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역 지하상가에는 소위 짝퉁이라 불리는 모조품들이 널려있다. 필자는 모조품을 구매하는 이들의 심리가 문득 궁금했지만, 이내 오늘의 목적지로 발을 돌렸다.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지하상가를 지나 7번 출구로 나오자 곧바로 익숙한 간판이 보인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바로 이곳이 오늘의 목적지, 올해로 25회를 맞이한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가 열린 곳이다.
오리지널이라는 범상치 않은 슬로건을 내건 이번 영화제에는 예술사와 전문사를 통틀어 총 70여 편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2월 23일에서 26일, 4일간에 걸쳐 모든 출품작이 상영되었다. 필자가 방문했던 토요일은 현장 예매로 진행된 상영관의 거의 모든 시간대가 전석매진을 기록하였고, 마치 졸업식처럼 영화관 전체가 관객들로 북적였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하루 동안 꽤나 다양한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담금질을 진행 중인 원석부터 완성도가 더해진 수작(秀作)까지. 그중에서도 앞으로 오랫동안 원본(original)으로 기억될 5편의 영화제 추천작을 소개한다.
<겨울나기>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말이 느린 편이다. 이들은 평소에도 숨이 찬 것처럼, 한 음절씩 천천히 말을 뱉어낸다. 느린 호흡에 더해 감독은 영화 내내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고정된 풀샷 안에서 때때로 오로지 인물만이 움직이는데, 이는 마치 미세하게 움직이는 사진을 보는 것만 같다. 단연 이 영화의 장점으로 여겨지는 특유의 단정하고 다채로운 구도와 미장센이 더해지면 화면 가득 회화적인 느낌이 더욱 강조된다. 한 장면 한 장면 가히 화폭이라 부를 만한 정성이다. 잔잔한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인물들의 속내는 답답하기만 하다. 주인공 연은 치매에 걸린 엄마를 홀로 간병하며,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채 살아간다. 동성 연인 수와의 관계는 가족들에게도 숨겨야 하는 치부일 뿐이다. 연의 친자매인 정과 희 역시 남모를 고충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잘 살아가는 줄 알았던 동생 희는 임신 후 미혼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폭탄선언으로 연의 마음을 다시금 심란하게 만든다. 장준영 감독은 세 자매가 겨우 숨 쉬며 버텨내는 삶의 모습을 통해 동시대 여성들이 짊어진 짐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장준영 감독을 만나 <겨울나기>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겨울나기>는 신세대도 아닌 그렇다고 낡은 세대도 아닌 어느 애매한 기로에 놓인 30대 중반의 한 여자에게 다가오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여느 때나 돌아가는 세탁기처럼, 그들이 남긴 자국들에서 끝나지 않는 반복과 순환을 이야기합니다.
정, 연, 희, 수와 같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한 글자로 지어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가장 보통적이고 일반적인 삶들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반대로 그녀들에게 흔하지 않은 이름을 주고 싶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불꽃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화려하고 찬란한 불꽃들이 터지고 난 뒤 사라지는 불씨들에 의미를 더 두었습니다. 세대를 보내고 다음 세대와 문화를 위한 준비와 시작이기도 하며 가족들의 마지막 밤에 주는 선물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 같이 남몰래 품는 희망으로 그녀들이 바라보는 시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통해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지.
어느 애매한 지점에 놓인 이들에게 서서히 사라지는 사람, 세대, 문화들을 정리하고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에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아픈 문화는 정성을 다해 정리하고 새로운 자기 문화에 묵묵히 걸어 나가 자기들만의 겨울나기를 바랍니다.
<매달리기>는 주인공 영선이 어린 시절 철봉에서 떨어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어느덧 만 18세가 된 그녀는 이제껏 다니던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퇴소하기로 결심한다. 얼마 후 영선에게 어린 시절 떠나간 엄마가 별안간 불쑥 찾아오는데, 그녀의 엄마는 기껏해야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나이다. 철없는 엄마와 함께 있을 때 영선을 비추는 카메라는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 불안정하게 움직인다. 의지하는 친구와 함께할 때 안정된 카메라와는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의 주인공, 11살 소년 시릴(토마 도레)을 따르는 카메라가 그러하듯 영선을 비추는 카메라 역시 그녀의 심정을 매 순간 충실히 대변한다. 영화의 후반부, 인물을 중심으로 부분에서 전체로 트랙아웃(track out)하는 카메라 무빙은 관객으로 하여금 무언가 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철봉에서 떨어지는 것이 곧 버려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력에 몸을 맡기고 현실에 발을 내디딜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박지인 감독은 영선의 성장 과정을 통해 관객들에게도 꿋꿋이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을 제안한다. 박지인 감독을 만나 <매달리기>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매달리기>는 자립준비청년인 영선이 생일에 자신을 시설에 맡긴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안에서 신발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듯 보인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신발이 전통적으로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어린 시절 발이 점점 커가며 신발이 작아질 때 신발 안에서 발이 꽉 끼는 고통 같은, 일종의 성장통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또 누구나 문밖을 나가려면 신발을 신어야 하는 것처럼, 세상에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물이라고도 생각을 했어요.
영선의 심정을 대변하는 카메라 무빙이 인상적이었다. 의도하는 바가 있었는지.
영선이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과거의 아픔도 추억도 멀어지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시간이 흐르고, 앞일은 모르고. 그게 두렵지만 희망일 수 있다고. 마지막 장면 역시 영화가 끝난 그 순간조차도 이제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고, 멀어지고 있다고 관객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자기가 어쩔 수 없는 환경과 만나 좌절하고 고통받지만 또 그 안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와 만나고 연결되며, 삶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고 성장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결국 다른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고요. 관객들이 주인공의 하루를 보면서 그냥 공감하고, 이해하고, 함께 슬퍼하고, 또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두>는 겹겹이 쌓여있는 영화이다. 쌓여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선이다. 우선 영험한 무당 이화와 그녀에게 신내림을 받을 이른바 ‘신딸’ 지원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을 취재하러 찾아온 다큐멘터리 팀의 제작진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영화의 중심부에 놓인 인물이 다름 아닌, 이들의 주변을 맴도는 이화의 아들 기동이라는 사실이다. 카메라 안의 카메라(다큐의 카메라)는 이화를 찍고 있지만 관객들이 마주하는 카메라(영화의 카메라)의 중심에는 언제나 기동이 자리하고 있다. 더욱이 중요한 건 카메라와 카메라 사이에 놓인 기동의 시선이다. 겹겹이 쌓인 시선들 속에서 기동의 눈짓이 극의 흐름을 주도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시선에서 시선으로 서사를 이어가며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또한, 이 시선들은 영화의 제목인 작두처럼 날이 바짝 서 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오르내리는 날카로운 시선들은 현실과 초월 사이를 오가는 샤먼(shaman)의 삶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자리한 몸짓들 역시 날렵하고 재치있다. 정재용 감독을 만나 <작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작두>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인물이 그에 더해 보다 왜곡된 믿음을 갖게 되는 비극입니다. 실패하는 독립을 향한 여정이며, 실패하는 고딕 로맨스의 변용입니다. 또한, 송철호란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쓰인 이야기입니다. 철호형은 인간의 선악을 넘어선 면모를 그야말로 찐득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인데, 제가 본 다른 영화들에서는 주로 활약은 훌륭하지만 그가 해낼 수 있는 것보다 제한된 역할과 극이 정한 도덕의 틀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편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는 왜곡된 성장을 하는 주인공의 서사를 통해 그와 함께 밀도 높은 30분을 만들어내고 싶었습니다.
샤머니즘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주제 선정의 이유가 궁금하다.
마술적으로 보이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실주의적인. 그래서 현시대의 무속이 적합했습니다.
작중 인물들의 입체적인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각각 실제 모델을 참고하였는지.
김금순 선배님께서 빚어주신 엄마이자 무당인 이화라는 캐릭터의 경우, 본디 제가 <작두>의 작업 이전에 임했던 다큐멘터리에서 만나 뵙고 취재했던 만신 선생님을 참고했습니다. 만신이지만 어머니였던 그녀의 모습이 인상에 깊이 남았습니다. 또한, <손과 날개>라는 단편 영화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아들을 대하는 엄마를 연기한 김금순 선배님의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에 품고 있다가 한겨울 밤 학교 앞 카페에서 선배님을 처음 만나 이화라는 캐릭터를 제안드렸습니다.
지원이라는 캐릭터는 이화와 어느 정도 상반된 면모를 가져야만 했습니다. 이화보다는 속이 겉으로 드러나면서도 충동적이어야 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지원이라는 압력을 만들어야 표출하고픈 이화의 기질을 끌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추리로 접근했습니다.
주인공이자 아들인 기동은 많은 기존의 신화와 창작물 속의 원형들을 참고하여 변용했습니다. 성공하는 영웅 서사 속 원형들에게서 미덕들을 박탈하거나 뒤틀어가며 기동을 전락시켰습니다. 오르페우스, 그러나 거문고를 켤 줄도 모르는 오르페우스, 거문고가 없으므로 에우리디케도 만난 적 없는 그런 오르페우스, 혹은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내는 페르세우스가 아니라 그 한 몸 돌이 되지 않기 위해 메두사에게 굴복하는 페르세우스처럼. 그러면서도 때때로 양심과 같은 최소한의 것들은 보존해야 했습니다. 관객이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매력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좀 다르지만 노틀담의 콰지모도처럼.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불편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좀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이 항상 그렇듯이.
<악몽>에는 꿈 장면이 많이 나온다. 어린 유진은 밤마다 같은 악몽을 꾸는데, 그때마다 이불에 실례를 범하며 잠에서 깨어난다. 프로이트의 계승자라 불리는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에 따르면 억압된 증상들은 반복을 통해 결국 다시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유진이 악몽을 꾸는 이유는 그녀 안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진의 오빠 유호는 유진에게 꿈속에서만큼은 <킬빌>의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처럼 전사가 될 것을 제안한다. 재밌는 건 악몽 속 악당들과의 대결이 마치 게임과 닮았다는 점이다. 우선 아무리 죽어도 이내 다시 목숨이 생긴다는 점에서 꿈은 게임을 닮았다. 또한, 자아의 모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둘 사이의 공통점이다. 초등학생 유진은 꿈속에선 이상적인 신체를 가진 어른이 되어 적들을 물리친다. 마지막으로 점점 강한 적, 이른바 빌런이 등장한다는 점 역시 같다. 레벨을 올리듯 악몽이 반복될수록 유진은 강해진다. 꿈과 현실의 교차 편집은 그녀가 현실에서도 성장하고 있음을 자연스레 보여주는데, 그녀가 악몽을 극복하는 과정은 어느새 즐거운 놀이가 된다. 한승원 감독을 만나 <악몽>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악몽>은 ‘서커스 악몽’에 시달리던 9살 꼬마 유진이의 트라우마 극복기를 담아낸 판타지 액션 영화(혹은 스펙터클 액션 영화)입니다.
유진의 꿈속에 등장하는 적들의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연출 의도가 궁금하다.
액션 장면이 일종의 춤처럼 느껴지길 원했습니다. 액션에서 배우들이 주고받는 합이 ‘공격성을 내재한 춤’이라 생각했고, 유진의 꿈속 적들의 움직임이 주는 느낌이 독특하다고 느끼셨다면, 그 지점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주제와 관련해 고려한 점이 있다면.
나름대로 심각한 분위기의 영화라 생각하면서 만들었던 것 같은데, 봐주신 분들이 유쾌하게 바라봐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제 성격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소에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을 잘 못 견디곤 하는데요. 사회적으로 우울한 시기를 액션 장르로 극복하길 바라는 소망이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주제나 의미보다는 그저 재미있고 가볍게 볼 수 있는 액션 단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근 영화계를 짚어보면 상업영화만큼이나 독립영화 역시 비슷한 주제, 소재, 분위기로 패턴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심지어 예술영화용 제작 패턴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인데요. 여기에는 시스템의 문제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너리즘 속에서 이제는 ‘누가 더 어렵게 생각하나’의 대결이 된 것 같다는 인상도 들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다양한 영화가 나오기엔 양쪽 모두 힘들어진 것 같아요. 최근 2~3년 동안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고, 저는 ‘현재의 경향’을 더욱 세련화시키는 데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서 느낀 재미를 관객들도 똑같이 느끼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쥐아내전>의 주인공은 ‘아내’이다. 그녀는 극 중에서 딱히 정해진 이름없이 그저 누군가의 아내로 존재한다. 영화의 초반부 아내는 임신을 못하자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얼마 후 그녀의 손톱을 먹고 복제된 ‘쥐아내’가 등장한다. 겉모습은 같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은 항상 남편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구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기이한 구도를 통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낯선 두려움(uncanny)’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시댁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내와 달리 쥐아내는 모든 면에서 남편과 시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한다. 전래동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듯한 <쥐아내전>은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는 원작 동화와 달리 모든 것이 뒤집힌 채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는다. 영화는 쥐아내라는 허상을 통해 시집살이의 부조리를 반어적으로 드러낸다. 감독은 영화의 결말부에 직설적으로 쥐아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래도 아들을 낳고 싶어?” 김윤선 감독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쥐아내전>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임신을 못 한다는 이유로 핍박받던 아내가 자신처럼 둔갑한 쥐아내를 만난 후 둘 중 누가 진짜인지 대결하는 호러 블랙코미디 영화입니다.
‘쥐아내’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시나리오의 원형인 ‘쥐둔갑설화’에 대해 제가 가졌던 의문점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전으로 내려온 쥐둔갑설화의 여러 버전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믿었던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쫓겨난 주인공이 결국엔 다시 가족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결말은 모두에게 해피 엔딩인 것처럼 마무리되죠. 저는 이것이 왜 정의로운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당시엔 개인의 행복보다 가족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가족주의가 뿌리 깊었기에 이러한 시대상이 자연스레 녹아든 것이죠.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고, 저는 이야기를 새롭게 재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쥐아내전>의 캐릭터 역시 이런 의도가 반영됐습니다. 아내와 달리, 쥐아내는 본인의 목적을 위해 주도적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종국엔 모든 것을 전복해냅니다. 기존 여성상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김기영 감독님의 여성 인물들로부터, 선악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박찬욱 감독님의 여성 인물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동화적이면서 기괴한 외형은 팀 버튼 감독님의 작품 속 캐릭터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다양한 영감들이 뒤엉켜 최종적으로 지금의 쥐아내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홍등을 통해 붉은 색감을 표현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공연적인 요소를 의도한 것인지.
홍등을 연출한 가장 큰 이유는 ‘직관성’ 때문이었습니다. <쥐아내전>은 대사가 적은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청각적 장치가 중요했어요. 이런 이유에서 홍등은 ‘말이 필요 없는’ 훌륭한 연출적 장치였습니다. 집안에 등이 켜지는 순간 영화 속 집이란 공간이 판타지적으로 느껴질 것이라 여겼습니다. 확실히 집이란 공간이 수상하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어요. 그래서 등을 마치 공연의 조명처럼 극적으로 사용했고, 이를 통해서 관객들이 판타지적 서사에 몰입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또한 붉은색은 불안감을 조성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홍등이 켜지는 순간 ‘아, 이야기가 다른 국면으로 향하겠구나!’ 관객들이 본능적으로 감지할 거라 믿었던 거죠. 더하여 붉은 색감이 영화가 은유하는 욕망을 시각적으로 강조해주는 효과가 있을 거라 판단하였습니다.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수많은 구전(九殿)에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개인, 순종적인 아내가 성상화되지만 이젠 이런 시선들을 뒤집어 버릴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 식대로 가족을 구성해도 괜찮다고, 희생하고 순종하는 여성상은 더 이상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라는 걸 말이죠.
마치며
“Plastic!”
영화 <졸업>의 명대사이다. 졸업 후 앞으로의 진로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주인공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에게 기성세대들은 플라스틱 업계가 유망하다고 귀띔한다. 사실 이 말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플라스틱은 무엇이든 저렴하게 대량생산이 가능하기에, 가장 흔한 원료 중 하나이기도 하다. 냉혹한 사회에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벤자민에게 플라스틱을 기억하라는 말은 사실 기성세대가 원하는 바이다. 그들은 벤자민이 시키는 건 뭐든 군말 없이 찍어내는 플라스틱처럼 되길 바라는 것이다. 길바닥에 널려있는 모조품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열었다. 글을 마치며, 이제야 모조품의 속내를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한예종의 졸업생들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지금의 날카로운 촉이 무뎌지는 순간들을 마주할지 모른다. 다만, 이들이 지금 경험한 ‘생기’는 결코 잊지 않길 바란다. 졸업 후에도, 지금의 기억을 동력 삼아 매 순간 ‘진짜(original)’로 거듭나길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