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2022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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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누구나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이가 무언가에 반짝, 하는 순간을 부모는 결코 놓치지 않으며, 주변에서는 찰나의 스파크를 근거로 아이의 잠재력과 미래를 속단한다. 넌 여기 소질이 있구나. 넌 크게 될 아이야. 천재, 수재, 영재, 신동...... 어떤 식으로 호명되든 아이는 곧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고 믿게 된다. 일은 대개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 내 경우에 그건 글쓰기였다. 남들보다 한글을 조금 일찍 깨치고, 학교에 가기 전부터 책을 읽고, 심지어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야기를 적어 얼기설기 스테이플러로 찍은 책을 만들고. 이런 일련의 ‘반짝거림’ 속에서 본인과 주변은 착각하게 된다. 이 아이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 작가가 될 사람이야. 시간이 갈수록 착각은 믿음으로, 믿음은 확신으로 변해 간다. 1990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장래 꿈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을 받을 거예요. 소설가가 되어서요!” 그러자 선생님은 정색을 하며 답했다. “니가 받을 때까지 한국 사람이 아무도 노벨상을 못 받으면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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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스파크가 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서 빛난다고 생각했던 재능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그러니까 시간이 필요했다. 야속했던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씀은 중요한 경고이자 교훈이었다. 괴테가 말하지 않았던가. 먼지조차도 햇빛을 받으면 반짝인다고. 최연소 등단을 꿈꾸던(실은 확신하던) 나는 중학교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부터는 신춘문예와 각종 문학상 공모에 매달리다시피 했다. 시간을 견디는 동안 내가 지녔던 주된 감정은 의문과 분노였다. 왜 안 되지? 왜 날 알아봐 주지 않지? 대학 졸업 후에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가 마지막 선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다. 물론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었다. 이곳은 나 같은 먼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눈이 부시게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같은 예술가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빛나는 것들 곁에서 어둠은 짙어지고 그림자는 길어진다. 나는 흑연이었다. 결국 나는 30대가 되어서야 겨우 데뷔했고, 그 후 다시 십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무명이라는 암흑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내 손에 쥐어진 두 개의 무딘 돌멩이로, 내가 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스파크를 만들면서.

3
처음에는 학생으로, 나중에는 선생으로 15년 가까이 같은 학교에 다니며 그간 나는 수많은 재능을 보아 왔다. 스파크에서 섬광, 번개, 때론 불꽃이나 화염 같은 다양하고 놀라운 탤런트들을. 그러나 내가 목격자로서 내린 최종 결론은 재능의 크기가, 밝기의 정도가 그의 예술적 성공이나 성취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순간 눈부시게 빛났으나 그게 전부였던 사람도 있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끝내 어느 순간 빛을 발하는 사람도 있다. 무슨 차이일까?
우리는 모두 다이아몬드가 되고 싶다. 빛나고 영롱하며 세상 무엇보다 단단한 보석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는 흑연에 가깝다. 흔하고 잘 부러지며 어둡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둘이 실은 동소체(同素體)라는 점이다. 같은 원자로 이뤄진 동일한 원소의 물질.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모두 원소 C, 즉 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일한 물리적 상태에 있다. 단지 원자의 배열이 달라 다른 성질을 지닐 뿐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탄소는 흑연이고 어떤 탄소는 다이아몬드인가? 흑연에 높은 열과 압력이 가해지면 다이아몬드가 된다. 흔히 이 사실을 토대로 대기만성이나 진주조개 같은 교훈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실은 반대도 가능하다. 흑연과 다이아몬드, 어둠과 빛은 상호변환이 가능한 무엇인 셈이다. 고통과 훈련을 견딘 사람만이 흑연에서 다이아몬드로 변화한다. 반대로 다이아몬드였던 사람이 시련 앞에 다시 흑연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메타포가 아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또 다른 C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본래 인간이란 미세전류로 움직이는 탄소 유기체 아니던가? 흑연과 다이아몬드뿐 아니라 우리도 탄소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빛나든 빛나지 않든, 우리에겐 언제든 ‘상호변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 우리가 저마다 자신만의 시기에 자신만의 형태로 환하게 빛날 것이라는 진실을 서로가 믿고 확신하는 일이다. 이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마지막 C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내뿜는 빛이 모여 만들어지는 저 무한의 별자리, Constellation.

글 문지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