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년이란 시간은 특이하다. 돌이켜보면 짧고 내다보면 길게 느껴져 그 경과를 체감하는 일이 매번 낯설다. 그래서인지 새해엔 어김없이 설렘과 불안이 복잡하게 뒤섞인다. 육상 경기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시작점에 선다는 감각은 얼마나 우리를 긴장하게 만드는가.
이런 때일수록 나는 본능적인 예감에 집중한다. 모든 상상과 신경의 촉을 곤두세운 다음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작품을 찍을 수 있을지, 어떤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을지, 좋은 일이 생길 것인지,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건 언제일지.
애초에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인 것도 알면서 계속 질문을 던지고 싶다. 끊이질 않는 내 머릿속의 물음표들은 안테나처럼 이어져 미래로 뻗어 나간다. 그러다 보면 어떤 지점에서는 우연히 그 신호를 파악하기도 한다. 결국은 부자가 못 되겠구나, 결국은 영화를 계속하겠구나 직감하는 식으로 말이다. 촉을 곤두세우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긍정하는 동시에 약간의 경계심과 위기감을 유지하는 자세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의 촉을 신뢰하는 일은 당장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정해지지 않은 예술가에게 중요한 일이 아닐까.
어감도, 문자의 생김새도 날카로운 ‘촉’과 우리의 인연은 처음 도구를 사용할 줄 알게 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우리는 화살촉으로 생선을 낚아채고, 펜촉으로 지식을 기록했으며, 30촉의 밝기로 밤에도 눈을 부릅뜨며 살아남았다. ‘날카롭다’ 라는 건 이제 효율이 좋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꼭 지니고 있어야 할 도구. ‘촉’을 지닌 채 살아온 역사는 길고, 이 흔적은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출현하고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을 가늠해보는 도구로써 우리의 ‘촉’은 또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까. 특히 예술인의 ‘촉’은 언제나 진리에의 열망으로 날이 서 있다. 그 자세하고도 고유한 기능들을 하나하나 모으면 우린 무엇인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성되는 새로운 문화예술의 신호와 잠시 접촉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