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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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나와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나아가 타인의 표현을 이해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된다. 오늘날 대화는 물리적으로 마주 보지 않더라도 각자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다. 그렇기에 대화의 다른 조건보다 그 내용인 언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교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언어로 타인에게 다가가야 할까. 무엇이 서로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까. 이때의 언어는 비단 말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어가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음성, 문자, 몸짓 등의 수단 또는 그 사회 관습적 체계’이듯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각 분야만의 언어도 주요한 요소로 삼고자 한다. 그렇다면 문화 예술과 과학 기술은 어떠한가. 이 둘의 만남은 늘 새로운 문을 열어 예측하지 못한 언어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만남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작점이 된다.
올해 봄, ‘2022 K-ARTS × KAIST 신입생 영상 캠프’가 진행되었다. 부푼 마음을 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와 카이스트 신입생 36명이 2월 14일부터 21일까지 7일간 한예종 석관 캠퍼스 영상원에 모였다. 이들은 ‘영상제작팀’과 ‘게임팀’으로 나뉘어 매체 이해력을 높이고 창의력을 증진하는 체험형 워크숍을 경험했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캠프는 지난 1월 6일 체결한 카이스트와 한예종 간의 문화예술·기술 융합 협력 확대 지원을 위한 업무 협약(이하 MOU)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양교 학생들이 만날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들고 융합예술 및 첨단 콘텐츠의 공동 창작과 협업을 도모하려는 시도이며, 문화예술과 최첨단기술 간 융합을 촉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리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게임팀 수업의 목표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툴을 다양하게 접하는 것이었다. 게임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이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인디 게임(indie games)’ 1을 포함한 다양한 게임의 장르와 ‘경험 기반의 플레이’ 2, ‘시뮬레이션 기반 플레이’ 3 와 같은 게임 플레이의 방법을 배웠다. 또한 게임팀은 ‘프로토타이핑 툴’ 수업을 통해 트와인(twine) 4과 같은 웹 기반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게임 메카닉 및 디자인 강의’를 통해 게임 이론을 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더불어 수업은 ‘보드게임 워크숍’과 ‘플레이테스팅 및 피드백’으로 구성되었으며, 전반적으로 5~6명의 학생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팀별 개발’ 방식이 주를 이뤘다. 게임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며, 혼자서 제작할 수 없는 게임의 특성을 활용해 집단창작의 과정을 함께 경험하기 위해서다. 게임팀의 김영주 교수는 수업을 진행하며 게임을 대화로 접근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플랫폼에서 만나는 방법으로 게임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는 게임의 이러한 측면을 대화법이라고 일컬으며 이것이 곧 게임의 장르라고 말했다. 게임 장르는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만큼 아주 다양하기에,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알고 무엇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을 통해서 자신을 알고, 소통의 본질과 타인을 이해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영상팀은 차례로 ‘기획 연출 강의’와 ‘촬영 미학’, ‘촬영 실무’ 등 CG와 음향, 편집의 개념과 실무를 다룬 수업을 진행했다. 특히 ‘아이디에이션’과 ‘팀별 기획 회의’ 과정을 수업에 삽입하여 학생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논의의 장을 만들었다. 이후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이 직접 작품을 창작하는 실습수업이 이어졌다. 4~5명씩 팀을 이룬 학생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구성하고, 각자 맡은 역할을 소화하며 배운 것을 실제로 적용해볼 수 있었다. 실습 현장에서는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영상 제작의 문턱을 낮춘 것이 큰 특징이다. 이는 일상에서 접하는 기기의 또 다른 가능성을 몸소 깨닫고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수업과 관련하여 영상팀의 제창규 교수는 “과거에 제일 중요한 소통 수단은 그림이기도 했고 글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영상이라는 매체가 글쓰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글쓰기를 배운다고 해서 전문적인 소설가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이번 수업을 모두가 영화감독이나 관련업에 종사하도록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시대에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제일 많이 활용되는 영상에 대해 사고하도록 했습니다. 문법을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듯이 영상을 만드는 방식을 알아야 더욱 적절하게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기초적인 과정에 집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의사소통이라는 영상의 본질에 집중한 영상팀 수업의 참여 학생은 “영상 수업 중 촬영 구도에 대한 수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들을 볼 때 어떻게 촬영을 하는지, 구도는 어떤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봐왔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기본 개념들을 함께 배우면서 저 영상은 어떤 촬영 구도를 선택했는지 보였고, 화면을 3분할로 나누어 중심을 어떻게 두었는지 바로 눈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기본 개념들을 배우고 나서 바로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영상들에 적용할 수 있었던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라는 후기를 전했다.
이번 캠프는 한예종과 카이스트의 MOU 이후 첫 성과물로서 각 분야를 이해하는 기초이자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캠프에 참여한 한 학생은 “예술학교는 예술에만 치중하거나 폐쇄적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 캠프에 참여해보니 오히려 교류의 폭이 넓은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이라는 큰 틀에 과학과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를 직접 경험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습니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매우 감사했습니다.” 라는 소감을 전했다. 한예종과 카이스트는 MOU를 맺은 기간 동안 이러한 만남을 지속할 전망이다. 캠프를 진행한 AT랩 강승표 팀장은 “올해는 카이스트와 본교의 신입생을 대상으로 진행했지만, 여력이 된다면 예술사 재학생과 전문사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 가능한 대상의 범위를 넓혀가고자 합니다.”라는 계획을 밝혔다. 앞으로도 참여자의 폭을 넓힌 더 많은 만남과 지식의 교류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2022 K-ARTS × KAIST 신입생 영상 캠프’의 각 수업과 이승무 교수님, 제창규 교수님, AT랩 강승표 팀장님, 카이스트 22학번 새내기 학부 김명환, 한예종 22학번 미술원 미술이론과 이수현, 한예종 22학번 연극원 연기과 이예빈의 인터뷰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움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