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2022

STORY

‘Glitter’. 반짝이는 빛과 번득이는 시선. 우리가 발산하는 빛이, 우리의 번득이는 시선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일들이 잇따라 전해졌습니다. ‘산 속에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는 열여덟 살의 피아니스트는 오로지 자신에 몰입하는 연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술가는 저마다의 빛을 반사하면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빛나는 조명 아래 산사의 도인같이 차분한 그처럼 외부의 시선이나 평판에 휩쓸리지 않고 다시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한 세대는 30년, 30년부터는 역사가 됩니다. 어느덧 역사가 되어 가는 한예종의 산 역사를 만나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건축의 ‘중창重創’처럼 다시 새롭게 쌓으면서도 더 깊게, 더 넓게 예술하며 미래의 고전을 창조하길 바랐던 건축가, 예술봉사로 더 많이 배우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예술가를 양성하고자 했던 영화감독, 혁혁한 공을 앞세우지 않아도 한예종의 설립 철학을 실현하며 학교의 근간이 되는 하드웨어 석관동 교사를 마련한 모더니스트 작곡가. 역대 총장들을 역순으로 만나 역사의 순간들을 듣다 보니 국립예술대학 설치법의 당위성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K 바람의 토양이 되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교육현장과 예술-과학-기술의 교류 수업, 국경을 넘어 예술하는 교환학생의 체험은 그 법의 필요성을 뒷받침합니다.

30년의 큰 줄기를 이루는 잔잔한 목소리들도 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나 에너지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을 시각적으로 잡아내는 구지윤 작가에게서 정적인 회화가 오히려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갓 스물에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고 세계 무대를 누비는 발레리노 김기민으로부터 인생의 변화와 다양한 경험, 쓰디쓴 실패마저 예술의 자산으로 삼는 꾸준한 노력의 결정체를 봅니다. 타인에게 보이기 싫은 내면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예술가로서의 생명력을 얻은 문수진 감독은 자신의 주인을 허상에 내어 주지 않고 자기로서 온전히 살라며 긴 터널 끝에서 발견한 출구를 보여 줍니다.

번득이는 시선은 늘 새로움과 불안함이 공존합니다. 드랙 아티스트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연한 모지민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모어>는 화려하고 아름답고 슬프다가 마침내 조건과 경계를 넘어선 그처럼 뜨겁게 벅차오릅니다. 서른한 살에 생을 마감한 시인 실비아 플라스를 현재로 불러낸 뮤지컬 <실비아, 살다>는 인생의 한계 상황을 맞닥뜨리는 순간, 비상정차가 필요한 순간을 바꾸고픈 조윤지 작·연출의 간절한 희망이 대사 하나하나에 의미로 담겨 관객들의 심장을 울립니다. 제주 무속 신화를 현대적 감각의 판소리로 풀어낸 소리꾼 박인혜의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 역시 새로운 무대, 공연 양식으로 관객들을 집중시킵니다. 여전히 다양성 영화 상영관은 적고 신진 예술가들이 공연을 세우는 기간은 짧습니다. 도전하고 실험하는 창작자들에게 더 많은 지원과 응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가을 하늘은 예술가입니다. 누구도 표절할 수 없는 그림을 날마다 펼쳐 놓습니다. 햇살과 바람을 벗 삼아 걷는 길에 빛나는 눈으로 저마다의 오로라를 품고 있는 우주 여행자들을 만납니다. 그들이 뿜어내는 찬란한 빛에 눈이 부십니다. 언젠가 지어질 그들의 별자리 이름을 생각합니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