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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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개인전 《소리의 틀》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 비행기가 날아간다. 노래를 부른다. 이와 같은 일상의 행동들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청각은 다섯 가지의 감각 중 놓치기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상적인 소리를 유심히 듣지 않는다. 특히 미술에서 소리와 이미지의 위상을 비교해 본다면 더더욱 청각의 소외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김영은 작가는 ‘소리’에 집중한다. 청각적인 경험 그 자체와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작가는 특별한 계기 없이 자연스럽게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배움으로써 소리에 한층 가까워지고, 학창 시절 조각을 다루는 과정에서 재료의 한계를 느꼈다는 김영은 작가의 소리는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가 주목한 소리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소리의 틀》(2022.7.8.-8.13)을 통해 살펴보자.

김영은 작가의 작품은 소리를 매개로 한다. 디지털을 활용하는 작업 방식을 통해 작가는 청각적 경험을 이끌어 내는 영상을 주로 선보인다. 전시에서 첫 번째로 볼 수 있는 작품 <밝은 소리 A>(2022)는 국제표준음고 A가 서구식 피아노를 통해 한국에 유입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서구의 기본음으로 인해 전통 음악적 귀가 서양 음악적 귀로 변화한 것이다. 따라서 소리의 유입은 감각기관의 체계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 속 기준을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소리의 사회적 의미는 <청음훈련>(2022)에서 더욱 커진다. 청음훈련이란 일정한 음을 듣고 그 높낮이를 맞히는 훈련이다. 다만 <청음훈련> 속 화자가 음을 알아 맞히는 대상은 피아노 소리가 아닌 비행기 소리이다. 소리만을 듣고 그것이 어떤 종류의 비행기인지 알아낸다면 전투의 효율이 높아지리란 발상으로, 청음훈련은 일본군에 의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15분의 영상은 교실과 군대에서 진행되었던 청음훈련을 재구성한다. 영상 속 화자의 경험에 따라 관객은 여러 종류의 항공기와 잠수함 소리를 듣는다. 역사 속 존재했던 청각적 경험을 현재로 불러온다. 이를 통해 소리가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깨닫는다. 나아가 과거의 소리를 현재로 불러옴으로써 전쟁 속 청각적 경험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한층 더 무너뜨리는 듯하다. <청음훈련>이 소리를 문자와 기호로 옮기는 과정이었다면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2022)는 음악을 디지털 매체로 옮긴다. 1800년대 미국의 인류학자가 조선의 전통음악을 녹음한 기록물에서 출발하는 디지털 퍼포먼스 속 전통음악의 소리는 흐릿하다. 외부 환경에 취약한 왁스 실린더에 녹음되었기 때문에 소리가 노이즈처럼 들리는 것이다. 작품은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노이즈를 줄이고자 하는 행보를 담는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노래조차 소음과 노이즈로 인식하면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노이즈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듭할수록 음악은 희미해진다. 노래는 노이즈가 되어 점점 사라진다.

《소리의 틀》 전시 전경
김영은, <청음훈련>, 싱글채널비디오, 스테레오와 바이노럴 사운드, 15분, 2022

전통 음악을 디지털 매체로 옮기며 그 존재가 희미해지는 순간을 목격한 관객은 다음으로 <오선보 이야기>(2022)를 마주한다. 해당 작품은 전통 음악을 서양식 악보인 오선보로 옮기며 소실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대화 시기 한 악보에서 시작하는 영상 작업은 인터뷰 영상을 통해 소실되고 변형된 전통음악을 다룬다. 전통음악을 외부에 소개하기 위한 오선보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적 주법과 음향을 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눈물 젖은 트위스트>(2022)가 전시를 마무리한다. 소리가 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지하의 공간에는 일제강점기부터 90년대까지 법적으로 금지되었던 20곡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당대의 시대와 대중, 역사를 반영하는 노래들이다. 곡의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의 노래들은 소리가 울리고 천장을 향해 뻗어 나가는 지하의 콘크리트 공간을 메운다. 컴컴한 공간에서 수많은 소리를 감상한다면 음향 본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소리를 디지털 매체, 문자와 기호, 오선보로 옮기며 발생하는 변형과 소실은 ‘음악적 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오늘날 사용되는 ‘음악적 틀’은 온전한 소리를 담지 못한다. 이때 ‘틀’이란 무엇일까. 무언가를 규정하고 감싸는 형식이다. 전시 안에서 ‘틀’의 의미는 소리를 담아내는 어떠한 규범으로 시작해, 사회와 역사를 아우르는 맥락으로 확장된다. 소리를 옮기는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변화와 소실은 사회적, 역사적 맥락의 변화와 소실과 직결된다. 따라서 김영은 작가는 주로 소리를 다루고, 그 안의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 집중한다. 청각적 경험과 이를 통한 의미의 확장을 이루어 낸다. 다만 이때 청각적 경험 역시 일정한 틀에 의한 것이다. 오늘날의 관객이 듣는 1800년대의 전통음악이나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기 소리는 현재의 ‘틀’에 의한 특정한 의미를 갖는다. ‘소리의 틀’은 그 자체로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의미의 충돌과 작용, 변화를 주시한다.

김영은, <오선보 이야기>, 싱글채널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47분 5초, 2022

주목할 만한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관객의 청각적 경험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사용한 것이다. <청음훈련>은 이를 통해 사운드 스케이프를 구현하고, 청각적 요소와 텍스트를 적절하게 조화시킨다. <밝은 소리 A>는 영화적인 화면을 결합한다. 이렇듯 효과적인 청각적 경험의 구현과 작품 내 다른 요소들의 적절한 조화가 관람을 돕는다. 다만 이때 작가는 소리가 아닌 텍스트, 시각 이미지와 같은 요소에 대해 상호 협력의 관계라고 말한다. 이미지의 과잉을 경계하지만, 서로 다른 매체가 하나의 작품 안에서 서로를 보완한다. <청음훈련> 속 텍스트가 최대한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이루어진 점, <오선보 이야기> 속 인터뷰가 전문용어를 최소화했으나 생동감과 같은 텍스트 이상의 가치를 전하는 점이 그 예시이다.
다만 이러한 전시 기법의 요소뿐만이 아닌 또 다른 주안점이 《소리의 틀》 안에 있다. 작품 세계의 변화가 개인전 전반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이전의 작품 세계처럼 소리와 그 안의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이 존재한다. 하지만 서구 음악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적 음악이 변화하는 과정을 포착한 것처럼 음악과 소리의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국악의 가치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작가는 그 계기로 2017년 로스엔젤레스로의 이주를 꼽는다. 다양한 인종의 이주민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작가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한국적인 소리가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인지와 같은 의문들은 작가로 하여금 새로운 의미를 작품에 삽입하게 했다. 환경과 공간, 정체성의 위치가 변화하며 얻게 되는 관점을 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헌 정보와 여러 자료를 활용하게 되면서 작가는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이주와 이주민, 전통음악과 같은 키워드를 언급한다. 일정한 공동체 안에서 전통음악이 발전되고 나아가는 과정이 무엇인지, 그 와중에 기록된 전통음악의 흔적은 어떤 것인지. 그 예시로 한국의 제1세대 이주민이 노동자로서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로 넘어가는 과정 중 남아 있는 전통음악의 가사와 악보들을 들 수 있다.

사운드아트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게 다가온다. 소리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밝은 소리 A> 속 편집된 베토벤의 음악과 <눈물 젖은 트위스트>에서 다양한 노래의 뒤섞임이 내는 효과처럼, 작가는 다양한 음악적 자원을 활용하여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음향이 100년, 200년 전 전통음악과 근대성의 충돌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이주민으로서 정체성을 표명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과거와 현재의 민족적 정체성. 이것은 동시대 미술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유할까. 최근 미술계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미술적 시도를 도입하는 노력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김영은 작가의 이야기가, 작가의 소리들이 점점 더 반짝이기를 소망한다. 그의 작품은 확고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빛나는 소리들이다.

글 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