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2022

ARTISTS

작업실 벽엔 오래된 아파트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도심의 어느 가에선가 한 번쯤 마주쳤던 것만 같은 아파트의 풍경은, 그 옆에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스케치로 번역되어 있었다. 이는 다시 색과 획이 되어 캔버스로 옮겨져 있었고, 작품 속엔 어느덧 아파트가 나선형의 시간을 그리며 무너지고, 지어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 커다란 캔버스 옆에서 《혀와 손톱》(2021), 《블루 바이닐 커튼(Blue Vinyl Curtain)》(2019), 《보라색 소음》(2018)과 같은 개인전부터 다수의 단체전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작가 겸 교수 구지윤을 만났다.

도시와 시간을 마주하는 작품의 빛
개인전 《보라색 소음》(2018), 《블루 바이닐 커튼(Blue Vinyl Curtain)》(2019) 그리고 《혀와 손톱》(2021)에 이르기까지 ‘도시’라는 소재가 주제로서 자주 등장하는데, 어떤 계기로 도시에 집중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해외에 유학을 갔다가 여름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어요. 그때는 제가 평생 시간을 보냈던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잠깐 해외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약간은 관광객의 시선으로 서울을 바라보게 됐어요. 당시는 굉장히 더운 여름이었고 여러 곳에서 계속해서 시위가 열리고 있던 때였어요. 그런 풍경들에서 어떤 광적인 도시의 에너지를 느끼면서 응축된 에너지를 분출하듯이 작업을 했던 게 지금 작업의 모태가 됐어요.
그 뒤로부터 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작업을 조금씩 변형해 가면서 진행해 오고 있어요.
공사장이라는 곳을 작업의 모티브 혹은 주제로 가지고 오게 된 이유도 생활과 관련이 있었어요. 계속해서 대도시에만 살아오면서 주로 맞닥뜨리는 곳이 공사장이라는 공간이었는데, 공사장에서 온 먼지라든가 소음이라든가 혹은 압도당하는 스케일 같은 것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공사장이 지어지는 동시에 또 무너지기도 하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어중간한 시점에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해서 부수고 또 새로운 것을 만드는 패턴화된 장소로 도시를 규정지었던 것 같고, 그러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 같은 도시의 면모를 봤던 것 같아요.

<얼굴-풍경> 연작과 같이 도시 그 자체뿐만 아니라 도시와 관련된 사람들의 심리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시는데, 특히 요즘 주의 깊게 살피는 현대인의 심리적 풍경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어디에 있든 사람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고독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잖아요. 뭔가가 없다고 해서, 결핍이 있어서 외로움을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해외에서 공부하던 중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있고 내가 많은 것들을 소비하고 있는데 왜 지루하고 더 권태로워질까, 그런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어요. 그렇게 도시에 사는 사람들 혹은 현대인들이 가진 지루함이나 권태 같은 부분에 천착하게 되면서 <얼굴-풍경>이라는 작업이 나오게 됐던 거예요. 그런 작업을 계속해 오다가 최근에는 몸, 우리가 가진 신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우리가 도시에 살면서 잃어 가는 감각들은 뭘까 그러면서 생기게 되는 공허함이라든가 잃게 되는 무뎌짐 같은 건 뭘까, 같은 질문들로 옮겨 오게 된 거 같아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나 심리 상태에서 시작을 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그 반대 선상에서 바라보고 싶었어요. 《혀와 손톱》(2021)도 보이지 않던 인간의 욕망 같은 것을 신체 일부분을 통해서 보여 줬던 부분이 있거든요. 최근에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보라색 소음》(2018)을 포함해 주로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부터 작품이 출발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감각을 작품으로 시각화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도시, 공사장 같은 소재들은 우리가 떠올렸을 때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근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묘사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형상에서 포착할 수 없는 혹은 그런 형상을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든가 에너지, 그런 떠돌아다니는 것들을 그려 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미지의 자리를 색, 형태 같은 조형적인 언어들이 메꿨던 것 같아요.
어떤 현상이나 시각이 아닌 다른 자극과 감각을 시각으로 되돌리려고 할 때 그것에는 수많은 해석이나 내가 경험한 기억 같은 것들이 직관적으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차이들을 알고 싶어서 공감각에 대한 책도 읽어 봤지만, 저랑은 오히려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공감각으로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속 고민을 거듭하다가, 시간이 지나서 녹슬거나 구부러진 철근들을 보면서 생명을 다하고 고개를 푹 숙인 꽃을 떠올리는 것같이, 다른 생명이나 사물의 형상에 대입시켜서 더 가깝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거기서 오는 라인들, 색들 이런 걸 빌려 와서요. 사실 제가 추상 회화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과 고민은 ‘이게 과연 시각원으로서 소통이 가능한가’였거든요.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무드가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러다 보니 조금은 보편적인 언어를 가져오는 게 저에게는 맞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보라색 소음》 전시 전경
《무거운 농담》 전시 전경
구지윤, 턱을 괸 사람, Oil on canvas, 130cm×97cm, 2016

회화를 주된 매체로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더불어 뉴미디어 시대에 맞춰 새로운 매체들이 전시장에 자주 등장하는 오늘날, 회화라는 매체가 갖는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회화라는 매체는 정말 오래된 매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질문들을 계속해서 받았던 거 같아요. 최근 느끼는 것은 모든 매체라는 게, 아무리 뉴미디어라도 올드 미디어성과 뉴미디어성을 함께 갖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회화도 대표적인 올드미디어이지만, 이 안에도 뉴미디어성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런 가능성에 믿음이 있기 때문에 회화 작업을 지속하고 있어요. 더불어 회화가 시간의 축적이라든가, 그것에 대한 가치, 실패와 같은 제 작업의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적합한 매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화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회화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회화 안에서 시간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 더 원형적인 시간, 그러니까 어느 곳을 찔러 봐도 거기에 다 시간이 배어 있는, 그런 시간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많이 이동하면서 흐름이 끊어진 그림들 같은 경우에 그것들을 모아서 전혀 다른 맥락의 새로운 작업을 그 위에 펼쳐 놓을 때가 있는데, 하얀 캔버스라는 완전한 무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 전에 시간이 배어 있는 화면 위에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 낸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것 같아요.

함께하는 교육의 빛
본교 조형예술과 예술사를 졸업하셨는데, 그 시절이 지금까지의 작품 창작에 있어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배움의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파운데이션이라는 과정을 이론과 그리고 디자인과 친구들과 같이 하면서, 조형예술과뿐만 아니라 다른 과에 있는 학생들과 같은 수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었어요. 그리고 그 수업 자체가 워낙 인텐스하다 보니까 계속해서 과제들을 수행해 내야 하는 시간을 겪으면서 제가 입시 때 해 왔던 그림은 1년 동안 거의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계속 하나의 주제를 갖고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는 방법들을 배우기도 하고, 다각도로 작업을 해석하는 크리틱의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그런 시간들이 제가 지금 회화를 하면서도 왜 회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반문하게 하는 시작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작업실 안에 있다 보면 혼자서 작업을 하는 일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한테 계속 파고들어가서 오히려 깊어질 수는 있지만, 또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굉장히 딱딱해지는 일이 발생하는데, 한예종에서 받았던 교육은 그런 것들을 탈피해 줄 수 있는 교육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예종 다니면서 제가 배웠던 교수님들의 탈권위적인 부분들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편안하게 작업에 대해 얘기할 수 있고, 심지어 놀이라든가 그런 부분에서도 교수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셨던 게 굉장히 다르게 느껴졌어요.

이제는 학생이 아닌 교수로 학교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고 계시는데요. 현재 가르치고 계신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예전에 박이소 선생님 회고전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자료집 속에 작가지만 또 교육자로서 강의를 만들기 위해 꼼꼼하게 기록해 두신 부분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학생들한테 강조했던 부분이 그분의 언어로 ‘비평동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저도 학생들한테 너희도 졸업하기 전까지 너의 작업을 온전하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얘기해 줄 수 있는 친구 한 명을 꼭 만들고 졸업을 하라고 1학년 때부터 이야기하거든요. 그게 쉬운 것 같지만 쉽지가 않은 게, 가까이 지내는 친구일수록 작업을 솔직하고 신랄하게, 혹은 따뜻하게 바라봐 줄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선생님께 배우는 것도 있겠지만 또래 친구들한테 배우는 게 훨씬 많다는 걸 얘기하면서 서로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해요. 그리고 그 시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좀 많이 해 보라고 얘기를 해요. 왜냐하면 1학년 때 파운데이션 수업을 지나고 또 작업하면서 계속 하나에 갇혀 있기 마련인데, 그 외에 조금 더 폭넓은 경험을 많이 해 보라고 하는 편이에요.

교수진으로도 계시지만,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도 펼치고 계십니다. 교육자와 작가의 위치를 겸하는 일이 개인적으로, 혹은 작품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장단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업실에 와서도 온전한 내 시간을 즐기기도 하고 혹은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작업으로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의 양이 확 줄어들면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움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돌이켜 보면, 시간이 많았을 때 내가 그것을 온전히 그것을 긍정적으로 다 활용했는가 하고 생각하면 아닌 부분들도 분명히 있었어요. 수업을 하면서 찾을 수 있는 긍정적인 점은, 아까 좀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자신에게 빠지게 되는데, 그것이 작업을 깊이 있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넓어지지 못하게 하는 측면도 있거든요. 그런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혹은 학생들의 작업을 여러 선생님들과 만나서 같이 얘기하면서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또 학생들은 지금 스무 살 혹은 그 이상인데, 계속 크리틱을 하고 1대 1로 대면 수업을 하고 하면서 이 세대가 갖는 고민들이라든가 아니면 흥미를 갖고 있는 지점들을 듣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제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게 되기도 하고, 공부도 하게 되고요. 그런 부분은 저를 갇히지 않게 해 주는 부분이 아닌가 해서 학생들한테도 굉장히 많이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병행하면서 좋은 밸런스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구지윤, Tongue and Nail, Oil on linen, 290.9cm×218.2cm, 2021
<혀와 손톱> 전시 전경

계속되는 예술가의 빛
예술가로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하게 됐던 것 같아요. 한 예술가의 인생을 쭉 되돌아보면 특정 시기에 폭발적으로 작업이 나오고 그 이후에도 그때만큼 좋은 작업이 안 나오더라도 끊임없이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있고, 아니면 정말 하얗게 불태우고 그다음에 바로 작업을 중단하고 예술가로서의 삶이 사라지는 작가도 많이 보게 되잖아요. 저는 전자가 더 좋은 것 같아요. 그게 사실은 굉장히 힘든 일이기도 하거든요. 관심이 없어지기도 하고 관객들에게서 잊힐 수도 있고, 그리고 에너지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계속 그것을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학생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조금은 길게 보고 작업을 해라. 길게 보고 작업을 하는 과정은 어떤 시기를 넘어가야 하는 것이고 자신의 생계와 너무 밀접하게 닿아 있는 부분에 있어서 주저앉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시기를 조금은 버텨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스스로도 계속 그런 의지를 되새기는 것 같아요. 어느 시기에는 좀 뜸하더라도 계속해서 끈을 놓지 않는 거.

최근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들고도 소장할 공간이 마땅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규모가 큰 작품을 작업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럴 텐데요. 비슷한 상황을 보거나 겪어 보신 적이 있나요? 오늘 방문한 이 작업 공간이 작가님께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듣고 싶습니다.
제가 뉴욕에 있을 때, 좀 큰 작업을 해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천을 말린 걸 사 오고, 왁구를 사다가 작업실 안에서 조립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작업실의 문보다 훨씬 더 큰 캔버스가 완성됐고, 그것으로 작업을 하다가 거의 완성이 되었는데 그때 작업실을 빼야 되는 시점이 왔어요. 갑자기 막막해진 거죠. 이걸 들고 나가려니 문과 창문보다 훨씬 커져 있고. 그리고 유화는 보통 마르는 시간이 최소 6개월이 걸려서, 이것을 접을 수도 없고.
이 작업이 캔버스 2개를 이어 붙여서 만든 거였거든요. 그래서 이어 붙이는 이음새를 뜯어다가 접어서 각목을 박고 약간 반 정도 접힌 피스로 만든 거예요. 이걸 텅 빈 작업실에서 보고 있으려니까 이게 그림이긴 그림인데 그림 같지가 않고 그냥 물리적인 어떤 짐처럼 보이더라고요. 이 작품을 당시에 교수가 보더니 Jay Defeo 작가를 아느냐 물어보더라고요. 그 작가는 <The Rose>라는 대표작이 있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처음에는 벽면에 캔버스 천을 대고 그리다가, 9년 정도 그 작업을 하면서 물감이 너무 무거워져서 지탱할 수 없으니까 다시 캔버스를 짜서 걸기도 해요. 얼마나 그 관계가 애증의 관계였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고전을 할때도 그 작업을 빼낼 수 가 없어서 남자 6-7명이 작업을 떼어 내고, 심지어 벽을 톱으로 떼서 싣고 나가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나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모든 예술가가 가진, 심지어 이렇게 유명한 작가도 겪는 경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회화 작업은 물리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공간이라든가 상황이 주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걸 느꼈어요. 작업실이 작으면 정말 작은 작업밖에 못 하는 것이고 또 큰 작업실을 갖게 되면 또 거기에 맞는 작업을 시도해 볼 수 있고요. 지금 작업실은 저한테 그런 기회를 주는 공간인 것 같아서, 여기 있는 동안에 최대한 공간에서 오는 이점을 활용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는, 제가 작업을 되게 많이 버렸거든요. 학교에 가 보면 작업을 복도에 버리거나 방치하는데, 나중에 그 작업을 봤을 때 또 오는 다른 아이디어가 있을 수도 있고, 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데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얘기해 주고싶네요.

매거진 <K’Arts> 이번 호(43호)의 주제는 글리터(Glitter), 즉 ‘반짝임’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떤 작품 혹은 어떤 순간을 보고 반짝인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매번 찾아오는 것 같아요. 전시를잘끝내놓고도그이후에오는허무감같은게분명히 있고, 그리고 또 어찌 보면 계속 소비하면서 작업을 해 나가는 사이클이다 보니, 이게 맞나라는 생각들도 정말 현실적으로 스치기도 하고요. 근데 제가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작업하는 동료 중에 군중 속에 있으면 그렇게 존재감이 있지는 않은 그런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어느 날 자기 작업에 대해서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 얘기를 숨죽여서 듣고 있었어요. 그 순간에 그 친구가 반짝반짝해 보였어요. 그걸 보면서, 나도 어쩌면 내 작업을 할 때 가장 빛나지 않을까, 작업을 가지고 다른 타인과 소통할 때 가장 내 얘기를 하게 되고, 그걸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작품을 바탕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더 먼 시간을 거슬러 작가로서의 삶을 결심하게 된 계기로 흘러 마무리되었다. 예술가의 시간을, 학생으로의 시간을, 교육자로의 시간을 경유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그 시간들 곳곳엔 빛이 스미어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빛이.

글 오지은 사진 김경수 영상 이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