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2023 SPRING45

드로잉

그날은 나에게 주어진 쉬는 날이었다. 내게 직접 쉬는 날을 주어야 하는 무한 자유와 책임을 가진 일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쉬는 날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사실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무엇을 해야 쉬는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 집안의 식물을 관찰하고, 쥬니(고양이)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천변을 걷는 것, 뭐 그런저런 좋아하는 일상을 일과 관련 없이 보내보는 것 정도가 될까? 숨을 고르고 별다른 목표 없이 하는 행동이 쉼일까? 아무튼 그런 날에 아무리 집에서 잠옷 차림의 편안한 상태였어도, 거실의 원형 테이블 위에 앉는다는 건 쉬는 것과는 다른 자세였다.

드로잉북 위 펜을 들었고, 그렸다. 아마 얼마 전 오랫동안 호접란을 관찰했던 시간을 떠올렸던 것 같다. 고작 손가락 두 마디 내외의 호접란을 크게, 더 크게 보기 시작했고, 펄럭이는 축 처진 호접란의 꽃잎이 내 머리 위보다 더 높이 커져 있는 것을 느끼며 손 안의 호접란을 엎치락뒤치락 이리저리 들춰봤다. 그것은 넓적하고 얇은 팔 같기도 해서 얼굴을 방어하듯이 가린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큰 두 귀를 주체 못하는 덤보같기도 했다. 그것을 서툰 선으로 슥슥 그어 종이 위에 옮겼다. 꽃대에서 떨어진 호접란의 적당히 지쳤고 또 자연스럽게 시든 모습을 보며 시간과 물리를 떠올렸다. 그리곤 손을 움직여 쓱 길게, 또 촘촘하게 곡선을 그었다. 나는 그 선을, 박쥐를 떠올리며 약간 어그러뜨린 대칭을 의식하며 둥글게 쳐진 러플을, 그러니까 커튼 같아 보이는 천의 주름을 유방이라 여기며 그었다. 인상으로 떠도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그것들이 시간을 거쳐 일부는 깊은 곳으로 또 일부는 표면 근처를 떠돈다. 어떤 것이 솟아오르는 순간, 저 아래 감춰져 있던 오랜 것이 연상작용으로 퐁퐁 떠오르는 것, 그것이 아직 정의되지 않은 채 펜을 쥔 손의 감각과 명령으로(아마 아니겠지만) 종이 위에 등장한다.

영감은 순식간에 빛처럼 비추고, 때론 서서히 물처럼 스미며 점차 오늘보다 다층적인 ‘나’라는 생각하는 존재를 켜켜이 구축한다. 그 층이 쌓일수록 쌓인 무게감에 지긋이 눌려, 다사다난했던 ‘나’라는 존재가 비로소 단순하고 명료해진다. 그리고 그 존재는 다시 대상을 바라본다. 그 대상을 바라보며 이전과는 다르게 세상을 느낀다. 대상을 통해 세상을 파악한 존재는 다시금 외부 세계에 이전에는 없던 것을 만들어 내보낸다. 이것이 내가 지금껏 해내고 있는 일이다. 그동안 작업을 하며 내가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그 무엇도 나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날은 쉬는 날이었다. 일과 상관없지는 않았지만 나는 숨을 고르고 그렇게 상쾌한 휴식을 했다.



기다림의 촉

‘촉’이 좋다는 것은 곧,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촉이 좋길 바란다.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어떤 일을 하기 전 그 결과가 긍정인지 부정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촉이 남다르면 삶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사람들이 ‘촉이 좋다’는 것에 연연하는 이유일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그토록 오래 바랐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 칭송되는 20세기의 거장 폴 세잔은 자신의 일기장에 수없이 이 문장을 적어왔다고 한다. 미술에 관심 없는 이도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가 이런 고민을 했다니... 스스로에 대한 촉이 그리도 없었나... 그저 배부른 푸념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올해 1월, 좋은 기회로 프랑스를 가게 되어 방문하게 된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들을 연대기 별로 보게 되었을 때, 그의 고민이 그저 푸념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나와 닮았다는 오만한 동질감까지 생기며, 수많은 유명작들 사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작가는 세잔이었다.

고향인 엑상프로방스에서 부모님의 뜻대로 법학을 공부하다 다소 늦은 나이에 미술을 하기 위해 파리로 온 세잔. 그는 작품을 발표하는 족족 기존 화가, 평론가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그의 초기작들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고 투박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미술에 대한 ‘촉이 없다’, ‘재능이 없다’, ‘부모님이 부요하니까 저 실력으로 미술을 하겠다고 파리에 왔지’ 등등의 말들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온갖 조롱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은둔생활을 하며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고, 작품은 점점 발전했다. 그리하여 50대가 되어서야 열게 된 첫 개인전에서 그는 마침내 조롱이 아닌 폴 세잔만의 작품 세계관으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화가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세잔은 앞서 언급한 ‘촉은 곧 삶의 효율’이란 논리에 어긋나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촉’이 없는 사람이었을까?

나는 내가 천재가 아님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나의 촉은 정확했다. 늦은 나이에 다른 동기들은 단번에 붙은 영화학교도 3번의 시험 끝에 올 수 있었고, 특출난 면모도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고 싶었고, ‘나는 성장캐’라며 스스로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매년 한 작품이라도 연출하려고 애썼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내가 뭔가 해보려고 할 때마다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 친구들과 밥벌이를 해야 할 나이에 타지에서 밥을 축내면서도 촬영 중이라 바쁘다고만 하는 딸내미를 믿어주는 부모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고, 2021년 여름부터 2022년 봄까지 혼을 갈아<시나브로> 1 를 완성시켰다. 이번에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함께한 스태프들과 부모님 볼 낯이 있을 것 같은 작품을 만든 것 같다는 좋은 촉이 왔다. 그러나 똥촉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영화제에서도 <시나브로>를 불러주지 않았고, 좋은 촉을 믿었기에 좌절감은 기다림의 촉 더 컸다. 2022년을 패배감으로 멍하게 보냈던 것 같다. 속상한 마음을 안고 함께한 스태프, 배우와 씁쓸한 송년회(물론 그들은 주눅 들어 있는 나에게 용기의 말과 응원을 많이 해주었다)를 했다. 다음날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해장하러 가는 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 좋은 전화일 것 같은 촉이 와서 받지 않으려 했지만, 버튼을 잘못 눌러 전화가 연결되고 말았다.

— 감독님!
— 누구..세요?
— 아, 포스트핀입니다.
— (당시, 배급사 볼 낯도 없었던 터라 말이 잘 안 나왔다) 네..
—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시나브로>가 끌레르몽페랑 국제 단편영화제 국제경쟁 부분에 초청되었어요! 참석 여부를 여쭤보려 전화드렸습니다.
— 네? 제가 아는 그 끌레르몽페랑이요??

내 촉은 틀렸던 것일까 맞았던 것일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든 영화로 생애 처음 프랑스 땅을 밟을 수 있었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직접 세잔의 작품을 보게 된 것이다.

처음 참석해본 영화제에서 수많은 국가, 다양한 언어의 영화 속에서 많은 영감과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동시에 나를 믿어주고 함께해 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왔다. 은둔생활을 하던 무명의 화가 세잔에게 든든한 부모님과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던 소수의 동료 화가들이 있었기에 그는 포기하지 않고 붓을 들 수 있었다. 나 또한 든든한 동료들이 있음에 용기를 낼 수 있었고, 함께 더 성장하자고 응원해 줄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원동력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창작자에게 있어 ‘촉’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의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학생이고 지망생일 뿐이다. 내가 언제 직업인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50대에 첫 개인전을 연 세잔처럼 시나브로, 내가 그토록 바라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더 이상 촉에 휘둘려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1 <시나브로> 2022 / 드라마 / 21’ (영화과 내러티브WS 작품) 시놉시스 : 작업장의 유품을 훔쳐 중고거래를 하는 특수청소부 ‘신우’. 그녀는 친구였던 민수의 소식을 맞닥뜨리게 된다. Cast|백지혜, 장준휘, 윤지원 각본/연출/편집 강홍주 | 조연출 이루리 | 프로듀서 장원우 | 촬영 이용재 | 조명 오성민 | 미술 안정민 | 사운드디자인 이다민 | 음악 서지운 | D.I 이호진(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