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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o Park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김영욱

2021년 여름, 노부스 콰르텟의 멤버로 먼저 만났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2023년 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교수가 되어 다시 매거진에 얼굴을 비췄다. ‘그때와 달라진 건 없다’고 담담하게 대답하는 목소리에서부터 그가 음악으로, 또 음악 교육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들이 이미 읽히는 듯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바이올린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건 제게 운명처럼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바이올리니스트여서 장남인 제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를 원하셨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모든 게 준비돼 있었던 거죠. 아주 어릴 때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가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항상 악기나 지휘봉을 들고 놀았대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웃음) 아버지께서 제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시고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셨죠. 저는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래로 계속 치열하게 살아왔어요. 학생 때도 그렇지만 사회로 나가게 되면 정말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오니까요.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삶에 스스로 확신을 갖게 된 데에는 막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가끔 후회가 될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렇게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다가 어떤 연주를 했는데 그 연주에서 정말 큰 영감을 받고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음을 몸소 느꼈을 때, 그런 짧은 순간들이 ‘그래, 내가 이런 것 때문에 하고 있지’라는 강렬한 느낌을 줘요. 어느 날은 하기 싫고 지치다가도, 이런 원동력이 있으니까 그저 계속해 온 것 같아요. 최근에는 조금 안정을 찾고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요.

사람들이 악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예를 들어 ‘첼로는 사람의 목소리와 밀접하다’는 식으로 많이 말하잖아요. 근데 바이올린은 정말 그 모든 것을 다 섭렵하고 있는 것 같아요. 화려한 테크닉부터 섬세하고 신중한 표현까지 정말 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영역의 악기라는 점이 바이올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을 한 해 동안 연주하게 된 계기와 연주를 통해 얻게 된 베토벤 음악에 대한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우연히 한 해에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와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를 같이하게 됐어요. 학생 때부터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언젠가는 한번 도전해봐야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같은 경우는 유명한 지휘자들도 클래식 음악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무게감이 있는 곡들이에요. 그만큼 스케일이 크다 보니 덥석 시도하기 두려웠었는데 예술의전당 측에서 먼저 제의를 주셨죠. 처음에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나 싶어서 도전하게 됐어요.

베토벤은 흔히 구분하는 초기, 중기, 후기마다 작품에 매우 큰 차이가 있어요. 작품 스타일은 물론이고 작곡가 본인의 심정도 그렇고요. 베토벤이라는 큰 틀 안에서 그 시대에 그 사람이 느끼고 있던 감정이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저 스스로도 음악의 깊이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사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베토벤에 대해 온전히 알 수는 없을 거예요. 베토벤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야 그냥 상상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잖아요. 20% 정도 깨닫게 된다면 다행일까요. 그래도 연주를 계속하다 보니 베토벤과 베토벤 음악에 대해 갖게 된 감각들이 확실히 깊어진 것 같아요. 베토벤 음악이 중기로 접어들 때쯤에는 음악이 조금 더 심오해지고, 연주하면서 고민해야 하는 부분도 늘어나는데, 그에 대한 제 해석의 깊이가 조금 더 생겼죠.

베토벤 음악은 매우 예민하고 연주하기도 정말 까다로워요. 근데 그 속에 담긴 음악의 깊이가 남달라서, 제가 왜 음악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마냥 즐거운 레퍼토리나 작곡가는 없어요. 개인적으로 방에서 혼자 바흐를 연습할 때는 즐거운데, 그걸 사람들 앞에서 한다고 하면 고통의 시간이 오죠. 그래도 좋아하는 작곡가를 꼽자면 바흐와 베토벤인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러시아 작곡가들과 잘 어울린다고 얘기해 주시기도 하는데, 정말 제 내면이 그런 쪽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그래도 그런 말들은 항상 감사하죠.

베토벤 연주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결혼도 했고, 학교도 임용되는 등 좋은 일이 많았어요. 그만큼 아주 바쁘기도 했고요. 그래서 2022년은 정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부스 콰르텟의 멤버로서 좋은 연주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있다면요?

원래 되게 낯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인데 음악, 특히 콰르텟을 할 때는 좀 달라요. 콰르텟은 예민하게 할 수 없으면 안 하는 게 나아요.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내야만 저희가 생각했던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콰르텟이 유지가 쉽지 않은 거예요. 네 사람이 모여서 그걸 하려고 생각하면 정말 죽이고 싶을 때도 있고 (웃음) 그러면서 다 깨지는 거거든요. 그 순간이 아니면 저는 되게 소심하고, 뭐랄까 바보 같아요. 그래도 노부스 콰르텟은 할 수 있을 만큼 오래 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도 저희끼리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요. 하지만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잖아요. 어떤 현실의 문제를 맞닥뜨려서 한순간에 깨져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는 저희가 정말 좋은 퀄리티의 연주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실내악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저희(노부스 콰르텟)가 하는 건 단순한 합주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실내악에 접근하는 일이잖아요. 실내악이 아직까지 대중들에게는 조금 비주류의 영역이기도 하고, 음악 자체도 더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껴질 것 같아요. 요즘은 연주자를 보고 공연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라도 음악과 공연을 접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동안 그걸 이끌어갈 실내악 팀들이 많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한예종에서도 한국 실내악 발전을 위해 굉장히 많은 선생님들의 고민이 있었어요. 올해부터 전문사에 실내악 과정도 생겼고요. 그런 노력들이 더 쌓이면 학생들이 나아갈 길이 열리고, 대중들도 실내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한국 실내악이 또 발전해 나갈 수 있을까, 저도 앞으로 고민을 더 많이 해봐야겠죠.

올 초 제15회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한예종 출신 아레테 콰르텟과 이든 콰르텟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너무 자랑스럽죠.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저도 솔로와 실내악 콩쿠르를 모두 경험해봤지만 실내악 콩쿠르는 특히 준비하기가 녹록지 않거든요. 혼자 연습하는 건 그냥 혼자 하면 돼요. 근데 네 명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같은 예민한 지점들을 다 견뎌내야만 가능하거든요.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요. 저도 계속 라이브 스트리밍 보면서 같이 응원했습니다. (예감하셨나요?) 네, 당연하죠. 아레테는 팀원들 간의 결속력이 대단해요. 단순한 협동심을 떠나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진지하기 때문에 그게 큰 에너지를 발휘해서 훨씬 더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든도 마찬가지고요, 이든 콰르텟은 워낙 개개인의 실력도 출중하거든요. 두 콰르텟 모두 팀으로서도, 개인으로서도 크게 기대가 됩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보다도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중시하는 측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바이올린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건 기본기예요. 피아노로 치면 하농이나 체르니 같은 것들. 바이올린은 특히 왼손 테크닉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어렸을 때 스케일이나 3도, 6도 같은 화음 연습들이 기본이 돼야 이후에 더 복잡한 테크닉을 소화할 수 있어요. 운동이랑 똑같아요. 손흥민도 아버지가 가장 중요시했던 게 기본기라고 하잖아요. 맨날 똑같이 공 차고, 드리블하고. 그만큼 바이올린도 어렸을 때 기본기를 탄탄하게 해 두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하기 싫다는 아이를 시키는 건 안 되지만 아이가 관심 있어 하거나 재능을 보이면 기본기를 시켜야죠. (웃음) 사실 저는 어렸을 때 워낙 노는 걸 좋아해서 가만히 앉아서 기본기 연습하는 걸 잘하지 못했어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요. 사실 선생님이 붙잡고 시키지 않으면 기본기 연습은 잘 안하게 돼요. 성인들도 그게 의지대로 안 되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혼자서 그 재미없는 걸 연습하고 있겠어요. 그래도 나중에 보면 기본기가 잘 돼 있는 아이들은 티가 나요. 그게 큰 차이를 만들기도 하죠.

사실 한예종에 오는 학생들은 단순히 연습만으로는 되지 않는 높은 수준에 있을 거예요. 거기서 더 나아가려면 연주 기회가 많아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연주 기회를 정말 많이 제공하고 싶어요. 레슨할 때 듣는 말 한마디보다 무대 위에서 본인이 연주하는 동안 그 무의식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영감을 받는지 직접 느낄 때 훨씬 많이 배워요. 혼자 방에서 연습하는 것과 두세 명이라도 누군가 지켜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래서 지난 학기부터 클래스 연주도 많이 하고 있어요.

노부스 콰르텟 연주 ©노부스 콰르텟 공식 유튜브

교육과 연주를 병행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꼭 지키고자 하는 습관이나 루틴 등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루틴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계속 일을 하다 보니까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게 느껴져요. 막상 연주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모르는데 일정이 끝나면 에너지가 완전히 방전되고, 그게 계속 축적되니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견디기 힘든 것 같더라고요. 기본적인 체력이 바탕이 돼야 멘탈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관리를 좀 잘해볼 계획입니다.

한예종이라는 학교가 교수님께 어떤 의미인지, 기억에 남는 배움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한예종에서 받은 교육은 저라는 사람 자체의 기반을 단단하게 만들어 줬어요. 음악가로서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고, 그때의 경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한예종이 캠퍼스가 크진 않지만 예술의전당도 바로 옆에 있고 분위기 조성이 잘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는 정말 이 안에 속해 오직 음악만 생각할 수 있던 환경이라서 다른 학생들도 만나고 연습도 같이하면서 오는 자극과 배움이 많았어요. 근데 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라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에 그런 교류가 활발하지 못해서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장점들이 줄었다는 게 참 아쉬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많이 완화되었으니까 학생들에게 조금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하게끔 선생님들이 노력을 해야겠죠.

학생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한예종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합니다

전에도 레슨을 많이 했지만 그건 학생과 저의 개인적인 관계였으니까, 제가 학교라는 어떤 큰 단체의 일원으로서 학교와 학생의 발전을 위해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연주자로서 어떻게 성장할까에 대한 고민이 더 컸으니까요.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2018년에 처음 한예종에 출강하게 됐어요. 근데 후배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열정을 느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특히 놀랐던 것은 실내악 강사로 처음 왔었는데, 학생들의 실내악에 대한 열정이 정말 크더라고요. 제가 한예종에 다닐 때보다 더요. 그런 학생들의 의지와 열정을 보니까 그들과 함께 학교에 있는 게 너무 기쁘고 좋았어요. 어떤 직책보다는 이런 시간을 계속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좋은 기회로 이번에 교수가 됐고요. 재작년에 인터뷰할 때에도 학교에 출강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학생들에 대한 사명감이 항상 있었는데 학교의 일원이 되면서 그런 마음이 더 커졌죠. 저 또한 그랬지만, 누구에게나 교육자의 꿈이 있다면 모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것을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지금은 학생들을 하나하나 더 알아가는 중이고, 학생들의 열정 어린 모습들을 볼 때 저도 더 동기부여가 돼서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아직 많이 배울 때라고 생각해요. 학교의 선생님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의견을 나누고 계시는지 조금 더 알아가야 되고,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도 찾고 있어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새로이 뭔가를 더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까를 고민해봐야겠죠. 또 이제는 외국에서도 한예종으로 공부하러 오고, 여러 동문 예술가들도 좋은 성과를 내면서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잖아요. 그 모습 자체가 큰 기회와 동기가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사진 윤대진

음악이나 연주의 측면에서 필요한 ‘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음악이나 연주자를 떠나서 저는 항상 직업인은 자신의 일에 맞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촉이잖아요. 악기도 마찬가지인데 음악을 잘하는 것과 악기를 잘 다루는 것은 달라요. 물론 어렸을 때 잘 배워야 하는 건 맞지만 악기를 잘하는 데에는 정답이 없거든요. 활도 사람마다 다르게 쓰고, 주법이나 가르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라서 결국 배운 것을 토대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야 되는데, 그게 센스죠. 음악가로서 ‘촉’이라는 건 감수성인 것 같아요. 감수성을 통해서 음악을 얼마나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느냐, 그게 말이 쉽지 전혀 당연한 게 아니거든요. 이런 것들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힘들고 노력으로 안되는 경우도 종종 봤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 감수성은 약간 타고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연주할 때는 ‘촉’처럼 즉흥적인 순간들이 정말 많아요. 연주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고, 심지어 무대에 섰을 때는 막 흥분이 들끓는 상태니까 더 빨라지거나 느려지기도 하죠. 또 그런 즉흥적인 순간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이나 감각이 엄청 클 때가 있어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음악성이죠. 저랑 다른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선생님은 콰르텟만 15년을 같이 해왔고 그전부터도 워낙 잘 알고 친했거든요. 그래서 진짜 눈빛만 봐도 알아요. 쳐다보지 않아도 지금 우리가 연습 때 했던 타이밍이랑 같은지 다른지 다 캐치가 돼요.

한예종의 학생들이 앞으로도 꾸준히 음악을 해 나가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학생 신분이 끝나고 나서 현실 세계에, 사회에 발을 들이면 정말 쉽지 않아요. 한국에서만 봐도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살아남기 쉽지 않고, 기회를 얻기도 힘들죠. 또 기회와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것도 필요하잖아요. 근데 결국 끝까지 롱런하는 사람들을 보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자신이 음악을 시작했던 이유, 초심, 그런 것들을 잃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사람들이더라고요. 저도 그래왔고요. 사실 저도 무대에 서는 것도 힘들고, 생계유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맞닥뜨리면서 정말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럴 때에도 결국 저를 지탱하는 건 초심이었어요. 그렇게 힘들다가도 음악을 들으면 그게 위로가 돼요. 음악의 순수함에 다시 매료되고, 짧더라도 무대에서 치유받는 순간이 여전한 게 느껴지고요.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해요. 자기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나 음악을 하면서 좋았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견뎌낸다면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합니다.

2023년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새로운 계획이 있으신가요?

사실 개인적으로 세운 목표 같은 건 딱히 없고요, 조금 쉬고 싶어요. 연주는 계속하겠지만 지금은 학생들한테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학생들의 발전을 위해 뭘 하면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까, 뭘 어떻게 했을 때 학생들이 저한테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까. 그게 주된 고민이죠. 올해는 학생들을 위해서 시간을 많이 할애할 것 같아요.

음악가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꿈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음악을 하면서 어떤 한 지점을 쫓아가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지금 하는 것과 해야 할 것에 집중하고, 거기에서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이상(理想)에 다다르고 싶어요. 주위 환경에 휩쓸려서 가야 할 길을 정해놓기보다는 저라는 음악가가 생각하는 이상을 계속 찾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무대에 서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계속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거죠.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무대에 서는 걸 되게 힘들어해서요. 그래서 뭔가를 이루려고 욕심을 내는 게 아니라 그냥 주어진 상황에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목표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저의 음악적 이상을 간직하고 그걸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튿날, 서초캠퍼스 바로 옆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노부스 콰르텟의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연주’ 마지막 공연에 다녀왔다. 그날 공연장을 빈틈없이 채우던 음악은 인터뷰에서 느꼈던 음악에 대한 애정의 온도와 일맥상통했다. 결연한 표정과 하나로 연결된 네 사람의 호흡에서 느껴지는 굳은 열정에는 김영욱이 그들과 함께 지켜왔을 초심이 강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