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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노트

이 사랑을 떠나겠어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주제로서 사랑은 추상적 관념이지만 소재로서 사랑은 구체적 행위다.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실체 없는 사랑을 활자로 붙들기 위해 펜을 든다. 극장을 나온 밤의 셰익스피어는 샘솟는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발코니를 기어오른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도 도저히 쓸 수 없던 “나 당신을 여름날에…” 다음 문장은 비올라의 감탄 아래 한 편의 소네트로 완성되고, 해적의 딸을 만나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뻔한 로미오는 비로소 운명의 연인 줄리엣을 만난다.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이렇게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플롯을 매개로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사랑에 빠진 연인 윌을 교차시키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실 셰익스피어의 사랑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된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보는 것이다. 연극을 사랑하는 부잣집 딸 비올라 드 레셉스는 남장을 하고 켄트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극작가 윌 셰익스피어의 오디션에 나타난다.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에 여자는 연극 무대에 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윌은 비올라의 연기를 보고 그를 새로운 남자 주인공으로 낙점하고, 모자를 벗어 달라는 말에 당황해 달아나는 비올라를 쫓아 저택에 숨어든다. 무도회에서 두 사람은 춤을 추게 되고 윌은 그가 켄트임을 알아보지 못한 채 비올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어떻게 할까? 무도회 직전 비올라의 아버지는 가난한 귀족 웨섹스 경에게 비올라와의 결혼을 약속했다. 게다가 비올라가 곧 켄트이므로, 이 사랑에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성패마저 달렸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새드 엔딩과 해피 엔딩 사이에서 희로애락을 넘나드는 방법은 그 이름답게 <베로나의 두 신사>,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셰익스피어의 여러 희곡을 직·간접적으로 등장시키는 것이다. 극의 모티브가 된 <로미오와 줄리엣>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음은 당연하다. 극중극이 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윌과 비올라의 사랑이 무르익음에 따라 차츰 완성되어 나간다. 윌과 비올라가 만난 무도회, 윌이 소네트를 읊던 비올라의 방 발코니 아래는 그대로 <로미오와 줄리엣> 속 한순간이 된다.

지루한 이야기지만 연극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장소다. 같은 배우가 같은 무대에서 연기한다 해도 언제나 서로 다른 단 한 번의 공연이 되는 연극은 영화에는 없는 고유한 장소성을 가진다. 이는 영화의 관점에서 한계로서 언급되지만, 사실 연극의 관점에서 이것은 연극만이 시도할 수 있는 마법이다. 정교하게 디자인된 무대는 필요에 따라 그 형태를 바꾸어 가며 우리를 16세기 런던의 거리, 로즈 극장, 비올라의 저택으로 안내한다. 무대와 합을 이루는 배우들의 몸짓이 가장 돋보인 것은 극 후반부, 비올라가 결혼식을 올릴 때였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윌에게로 다가오는 듯하던 비올라는 한 칸 더 높이 올라가 웨섹스 경의 손을 잡는다. 윌은 비어 버린 켄트의 자리를 대신해 로미오를 연기하며 샘이 연기하는 줄리엣의 손을 잡는다. 두 쌍의 연인들은 서로 교차해 걷는다. 배우들은 분명 한 공간에 함께 있지만, 그들이 연기하는 비올라와 윌은 이상으로만 함께인 채 현실에서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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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앞서 비올라가 웨섹스 경과의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그리니치에 방문했을 때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내기(“연극이 사랑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을까?”)로부터 떠올린 질문. 이것은 사랑에 대한 연극인가, 아니면 연극에 대한 사랑인가?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집필하는 배경이 되는 비올라와 윌의 사랑부터 그것이 무대 위에 실현되는 과정, 이를 통한 관객의 반응(극중극의 공연이 끝나자, 엘리자베스 1세가 등장해 앞의 내기에 대해 “그렇다”는 판결을 내린다)이 극의 기승전결을 이루니, 이것은 사랑으로서 연극을 보여주며 동시에 연극으로서 사랑을 보여주는 ‘연극에 대한 연극’일 수밖에 없다. 관람한 회차에서 비올라 드 레셉스 역을 맡은 정소민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비올라가 “저는 그저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말하는 순간을, 윌 셰익스피어 역을 맡은 이상이는 2막 후반 <로미오와 줄리엣> 극중극을 꼽았다.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는 기념 공연으로서 이보다 더 알맞은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연극 관람은 거의 10년 만이다. 관련하여 글을 쓰는 것은 차치하고 내가 과연 이 공연과 동화될 수 있기나 한 사람인가, 표를 받아 자리에 앉으면서는 걱정이 많았다. 무대 위 양쪽에서 걸어 나온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그런 사사로운 생각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연극은 언제나 단 한 번 존재한다. 무대와 각본, 그리고 그것이 맞물려 작동하게 하는 배우들은 관객들이 이야기의 세계를 유영하도록 안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야기다. 윌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로 등장하는 극작가 키트 말로우는 슬럼프에 빠진 윌에게 갖은 이야기의 영감을 제공해 주다가 극 후반이 되자 별안간 술집에서 칼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윌은 웨섹스 경 앞에 키트의 이름을 댔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질투에 눈먼 웨섹스 경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탓이라 여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함께 떠나지 못하고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가 된 머큐쇼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지만, 연인이 사랑을 시작할 때 명을 달리한 머큐쇼와 달리 키트는 윌과 비올라의 사랑이 정점에 이르러 마침내 이야기가 끝을 바라볼 때 퇴장한다. 곧 이 죽음은 윌과 비올라의 사랑이나 웨섹스 경과 상관없는 키트 본인의 다툼으로 인한 것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는 <십이야> 집필을 시작한 에필로그의 윌 앞에 다시 나타난다. 이는 작가에게 찾아오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영감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어떻게든 이야기는 끝나야만 하는 것이다. 마침표를 찍는 순간 비로소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다시 한번 반복. 로미오와 줄리엣은 죽음 너머로 떠나고 윌과 비올라는 이별한다. 비올라는 윌과 자신의 더 빛나는 미래를 위해 그들의 사랑을 떠나자고 슬픈 이별을 고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보여 주는 이 이야기를 통해 연인들은 남아 있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 속에, 우리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