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술시장은 최근 이례적인 호황을 맞이하는 중이다. 한국국제아트페어(Korea International Art Fair, 이하 키아프)의 성장이 그 증거이다. 2002년 이후 누적 830개 갤러리가 참가하며 개최된 키아프는 대한민국 미술의 기반을 구축하고 글로벌 미술시장에 국내 작가들을 소개한다는 취지를 가진 행사이다. 또한 세계화된 현대미술을 체험하며 미술시장의 흐름을 살피고, 한국 미술을 대표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며, 나아가 동시대 현대 미술의 가치를 발견하고 미술시장의 발전을 도모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아트페어 중 하나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키아프는 작년 두드러지는 성장을 이루었다. 8만 2천명의 현장 방문객이 350억원의 작품을 구매했던 2019년 이후, 2년 만에 열린 오프라인 행사에서 8만 8천명이 650억원에 달하는 작품을 구매한 것이다. 또한 방문객의 연령층이 매우 낮아졌는데, 전체 방문객 중 20대가 20% 이상을 차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규 방문객 중 60.4%가 20-30대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처럼 현재 키아프는 경제적 가치가 크게 오가는 통로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들의 능동적인 참여는 본래 미술시장의 주를 이루던 비교적 높은 연령층의 세대와 영향력을 비등하게 맞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우환, 박서보와 같이 한국 현대미술의 어른으로 손꼽히는 단색화 작가들이 여전히 키아프의 주를 이루었지만 구지윤, 장파, 콰야와 같이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젊은 작가 또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창작자와 콜렉터를 포함하는 젊은 세대의 참여는 한국 미술 시장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 키아프의 성과 중 하나이다.
이러한 성과의 원인으로는 오프라인 아트페어를 대체한 온라인 뷰잉룸과 디지털 아트, NFT 등의 유입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온라인 뷰잉룸은 2020년 팬데믹으로 인해 등장한 것으로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페이지가 아닌 작가를 소개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추가할 수 있는 기능이 더해진 온라인 공간이다. 참가하는 갤러리의 프로모션을 도울 수 있는 아티클과 영상 등의 활용도가 높고, 손쉽게 미술품을 보고 구매할 수 있어 젊은 층뿐만 아니라 해외 컬렉터의 유입까지 도왔다는 평을 받는다. 더불어 미술을 투자의 일환으로 보는 관점 또한 키아프를 성장시킨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 역시 팬데믹과도 연관되어 있는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비대면 매체와 메타버스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마련된 온라인 뷰잉룸을 올해 키아프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키아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듯이, 한국 미술시장이 의미심장한 변화를 겪고 있는 시점에서 키아프와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의 공동개최는 이목을 끈다.
키아프와 프리즈의 협업은 2019년 처음 제안되었다. 이후 2021년 5월, 한국화랑협회와 키아프의 계약이 체결됨에 따라 두 페어는 9월 초 개최되었다. 프리즈는 2003년 런던에서 현대미술잡지 『프리즈』의 발행인이 창설한 아트페어이다. 스위스의 아트바젤, 프랑스의 피아크와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힌다. 세계적인 위상의 프리즈와 공동개최를 앞두고 한국화랑협회 황달성 회장은 “프리즈와의 파트너십을 발표하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전 세계 예술 애호가들을 서울로 초대하게 되어 기쁩니다. 한국 미술 시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 시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의 아트페어와 프리즈의 협업은 서울이 글로벌 미술 시장의 허브이며, 한국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주요 목적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프리즈의 보드 디렉터(Board Director)인 빅토리아 시달(Victoria Siddall)은 “서울은 훌륭한 작가, 갤러리, 미술관 및 컬렉션들이 있어 프리즈를 개최하기에 완벽한 도시입니다. 서울이 우리의 새로운 아트페어가 열리는 장소가 되는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프리즈는 영미권을 중심으로 개최되어 왔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키아프와 협업한다는 점은 다소 생소하다. 이에 대해 빅토리아 시달은 아시아에 형성된 안정된 미술 시장과 그중에서도 현재 한국에 많은 화랑이 빠르게 들어서고 있는 점을 언급했다. 한국이 아시아 안에서 문화와 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다. 더불어 한국은 해외에서 항공편 등으로 접근하기 용이한 나라로서 효과적인 시장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런던,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뉴욕에서 개최된 프리즈와 마찬가지로 프리즈 서울 역시 해당 도시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프리즈 위크’를 조성함으로써 ‘서울’이라는 장소성에 주목하도록 했다. ‘프리즈 위크’란 한 주 동안 해당 도시의 문화예술 커뮤니티를 소개하고, 나아가 도시 고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향후 5년간 이어지는 프리즈와의 협업은 한국이 아시아의 대표적인 미술시장으로 자리 잡고, 한국 갤러리와 작가 또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갤러리들을 살펴보면 그 기대감이 더욱 커진다. 국제갤러리, 학고재, 원앤제이 갤러리, PKM 갤러리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갤러리뿐만 아니라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리만머핀, 페이스, 타데우스로팍과 같은 세계적인 갤러리가 아트페어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20여 개국의 110개 주요 갤러리가 참여하는 프리즈 서울은 전 세계의 다양한 컬렉터와 미술 전문가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외 마켓의 진입이 국내 미술주체의 지위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관점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해외 유명 갤러리가 유입되며 한국 작가의 판로가 줄어들 수 있다. 작년 키아프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러한 한국 미술계의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하다는 점 또한 우려된다. 해외 갤러리와 옥션의 유입으로 한국 미술계의 설 자리가 좁아질 수도 있지만 세계적인 관심을 활용하여 한국의 작가와 미술 작품을 선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화랑협회와 함께 협력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는 함께 전 세계 갤러리를 한데 모아 서울이 활기찬 예술의 현장임을 확인하고, 놓칠 수 없는 특별한 한 주를 만들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키아프와 프리즈의 공동개최는 주목할 만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키아프와 프리즈의 공동개최는 한국 미술계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 수 있을까.
프리즈 서울은 메인 섹션, 프리즈 마스터즈, 포커스 아시아 총 세 가지의 섹션으로 진행되었다. 메인 섹션에는 아라리오 갤러리, 바톤 갤러리와 같은 한국의 화랑과 페이스 갤러리, 돈 갤러리와 같은 세계 각국의 유명한 화랑이 참여했다. 프리즈 마스터즈는 미술사를 대표하는 고대 거장들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수천 년의 미술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해당 섹션은 현대 갤러리, 학고재 갤러리, 데이비드 아론을 포함한 18개 화랑의 참여와 디렉터 네이선클레멘트- 길레스피의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현대미술 갤러리에 집중하는 프리즈 서울에서 이 섹션만큼은 이전 시대의 거장을 조명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를 통해 방문객은 중세의 회화, 근대 거장의 작품 등을 마주할 수 있었다. 포커스 아시아는 2010년 이후 아시아를 기반으로 개관한 갤러리의 10인 아티스트 작품을 선보였다. P21, RHO와 같은 갤러리가 참여하고 크리스토퍼 루, 장혜정 큐레이터가 진행을 맡았다. 또한 9월 2일 공식 개막에 앞서 8월 29일부터는 프리즈 위크가 진행되었다. 앞서 언급했듯 서울의 다양한 문화 행사를 소개하고, 도시 고유의 매력을 선보였다. 프리즈 서울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관련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9월 6일 키아프와 프리즈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프리즈에서는 개막 첫날부터 수십억원에 달하는 작품이 판매되었다. 독일 타데우스로팍 갤러리가 첫날에만 안토니 곰리, 게오르그 바셀리츠 등의 작품을 통해 50억원대 매출을 올린 사례만 보아도 ‘억 소리’ 나는 금액이 오고 갔음을 알 수 있다. 키아프와 프리즈의 첫 공동 개최로 수많은 관심이 몰린 만큼 뜨거운 주목을 받은 시작이었다. 개막 한 시간 만에 100억원 대의 매출을 올린 스위스 하우저앤워스 갤러리의 사라 전 디렉터는 “프리즈 서울은 한국의 활기찬 예술 현장의 에너지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며 서울의 아트페어 판도를 바꾸는 행사”라고도 말했다. 각계의 재벌들과 연예인 등의 유명인 또한 행사를 찾았다. 여러모로 성공적이었으나 프리즈로 인해 키아프가 소외되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가 서울에서 열린 것은 분명 이례적이지만, 그로 인해 미술시장 내 불균형이 가시적으로 두드러진 것은 아닐까. 구매한 티켓으로 두 아트페어를 모두 관람할 수 있었지만 키아프가 개최 중인 코엑스 1층을 지나쳐 프리즈가 자리 잡은 3층만을 관람하고 나오는 방문객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현 갤러리의 최재우 대표는 “프리즈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 준 큰 기회였다”며 “서울에서 세계적 행사가 열리니 해외 거물급 인사를 연이어 만날 수 있었다.
당장 밝힐 순 없지만, 해외 유수 미술관과 전시 계획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규모와 인지도 면에서 앞서는 프리즈에 비해 키아프의 성과가 당장은 비교적 돋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행사가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는 면에서 장기적으로는 한국 미술계의 성장 가능성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올해 행사 주최 측에서는 프리즈만을 관람하려는 이들을 줄이기 위해 프리즈에 참가하려는 화랑은 반드시 키아프에도 부스를 내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처럼 키아프와 프리즈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앞으로 이어질 공동 개최를 통해 점점 더 발전하리라 기대한다.
팬데믹과 이례적인 호황을 동시에 누리고 있는 한국 미술계의 과도기적 시점에서, 키아프와 프리즈의 공동 개최는 양날의 검과 같다. 다소 활동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국내 컬렉터들의 입장에서는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현상일 수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의 미술 시장이 도약했으리라는 기대는 성급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미술계가 키아프와 프리즈의 공동 개최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