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역사에 깔려버린 이들은 대체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나?
린다 노클린이 1971년에 발표한 논문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를 읽고 대충 이렇게 책에 휘갈겨둔 기억이 난다. 노클린은 ‘위대함’의 기준과 제도적 조건이 남성중심적으로 설정되어 왔기 때문에 여성이 ‘위대한 예술가’의 리스트에 끼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이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이 ‘위대한 여성’ 되찾기에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함’의 기준과 조건을 의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클린의 이 글이 신호탄이 되어 미술이론계에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글의 배경에는 1960~70년대 서구권의 세컨드 웨이브 페미니즘이 있다. 모든 것을 재구성하는 수단이자 그 자체로 목적인 페미니즘이 서구 사회 전반에 다시 제시되었을 때, 그곳의 예술 또한 젠더라는 변수를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한국은 2016년 전후로 미투 운동이 일었다. 이 페미니즘 리부트가 주요한 기점이 되어 예술계를 비롯한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페미니즘적 성찰이 일어났다. 역시나, “...여성 문제야말로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가설들을 탐구하는 촉매제이자 지적 도구”1였다. 페미니즘은 당연함이 된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폭력성과 정치성을 짚어내기 시작했다. 예술에 내재한 가부장주의와 남성중심주의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예술이라는 철갑을 두르고 있던 ‘명작’과 ‘고전’과 ‘천재 예술가’는 다른 시각에서 해체되기 시작한다. 2019년부터 모든 입학생이 수강하도록 필수 강의로 개설된 수업 〈예술가의 젠더연습〉은 이러한 의의 속에서 학생들이 창작과 일상 전반에서 젠더 감수성을 학습하고 평등과 인권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필수 과목인 만큼 ‘예젠’으로 줄여 부르곤 하는 이 강의의 이름을 재학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해당 강의를 개발한 예술과젠더연구소라는 이름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아무도 등교하지 않은 교실 문을 먼저 여는 느낌,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먼저 발자국을 내는 기분. 그와 비슷하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아직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새 책일 때의 미묘한 정복적 쾌감이 있다. 학교의 연구소를 다루는 기사를 쓰기로 한 뒤, 도서관에서 여러 연구소의 이름을 키워드로 검색했다. 검색 결과로 나온 많은 자료를 꺼내 훑어보았다. 길게는 20~30년 전부터 제작되어 온 연구소의 자료들은 대부분 내게 빳빳한 표지를 처음으로 넘길 수 있는 자격을 허락해 주었다. 그러나 이는 연구소들의 자료 이용률이 상당히 낮다는 사실을 줄줄이 확인했다는 데에서 오는 머쓱함으로 이어졌다.
컴퓨터음악연구소,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세계민족무용연구소... 한예종에는 다양한 연구소들이 있다. 이들은 명칭에서 엿보이는 특유한 주제의식 아래서, 예술학교 안에 조직된 연구소로서 학교 안팎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연구소들의 이름이 생소하더라도, 재학생/졸업생/교내를 산책하는 근처 주민이라면 심포지엄 개최나 저자/연구자/ 예술가의 특강 개설을 알리는 학내 곳곳의 포스터 홍보물은 익숙할 것이다. 이러한 홍보물에 명시된 주최기관명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이 다양한 연구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다.
그중 오늘 소개할 예술과젠더연구소는 “예술Arts, 페미니즘Feminisms, 프랙티스Practices”2를 세 가지의 큰 축으로 삼는다. 교내 여교수 모임으로 시작해(1998)‘여성활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학교의 공식 부설 기관이 되었고(2000), 2019년에 ’예술과젠더연구소’(이하 예젠연구소)로 이름을 바꾼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크게 연구, 교육, 참여로 나눠본 세 영역은 서로 연결되어 연구소의 활동을 구성하고, 연구소를 학교와 이어준다.
교육 영역의 연구 결과물인 강의 〈예술가의 젠더연습〉은 예젠연구소(당시 여성활동연구소)와 협업한 외부연구원들의 사전 조사와 교육 연구를 거쳐 개설되었다. 이는 수강자들이 자신의 일상생활과 창작의 순간에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학술과 현장을 연결하려는 교육적 시도다. 해당 강의를 들은 후 좀 더 깊이 있는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심화 과정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예술교양학부에 〈페미니즘 입문〉, 〈예술과 여성〉 강의가 연계되어 개설되었다. 또한, 정식 교과과정 개발뿐 아니라 “젠더 이슈와 성평등에 관심이 있거나 그와 관련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내 모든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성문화, 성인지교육, 성폭력 상담 등”3을 실시해 왔다.
1
린다 노클린,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이주은 옮김,
아트북스(2020), 22p.
2
「NW 4.5 발간준비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과젠더연구소(2018),
3p.
3
한국예술종합학교 공식홈페이지, ‘학교소개’에서 ‘조직/기구’ 섹션으로
접속하면 예술과젠더연구소를 포함한 부설기관의 소개를 읽을 수 있다.
연구 측면으로는 행동주의적인 면이 강한 ‘뉴-노멀 성평등 사전’과 문화 분야 성희롱·성폭력 예방 행동강령 개발, 학술적인 면에 무게를 두고 있는 학술 저널 「NW4.5」 발행, 한국 ‘여성 예술·교육인 디지털 아케이드’ 구축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이중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착수한 문화예술계 성평등 행동강령은 문화예술계 각 분야의 다섯 개 단체와 함께해 각각 상이한 예술 현장의 의견을 조사하고 수렴하여 예술계에서 성폭력을 방지하고 성 감수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제작되었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 활용에 내재한 혐오·차별적 폭력성을 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뉴-노멀 성평등 사전’ 또한 토론회와 실태조사를 거쳤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에는 〈예술가의 젠더연습〉에서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교재와 교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측면도 있었다.
특히, 지난 2년간 연구를 거쳐 2024년 2월 29일 온라인 공개된 ‘한국 여성 예술·교육인 디지털 아케이드’4는 한예종 여섯 개 원 중 영상원을 제외한 다섯 개 원의 퇴임 여성 교수의 활동을 정리해 모으고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사업이다. 김남윤(음악원), 최영애(연극원), 김혜식(무용원), 정정화(미술원), 양성옥(전통예술원) 5인을 여성으로서, 예술가로서, 교육인으로서 다각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해 인터뷰를 채록하고 기사와 책을 비롯한 각종 문헌을 모으고 연구한 명소희, 이예은 연구원은 인터뷰에서 이 5인이 20세기 한국에서 여성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활동하며 쌓은 수많은 “최초”의 업적들이 몇십 년 동안 간단히 묻히고 소실되어 왔음을 비판했다. 그렇게 흐릿해진 기록을 다시 찾고 다시 읽는 이 연구의 “지난한” 과정은 “그 없는 사막 같은 곳에서, 황무지에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연결, 연결”을 통해서 물어물어 자료를 모으는 일이었다.5 공적인 곳에서 밀려난 역사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사적인 역사가 필요했다. 이예은은 연구소의 편집위원, 운영위원, 교수의 제자들을 비롯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료를 십시일반 모을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라 말했다.
4
한국 여성 예술·교육인 디지털 아케이드’ 다음 링크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
https://arcade.artsandgender.kr/
5
2024.02.21에 나눈 예술과젠더연구소 명소희, 이예은 연구원과의
인터뷰에서 인용. 이후 동일한 인터뷰에서의 직접 인용은 큰따옴표로
표기하고, 각주를 생략했다
명소희는 현재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김혜식 교수가 50여 년 전 발레리나로 활동했을 시절의 흑백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과정을 이야기해주었다. 그 입수 과정인즉 김혜식 명예 교수와의 영상통화 인터뷰를 촬영하다 자택 벽에 활동기 사진이 가득 붙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미국에 있는 사진들을 어떻게 입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편집·운영위원 중 한 교수가 미국에서 지내는 제자를 떠올렸다. 그 제자에게 김혜식 명예교수의 자택에 찾아가 사진 자료를 촬영해 한국으로 전송해달라고 부탁해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물어물어, 건너 건너, 사람 사이의 끈을 다시 사용해 저 멀리에 있는 것을 이리로 가져와 모으는 것. ‘공식적이며 승인되었고 이미 자명한’ 곳으로부터 퇴출당하고 흩어진 것들을 다시 찾으려 한 연구 과정 전체를 여성적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연구소는 지난 해 12월, 아케이드 상영회 및 토크를 개최해 다섯 퇴임 교수의 제자들을 초청해 대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는 주변인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공식적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여성 예술가의 ‘영향력’이나 ‘업적’을 채워 넣고, 사제지간을 통해 여성들의 계보를 선명히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당 프로젝트가 상정하는 대상의 기준이 퇴임 교수라는 사회적으로 높은 직위와 긴 활동 경력이라는 점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이었던 ‘위대함’의 기준에 머물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예술·교육인을 아카이빙해나갈 예정이다. 다시 쓰는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응당 조명받아야 마땅한’ 여성 너머, 더 다양하고 더 이상하고 더 평범한 존재들에게로 나아갈 수 있을까?
예젠연구소의 참여 영역은 학교 일상 속에 작은 즐거움과 상호 접촉의 경험을 심어 ‘예술’과 ‘젠더’ 너머의 ‘공존’이라는 감각을 기르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예술제를 비롯한 활발한 참여 행사는 윤민지 연구조교가 연구소에 소속된 2022년부터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실무를 담당해 왔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공존과 공존재’라는 대주제에 집중하며 재학생, 행정 직원, 강의자 등 교내의 다양한 구성원이 모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공적인 운동장을 개설하고자 해 왔다고 말했다. 가령, 2022년 12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이어진 예술제 《Loving Being: 공존과 공존재》는 단발적인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해 3개월간 6개의 참여형 행사와 1번의 강연을 이끌어간 장기 행사다. 그중 〈당신에게, 동화〉는 서로를 떠올리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자 했다. 서초캠퍼스와 석관캠퍼스 본관, 별관에 책상, 공존을 주제로 하는 동화, 엽서를 비치해 두었다. 동화책을 읽고 떠오른 이에게 편지를 써 비치된 편지함에 넣으면 연구소가 그 편지를 부쳐주고, 그중 30명을 선정해 동화책을 함께 보내주었다. 2023년에는 제2회 《봄이 봄에게》를 교내 동물보호동아리 ‘마음’ 그리고 식물연구동아리 ‘풀죽지마’와 공동 기획했다. 비인간 존재에 집중하는 동아리와 함께 한 만큼, 한예종과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을 그려보고 솜사탕이나 볼펜을 받아 가는 ‘한예종 생태계 지도 만들기 행사’ 등을 통해 다양한 존재와 더불어 살기를 즐겁게 제안했다. 참여자들이 그린 모든 그림은 이후 윤민지가 몽타주 하여 손수건으로 완성했다. 석관동 캠퍼스를 오가는 독자 중 몇몇은 작년 여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본관의 예술극장 앞에 설치된 솜사탕 기계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회성으로 그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만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는 참여 행사는 높은 참여율과 적극성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교내 구성원들이 한 번쯤 직접 경험하거나 지나가며 보았을 이러한 행사들을 예젠연구소가 기획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또한 많은 행사가 서초동 캠퍼스(음악원, 무용원)보다는 석관동 캠퍼스(연극원, 영상원, 미술원, 전통예술원)에 치우쳐 있다. 이에 대해 윤민지는 서초동 캠퍼스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민 중이며, 보다 많은 이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실질적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렇듯 성실히 활동해 온 예젠연구소에도 아쉬움과 기대가 있다. 아직 아케이드 사업이 ‘위대함’의 기준을 해체하지 못했다면, 참여 행사에는 가볍고 즐거운 시혜적 이벤트를 넘어선 행동주의적 ‘참여’가 부족하다. 참여 행사는 예젠연구소의 아젠다를 선명히 경유하거나 전달하지 못할 경우 짧은 재미나 상품 받기 등 ‘힐링’으로 귀결될 소지가 있다. 아케이드는 ‘기록될 만한’ 여성의 범주를 해체하는 아카이빙을 향해 나아가기를, 그리고 참여 행사는 캠퍼스 안에서 바깥으로, 이내는 교내 구성원에서 교외의 이들까지 함께하는 행사를 기대해본다. “공존과 공존재”를 위해.
예술과젠더연구소의 소개는 끝. 이제부터는 나의 소회다. 얇은 비가 내리는 쌀쌀한 수요일 오전, 예술정보관 M213호에 찾아갔다. ‘예술과젠더연구소’라 쓰인 현판을 확인한 후 들어서자, 내 방과 비슷한 크기의 공간에 배치된 업무 공간과 간소한 책상, 의자, 자료집이 꽂힌 책장 정도가 날 맞았다. 의자가 부족해 업무 책상에서 의자를 하나 끌어오고 책상을 돌려 인터뷰하기 좋게 즉석에서 공간을 개조하면서 인사와 명함을 나눴다. 모두가 자리에 앉기도 전, 그러니까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의 어색한 시간을 무슨 문장으로라도 채우려고 나는 이예은, 명소희 연구원에게 우리 매거진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기대하지 않고 던진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자료 조사를 하다가 매거진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일었던 반가운 놀라움은 이내 은근히 무거운 책임감으로 이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대외협력과가 발행하는 계간지, 인지도가 높지는 않은 공적 매체인 〈K-Arts〉 매거진이 하나의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면, 내게 주어진 지면이 역사에 깔려버린 이들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는, 빼쪽 튀어나온 조그만 책갈피가 될 수 있다면, 하는 소망까지도.
이미 역사에 깔려버린 이들을 어떻게 어떻게 다시 되찾을 수 있나? 여성, 노동자, 청년 등을 배제하고 쌓이는 ‘역사’는 두껍고 무겁게 쌓인 몇백 년의 긴 시간만은 아니다. 한 번의 새로고침 속에서 저 멀리로 쓸려내려 가버리고 후속 보도는 기대할 수 없는 어제의 뉴스 기사를 보고 있자면 알 수 있다. 즉, ‘역사’에 걸러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일주일, 하루, 한 시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어떤 것들을 배제하고 선별하는 역사라는 것에는 시간뿐만 아니라 무엇을 무시하고 무엇에 주목할지 결정하는 사회의 지배적 권력과 제도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예술과젠더연구소는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시점까지 여러 요인으로 인해 공식 홈페이지가 개설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연구소에 소속되지 않은 외부인이 그간 연구소가 쌓아온 역사를 찾고 정리하기가 까다롭다.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에도 충분히 가시화되고 기록되지 않아 혼자서는 연구소에 대한 자료 조사가 어려웠다. 이 원고는 나의 ‘서치력’이 아니라 취재 인터뷰에 응하고 자료집을 건네준 명소희 연구원, 윤민지 연구조교, 이예은 연구원의 경험, 기억, 말에 빚을 지고 있다. 인터뷰 도중 이예은, 명소희 연구원은 자신들이 사실 디지털아케이드 사업이 완료되는 2024년 2월까지 근무한다며, 근무 기간이 끝나기 전에 취재되어 잘 됐다고 말했다. 사업에 따라 종료되는 계약 기간과 계약이 끝나면 교체되는 인력 구조에서, 이름이 이어지고 기억되기보다는 잊혀지기 쉽게 만드는 냉철한 ‘공식적 논리’가 엿보였다. 그렇다면 책갈피를 끼워 본다. ‘예술과젠더연구소’라는 명사 너머의 이름들, 명소희, 윤민지, 이예은, 그리고 1년 6개월간 아케이드 사업에 함께했던 김고은 연구원의 흔적을 지면 위에 작게나마 고정시켜 본다.
글 김선진
작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줄리아 브라이언 윌슨의 『미술노동자』.
올해 처음으로 읽은 책은 나오미 클라인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