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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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밤하늘에 떠오른 별을 보며 항해의 방향을 가늠했다. 바다를 비추는 별빛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앞서가면서도, 뒤를 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린스키 발레단 사상 최연소로 수석 무용수를 차지하고, 한국 남성 무용수 최초로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김기민은 그저 꾸준하게, 변함없이 춤을 춘다. 가야 할 길을 알려 주는 자상한 길잡이별처럼, 그의 빛은 한국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4년 만의 내한 무대예요. 이번 <발레 슈프림 2022> 갈라 공연에 임하는 소감이 궁금해요.
고국 무대도 4년 만인데, 한국을 3년 동안 못 왔어요. 외국생활 11년 차인데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먼저 가족을 봐서 너무 행복하고요. 부모님, 또 국립발레단의 김기완, 저희 형님.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이기도 한. (웃음) 또 저는 발레를 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가장 큰 행복은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나는 거죠. 제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한국 팬들을 이번 공연에서 다시 뵙게 돼서 정말 좋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선보이는 안무 중 <해적>은 마린스키 발레단에서의 데뷔작이기도 하니 더욱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그때와 지금을 돌아봤을 때, 변한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변한 게 있다면 당연히 데뷔 때는 제가 아기 때니까, 지금도 아기지만. (웃음) 아무래도 지금의 춤이 훨씬 성숙할 거고요. 그때는 욕심도 더 많았고, 20대의 신선한 에너지도 잘 보였던 것 같아요. 또 10년 전쯤에는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연습했었는데, 요즘은 밖에서도 많이 연습해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은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보를 얻기도 하고요. 인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사랑이나 실패 같은 경험도 많이 했어요. 근데 그 경험이 예술에서는 정말 중요하거든요.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무대에서 보여 주는 표현이 풍부해지니까요. 이제는 더 많은 경험이 바탕이 된 <해적>을 보여 드릴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 경험에서 나오는 춤이 앞으로 10년 후면 또 어떻게 다를까 하루하루 기대가 되기도 하고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하셨을 때, ‘춤의 느낌이 좋고 각각의 춤마다 스타일을 구분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좋은 평가를 받으셨어요. 이처럼 춤에 대한 이해력과 해석은 김기민 발레리노의 큰 강점인데, 작품을 이해하고 캐릭터를 해석하는 본인만의 방법이나 기준이 있으신가요?
저는 작품을 연구할 때는 정보란 정보는 전부 찾아봐요. 만약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한다고 하면 음악은 말할 것도 없이 온종일 듣고요, 대중음악도 작품과 어울리거나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이유를 붙여서라도 들어요. 안무가의 삶이나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도 다 찾아보고요. 만약 2차 세계대전 같은 전시에 만들어진 안무라면, ‘전쟁’이라는 말에서부터 그 분위기가 느껴지잖아요. 그것만 알아도 벌써 동작이 다르게 나오거든요. 파트너와의 호흡도 중요해요. 상대가 어떤 무용수인가에 따라 제 춤이 좀 달라지기 때문에 파트너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고전 작품부터 <르 팍>이나 안무가 신영준(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졸업)의 <새드니스> 독무 등 현대 작품까지 배역을 소화하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으신데, 고전과 현대 작품을 표현하고 이입하는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액자’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액자에 틀이 있듯이 클래식 발레에도 틀이 있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표현하려면 클래식 발레는 동작이나 형식이 이미 정해져 있죠. 고전 발레가 관객들에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가, 무용수뿐만 아니라 관객도공연에대해준비해와야해서그런것같아요.현대 작품은 역사적으로만 봐도 이사도라 덩컨이라는 무용수를 시작으로 정해진 틀이나 형식을 깨고, 토슈즈를 벗고 맨발로 더 자유롭게 춤추기 시작한 거잖아요. 저도 그렇고 대부분 발레 무용수들은 형식에서 벗어나는 걸 되게 힘들어해요. 항상 이렇게 (동작 같은 것을) 잡고 있기 때문에. 신영준 안무가의 <새드니스>는 한예종 출신의 안무를 미국에서 공연하고 싶어서 선택했는데, 그분이 직접 ‘안무를 더 자유롭게 풀어서 하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런 식으로 연습, 리허설, 무대 위에서의 표현 방식에도 다 차이가 있습니다.

<해적>
<해적>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분명 지치고 연습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날은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시나요?
제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전막 공연만 40번을 했어요. 다 다른 작품으로. 주위에 얘기하면 다들 잘 안 믿을 정도로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예요. 사실 공연은 체력적 부담이 크다 보니 공연을 계속하면서 실력을 유지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저는 마냥 공연만 하고 싶지는 않고, 공연을 하면서 제가 발전하기를 원하거든요. 그렇다고 발전을 위해서 공연을 안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공연을 해야 발전할 수 있거든요. 이 두 가지를 다 잡기 위해서 저는 ‘루틴’을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정한 루틴과 습관들을 매일 하는 거죠. 그 꾸준함이 버텨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발레를 안 하고 싶을 때도 루틴이 있으니까 하게 되고요. 발레를 너무 하고 싶을 때도, 뭐든 과하게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 루틴에서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꾸준히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발레를 잘하려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음악과의 어울림이나 감정 표현, 무대 매너까지 다양한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 같아요. 예술가로서 발레 연습 외에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요?
사실 조금 타고나야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잘난 척을 하려는 게 아니라 무대에서 발산하는 매력이나 무대 장악력 같은 건 분명히 타고나는 부분이 있어요. 사실 발레는 정말 복합적으로 다 잘해야 하거든요. 표현만 잘하면 관객이 공연에 이입하기 힘들고, 테크닉이나 기교만 잘했을 때는 감동이 없죠. 골고루 잘하려면 음악도 많이 듣고, 감정 표현도 연습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무대에서 한꺼번에 보여 주는 건 또 다른 문제예요. 자신이 연구한 걸 전체 작품에 적용할 수도 있어야 하고요.

한예종이 올해 개교 30주년을 맞았는데요. 무용수로서의 삶에 한예종 재학 경험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영재교육원부터 한예종까지 다니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배움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당연히 노력하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다닐 때만큼 열심히 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요. 지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습했던, 제가 노력을 가장 많이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 기억이 힘이 되고, 힘들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아요. 또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춤을 출 수 있는 데는 무용원의 김선희 교수님, 김용걸 교수님, 조주현 교수님, 그리고 김선희 교수님께서 초빙해 주신 블라디미르 킴 선생님, 마르가리타 쿨릭 선생님의 역할이 정말 크셨죠. 최근에 김선희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면서 교수님 덕분에 제가 행복하게 춤을 출 수 있는 것 같다고 감사를 전하기도 했고요. 학교에서 여러 좋은 감정을 느끼고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잘 준비된 상태로 해외에 갔기 때문에 이렇게 행복하게 춤을 출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는데,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한예종 후배들에게 한 말씀만 해 주신다면.
이게 열심히 하라고 해서 열심히 하는 게 아닌데. (웃음) 솔직히 저는 후배들한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매년 달라져서 확신이 잘 안 서요. 이게 잔소리가 될 수도 있고. (웃음) 사실 열심히 하라는 말은 좀 흔하잖아요. 그냥 해 주고 싶은 말은, 예술은 무대 위에서 혹은 그림이나 음악을 통해서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뭐든 많이 경험하고 느껴야 하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든 열심히 하지 않든 다 좋지만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박물관에 가거나, 뮤지컬이든 발레든 공연을 많이 보거나,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고요. 공연도 좋은 공연이면 너무 좋겠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좋지 않았던 공연에서도 장점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해요.

해외 무대에서 활동한 경험으로 볼 때, 새로운 30년을 시작하는 한예종에서 자라날 미래의 무용수들을 위해서는 어떤 지원과 교육이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굉장한 학교죠. 저는 너무 자부심을 느끼고 있거든요. 한국 안의 한 학교에서, 지금 세계적으로 메이저 컴퍼니라는 컴퍼니는 다 나가서 주역 무용수를 하고 있는 거니까요. 이 무용수들이 나중에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모인다고 하면 저는 그 시너지가 정말 어마어마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무용수들이 돌아와서 좋은 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학생들과 무용수들이 학교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외국에서 가장 놀랐던 건 그 친구들이 가진 경험이었어요. 스스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경험이요. 마린스키만 봐도 공연이 365일 내내 있어요. 어려서부터 공연을 당연하게 매일 본 그 친구들은 굳이 공부하려고 찾아보지 않아도 살다 보니까 공부가 돼 있는 거예요. 저는 이 친구들의 경험을 따라가려면 이제라도 많이 봐야 하니까, 제 공연 끝나고 다른 공연 보는 게 지쳐도 무조건 봐요. 후배들이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따로 공연을 자주 보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그런 예술적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줬으면 좋겠어요. 또 무대에 설 기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아무리 스튜디오 안에서 100번 연습해도, 무대 한 번 서는 것보다 못하거든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은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더 많아질 수 있다면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너무 좋은 거죠. 후배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선배로서의 바람입니다.

<새드니스>
<로미오와 줄리엣> 중 Ekaterina Pervushina 무용수와의 연습 장면

전 세계로 공연을 다니시고 해외 초청 공연도 무척 많으신데, 세계적인 공연장에서 받는 에너지도 남다를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공연이나 무대에서 느꼈던 감동을 공유해 주신다면.
기억에 남는 무대 중 하나는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의 공연이에요. 저는 부상이 있어도 공연을 하는 게 좀 능숙한 편인데도, 정말 부상이 심했던 날이라서 기억에 남고요. 마린스키에서 김기민 리사이틀 공연을 두 번 했는데, 그렇게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무대에 제 이름을 걸고 두 번이나 공연을 했고 앞으로 또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큰 영광이라 잊을 수가 없죠. 또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무용수가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와 나탈리아 마카로바인데요. 제 커리어의 자랑이기도 한데, 그 두 분이 저를 너무 좋아하세요. 마카로바 무용수는 <라 바야데르 30주년 기념 공연>에 제가 공연했으면 좋겠다고 저를 초청하기도 하셨어요. 그런 공연도 기억에 많이 남고 감사하죠. 발레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꼭 좋은 일만 있진 않잖아요. 가끔은 넘어져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다음 걸 잘하기 위해 한 번 쉬어 간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긍정적인 거죠. 무서운 건 넘어졌을 때의 충격이 커서 스스로 ‘나는 안 되는구나’ 같은 회의감을 느낄 때예요. 저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분들을 만나고 칭찬도 받으면서 다시 자신감을 찾았던 적이 있어요. 제가 대단한 걸 타고나서 여기까지 왔다기보다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받았던 도움 덕분에 계속 춤을 출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공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 가지로.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하고 나서, 기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다음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실 거라 말씀하셨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렇다면 2022년 현재, 김기민의 다음 꿈은 무엇인가요?
저의 커리어를 성장시키고 큰 무대에서 더 많이 춤추는 것도 좋지만 솔직히 저는 최고의 자리나 주역 무용수로 계속 있겠다는 꿈은 없거든요. 모든 건 이어져 있잖아요. 어떤 관계도 그렇고 뭔가 있다가도 사라지면 그 빈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우게 되기 마련이고요. 지금은 제가 마린스키의 주역 무용수로 한국을 알리고 있지만 이런 게 더 연속성을 가지려면 저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여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저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그 친구들이 물 타듯이 계속 잘 올라오고, 또 그 친구들이 관객들한테 더 좋은 예술을 보여 줄 수 있게끔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기적인 무용수가 아니라(웃음) 전 세계의 사람들한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무용수가 되도록 계속해서 열심히 할 예정입니다.

발레리노 활동과 발레라는 분야를 통해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또 30년 후의 김기민을 스스로 그려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무대 위에서는 스타일을 중요시하고 많이 연구해요. 러시아면 러시아, 미국이면 미국 스타일대로 확실히 춤을 추는데, 말할 때는 달라요. 저는 ‘나 한국 사람입니다.’ 라거나 ‘마린스키를 대표하는 무용수입니다.’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발레도 언어잖아요.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라고 하는데, 저는 발레로 이야기하는 거죠. 우리가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건 그 나라 사람과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서인데, 발레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언어를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죠. 발레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더 많이 소통하고 교류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무용인이라서 그런지, 발레가 평화나 사랑에 가장 근접한 단어인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춤을 추고 있고요.
시도해 보고 싶은 건 너무 많아서. (웃음) 사실 제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좀 두려워해요. 입 밖으로 나가면 안 이루어질 것 같은? 그래서 구체적이진 않지만, 제가 가진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건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제가 발레인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 지키고 싶은 건 ‘최대한 바보같이 살자.’인데, 아무리 소신이 있어도 세상을 알아 가고 두려움이 생길수록 자기 예술에서 하나씩 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버리게 되면, 예술은 가장 순수한 걸 보여 줘야 하는데 그게 나오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냥 제가 가진 꿈과 긍정적인 목표가 30년, 40년 후까지 지금처럼, 바보처럼 계속 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김기민이라는 무용수와 그의 춤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붙여 주고 싶은 수식어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제 춤이 어떤 춤인가, 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공연 때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보여 드리고자 하는 저만의 철학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저는 제가 가진 것을 무대에서 100% 보여 주는 무용수인 것 같아요. 그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하고요.
수식어라는 게. (웃음) 솔직히 어떤 수식어를 바라진 않는 것 같아요. 어떤 말을 듣고 싶고, 어떻게 되고 싶고, 어떤 명예를 얻고 싶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아요. 그냥 지금 하는 대로 꾸준히 잘 해내다 보면 명예가 있을 수도 있고, 없으면 없는 대로 가는 거고요. 별로 크게 바라지 않고, 그냥 지금처럼 이대로만.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글 오서윤 사진 김경수 영상 공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