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2022

K-ARTS 30

나의 한예종3
한예종을 통해 값진 도전에 뛰어든
6개원 아티스트 인터뷰

한국예술종합학교는 하나의 너른 우주다. 그 우주에는 여섯 개의 행성이 있다. 학생들은 행성과 행성 사이 공간을 유영하고, 부딪히며, 탐색한다. 그렇게 별처럼 반짝이는 도전으로 고군분투하며 자신만의 특별한 이력을 쌓아 가고 있는 신진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보았다.

자신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전석희 → 연극원 연출과입니다. 연극을 베이스로, 상호작용이 중요한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1를 만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극에 필요한 시스템 디자인과 엔지니어링도 하고 있습니다.

안준서 → 전통예술원 기악과 대금 전공입니다. 대금을 13살 때 시작해서 오랫동안 하다 보니, 새로운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연극원 공연에 악사, 객석감독, 오퍼레이터 등 다양한 역할로 참여했어요. 현재는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배우고 있지만 하반기에 연극원에서 4개의 공연을 합니다.

박심정훈 → 미술원 조형예술과 사진예술 전공입니다. 타 대학교의 사진과를 졸업 후 전문사로 입학했습니다. 선생님께 혼날 만큼 ‘딴짓’을 다양하게 시도 중입니다. 작년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개인전을 가졌었어요. 조각, 3D, VR 등도 만들고 현재는 <전도사들(전시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라는 예술 창업도 함께 진행 중입니다.

박신정 → 음악원 작곡과입니다. 현재 한예종의 음악가들을 모아 작업하는 <레몬사운드>를 창업하여 운영 중입니다. 음악가들은 저작권이나 크레딧 등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시장의 행태를 바꿔 보고 싶었습니다.

박민정 → 영상원 영화과입니다. 이탈리아의 극단에서 연극과 퍼포먼스를 하다가 귀국하여 영화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개발에 큰 재미를 느껴 다양한 게임을 만들고, K-DEV라는 한예종 게임 동아리를 운영 중입니다. 한예종 30주년 기념 애플리케이션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김상헌 → 무용원 실기과입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개그맨이 되고 싶어 극단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입시 특기를 위해 한국무용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연기는 3년 해도 안 늘었지만 무용은 3개월 해도 잘 늘어서 ‘물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춤을 출 때 행복합니다. 또 여전히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이력들을 가지고 계시는데요. 현재 하는 작업과 예술이 자신에게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김상헌 → 제게 예술은, 특히 무용은 ‘게르마늄 팔찌’ 같아요. 심적이나 신체적인 것도 좋아지게 만들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살다 보니 이렇게 되는구나, 라는 안정감이 들어요. 춤을 출 때 가장 편안합니다.

박민정 → 작업은 나 자신을 연구하는 도구입니다. 때문에 작업 방식이나 도구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이용합니다. 연극, 퍼포먼스, 영화, 코딩, 이 모든 것들은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의 ‘나에 대한 연구’인 거죠.

박신정 → 작업, 정확히 말하자면 <레몬사운드> 운영은 제가 존재하는 이유고, 이것을 위해 태어났다고 확신합니다. 적성에 매우 잘 맞습니다. 작곡은 제가 사랑해서 한 것이긴 하지만 많이 힘들었습니다. 교수님들께 좋은 피드백을 받고 결과물도 좋았지만 사업할 때 더 건강해지고 즐거워요.

안준서 → 대금을 할 때, ‘지속 가능할까?’라는 고민이 컸습니다. 물론 대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진심으로 행복했지만 불안한 공백기를 버틸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 속에서 가장 안정적인 선택을 한 것이 교육대학원입니다. 다만, 교육대학원은 사실 재미가 없습니다. ‘나는 예술가 아닌가? 아티스트인데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역시 예술가는 예술을 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꼭 돌아가려고 해요.

박심정훈 → 저는 원래 프로게이머를 준비했었는데, 0.02%까지 올라가도 제 위에 수천 명이 더 있었어요. 재능의 한계에 부딪힌 거죠. 그런데 사진은 다른 분야에 비해 타임 리밋이 없어서 꾸준히만 하면 내공과 실력이 쌓이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압박이 분명 존재하지만 꾸준히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편합니다.

전석희 → 제가 만들고 싶은 건 언제나 ‘작은 세계’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큰 세계라면, 제가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시스템’이라는 관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과 인물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존재가 되는가를 표현하고 싶어요.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만나고 싶습니다. 사람들과 나로서 대화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만든 걸 보여 주고 ‘이게 내 세계야’ 하는 방법으로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건 제가 가진 낙관적 허무주의 때문인데요. 진실이나 실재는 없고 관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제게는 의미 있습니다.

한예종이란 여러분께 어떤 장소인가요?
김상헌 → 어디를 가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 크죠. 입학했다는 것만으로 제 가치가 증명되니까요. 많은 동료들도 있고요.

안준서 → 우선 국립대학교이다 보니 등록금이 저렴해서 편히 다녔습니다. 또, 예술적 수업이 많습니다. 도자 조형, 유리 블로잉, 영상 편집 등 제 전공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예술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자산입니다. 그런 교류의 장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박민정 → 사실 잘 찾아보면 교류의 장은 굉장히 많아요. 산학 협력, 융합예술센터, AC랩, AT랩 등 양질의 프로그램과 커리큘럼들이 준비되어 있어요. 다른 과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다채롭고 재미있는 시각, 신선한 작업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곳입니다.

전석희 → 그런 다양성의 가치가 있죠. 이전의 환경에 있을 때는 제가 다르다는 게 느껴져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고, 슬펐습니다. 여기서도 저는 좀 다르지만 그 다름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아요. 그것이 편안합니다.

박신정 → 또, 기회가 굉장히 많은 학교입니다. <레몬사운드>의 경우도 학교 지원 사업인 <예컨대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했어요. 타 대학교의 경우 이런 사업의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서 어렵거든요.

박심정훈 → <전도사들>도 <예컨대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했어요. 한예종은 놀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나가도 아이들이 떠들고 있고 함께 노는. 흙 묻어 돌아가도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는 곳. 다들 많이 나가서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환경도 더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박민정 → 맞아요. 다양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그것을 앞으로 더 살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전석희 → 동의해요. 예술사적으로 현재는 혼종의 시대입니다. 혼종성에 더욱 열려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학교가 되어 가면 좋겠습니다.

안준서, 전석희, 김상헌, 박민정, 박신정,
박심정훈(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마지막으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한예종의 후배 예술가를 만난다면 해 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박민정 → 저는 지금까지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길을 곧잘 바꾸었습니다. 해외 거주든, 전공 변경이든, 급진적 변화들을 많이 겪었어요. 되돌아보니 그런 급진성을 보다 완만하고 둥그렇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싶어요. 현실적인 면을 펼쳐 두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네요.

전석희 → 예술가는 자신한테 당연한 사실이 모두에게 당연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사람들과 만나는 지점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준서 → 학교를 다니며 힘든 점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예술에 대한 고민이 제게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느낄 행복에 비하면 굶주림과 의식주 해결은 별일이 아니니까 끝까지 했으면 합니다. 비교나 열등감에서 벗어나 나의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박민정 → 좋아하는 만큼 기대하게 되죠. 저 역시 열등감을 크게 겪었는데, 어떻게 그런 경험들을 소화하셨는지 궁금해요.

박심정훈 → ‘10년 뒤에 보자!’라는 마음가짐을 갖습니다.

안준서 →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얻는 것들이 있어요.

박신정 → ‘난 이렇게 고생하니까 분명히 더 잘되겠지.’ 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현실이 돼요. 마음가짐의 문제죠. 또, 모든 순수 예술가들은 자신을 브랜드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이 사업체라고 생각하고 예술을 해야 더 큰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집니다. 스스로를 브랜드화해야 예술을 하면서도 밥벌이를 할 수 있습니다.

김상헌 → 메타인지를 해야 합니다. 메타인지란 캐릭터 분석을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구성에 있고, 어떤 관계 안에 있는지 바라보는 거죠. 또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열등감이 들고 무리한 행복을 바라는 건 욕심 때문이에요. 잘되는 사람을 따라가고 싶다 보니 진짜 내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는 거예요. 스스로를 인지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행복도 통증이니까요.

박신정 → 휴식이 꼭 필요해요. 1분도 안 쉬는 삶과 일을 하고 싶어도 손도 대지 않는 삶을 모두 살아 봤습니다. 어떤것이 성과가 좋았는지 생각해 보니까, 휴식이 있는 편이 낫더라고요. 번아웃이 오면 일을 해도 퀄리티가 안 나옵니다. 퀄리티와 자기 자신을 위해 쉬는 시간을 만들면 좋습니다.

안준서 → 예술은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든, 어디서든, 자신의 족적은 결국 한 점에 도달할 거예요. 그러니 하고 싶어 하는 것과 꿈꾸는 것을 해 보면 좋겠어요.

반짝이는 오로라의 생성 원리를 아는가? 오로라는 사실 먼지다. 우주의 태양 입자는 지구의 자기장에 이끌려 먼지가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구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오로라로 보인다. 빛나는 눈으로 열띤 대담을 벌인 여섯 명의 우주 여행자들은 모두 저마다 오로라를 내면에 품고 있었다. 부서지고 먼지가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반짝거린다. 여섯 개의 오로라는 각자만의 색으로 하늘을 물들일 것이다. 나와 당신, 우리 모두의 오로라가 빛을 발할 날을 기다리겠다.

글 강가영 사진 윤대진 영상 엄혜진
1 관객 참여형 공연. 배우가 객석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관객을 무대 위에 직접 참여시키기도 하며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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