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ING 2022

K-ARTS 30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는 미시사가 쌓여 거시사와 만나 차곡차곡 직조되면서 타인의 이야기가 결국 나와 닿게 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때는 어땠더라?’,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땠더라?’ 생각하면서 결국 나로 접어드는 그런 이야기요. 영화 <벌새>, 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 한예종 개교 30주년 특집 기사 기획안을 쓰면서 제가 좋아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일단은 저보다 한예종을 오래 감각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 봐야겠다 싶어 음악원과 연극원 행정조교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랫글은 그 만남을 재구성한 결과물이고요.

박예슬 (이하 )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조진구 (이하 ) : 음악원 행정조교로 근무하고 있는 조진구입니다.
박영훈 (이하 ) : 연극원 행정조교로 일하고 있는 박영훈입니다.

: 네, 반갑습니다. 저는 연극원 무대미술과 전문사에 17년에 입학했고, 21년에 졸업했어요. 선생님들과 한예종의 인연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어져 왔나요?

: 전문사 00학번으로 인연이 시작됐고 09년부터 현재까지 조교로 근무 중입니다.
: 1999년 연기과 전문사 아동청소년극 전공으로 입학했고, 02년 3월부터 행정조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석관동 쪽에서 이렇게 오래 생활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어요.

: 그럼 이 동네에 대해서 잘 아시겠네요?

: 연극원에 근무한 지 20년이고, 86년에 외대 철학과에 입학했으니까 동네와 인연을 따지면 거의 40년이 되어 가네요. 긴 세월이지만 동네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고, 연극과 학교에 대한 애정은 깊어졌습니다.

: 저는 입학 전에 한예종에 대한 환상이 컸어요.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다 한예종 출신이셨거든요. 선생님들은 입학하시기 전 한예종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고 계셨어요?

: 재학 중이던 학교를 포기하고 다시 입학시험을 볼 만큼 다니고 싶은 학교였어요. (웃음)

: 입학 전 1994년 미국 유학 중에 잠시 한국에 왔다가, 당시 장충동 국립극장에 있던 연극원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 그때는 연극원이 장충동에 있었군요?

: 네, 매스컴에서 장동건 씨가 입학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미국에서 연극을 공부하던 중이기도 해서 방문하고 싶었어요. 91년에 미국에 갔다가 97년에 돌아왔어요. IMF 여파로 모든 것이 힘들었던 시기라 98년에 대학원을 미국으로 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교회 선배가 연극원에서 행정조교로 근무한다고 하더라고요. 94년에 연극원에 방문했을 때 좋은 인상을 받아서 선배도 만날 겸 다시 왔다가, 선배가 전문사 과정에 입학하려고 한다는 걸 알았어요. 이미 대학원을 졸업한 상태인데 다시 학교에 간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어요. 덩달아 아동청소년극 전공 교수님을 만났고, 입학시험을 치르게 됐고요.

: 와 보니 어떠셨어요? 학업 기간 중 가장 좋았던 기억을 나눠 주실 수 있을까요?

: 같이 공부한 선후배들이 해외 유명 콩쿠르에 입상했을 때, 좋은 직장에 취직했을 때 그때가 가장 좋았던 기억이에요.

: 선후배 사이가 정말 돈독했나 봐요. 저는 좀 질투도 날 것 같은데. 저는 학교 와서 동경하던 미술감독님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거든요. 선생님들께서 가장 좋아했던 수업은 뭐예요?

: 실내악 수업이 가장 좋았어요. 기악과에서 오보에를 전공했는데 실내악 과목은 목관 5중주로 팀을 구성해서 앙상블 연주를 하는 과목이에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이 한 팀이 돼요.
: 저는 대부분의 수업을 좋아해서 가장 좋아했던 수업을 딱 하나 언급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한예종의 장점이 드러나는 수업을 꼽고 싶네요. <공동창작>, <즉흥극 워크숍>, <창조적 움직임>, <인형극 워크숍>, <주제별 워크숍> 등 서로 다른 분야의 학생들이 모여서 서로 다른 시각과 의견을 나누고 표현하는 수업들이 정말 소중했고 재밌었어요.

: 아! 저도 5학기 때 연기과 친구들이랑 주제별 워크숍으로 움직임 수업을 함께 했는데 굉장히 재밌었어요. 타원 친구들과도 교류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거든요. 그걸 다 해내셨네요?

: 한예종처럼 서로 다른 장르 예술이 한데 모여 있는 예술학교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학교 다닐 때 전통예술원 학생들이랑도 작업했고, 미술원 전시도 보고, 음악원과 무용원 공연을 보고, 음악원과 무용원 학생들이 연극원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고. 연극이란 협업을 하면서 그 안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체험했어요. 연기도 하고 스태프도 하고 통·번역도 하고. 지금 학교 밖에서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예종의 융복합 교육을 체험한 분들일 거예요. 앞으로도 자기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장르와 만남을 통해 새로운 예술 작품이 탄생할 기회가 많이 그리고 자주 주어졌으면 해요.

: 한 가지만 더요. 선생님이 학교생활을 하셨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서 가장 달라진 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당시 우리 학교 옛날 석관동 건물은 주 출입구가 하나였어요. 그때는 특별하게 느끼지 않았는데 2003년인가 학교 출장으로 호주와 아일랜드 예술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곳도 비상구 빼고는 다 한 곳으로 통하게 설계되어 있더라고요. 이렇게 큰 건물에 주 출입구가 어째서 하나뿐인지 물어봤더니 ‘출입구가 하나라서 전공이나 학과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실제로 주 출입구를 지나 마주하는 중정이나 학생 식당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교감을 하는 분위기였고요. 2008년에 새로운 캠퍼스로 이사 온 후에 왜 점점 흩어지고 서로에 대해 모르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어요. 물론 전부 출입구 탓이라 볼 순 없겠지만요. 그때와 달리 요즘은 교수, 직원, 학생 할 것 없이 서로 잘 모르고 볼 일도 없는 것 같아요. 더구나 코로나19 때문에 더욱요.

“그릴 것은 너무 많은데 하얀 종이가 너무 작아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을 수 없네요. 나름 학교생활 의외로 성실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어떤 삶의 궤적을 그리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 제게 한예종은 그런 곳인 것 같네요.

글 박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