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처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지도는 아마 사회과 부도였을 것이다. 남다른 크기와 무게감, 빳빳한 종이와 다채로운 색감은 어슴푸레한 초등학생 시절을 소환한다. 대한민국과 세계의 지형을 보여주는 일반 지도에서부터 여러 통계 자료가 가미된 주제별 지도를 들춰보며, 이 명징함으로 무장한 지도의 제작자들이 느꼈을 법한, 드넓은 세상을 움켜쥔 기분이 들었었다. 몇 년 전, 가임기 여성 인구 분포도를 만들어 저출산 문제의 본질을 흐린, 일명 ‘대한민국 출산지도’가 떠오른다. 이 지도가 여론의 비판을 받지 않았더라면 미래의 사회과 부도에 실렸을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된 내가 가장 빈번하게 이용하는 지도는 단연 모바일 지도이다.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내게 오늘 처음 다녀온 길을 지도로 그리라고 한다면, 실제로 내가 본 길의 모양과 지형보다는 네이버 지도를 떠올리며 이를 흉내 낼 것만 같다.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지도 앞에서, 선조로부터 전수되어 온 동물적인 감각과 모험심은 쪼그라든다. 지도가 한 번 그려지면, 거기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들이 그리는 동네 지도가 이런 모습일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 핼러윈 호박을 깎아 내놓은 집을 표기하고, 단풍 색깔과 가로등 불빛이 만드는 웅덩이를 그려 넣은 지도. 지리학계의 이단아 데니스 우드(Denis Wood)는 자신이 21년간 살아온 작은 동네를 겹겹의 지도로 그려냈다. 그 누구도 지도로 만들 것이라 상상하지 않았던 현상을 표기한 지도책 『모든 것은 노래한다』(2015, 프로파간다)는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삶과 시간을 상상하게 하며,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물과 자연의 존재를 귀히 여기게 만든다. 기상천외한 지도의 목록은 또 다른 목록을 상상하게 한다. 치우지 않은 개똥이 있는 자리, 국경일에 국기를 내 걸은 집과 볕이 좋은 날 어르신들이 모이는 곳을 담아낸 지도를 상상해 본다. 동네의 또 다른 얼굴이 의미를 획득하고 재탄생할 것이다.
매거진 〈K-Arts〉 49호 ‘하나의 지도는 다른 모든 지도들 속에서 그려진다’는 단일한 지도에서 벗어나 복수의 지도들의 겹쳐보기를 시도한다. 우선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을 세밀히 따져봄으로써 기관이 그리는 지도를 직시하고 향방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한편 지리적, 건축적 조건에 갇히지 않고 유동적인 구성물로서 기능하는 한예종의 모습, 고정관념을 적극 발굴, 생산, 기획하며 이를 비트는 코미디, 본래 걷던 길을 이탈하여 새로운 곳으로 힘껏 발 디딘 예술가, 다른 세계들의 가능성을 꿈꾸는 ‘플루리버스’, 가시화되지 않은 여성 교수들의 성과를 찾아 가는 예술과젠더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서사의 지도들을 조명했다. 존재했으나 표기된 적 없는 지도, 누락된 사이의 지도, 아직 그려지지 않은 지도, 어디 놓아야 할지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지도들이 거듭 그려지고 연결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마침내 모든 것은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