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2024 SPRING49

낙산 (落山)

1

제품을 진열하는 중에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한호의 전화였다. 받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전화가 끊겼다. 잠시 후 예영 씨가 매니저님, 하고 불렀다. 어느 순간 계산대에 손님이 몰려 있었다. 정신없이 계산을 끝내고 하던 일을 반복했다. 샴푸, 치약, 아이브로우펜슬, 생리대, 로션, 핸드크림.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휴대폰을 보니 오후 세 시였다. 부재중이 찍힌 지 두 시간이 넘어 있었다.

- 나리야, 잘 지내?

한호는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나는 어, 웬일이야, 했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당황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운 마음도 좀 있었다. 곧이어 한호가 뭐라 답했다. 수화기 너머 바람 소리 때문에 드문드문 끊겨 들렸다. 바람이 몹시 세서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만 같았는데, 짐작과 달리 그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 나 지금 산 정상이야.

한호가 있는 산이 용마산이라는 걸 듣고 무척 놀랐다. 내 자취방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왜 거기 있느냐고 물었지만 시, 분다, 무서워서, 커피, 자꾸만 바람이 끼어들었다. 여긴 바람이 안 부는데, 산이니까 아무래도, 생각하고 있을 때 한호가 으하하 웃었다. 그것 역시 바람 소리일지도 몰랐다.


건대입구 매장에서 퇴근하고 용마산역에 도착해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다. 토요일 오후여서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나는 창가에 앉아 바깥 나무들을 구경했다. 저 가로수들은 아직 초록빛인데 산속에 있는 몇몇 나무는 벌써 빨갛고 노랗게 물들었다니 신기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늦었지, 미안.”

삼십 분쯤 뒤 도착한 한호는 오전에 커피 두 잔을 마셨다며 청포도 에이드를 주문했다. 나는 한호의 갈색 재킷과 검정 슬랙스를 보곤 그러고 등산한 거니, 했고 한호는 어쩌다 보니, 하고 작게 웃었다.

내심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걱정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한호는 거의 그대로였다. 활달한 성격이나 흰 피부, 웃을 때 파이는 보조개, 습관적으로 흘리는 웃음, 거기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은 마지막으로 본 이 년 전과 똑같았다. 카톡으로 만날 장소를 정할 때 한호는 미리 상황을 간단히 얘기했으나 카페에서 더 자세히 풀어놓았다. 작년부터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전날 남양주에서 일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어찌어찌 공영주차장에 주차한 뒤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근처 카페에서 무작정 기다리다가-나는 그런 게 너무 대책 없다고 생각했다-불현듯 나를 영영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이상하고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을 올랐던 거지.”

“그게 무슨 개연성이야?”

한호가 멋쩍게 웃는 걸 바라보았다. 내가 사는 곳을 아는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았다. 엄마에게 들었을 거였다. 하지만 이 근처에 왔을 때 한호는 어릴 적부터 살던 집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 뒤에 내 생각이 난 거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여기 중랑구에서 자랐으니까.

그러한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 건 카페에서 나와 저녁까지 먹고 난 뒤였다. 갈비를 구워 먹으며 한호는 대체로 행사나 워크숍에서 있던 에피소드들을 얘기했고, 나는 같이 웃고 떠들었지만 그러면서도 말을 조심히 골랐다. 그러다 헤어지는 길에 한호는 넌지시 부탁을 해왔다. 탄원서를 대신 써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갑자기 뭔 말이야. 한호는 사기를 당한 문제로 고소되었다고 답했다. 사기를 당했는데 네가 왜 고소돼? 그게, 내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쓰였거든. 한호는 말을 이었다. 탄원서를 써 보려 했는데 혼자 하려니 너무 힘들다, 넌 국문과도 나오고 글도 잘 쓰니까 좀 도와줬으면 한다, 난 너와 다르게 글재주가 없잖아, 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가만있었다. 내가 썼던 건 드라마였고 엉터리였으며 이제 나는 드럭스토어에서 일하는 직원이었지만 구태여 그런 말을 늘어놓고 싶진 않았다. 탄원서 같은 건 써 본 적도 없고, 지금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와주면 사례는 꼭 할게. 한호의 말에 나는 손을 저었다. 야, 사례는 무슨. 그러자 한호가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하며 웃었다. 내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렇지만 나는 한호의 부탁을 단박에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2

한호는 막내 이모의 둘째 아들이고, 우리는 동갑내기 사촌이다. 유년 시절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엄마와 막내 이모 얘기부터 해야 한다.

엄마는 다섯 남매 중 셋째였는데 막냇동생과 유독 가까운 사이였다. 엄마에게 듣기로 나이 차가 나는 첫째 이모는 성인이 되자마자 가족과 연을 끊었고, 둘째인 삼촌은 바로 아래 동생인 엄마보다 넷째인 작은이모와 어울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삼촌의 학업만 전적으로 지원했을 때 엄마는 부당함과 질투를 느꼈지만 작은이모는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하나도 나누지 않으려는 삼촌과 그런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엄마는 자주 치고받으며 싸웠고, 막내 이모는 엄마 곁에 붙은 채 조용조용 맞는 말만 하더라고, 엄마는 말했다. 성격이 급하고 주도적인 엄마와 순하지만 심지가 곧은 막내 이모는 잘 맞는 한 쌍이었으며 늘 서로 붙어 지냈다. 우리 경미가 말이야.어렸을 때부터 참 예뻤어. 키크고, 똑똑하고.난 경미가 커서 뭐라도 될 줄 알았지.엄마와 막내 이모는 고향인 강원도 원주를 함께 떠났다. 결혼하고 나서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적 나는 시시때때로 막내 이모 집에 놀러 갔다. 걸어서 십 분 거리였다. 다세대 주택인 우리 집과 달리 막내 이모 집은 아파트라서 단지 내에 놀이터가 있어 좋았다. 놀이터에서 한호와 놀다가 해가 지기 전에 막내 이모 집, 그러니까 한호의 집에 올라가 시간을 보냈다. 책, 장난감, 비디오, 카메라, 피아노, 베란다, 작은 화분들. 나는 그 모든 것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었다. 자유롭게 한호의 집을 오갔던 나는 한호의 옷이나 물건조차 내 것처럼 썼는데, 그걸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으므로-심지어 한호도 별말 없이 양보하곤 했다-집과 집의 경계가 흐릿했다.

당시 엄마와 아빠는 동네에서 작은 고깃집을 하고 있었다. 원주에서 만나 서울로 이사한 부모님은 가게를 차려 일했다. 아이는 일찍부터 원했으나 수년이 지난 뒤에야 늦둥이인 내가 나왔다. 반면 막내 이모는 스물한 살에 금속 제조회사를 다니는 이모부를 만나 첫째인 사촌오빠를 낳았고, 7년 뒤 둘째를 임신했는데 그게 한호였다. 같은 해 같은 병원에서 한호는 4월, 나는 11월에 태어났다.

엄마와 막내 이모의 사이가 유달랐던 만큼 나와 한호가 가까이 지낸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동갑내기 사촌이자, 태어나자마자 처음 사귄 친구였으니까. 같은 유치원에 다녔으며 공원에서 함께 세발자전거를 배웠다. 모르는 어른들이 둘이 남매니, 하고 물어 오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한호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나는 엄마보단 아빠를 더 닮았고 한호는 이모를 닮아 외모가 수려했다. 아동복 모델로 잡지에 실리기도 했던 한호는 아역 배우로도 두어 번 티브이에 나왔는데 어린 나는 그게 부러워서 며칠은 괜한 심술을 부렸다. 슈퍼에 갔다가 한호를 두고 혼자 이모 집으로 돌아온다거나 한호가 부를 때 못 본 척하는 식으로. 그래도 우리는 나름 비슷한 점이 있어서 꽤 오랜 시간 붙어 다녔다. 둘이 같이 있으면 실현 가능성 없는 상상이나 생뚱맞은 얘기를 종종 떠들곤 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있지, 사람보다 큰 모기를 잡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해.

죽은 할아버지가 집에 오면 어디에 숨겨 주지.

식탁보 밑에 있다가 사과가 되어 버렸어. 아무도 날 못 알아봤다니까.

그날 밤 꾼 꿈들에 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귀가하는 길에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한호의 작은 방에서. 말도 안 된다며 무시하는 일 없이, 때로는 심각하게 골몰했다. 그런 얘기는 한호와 하는 게 가장 재밌었다.

내가 부모님의 고향인 원주로 이사한 것은 열여섯 살 때였다. 부모님은 원주행을 단번에 결심하진 않았는데 그때까지 우리 가족은 망우동 안에서 세 번 이사했다. 고깃집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결국 원주로 갔고, 그렇게 한호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가끔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명절이나 모임이 있을 때 무람없이 함께 노는 정도였다. 한호가 군대에 갈 즈음엔 이모네 가족도 망우동을 떠났다고 들었다. 그리고 오 년 전 막내 이모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을 때, 나는 한호 곁에서 내내 장례식장을 지켰다. 한호의 마른 얼굴은 자주 일그러졌고 엄마는 울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막내 이모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나는 이모의 가장 오래전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부모님이 맞벌이였기에 나는 어릴 때부터 막내 이모 집에 수시로 맡겨지곤 했다. 이모부는 일 때문에 집에 없는 경우가 많았고 이모는 전업주부였다. 초등학생 아들과 이제 걸음마와 말을 시작하는 두 아이의 육아를 동시에 하는 건 몹시 힘들었을 텐데 내 기억 속 이모는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럴 수 있나. 슬퍼하지도 화내지도 않을 수 있나.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던 막내 이모의 너그러운 얼굴만 떠오른다. 그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견고해서 오히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어느덧 서른두 살이 되었고 그때쯤 막내 이모의 나이도 그 정도 되었을 것이다. 어쩌다 불쑥 막내 이모가 떠오르면 나는 기어이 괴로운 심정이 되었다.

3

용마산 근처에서 한호를 다시 만난 건 나흘 뒤였다. 우리가 만난 다음 날 한호는 파일들을 메일로 보냈다. 나는 퇴근한 뒤 집으로 돌아와 메일을 훑어보다가 한호에게 연락해 휴무일로 약속을 잡았다. 구로 쪽에서 자취 중인 한호는 기어코 내 쪽으로 온다고 했다. 그건 다행이었다. 새벽잠을 설치느라 약속 시간에 늦을 뻔했으니까.

“뭐 하고 살았던 거야?”

우리는 샤브샤브 가게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하얀 육수가 끓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첫 질문을 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구체적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한호는 민망한 듯이 웃었다. 웃지 말라고 하자 사과하며 몸을 꼼지락거렸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한호가 탄원서를 부탁한 것부터, 아니 대뜸 찾아온 것부터 수상했다고 생각했다. 메일은 더 놀라웠다.

나리야 바쁠텐데 도와주어서 고마워. 이게 올해초에 접수된건데 이번에 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됐거든. 변호사도 구해서 해결해보려고 했는데 무혐의받는게 힘들거같대. 그래서 내가 탄원서를 써야한대. 변호사님은 내가 검사님의 감성을 울려야한대. 얼마나 힘들고 억울한지 얼마나 많이 사죄하는지 쓰래. 근데 머리로 정리가 안돼. 너무 막막하네. 사건은 내가 설명하는거보다 너가 보는게 나을거 같아서 변호사 의견서랑 다같이 파일에 넣었어.



나는 첨부된 통화 내역과 카톡 캡처 사진, 26페이지에 달하는 변호인 의견서를 읽었다. 상황은 내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사 건 사기,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피의자 임한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피해자에게 아들로 사칭한 누군가가 휴대폰 구매를 핑계로 피해자의 신분증과 신용카드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같은 날 여섯 번에 걸쳐 피해자의 통장에서 762만 원이 빠져나갔다. 그 돈은 한호의 통장으로 들어왔고 현금으로 출금되었다. 통장이 한호의 명의였을 뿐 그건 한호가 한 일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대출을 받기 위해 자신의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여기서 한호가 “타인이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용인한 행위”와 “기대이익을 받을 것을 약속”한 것을 범죄로 판단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호가 그전에도 이미 대출금이 있었다는 것, 신용 등급이 낮아서 여러 대출 상담을 알아봤다는 것, 그러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거기서 지금보다 훨씬 낮은 이자로 대출해 주겠다고 하는 말을 믿었다는 것, 사기꾼에게 혹시 사기가 아니냐고 묻고는 아니라는 말을 믿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자신을 팀장으로 소개한 사기꾼은 긴급대출이 가능하니 빠른 심사를 위해 보증금이 필요하다고 했고, 한호가 돈을 보내기 어렵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영업 실적을 위해 한호의 계좌로 돈을 입금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돈을 고객님이 인출할 수도 있으니 체크카드를 보내야 한다고도 했다. 대출금은 다른 주요 통장으로 입금된다는 말에, 한호는 퀵으로 체크카드를 전달했다. 이틀 뒤 대출팀과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되게 한심하지.”

한호는 아까부터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걸 속아?”

“하하, 그러게.”

“대출은 왜 받은 건데?”

“필요하니까 받았지.”

“왜? 너 돈 있잖아.”

“아빠가 있는 거지.”

내가 아는 한호는 경제적으로 딱히 부족함이 없는 애였다. 크게 넉넉하진 않아도 괜찮게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한호는 자꾸만 내 질문을 어물쩍 넘기고 있었다.

“나리야, 돈 걱정은 안 해도 돼. 탄원서만 도와줘.”

나는 조금씩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돈 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속 편한 말도, 본인이 써야 할 글을 대신 부탁하는 입장이면서 세세한 사정은 말해 주지 않으려는 것도, 심각한 건 나뿐이고 정작 본인은 웃고 있는 것도, 어쩌면 이해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들조차 모조리 무색해질 정도로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호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수습하듯 말했다. 나 내일은 충북 가. 야유회 잡혔거든. 진짜 돈은 걱정하지 마. 최대한 일정 찾아서 잡고 있고 그래도 일이 없을 땐 차로 배달도 해.

“근데 너, 그만 좀 웃으라니까.”

나는 한호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아, 응.”

“그건 여전하구나.”

“안 그래도 변호사님한테 한소리 들었거든.”

변호사는 한호에게 물었다고 했다. 힘든 상황이라면서 왜 자꾸 웃냐고,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심정이 제대로 전달되겠냐고, 경찰서에서도 그랬느냐고. 뭐든지 태도가 중요합니다. 변호사는 일렀다고 했다. 나는 한호가 습관적으로 웃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힘들면 힘들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도.

나는 아주 나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아.

언젠가 한호가 했던 말을 요즘 들어 나는 자주 곱씹는다.

본래 웃음이 많은 한호는 웃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자주 웃었다. 그건 꽤 고질적인 문제였는데, 한호는 당황하거나 곤혹스러울 때 웃곤 했다. 슬픈 얘기를 하면서도 웃음을 흘리고 진지한 상황에서도 웃었다. 깜짝 놀래켜도 웃었고 심지어 상대방과 아무 말 하지 않을 때도 웃고 있다. 웃지 않아야 할 때 웃으니 이건 나쁜 숨이야. 내 몸 안에 나쁨들이 가득 차서 아무 때나 휙휙 나오는 거야. 한호는 말했다. 병원에도 가봤는데 원인이 마땅히 없다고 들었다 했다. 나는 그게 한호가 자신이 마주한 상황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사촌오빠한테 맞아도 웃었으니까. 아니, 울면 더 맞아서였나.

“그래서 생각해 본 게 이거야.”

한호가 재킷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볼펜이었다. 나는 입에 넣은 알배추를 씹으면서 인덕션 전원을 껐다. 벌써 국물이 졸아들어 있었다.

“이렇게 버튼이 눌린 상태로 주머니 안에 있어. 그리고 잘 봐. 볼펜을 쥐고 손가락을 찌르고 있으면 웃음이 잘 안 나와. 손톱으로 찌르는 거랑 달라. 그냥 찌르고 있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누르면, 진심으로 눌러야 이게 진짜 아프거든. 내가 찌르고 내가 아픈 거라 여기에만 집중될 수밖에 없어. 웃어선 안 될 때 주머니 안에서 몰래 계속 찌르고 있는 거야. 웃음은 나보다 앞서 있으니까 미리 찌르고 있는 거지. 몇 번 해 봤는데 효과가 있어.”

그제야 나는 한호의 엄지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엄지에는 피딱지가 생긴 작은 점이 있었다.

4

결국 일주일 안에 탄원서를 써보겠다고 했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일이 바빠져서였다. 열흘간 빅세일이었고 휴무는 하루밖에 없었다. 바쁜 만큼 시간은 뭉텅뭉텅 사라졌다. 포장지, 기프티콘, 립스틱, 팩, 향수, 염색약, 비타민. 정신을 차려 보면 깜깜한 밤이었다. 노을을 봤으려나. 매장 유리창 너머 밤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개를 보면서 생각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마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예영 씨가 말을 걸었다. 예영 씨는 올 초 이곳 매장에 발령 나와 알게 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스물여덟인 예영 씨는 특유의 붙임성으로 나뿐만 아니라 이십 대 초반의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했다. 매장 사람들은 대개 밝은 편이었다. 그래도 바쁠 땐 다들 지친 게 보이는데 예영 씨는 유독 그렇지 않아 내심 신기해하곤 했다.

아마 예영 씨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계산을 받다가 한 손님이 내게 기분 나쁜 일이 있느냐며 불쑥 소리쳤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연신 사과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내 표정이 어땠는지 몰랐다. 예영 씨에게는 괜찮다고 대꾸했다.

“제 표정이 원래 이래요.”

원래 이렇진 않았을 테지만 그렇게 말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 일이 다시 생각났다.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듣자 도리어 신경이 쓰였다. 어두컴컴한 골목을 걷다 문득 흣, 하고 웃어 보았다. 영 웃음 같지 않았다. 다시금소리내어히히, 하고 웃어보았다. 약간 얍삽한 것 같았다.

더 크고 자연스럽게 웃고 싶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나는 날 웃길 만한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만약...... 아까 그 손님이 요즘 유행하는 챌린지를 추면 어떨까. 놀라울 만큼 수준급의 실력이라면? 나도 옆에서 같이 춤을 추고 예영 씨가 웃으면서 영상을 찍는다면? 거기까지 상상하자 좀 웃겼다. 그러나 웃음이 터질 정도는 아니어서 막상 크게 소리 내어 웃는 데에는 별도의 용기가 필요했다.

으하하, 하고 웃어 보았다.

허하흐하하! 하고 웃어 보았다.

순간 인기척이 났다. 뒤를 돌아보자 골목 가운데 비닐봉지를 든 아저씨가 서 있었다. 뭐야, 무섭잖아요. 아저씨는 나를 피해 걸음을 계속했다. 누군가를 무섭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그러고 말았다.


나리야, 웃으면 복이 와.

한호는 말 했었다.사실 나쁜 숨 얘기는 이십대 후반쯤에 딱 한 번이었고, 웃으면 복이 온다는 그 흔한 말은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처럼 했다. 중학생 때 어느날, 수업이끝나고귀가하는길에 나는 한호가 서너 명의 친구들과 앞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한호는 그들 가운데서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구기고 있었다. 콧잔등을 구기고 혀를 내밀면서. 그럼 옆에 있는 애들이 크게 웃었다. 한호의 반듯한 얼굴이 못나질수록 더 크게 웃었고, 이내 한호도 웃었다. 아파트 앞에서 나는 한호에게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다. 뭐를? 아, 이거? 한호는 또다시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웃기지!

하나도 안 웃긴데.

그래? 애들은 웃기다고 좋아하던데.

진짜 안 웃겨. 그런 거에 웃는 애들이랑 놀지 마.

에이, 뭐 어때. 웃으면 복이 오잖아.

한호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한호가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모로 어울리는 직업을 갖게 됐다고 생각했다. 한호는 방송과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부가 오래 몸담은 회사에 들어갔었는데, 막내 이모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뒤 이모부가 재혼하자 회사를 관두고 얼마간 방황했다. 그때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나는 한호와 연락이 뜸했지만 엄마는 주기적으로 전화하는 모양이었다. 건설업체에서 일하는 사촌오빠가 해외 출장을 자주 간다는 근황도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한호한테 연락 좀 해. 걔가 힘든 티는 절대 안 내니까 더 걱정이다야. 네가 잘 챙겨줘. 그건 엄마가 내게 한 부탁이었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널브러져 카톡에 들어갔다. 엄마는 지금 한호의 상황을 모르고 있겠지. 엄마와 연락한 지도 보름이 넘었다. 엄마의 프로필은 바깥에서 찍은 가게 사진이었다. 부모님은 원주에서 계속 고깃집을 운영했다. 가게 지붕에는 ‘40년 된 가게’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그건 맞는 말 같기도 거짓말 같기도 했다. 지역과 모양새와 상호가 바뀌었어도 한결같이 고기를 팔았으니까. 가게 손님은 근근이 있었고 엄마는 연락할 때마다 짧게라도 매출 얘기를 덧붙였다.

카톡을 나와 유튜브를 켰다. 쇼츠 영상들을 보다가 옛날 드라마를 틀어 놓았다. 서른셋 여자주인공의 삶을 그린 명랑 드라마였다. 한참을 멍하니 보는데 갑자기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독한 기침을 뱉듯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기분이었다. 속이 까맣게 썩은 느낌, 그래서 속이 아팠다.

나는 아주 나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아.

휴대폰 화면에서 주인공이 도로를 뛰고 있었다.

국문과를 나왔지만 드라마를 좋아해서 졸업 후 나는 시나리오를 썼다. 아카데미에도 다녔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렸지만. 돈은 계속 필요했고 글은 써지지 않았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하던 매장직 취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마음이 자꾸 오그라졌다. 매출 성과의 압박. 부모님의 생활비. 모이지 않는 돈. 하지만 가장 지긋지긋한 건 감춰지지 않는 자격지심과 이곳저곳 요철이 생긴 지금 내 모습이었다.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 친구들의 연락도 점차 받지 않게 되었다. 습기가 높은 방의 벽지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우는 것처럼, 왜일까 나는 갈수록 나빠지는 듯했고......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휴대폰 화면을 끈 뒤 구김진 벽지를 손바닥으로 눌러 보았다. 마른 낙엽처럼 버석거리는 소리가 났다.

5

이따금 한호와 통화를 했다. 세일 기간이 끝나면서 시간은 여유로워졌다. 바쁘다며 탄원서를 쓰지 않은 건 핑계에 가까웠고 한호도 눈치채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한호는 갑자기 부탁한 거니 괜찮다고 말했다. 제출까지는 보름 정도 남았다. 탄원서를 적다 말고 전화를 걸면 한호는 포항에 있기도 하고 가평에 있기도 하고 서울에 있기도 했다. 가끔은 산에도 있었다. 네가 산을 좋아했었나? 내가 묻자 가을 산이 절경이잖아, 단풍 다 떨어지기 전에 한국에 산이 얼마나 많은지 실험해 보고 있어, 하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중간에 연락이 안 된 적도 있었다. 전화도 안 받고 카톡을 읽지 않아서 나는 한호가 산을 타고 있나, 생각했다. 다음 날 등산복을 입은 중년 손님들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그런데 매번 혼자 오르는 건가. 연락이 안 된 지 사흘째 된 날에는 문득 걱정이 들었다. 이제 산에서 내려올 때가 됐는데, 그런 생각을 했고 한호는 다음 날 오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락해 왔다. 10월 말이 되자 거리의 나무들도 빨갛고 노랗게 물들었다.

그동안 나는 2페이지 분량의 탄원서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탄원서 작성 방법도 여러 번 검색해 보았다.

진실만을 기재해야 한다.

실은, 한호를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과 한호가 무혐의를 받기 위해 거짓말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의심이 계속 충돌하고 있었다. 어쨌든 한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얻은 이익”이 있으니까. 오십만 원 남짓한 돈이었다. 사기꾼 팀장과 연락이 끊기기 전날 한호의 다른 통장에 돈이 정말 입금되었고-그 돈은 한호가 원한 금액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팀장은 다음 날 나머지 금액이 들어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이건 편법이니까요. 편법은 합법도 불법도 아니라고, 당신의 신용 등급이 낮아 일반적인 대출이 불가능해서 다른 방법으로 진행해 주는 거라고, 문제 될 일 없으니 안심하라고.

한호는, 그러니까 한호의 말에 의하면, 그때까진 팀장과 계속 연락이 닿았고 돈이 조금이라도 들어왔으며 자신이 모르는 시스템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다. 들어온 돈은 즉시 밀린 이자를 갚는 데에 썼다. 그것으로 무혐의를 입증하는 게 더 어려워질 줄도 모르고. 그런데 사기꾼은 돈을 왜 보낸 걸까? 다음 작업을 하려고? 혹시...... 한호가 돈이 급해서 공범이 된 거였다면. 한호가 쓴 것처럼 탄원서를 적어야 할 텐데 나는 한호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왜 나한테 이 일을 부탁했지. 한호는 날 믿기 때문이라고 했으나 역시 진실을 알 길은 없었다.

“너 근데 정말 모르고 카드 건넨 거 맞아?”

- 응, 정말이야.

하지만 어쨌든...... 그 말을 믿어야 했다. 이거 꼭, 한호가 사기꾼에게 사기 아니냐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야 쓸 수 있으니까. “지금 대출이랑 이자가 어느 정도인데?”

- 어...... 그거까지 적어야 해?

“그래야 사정을 호소할 거 아냐.”

한호는 용마산에 두세 번 찾아와 밥이나 커피를 마셨다. 그러면서 나는 몰랐던 사정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한호가 이모부 회사에서 일할 적에 친구가 사업을 한다며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사업자 대출이 나오면 금방 갚는다는 부탁을 한호는 거절하지 못했다. 마침 직장에 다니고 있어 대출을 해서 친구에게 입금했다. 그 말까지 하고 한호는 고개를 숙였다. 근데 잠수 타서 못 받았어. 한호는 그렇게 최악의 길로 빠지게 된다. 이자 갚는 게 무리가 되자 카드에서 카드로 막았던 것이다. 빚은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는 액수로 늘어났다. 이모부에게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 했다.

“그러다 다른 피해자도 생긴 거지.”

“널 고소한 사람?”

“762만 원은 찾지 못한대. 잡기가 어려워서. 아니, 나를 잡았지만 난 돌려줄 수가 없으니까.” 한호는 전보다 수척해 보였다. 말을 하는 중간중간 얼굴을 어색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한호의 오른팔을 흘끔 보게 되었다. 커피잔이 놓인 테이블 아래, 점퍼 주머니 안에 숨겨진 손을 생각했다. 한호가 지금의 나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나도 한호에 대해 많은 걸 모르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잘 웃던 아이는 주머니 속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래전 양보를 잘하던 아이가 시간이 흘러 친구에게 대출까지 해서 돈을 빌려주는 어른이 되었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지?

마지막으로 한호를 봤던 이 년 전을 떠올렸다. 그날 한호는 주차장 마당에서 내 쪽을 등지고 걷고 있었다. 몇 분 동안 비슷한 자리를 느리게 배회하는 중이었다. 추석 연휴였고, 어느 한식집에서 우리 부모님과 한호가 같이 모인 날이었다. 나는 가게 밖으로 나와 차양 밑 벤치에서 소화되지 않는 배를 문지르다 물었다. 야, 뭐해. 한호는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이어 나갔다. 한참 뒤에야 몸을 돌려 이렇게 말했다.

나리야, 웃으면 슬픔이 온다.

그때 한호가 웃었는지 울었는지, 아니면 다른 표정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모자이크된 것처럼 흐릿하다. 너무나 평범한 한호의 얼굴, 이었다고 유추할 뿐이다. 그렇다면 한호는 웃고 있었을까?

뭐래.

나는 그렇게 대꾸했다.

한호에게 묻지 않았다. 무엇이 널 슬프게 하냐고. 한호의 슬픔까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복이 아닌 다른 것이 왔다는데 그게 슬픔이라는데, 그때 나는 그저 상황을 넘겼다.

맞은편에 앉아 고개 숙인 한호를 이해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고,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6

“저번엔 말이죠. 어마어마한 우승 상품이 걸려 있었거든요. 음, 얼마나 어마어마하냐면, 이건 좀 말버릇 같은 건데요. 사실 별로 어마어마하지 않을 때도 그렇게 말하는 거죠. 매우 놀라운! 아주 기대되는! 일하다 보니 그런 말을 자주 써요, 하하하. 상품은 백만 원이었어요.”

“그건 상금 아니에요?”

예영 씨가 재미있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면 상품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죠! 라고 받아칩니다.”

한호와 예영 씨, 그리고 나는 건대입구 술집에 앉아 있었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일주일 전 나는 한호에게 탄원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한호는 변호사에게 전했더니 한번 제출해 보자는 답을 들었다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다 밥을 사겠다고 해서 날을 잡았다. 너 생일 때 만나는 거 오랜만이다. 한호는 말했다. 11월이었다. 예영 씨 역시 카톡에 ‘다가오는 생일’ 알람을 보고는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나는 쉬는 날 이틀을 연속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생일 당일은 혼자 드라마나 보며 쉴 생각으로 전날에 약속을 나눠 잡았다. 그날 매장 오픈조인 예영 씨를 저녁에 만나고 한호와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두 약속 사이에 시간 텀이 있어 겹칠 일은 물론 없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호는 뒤에 약속이 있다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아쉽다, 좀만 더 얘기하면 안돼? 오늘 내가 사고 싶어. 약속 전에 진짜 갈게.”-밥을 먹은 뒤 카페로 이끌다시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한 예영 씨에게서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한호는 그제야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한호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예영 씨의 조합으로, 마침내 한호가 몸을 일으켰을 때 예영 씨가 카페에 도착한 것이다. 내가 당황하면서 한호를 인사시키자 예영 씨는 말간 얼굴로 같이 놀자고 제안했다. 생일파티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잖아요. 그렇게 우리는 작은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감바스와 어묵탕과 감자튀김처럼.

“백만 원은 장기 자랑 1등이 가져가는 거였어요. 투표지 걷고 발표하기 전에 참가자들에게 상품을 타면 뭘 하고 싶냐고 물었죠. 애플워치, 캣타워, 여행, 주식, 뭐 그런 대답들이 나왔어요. 그중 한 분은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고 했죠.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이 으어어- 하면서 슬픈 소리를 내는 거예요. 전 속으로 엄청 당황했고요. 그때 갑자기 고위직으로 보이는 사람이 ‘괜찮아! 앞으론 떵떵거리며 살게 해 줄게!’라며 외치는 겁니다. 하하, 그 말에 다들 빵 터졌어요.”

“너무 감동적인데요.” 예영 씨가 웃었다.

“떵떵거리려면 월급을 엄청 많이 줘야 할 텐데.” 나는 말했다. “그러지 않을 텐데.”

“하하, 그건 그래.”

“그치만 마음에도 없는 말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하하, 그것도 그렇죠.”

“그럼 마음이 있는 말인 거네요.” 내가 말했다.

“하하, 근데 여러분, 1등은 다른 사람이 했답니다.”

유리창 바깥이 어둑해졌다. 거듭 맥주를 마시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예영 씨가 가져온 생크림 케이크에 초를 꽂았고 한호가 건넨 영양제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한호는 최근에 본 모습 중 가장 들떠 있었는데, 그건 내가 원래 알던 모습이기도 했다. 힘없이 움츠러든 모습이 아니라. 한호와 예영 씨, 두 사람은 잘 통했다. 한호는 분위기를 띄우려 했고 예영 씨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성심껏 반응했다. 그러면 한호는 들떠서 또 이야기를 늘어놓고......의 반복이었다. 예영 씨는 우리가 동갑내기 사촌이라는 점과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사실을 신기해했다.

“어릴 때부터 나리가 되게 든든했거든요.”

“오, 그랬을 것 같아요.”

“몇 년 전에는 저한테 큰일이 있었는데요. 그때도 나리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그랬죠. 사실 그땐 정신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중에는 나리가 어질러진 바닥을 치우는 모습도 있어요. 뭔가 태연하게, 음, 꿋꿋해 보였다고 해야 하나, 하하. 아, 누가 너무 취해서 음식이 든 접시들을 엎었거든요. 나리가 말없이 그걸 정리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겠는데 기억에 남더라고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한호의 말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아 말리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술기운이 올라 몽롱해지는 중이었다. 얼마간 놓쳐 버린 잠들도 밀려오고 있었다. 목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렸고 한호의 얼굴이, 옛날 막내 이모와 몹시 닮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한호는 예영 씨와 얘기하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귀가 멍해져도 웃음소리는 잘 들리는구나. 나는 눈을 끔뻑이며 생각했다. 웃어야 할 때 웃는 건 좋은 숨인가. 웃음은 숨. 숨은 나쁨. 나쁨은...... 슬픔. 지금의 상황 역시 잘못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눈앞이 캄캄합니다. 불현듯 내가 쓴 탄원서 문장이 떠올랐다. 내가 적은 한호의 마음, 동시에 한호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쓴 가장 흔하면서도 솔직한 문장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탄원서는 과연 효력이 있을까. 한호는 이제 어떻게 되려나.

얼마 뒤에는 흐릿한 의식 사이로, 취기가 오른 예영 씨가 풀어놓는 고백이 조금씩 들렸다. 너무 힘들었죠. 코로나 터지면서 채용은 닫히고 어느 순간 이십 대 후반이 됐는데 막상 채용이 풀리니까 다들 곧 막바지 아니냐고 그러네요. 예영 씨가 승무원을 준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처음 듣는 얘기였다. 말을 잇는 예영 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뭔가 얘기하고 싶었는데, 고개가 꾸벅이는 와중이라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야 예영 씨, 희망을 가져 보는 게...... 잠시 후 예영 씨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도 알아, 아는데 그게 잘 안 돼요.”

7

술이 어느 정도 깬 예영 씨는 내일도 오픈조라 일찍 집에 가 봐야 한다고 했다. 일찍이라 하기엔 어느새 새벽 두 시여서 나는 예영 씨를 택시에 태워 보냈다. 나는 두 사람보다 일찍 취하고 일찍 술이 깼다. 반면 한호는 뒤늦게 술이 올라서 자꾸 산에 가겠다며 주정을 부렸다. 야, 임한호. 정신 차려. 한호야, 산이 아니라 집에 가야지. 나는 화를 냈다가 달랬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나 술에 취한 사람을 제지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아닌데, 나 산에 가고 싶은데. 한호가 연신 중얼거렸고, 나는 지금 시간에 이 상태로 가면 너 죽을지도 몰라, 아니, 죽어 진짜, 라고 했다.

“죽으면 뭐 어때.”

그 목소리와 어조 때문에 나는 잠깐 몸이 굳었다. 야, 죽긴 누가 죽어. 술 깨고 빨리 집에나 가. 아무렇지 않은 척 팔을 끌어당겼지만 한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 주소 정확히 어디야. 한호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 집에 가자. 한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흐흐 웃었고, 순간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너 진짜 싫어. 짜증 나.”

“미안해.”

한호는 비틀대며 내 옆에 앉다가 뒤로 엉덩이가 빠졌다. 그러고는 길바닥에서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 숨소리를 나는 잠자코 들었다. 새벽 거리를 걷는 몇몇 사람이 한호와 나를 흘긋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바로 앞에 한호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볼펜이 보였다.

나는 그걸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8

우리는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 해장국을 먹었다. 길바닥에 앉아 있다가 한참 뒤 고개를 든 한호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배고파했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고 보니 바깥은 어슴푸레한 새벽이 되었다.

해장국을 먹고 나왔을 때 산행을 하자고 한 사람은 나였다. 너, 산에 가고 싶다며. 같이 가자. 나는 생일 기념으로 치기로 했다. 건대에서는 용마산보다 아차산이 더 가까웠기에 아차산에서 연결된 용마산으로 넘어가 하산하는 계획을 세웠다. 한호와 나는 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까지도 가려면 한 시간은 걸어야 했다. 주변은 아직 어둑했고 운이 좋으면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낙엽들을 밟거나 헤치며 오래 걸었다. 초등학교와 전봇대를 지나니 등산로 입구가 나왔다. 안으로 몇 미터 들어서자 관리사무소 앞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입산 금지 안내. 산불조심기간 중 3주간. 11월 10일 ~ 12월 1일.

산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노란 안전띠가 걸려 있었다. 다른 샛길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못 들어간다니.”

“어떡하지.”

안전띠 가까이 다가섰다. 너머로 보이는 산 안쪽은 한층 어두웠다. 고요한 나무들. 위에 아무도 없고 또 오르는 사람이 없다는 걸 느끼게 하는 적막. 우리는 그대로 안전띠 바깥에 서 있다가 결국 몸을 틀어 관리사무소 앞 벤치에 앉았다. 잠시 후 한호가 입을 열었다.

“근데 예영이는 되게 좋은 사람 같아.”

“언제부터 예영 씨가 예영이 됐어?”

“아까 우리 말 놨는데, 하하.”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내 주변 사람이랑 연애할 생각은 하지 마.”

“그런 거 아닌데.”

“예영 씨는 잘 들어갔다고 연락 왔어.”

“응. 예영이가 뭐든 잘 됐으면 좋겠다.”

“그래, 맞아.”

한호는 고개를 숙인 채 신발 뒤꿈치로 바닥을 툭툭 쳤다. 바짓단에 붙어 있던 작은 낙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다른 말을 꺼냈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체력이 바닥난 것 같다고, 넌 어떻게 산을 자주 오르냐고.

“하하, 나도 원래 안 이랬어.”

한호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용마산에 올랐을 때부터였다.


이제 어쩌면 좋지.

그런 마음이 들어 카페에서 나와 이윽고 산을 타기 시작한다. 왜 산을 타는지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서 산을 탄다. 생각이 그래. 올라갈 때는 생각할 수 있어도 내려올 때는 그렇지 않다. 내려올 때는 그저 신중해야 하고 웃음이 터지지도 않는다. 심각하고 굳은 얼굴로 내려와야 한다. 이후로도 다른 산을 오르고 내려온다. 그러다 몇 번 생각한다. 여기서 굴러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되면 도무지 만회할 수 없는 것들이 떠오르고 무사히 산에서 내려온 뒤에는 허기가 지고 밥을 먹는데 역시 사람들 말처럼 산을 탄 뒤에 먹는 밥은 좋다. 하지만 밥을 먹으니 다시 곤란하고 괴로운 마음이 들고 그럼 또 미친 사람처럼 혼자 피식피식 푸스스 웃다가 볼펜으로 손가락을 진심을 다해 누른다. 이제 돌아가야 해. 돌아갈 데가 있지만 돌아갈 데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다음 산을 타야지, 하는 마음. 또다시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동안에는 웃는 일도 웃을 일도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는 일도 없다. 다만 점차 숨이 차오른다. 숨을 뱉어야 한다. 의식해서 숨을 뱉어야 한다. 숨을 뱉고 웃음을 참고 다시 숨이 차오르고 숨을 뱉는다. 그런데 불쑥 이런 생각이 들어. 왜 웃으면 안 되지. 그 생각이 처음으로 괜찮다.


“하하, 이번에도 개연성이 없나?”

아니. 나는 이해했다. 어떻게 이해하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생각보다 한순간에 밝아졌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빨갛고 노랗고 초록빛인 산의 색감이 더욱 짙어 보였다. 나무는 가을의 어느 순간에 이렇게 변하는 걸까.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무는 자연이니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한 챕터가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순간과 비슷하게. 그 순간이 어떤 식으로 넘어가는지, 어떻게 자연이 자연스러운지 나는 궁금해졌다.

“나 방금 소름 돋았어.” 한호가 말했다.

“왜?”

“지금 이 상황이 익숙한데. 나 본 것 같아. 데자뷔야, 데자뷔.”

한호는 우리가 산을 풍경으로 앉아 긴 얘기를 한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우리가 함께 산에 온 건 오늘뿐이었으니까. 꿈이었나? 한호는 자신이 언제 그런 꿈을 꿨는지 곰곰 생각해 보는 듯했다. 그러곤 다시 말했다. 맞아, 꿈이었어.

“근데 그 꿈은 내가 꾼 게 아니야. 나리 너였어.”

“내가? 그런 적 없는데.”

“아냐. 네가 말했어.”

한호는 말을 이었다. 오래전에, 우리가 서로가 꾼 꿈에 대해 시시콜콜 얘기했던 시절에, 내가 자세하게 꿈 얘기를 해 주었다고 했다. 우린 조금 나이 든 얼굴이었어. 그게 좀 이상했어. 그렇게 내가 말했다고, 그걸 기억한다고, 그 얘기를 자신이 마치 본 것처럼 받아들인 것 같다고.

“거짓말.”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내가 거짓말한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생각했다. 나는 꿈을 몇 번 지어내곤 했다. 그게 재밌었으니까. 아무리 생뚱맞은 말을 해도 한호는 들어주고 또 웃어 주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한호의 얘기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웃어 주기로 했다. 내가 크흐흐 웃자 한호도 뭐가 웃긴지 으하하 웃었다. 그러다 난데없이 서로 웃음이 터졌다. 정말 웃음이 났다. 한참 그러고 나니 어쩐지 충분히 울어 버린 것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좋아지진 않겠지만, 나는 다시 생각했고, 그러나 내가 어떤 생각을 더 이어가기 전에 한호가 이제 슬슬 일어날까? 하고 물었다. 나무들을 거쳐 온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추천의 말: 소설의 기술, 삶의 기술

우리가 뭔가를 ‘안다’라거나 ‘이해’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그 대상을 우리의 인식 회로가 다루기에 적당한 ‘정보값’으로 바꿔 놓고 그 정보값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변환하거나 어느 쪽으로든 ‘처리’해 버리는 일이 되기 쉽다. 그런 처분을 능란하게 해낼수록 우리는 뭔가(우리 인식의 편의를 위해 정보값으로 바뀌어야 했던 바로 그 대상)를 잘 모르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있으면서도 우리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는 더욱 몰라도 되게 된다. 우리가 앎을 갈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모르는 것을 계속 모르면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감추면서 난폭한 처분의 능력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앎에 대한 추구야말로 만악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또 다른 오류에 빠져드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여러 수준의 억압과 폭력을 출발시키거나 촉진하는 쪽으로 이미 기울어져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리라. 앎은 자신 앞에 놓인 ‘존재’를 ‘처분 대상’으로 바꿔 놓고 제멋대로 다루는 것에서 다시 말해서 훼손하고 파괴하는 것에서 쾌락을 뽑아내기 때문이다.

그게 뭔지 얼른 알아차리고 식별하고 처리해 버리고 싶은 초조함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기술은, 억압과 폭력에 연루되기를 거절하는 기술, 우리의 무지와 무능력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 좀처럼 정보값으로 치환되기 어려운 기미들, 느낌들, 예감들이 우리의 생각과 표현 이곳저곳에 자리 잡게 허용해 주는 기술과도 동시적이다. 그것들에 우리의 생각과 표현들이 자극될 때, 우리는 그것들을 함부로 처리해 버리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배양하고 유포하면서 우리 자신이 그것들에 감염되기도 한다. 감염? 그러니까 우리 안의 저 깊숙하고 세세한 곳으로부터 그것들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을 ‘자기’라는 감옥에 가둬 놓지 않고 나를 다른 것들과 뒤섞어 거의 앓는 듯이 그러니까 더욱 생생하게 살아내는 기술일 것이다. 그것은 삶의 기술이지만, 소설의 기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윤수연의 「낙산(落山)」은 물론 나리가 한호를 만나는 이야기다. 어딘가 의심스럽고 한심하게 보이는 한호에게도 그 나름의 역경과 그것을 감당해 내는 한호만의 독특한 패턴과 위엄이 있음을 알아 가게 되는 이야기다. 나리가 한호의 그런 면들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 나리가 그런 것을 만나 가는 도중에 ‘진실’만을 찾으려는 나리 자신의 패턴과 마주치게 되고 ‘거짓말’을 발명하거나 선물하는 예전의 패턴과도 다시 마주치게 되고 그런 거짓말이야말로 어쩌면 진실보다 더 크고 깊은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찾아오는 이야기다. 이 모든 이야기와 주제와 가르침은 물론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나는 「낙산(落山)」이 아주 근사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근사함은 그런 이야기나 주제나 가르침에서 오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그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좀처럼 정보값으로 치환되기 어려운 기미들, 느낌들, 예감들을 풀어 놓고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이 소설의 섬세한 내러티브로부터. 완결된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한다기보다 자기가 이어가고 있는 이야기를 스스로 체험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내러티브로부터. 내러티브의 체험에 우리 독자들 또한 동참하도록 유혹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에 나리의 생각과 느낌을 우리 독자가 지켜본다기보다 나리와 함께 우리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로부터. 권희철(문학평론가, 연극원 서사창작전공 교수)

글 윤수연
요즘에는 용기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