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하필 거기에 자리 잡았을까요?
먼저 우리는 이 극을 구성하는 인물, 즉 “그들”에 집중해 볼 수 있다. 이 연극은 가족이 서로 소통하지 않아 생기는 갈등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아버지 남선비는 정주목에 기대어 앉아 중얼중얼 옛 선인들의 말만을 읊고, 그로 인해 생계에 대한 책임은 모두 어머니인 여산부인에게 돌아간다. 그녀는 삯바느질을 통해 생계를 이어 나가지만 가난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친구인 전상아재의 돈조차 갚지 못한 남선비는 무역업을 하기 위해 바다로 떠나게 된다. 이러한 장면만 보았을 때 이 가족에게 닥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가난 같지만, 공연에서 계속 반복되어 외쳐지는 대사는 바로 이것이다. “돌아오면 우리 속 나누고 삽시다.” 이들이 품은 속 나누고 살고 싶다는 바람은 바다로 떠나는 남편 남선비에게, 그리고 3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선비를 찾아 나서는 여산부인에게 외쳐진다.
언뜻 보기엔 이 소통의 부재에 대한 책임은 옛 선인들의 말만을 하루 종일 읊는 남선비의 몫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이 가족에게 소통의 부재가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는 소통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극 속 인물들은 자꾸만 소통을 미룬다. 소통에 대한 바람을 직접 발화하며 외칠 때는 언제나 한 사람이 집을 떠날 때이며, 심지어 떠난 이들이 돌아온 이후에도 그러한 간절한 외침은 실현되지 않는다. 이는 특히 녹디생이가 일곱 아들을 죽이기 위해 노일저대가 세웠던 계략을 폭로할 때 잘 드러난다. 녹디생이는 그의 지혜로운 면모 덕에 3년이 지나 아버지와 함께 돌아온 사람이 자신의 친엄마가 아님을 알게 되고, 그녀(노일저대)가 세우는 계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 상황에 함께 처해 있는 자신의 아버지나 형제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소통이 아닌 일방향적 말하기인 폭로의 방식을 통해 이 사실을 만천하에 알린다.
이처럼 이 가족에게 문제시되는 것은 단순히 소통이 부재했다는 점을 넘어, 소통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자들을 포함한 그 누구도 정작 소통을 시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속을 나누고 살자는 외침도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까마득히 작아졌을 때만 단방향으로 향하며 정작 상대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왜 하필 “거기에” 자리 잡았을까요?
하지만 이들이 결론적으로 한집에 다 함께 가택신으로 머무른다는 결말은 흥미롭다. 사실 이 신화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강에 빠졌던 여산부인이 불을 편안히 쬘 수 있는 부엌에 자리 잡았다든지, 지혜로운 막내 녹디생이는 집을 드나드는 사람을 볼 수 있는 문에 위치하게 되었다든지와 같이 각각의 인물이 이 신화 속에서 겪어 낸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곳을 지키게 되었다는 점에서의 본풀이이다. 하지만 본 글은 그보다는이들이다함께한집에머문다는점에집중해보려한다. 여산부인과 그의 아들들은 둘째 치더라도, 끝내 죽음에 이르는 남선비와 노일저대까지 서로의 위치만 구획될 뿐 한 지붕 아래에 함께 머무른다는 사실이 의아하기 때문이다.
관계의 붕괴와 그럼에도 한 집의 가택신이 되어 계속 머물기로 한 그 결정 사이, 어찌 보면 비논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 간극 사이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 너머의 가능성, 가택신이 된 이후에 그들의 생활을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이것이 결국은 그들의 본풀이에 지나지 않음을, 그들의 현재는 아님을 상기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집, 심지어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의 집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를 생각해 보며 우리의 집을 지켜 주는 이들이 있다는 든든함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한다. 가택신이 된 이들은 가끔은 자신들을 위한 제사에 불려 나와 함께 음식을 먹기도, 집에 사는 인간들의 안녕을 기원하거나 벌을 주기 위해 다 함께 회의를 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보였던 사람 사는 이야기를 굽어보며 보이지 않는 신들의 현재를 떠올리게 된다.

특정한 시대와 상황을 실감나게 재현해 놓은 무대가 아닌 의자와 평상만이 존재하는 무대를 통해서도 우리가 이 세계를 생생하고 실감 나게 ‘볼’ 수 있었던 까닭은 이와 같이 극과 관객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판소리의 특징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공연을 구성하는 이들이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는 까닭에 하나의 공간에서도 여러 세계가 중첩되며 더욱 큰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극의 형식은 소통을 강조하던 내용과 맞물리며,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박인혜 연출은 극의 리플릿을 통해 이런 말을 전한다. “고백하자면, 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 어떤 믿음으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온 공동체의 간곡한 정성과 바람을 믿습니다.” 이러한 연출의 말마따나, 무언가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 너머를 잘 들여다보면 그 실존을 믿고 싶었던, 믿어야만 했던 까닭이 숨겨져 있다. 그렇게 공연은 집에 평안히 거주하기 위해 가택신에게 구송하던 무속 신화에서 ‘가족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꺼내 든다. 우리는 늘 말하고 살기 때문에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늘상 많은 말을 주고 받기에 잘 소통하고 산다고 생각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소통은 단순히 너의 말과 나의 말이 서로에게 들리는 것을 넘어 너의 말과 내 말이 공명할 때,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할 때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연은 내용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보이는 존재끼리 소통했을 때 진입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며 우리가 사람 사이에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소리꾼들의 소리 사이에서 하나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한 우리가 눈을 깜빡일 때, 그 깜빡임이 불러온 암전 사이에서 찰나의 흐릿한 잔상으로 우리는 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둥그런 원을 그리고 앉은 그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