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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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엄청났죠. 몇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영재원 실기 시험 때 윤찬 군의 연주를 기억하는걸요. 확실히 남달랐어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이하 영재원)에서 근무했던 음악원 작곡과 학생은 최근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영재원 출신, 예술사 21학번)의 연주를 이처럼 회상했다.
한국 클래식계는 지금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이라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는 이들로 열기가 뜨겁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최하영(첼로), 부조니 콩쿠르의 박재홍(피아노) 등 이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영재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올해 개원 14주년을 맞은 영재원은 잠재력 있는 예술 영재를 국가적 차원에서 조기 발굴 및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서울 본원을 시작으로 현재 세종, 경남통영캠퍼스를 동시에 운영 중이며, 내년 광주캠퍼스 개원을 앞두고 있다. 영재원에서의 1년 과정 중 상반기 정규 학기가 끝났음에도 열정과 기대를 품고 방학 중 연습에 매진 중인 이들을 <가무악 총체극 실습>, <발레 테크닉> 특강에서 만나 보았다.
전통예술 분야, 가무악 총체극 실습
<가무악 총체극 실습>(강사 신현석) 특강은 영재원 전통예술 분야 2019년도 정기 발표회에서 선보인 ‘가무악 프로젝트 2019 – 토끼 이야기’ 공연을 각색·수정하여 올해 11월에 다시 무대에 올리기 위해 개설되었다. 해당 공연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재원에서의 전통예술 수업이 전공의 세분화로 인해 개별 전공에 국한되어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가무악은 가(노래), 무(춤), 악(기악)을 모두 보여 줄 때 비로소 전통 음악이 온전히 표현됨을 가리키는 말이다.
강사 신현석은 학생들이 일체 됨을 체험하는 것에 가무악 총체극을 실습하는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본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각각 분리된 요소들을 한곳에서 실험하고 체험하면서 여러 분야의 전공을 연구하게 된다. 영재원 2년 차 조신영 학생은 본 수업이 독특한 진행 방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악보를 보고 무조건 외우는 방식이 아닌, 학생 개개인에게 잠재된 창의성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매 수업은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국악의 대중화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본질, 즉 진정한 국악을 담아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로 강사 신현석은 전통 음악의 이면, 이를테면 장단, 선율, 시김새 등의 음악적인 요소들 외에 연희적인 부분과 무용적인 요소들에도 귀를 기울여 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뒷받침되어야만 생명력 있는 전통 음악이 나오며, 악가무가 항상 공존했을 때 현재의 예술의 미래의 전통이 될 수 있다고.
취재에 응한 학생들은 모두 영재원만의 수업 커리큘럼이 차별화되어 있다는 데 공감했다. 영재원 1년 차 전호민 학생은 “영재원 학생들이 다수 재학하는 국악 혹은 예술중·고등학교에도 전공 수업이 있지만 영재원에서는 본인 전공 수업 외의 다양한 전공을 접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정가 전공 전호민 학생은 판소리 수업, 타악 전공 조신영 학생은 가야금 수업을 추가로 듣는다고 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커리큘럼이 타 분야에 대한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합주 때 본인 전공 외에 배웠던 악기들에 대해서 더욱 귀 기울여 듣고 관심을 가지게끔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발레 분야, 발레 테크닉
영재원 3년 차인 고은비 학생은 오전 9시 30분에 대학로 캠퍼스에서 열리는 본 수업을 위해 7시 반부터 와서 연습했다고 한다. 힘들지는 않을까 되물어보자 발레를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답했다. 그가 아침 일찍 준비한 수업은 영재원 무용 분야의 <발레 테크닉>(강사 심혜원)이라는 수업이다. 익히 알다시피 클래식은 기초가 제일 중요하다. 이 수업의 학생들은 2레벨(초등 4-5학년)로 기초를 닦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때문에 이 수업은 기초가 몸에 배게 도와주는 동시에 동작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 하지만 테크닉적인 부분만 집중하게 되면 감성적인 요소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배운 테크닉을 어떻게 무대에서 사용할지 배우는 레퍼토리 수업이 이후에 함께 이루어진다고 한다.
필자는 이 수업이 기본기를 중시하지만 음악성 또한 매우 강조한 수업임을 알 수 있었다. 녹음된 음원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항상 반주자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하는 것이 이 수업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음악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 능력 또한 자연스레 훨씬 향상되는 것 같다고 심혜원 강사는 말했다.
수업, 그 이후의 이야기
선생님도, 학생들도 모두가 예술만을 바라보고 하나가 되는 수업 시간이었지만 각자의 고충은 없는지 들어 보았다. 조신영 학생은 현재 고3 수험생으로, 올해 입시를 앞두고 있는 동시에 영재원 수업을 병행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에 입시 곡만을 위해 연습하다가 이렇게 새로운 음악을 접하게 되니 재미있고, 비록 어렵지만 수업에서 얻어간 부분도 많아서 좋다고 밝혔다. 영재원 재학생이라도 매년 입학 시험을 보아야 하는 점에 대해 심리적 압박감은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조원재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사실 압박감보다는 저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이 배우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각자의 꿈을 품고 열심히 전진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이 선배 예술가로서 남긴 조언은 영재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예술을 함’은 그 자체로 과정 중심적이기에 자본주의 사회의 항상 결과만을 평가받는 구조에서 탈피했으면 좋겠다.”(신현석)
“사실 발레가 규칙에 따른 예술이라는 점이 아이들한테는 굉장히 힘들 것이다. 하지만 영재원에서 이에 적응하는 동시에 춤출 때는 매우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발레 전공의 끝은 꼭 무용수가 아니어도 좋다. 안무를 기획해도 좋고, 티칭해도 좋다. 다만 영재원에서 기초를 잘 다져서 훗날 어른이 된 후에도 이 시절을 회상했을 때 잘 배웠다고 느꼈으면 좋겠다.”(심혜원)
우리는 각양각색의 떡잎을 갖고 있다. 그중 예술가로서의 떡잎을 일찍 발견하고 더욱 활짝 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선, 보다 중대한 일일 수 있다. 예술영재들이 영재원을 통해 그들만의 기름진 토양을 잘 가꾸어 더 큰 세계로 도약할 날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