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175’는 2003년 개관한 갤러리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산하 조형연구소가 운영하고 있다. 설립 취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과 출신 작가들의 다양한 전시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현재는 전시 지원 자격을 보다 확대하여 다양하며 실험적인 전시를 개최하고 기획하고 있다. 또한 신예 작가와 기획자를 발굴하기 위해 관련 전시와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미술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다 다층적인 시도를 하는 갤러리175는 장르와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갤러리175의 공간적 의미와 맥락을 ‘다양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지향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관련 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요약해본다.
처음 갤러리175가 자리 잡았던 공간은 종로구 안국동이다. 크고 작은 여러 갤러리가 모여 있는 삼청동과 인사동 사이에 있었다. 현재 위치는 통인동이지만 공간적 맥락과 취지에 있어서는 어떤 변화도 없다. 지난 20년간 졸업 전시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작가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제공하며 여러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정의를 재차 거듭해온 갤러리175의 발자취를 가늠한다. 안국동 혹은 통인동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갤러리175의 공간적 맥락을 되새김질해 본다. 예술과 문화가 집결된 현장에 직접적으로 붙어있는 갤러리. 이는 미술원과 예술계 전반이 소통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졸업생들의 전시는 미술원의 성과가 어떠한 것인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다양한 기획전은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발점인 것이다.
《Mumbling after Silence》(2023.2.3-2.14)는 최근 갤러리175에서 개최된 전시이다. 해당 전시가 갤러리175의 공간적 맥락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전시 자체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이 전시는 김도연, 정지인, 정진희 세 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이다. 이들이 펼치는 전시의 제목을 직역하면 ‘침묵 이후의 중얼거림’ 정도가 되겠다. 세 명의 작가가 공통적으로 집중한 주제는 고대 바벨탑 신화에서 나온다. 신에 필적하려는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는 높은 탑이 언어의 한계로 인해 무너졌다는 신화. 이때 주안점은 ‘언어’다. 인간을 무력하게 하는 것이 언어의 붕괴라는 의미는 상징적이다. 그만큼 언어는 인류에게 막강하며 절대적이다. 이 강력한 매체가 인류를 무력하게 할 수 있다면, 반대로 인류의 붕괴로부터 회복의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해당 전시는 팬데믹 이후 붕괴된 사회를 언어로 되살린다는 주제 의식을 보인다. 폐허가 된, 붕괴되어버린, 그렇기에 침묵이 흐르는 곳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중얼거림. 중얼거림은 언어이다. 그렇기에 침묵을 깨는 중얼거림은, 흘러나오는 언어는, 붕괴 이후의 삶을 상상토록 한다.
작가 각각의 작품에 집중해 보자. 김도연 작가의 작품 중 <December>(2023)가 인상적이다. 꿈틀거리는 갖가지 살색의 형체의 영상이 끝없이 루프로 이어진다. 점성의 액체가 흐르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주의를 기울이면 이내 살색의 형체가 글자임을 알아챈다. ‘He’, ‘She’, ‘I’, ‘They’와 같은 인칭대명사가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신화 속 인류를 상징한다는 사실이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그, 그녀, 나, 그들’과 같은 단어는 불특정 개인 혹은 불특정 다수를 상징한다. 군집으로서 정의되는 인류는 어쩌면 신화 속 신의 시선처럼 관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인류를 획일적으로 정의한다. 바벨탑의 신화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바벨탑은 양날의 검과 같다. 수많은 사람들의 특성을 지우고 인류라는 단어 하나로 묶어버림으로써 구성원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소속감은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획일적인 정의 안에 귀속하도록 한다.
김도연 작가의 애니메이션 속 살색 형체의 움직임은 살사, 카포에라, 탱고, 밸리 댄스, 룸바, 힙합 등 다양한 춤이 기록된 모션 캡쳐 데이터가 입력된 것이다. 곧바로 터져버리거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듯하지만 위태로운 질서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형체는, 그렇기에 공존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바벨탑이 무너져 내린 후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진 인류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언어와 피부색의 존재들이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며 질서를 지키는 모습, 꿈틀거리는 제각각의 살색 형체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작가가 염원하는 다양한 존재들의 조화를 엿볼 수 있다.
정지인 작가의 작품들은 바닥에 늘어져 있기도, 일종의 제물처럼 거치대 위에 놓여있기도 하다. 그중 바닥에 나열된 <문장 Sentence>(2023)을 살펴보자. 도자로 만들어진 조형물은 제각기 두 개의 기호를 부여받았다. 덩어리의 질감이 여실히 느껴지는 조형물은 열쇠 모양이 하트 모양을 이어내는가 하면 촛불과 종, 종과 해골, 해골과 컵, 컵과 클로버, 클로버와 촛불을 연결한다. 이 조형물들 앞에 놓인 LED 촛불은 실시간으로, 그러나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색이 바뀐다. 마치 돌 같아 보이는 조형물들이 이어내는 상징체계와 기호, 그 안의 의미 앞에서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촛불의 공존이 인상적이다.
정지인 작가는 바벨탑이 언어적 규칙을 상징한다는 관점을 갖는다. 세밀하고 튼튼하게 다져진 약속의 상징인 것이다. 그리고 바벨탑이 무너져 내린 이후, 즉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진 상황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로 이미지이다. 이미지가 언어의 대안으로서 소통의 유일한 수단이 된 상태, 마치 상형문자로 소통하던 고대의 원초적인 상태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후 작가는 각각의 이미지들을 짝짓는다. 촛불에서 종, 종에서 해골, 해골에서 컵, 컵에서 클로버, 클로버에서 촛불로 짝지어진 조형물들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이미지의 나열과 그로부터 나오는 수많은 독해의 가능성, 그렇기에 존재하는 무궁한 오독의 가능성을 새로운 언어 구축의 지름길로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짝지어 이어지는 이미지들이 갖는 수많은 의미와 가능성은 무너진 바벨탑을 대안적으로 재건할 매체가 된다. 또한 해당 작품에서 재미있는 점은 일종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듯 나열된 조형물들은 단어처럼 보인다. 단어는 모여서 문장을 만든다. 몇 개의 이어지는 이미지 기호를 보고 관객이 떠올리는 이야기는 관객 수만큼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무궁무진한 언어의 세계는 바벨탑의 대안적 재건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정진희 작가가 말하는 바벨탑은 보다 미시적이다. 작가는 자주 꾸는 꿈의 내용을 기록하고 작업의 시작으로 삼는다. 꿈은 허구에 불과한 비현실이 아닌 “심연의 메시지”라는 영화의 대사처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처럼 인간의 심연을 암시하고 심층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매체이다. 꿈에서 깬 직후 느끼는 기묘한 감각이 있다. 꿈속에서는 당연하고 이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현실에서는 낯설고 불규칙적으로 느껴지며,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과 맞닥뜨리곤 한다. 묘사에 어려움을 겪는 꿈과 현실 사이의 낙차감에서 작가는 바벨탑의 붕괴를 떠올린다. 바벨탑이 무너지며 제각각 다른 언어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탑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한다.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처럼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부술 수 없는 벽이 생긴다. 작가는 이러한 소통의 한계를 오히려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도록 하는 실존적 사건으로 재해석한다. 꿈을 작업의 시작으로 삼아 작가는 작품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그 안에는 기록한 꿈을 현실 속의 책이나 영화 등 다양한 소스에서 수집한 이야기나 개인적인 경험, 감정들이 한데 뒤섞인다. 특히 <Vine House>(2023)에서 구현된 제단화 안에는 게임과 같아 보이는 인터페이스, 기하학적 패턴과 선명한 색상, 고양이 그림, 모자이크 등이 가득하다. 마치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듯하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작가는 해당 이미지가 자신의 잃어버린 세계의 조각들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난해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은 오히려 더 넓은 소통의 가능성을 갖는다. 관객에 따라 더 많은 해석과 이야기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진희 작가에게 초현실과 난해한 이미지 같아 보이는 그림은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에 대한 염원이다.
《Mumbling after Silence》는 시의적절하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긍정적이다. 대안적인 재건, 그 안에서 공동체 간의 조화와 공존을 이루는 것. 세 명의 작가가 펼치는 주제의식은 갤러리175의 취지와 잘 들어맞는다.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고 근래의 주제에 심도있게 사유하는 작품들은 미술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미술과 세계가 소통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예술은 사회와 끊임없이 감응해야 하기 때문에 갤러리175에서 벌어지는 소통은 상징적이고, 소중하다. 그렇기에 소중한 상징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갖는 의미는 충분하다. 전시는 조화와 공존에 대해 염원하고 있다. 갤러리175 역시 그렇다. 다양한 것들의 조화를 도모한다. 그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예술과 사회, 공간과 의미, 상징적 맥락과 물질.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뒤섞여 펼쳐지는 공간인 갤러리175의 방향성이 기대되는 바이다. 그렇기에 나아갈 다음을 혼자 중얼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