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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아우르는 오늘의 소리를 위하여
정혁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방법 중 하나는 그것의 본래 형태를 지켜 보존하는 것이다. 옛것을 본연의 모습대로 유지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기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일이다. 한편 그것을 오늘날의 모양으로 다듬어 새로운 것을 내놓는 이들도 있으니, 바로 국악작곡가다. 그들은 전통의 재료를 사용해 동시대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전통예술원 한국음악작곡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인 정혁을 만나 국악작곡과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해 물었다.

돌고 돌아 국악으로

정혁은 다른 국악작곡 전공 학생들에 비해 조금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중·고등학교에서부터 국악을 공부한 대부분의 학생과 달리 그는 실용음악과 클래식을 모두 경험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쳤던 피아노를 바탕으로 친구 따라 실용 음악 학원에 가서 재즈를 배웠고, 뮤지컬이 좋아서 클래식 작곡으로 대학에 입학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로 보게 된 것이 ARKO 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1였는데, 이전에 알지 못했던 창작국악의 이색적이고 한국적인 색채에 매력을 느껴 ‘냉큼’ 전공을 바꿨다고 그는 말했다. 여러 장르를 오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는 음악적으로 방황했던 경험을 양분으로 삼아 자신만의 음악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서양음악의 어법과 국악의 어법이 아주 달랐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그런 것을 체화하는 게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학교에 들어갔는데 대부분이 국악고, 전통예고 출신 친구들이었어요. 그런 친구들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곡을 올릴 때 연주자들이 국악적이지 않다,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면 많이 자극이 되었죠. 처음에는 논문으로 주법 같은 거 찾아보고 했는데 확실히 도움이 됐던 건 그냥 국악을 많이 듣는 거였어요. 듣는 대로 결국 제가 쓰게 되더라고요. 중학교 때부터 뮤지컬을 정말 좋아했는데, 뮤지컬이 갖고 있는 그런 극적인 흐름 있잖아요. 지금 제가 국악기로 음악을 쓰고 있지만 그걸 많이 듣고 좋아하다 보니까 제 음악에도 드라마틱한 흐름이 생기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경험했던 것들이 결국 내 음악에서 중요한 재료들이 된다고 느끼고 있어요.”

음악의 안팎을 오가며

정혁의 주요 작품으로는 〈6인의 주자를 위한 한곡(恨曲)〉(2020), 〈산조 대금과 타악기를 위한 ‘불새 The Firebird’〉(2021/2022), 〈산조아쟁과 피아노를 위한 집(家)노래〉(2021), 〈산조아쟁을 위한 협주곡 ‘검은 집 The Black Home’〉(2022/2023), 〈다섯의 인성과 타악기를 위한 ‘HETEROPHONIUM’〉(2023), 〈전자철현금, 두 대의 아쟁, Violin, Violoncello 그리고 타악기를 위한 HANNIBAL〉(2024)등이 있다. 두 명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작품부터 국악관현악단을 위한 편성까지 그 규모는 다양하다. 그 중 〈산조아쟁을 위한 협주곡 ‘검은 집 The Black Home’〉(이하 〈검은 집〉)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의 ‘천안함 사건’을 모티브로 작곡된 작품이며, 2022년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 의해 위촉 초연된 후 제14회 아창제에 당선되었고 지난해 말, 제42회 대한민국작곡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여 국악작곡가로서의 정혁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특정한 사건을 주제로 하는 음악들을 떠올려보면 대개 구체적인 서사를 묘사하거나 상징을 사용하는 방식인데, 〈검은 집〉에 덧붙은 작품 설명은 그런 점을 떠올려볼 때 다른 작품 설명들과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희생된 그들의 온전한 안식은 곧 그들을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집은 불편한 현실 속에서 마치 검은색으로 색칠되어 모습을 숨긴 채, 적막하게 그리고 하염없이 그들을 기다리는 ‘검은 집’이다. 이 작품은 단지 이러한 심상을 음악으로 이미지화한 것이며 비극적 서사나 해학을 말하려는 작품이 아님을, 그럼에도 추도적 자세로 작곡에 임했고 그것을 음악에서도 일부 드러내고자 했음을 알리는 바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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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KO 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는 국악, 양악 부문으로 나누어 창작곡을 공모하여 연주하는 방식으로 매년 개최된다. 창작곡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음악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2007년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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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조아쟁을 위한 협주곡 ‘검은 집The Black Home’〉 작품 설명 중 일부 발췌.

〈여성정가와 피아노를 위한 ‘흰바람 벽이 있어’〉 공연 사진, ©정혁

“사회상을 담는 음악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쇼스타코비치(Dmitrii Shostakovich)의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그 사람이 러시아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한 다양한 표상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단순히 비극적인 서사를 담았다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음악적으로 너무 잘 표현했기 때문에 좋아해요. 그래서 나도 무언가를 음악으로 알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이 ‘천안함 사건’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사건이에요. 사건 당시에는 사건을 둘러싼 그 당시 분위기만 기억이 나는데요. 이후에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이 사건에 대해 배우면서 굉장히 큰 비극이었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 비극을 바라보는 주위가 좀 이상하다고 느껴졌던 것 같아요. 군중적인 태도, 음모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 순수한 추모의 자세와는 너무 멀어진 그런 태도와 상황들이 저의 은근한 관심사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다시 한번 내가 감히 ‘이건 비극이다, 이것에 대해 추모하자’라고 말하는 게 좀 오만한 태도인 것 같고, 어쩌면 순수한 음악적 태도에서도 벗어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건 자체보다는 내가 바라본 심상에 집중하자고 방향을 틀었고요. 이것이 지극히 저의 이야기, 사건의 주위를 바라본 작곡가의 심상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이 말을 덧붙였어요. 그런데 앞으로 사회상을 담은 작품은 제가 나이가 더 들었을때 쓰고 싶어요. 이제는 괜히 제가 ‘척’을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오해를 살 때도 있고요. 〈검은 집〉을 쓴 뒤로 제 음악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으로 사회와 인간의 삶을 담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은 작곡가가 어디 있겠냐마는 〈검은 집〉을 둘러싼 그의 이야기는 그 고민의 무게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듯하다. 그는 사회와 그것을 담는 음악의 관계를 절대음악과 표제음악3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고, 표제음악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검은집〉을 쓰면서 오로지 음을 재료로 다루고자 하는 절대음악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쓰게 된 작품이 〈다섯의 인성과 타악기를 위한 ‘HETEROPHONIUM’〉(2023)(이하 〈헤테로포늄〉)이다.

〈다섯의 인성과 타악기를 위한 ‘HETEROPHONIUM’〉(2023) 공연 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작년 한국음악작곡과 전문사 발표회 때 초연했던 보컬 앙상블 작품이고, 지극히 절대음악적 작품입니다. 인성이 들어갔기 때문에 발음을 위한 텍스트는 불가피했지만, 음악에 서사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종묘제례악은 역대 왕들을 모시는 제례음악이고, 그 중 〈정대업〉은 왕들의 무공을 기리는 음악인데요, 〈정대업〉에 “오랑캐를 쳐부수고 세세토록 영원한 나라를 이룩하셨도다” 이런 가사들이 한문으로 있거든요. 그런 영웅적인 내용을 조금 비틀어 가져와서 ‘우주전쟁’을 상상할 만한 글자들을 한글, 영어에서 가져왔어요. ‘헤테로포니(heterophony)’4는 음악의 텍스처를 지칭하는 양식 중 하나에요. 또 ‘정가(正歌)’라는 장르는 반주악기들이 같은 선율을 연주하지만, 각 악기의 특성에 맞게 변주가 되는 형태로 연주되거든요. 헤테로포니의 양식이 정가에서 잘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제목에 두고 싶었어요. 여성정가 4명과 여성경기소리의 만남을 뭔가 신비로운 물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heterophony’에 물질을 지칭하는 어미(-ium)를 합성해서 ‘헤테로포늄(heterophonium)’이라고 지었습니다. 실제로 있는 말은 아니고 제가 지은 거예요.

그렇게 곡을 쓰면서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좀 했어요. 〈검은 집〉을 쓸 때는 너무 힘들었거든요. 하루 12시간 이상을 곡에 투자하면서 3개월 동안 매진을 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근데 이 〈헤테로포늄〉을 쓰면서 본연의 음악에 집중한다는 즐거움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다는사실,모든게충족이되니까너무즐거운 거예요. 그래서 작년에 전문사 발표회 때 초연했던 기억이 너무 행복했어요. 제가 직접 지휘하기도 했고요.”

산조와 오선보

산조란 조선 후기에 생겨난 민속악 장르로, 정적이고 근엄한 궁중음악과 달리 선율의 길이 조금 더 유연하고 원시적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런 면에서 산조는 창작국악에 있어서 정혁의 도전정신과 실험성을 펼치는 장이 되어주기도 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작곡가와 연주자의 매개가 되어주는 것은 대체로 악보인데, 창작국악에서의 오선보는 소리를 기록하는 도구이면서 소리를 가두어 버리기도 하는 더없이 역설적인 기호이다. 자유롭고 유연한 민속악의 선율을 오선보에 기록하기 위해 작곡가와 연주자가 거치는 소통과 합의는 그러한 역설을 절감하며 동시에 극복하는 과정이다.

〈검은집〉 악보 중 일부, ©정혁

“본래 창작국악 장르에서 잘 사용되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대금으로 구성된 창작곡은 정말 많은데 그게 보통 정악대금을 위한 거예요. 이 산조대금5이 메커니즘이 되게 복잡하고, 원시적이라는 말이 나쁜 측면에서도 이해가 되는 악기거든요. 오선보로 표기하기에도 어려운 악기고, 음의 유동성이 너무 큰 거죠. 그래서 이 메커니즘을 좀 잡고 그걸 기반으로 곡을 써보고 싶다는 실험성이 있었어요. 저 역시도 깔끔한 색채와 보편적이고 예쁜 화성보다는 조금 거칠고 원초적인 것들을 더 선호하고 추구했거든요. 지금은 좀 달라지긴 했지만, 그 곡을 쓸 당시에는 민속악 악기를 많이 사용해서 곡을 썼던 것 같아요.

사실 국악기의 선율들을 오선보에 기록하는 것 자체가 정악이든 민속악이든 다 수월하진 않아요. 오선은 차선책이죠. 국악에서는 본래 ‘정간보’라는 악보를 사용했지만 좀 더 빠르고 다양한 부분들을 운용하기 위해서 정간보를 포기하고 오선보를 쓰는 건데요. 산조대금 같은 경우는 기존 창작곡이 많이 없기 때문에 그런 합의의 과정이 더 어려웠고, 연주자랑 소통하는 게 더욱 중요했어요. 일단 먼저 곡을 쓰고, 연주자한테 지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건 이렇게 기보하는 게 좋아, 저건 저렇게 하는 게 좋아, 이런 것을 상의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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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에서 특정한 소재나 이미지를 표상하지 않고 음 자체로 예술성을 구현하기를 목적으로 하는 음악을 절대음악이라 말하며, 반대로 구체적 대상이나 주제가 존재하며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을 표제음악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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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선율이 동시에 울리되 각 악기마다 약간의 차이를 가지는 음악 양식. 국악을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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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정악에 속하는 악기를 민속악적 색채 구현을 위해 개량한 경우에 악기 이름에 ‘산조’를 덧붙인다. 산조대금의 경우 취구를 더 크게 개량하여 음을 유연하게떨수있도록 하고, 산조아쟁의 경우 정악아쟁에 비해 크기가 작고 줄의 개수가 적으며 보다 거친 음색을 낸다.

〈검은 집〉 초연 연습, ©세종문화회관

‘창작+국악’?

오선보와 국악기의 충돌은 음악과 그것을 기보하는 도구 사이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불편함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실은 보다 근본적인 배경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어쩌면 ‘국악’을 ‘창작’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에서부터 그러한 충돌은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곡’이라는 개념이 국악에는 전혀 없었어요.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은 작곡의 개념이 아닌 연주자들이 기존의 선율들을 변주하고 구성하며 파생하는 개념이에요. ‘창작국악’의 발생을 정확히는 1939년부터라고 말하는데요, 당시 이왕직아악부에서 대금을 연주하셨던 김기수 선생님이 ‘작곡’이라는 개념을 처음 국악에 도입하셨어요. 국악기로 항상 음악을 구성, 파생시켜 왔던 방식들이 작곡가의 작곡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 작품이 〈황화만년지곡〉6이라는 곡인데, 일제 강점기에 일왕을 찬양하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창작국악의 시작을 ‘흑역사’라고 얘기도 해요. 지금도 그런 꼬리표가 달려있고요.

꼭 그것과 연관 짓지 않아도 창작국악이 민족주의와 구별되었을 때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음악인가, 이런 숙제는 오늘날까지도 있는 것 같아요. 당시 작곡가들이 지금의 현대음악적 언어들까지 구사할 수 없었고 특히 연주자들도 그랬기 때문에 간단한 기능화성들, 서양음악의 기초적인 어법을 고민 없이 모방하는 것부터 시작했겠죠. 국악기가 가지고 있는 어법 같은 것이 좀 탈락하는 일들이 발생했겠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해결이 안 된 상황에서 작품이 계속 나왔다 보니 항상 이것을 증명하기에 급한 것 같아요. 국악작곡이 활성화된 것도 정부 사업에 의해서였어요. 민족 부흥 사업의 일환으로 60년대부터 국립국악원에서 창작국악 공모들을 받기 시작했고, 때마침 서울대학교에 국악작곡과가 신설되었고요. 그렇게 배출된 졸업생들이 국악작곡계의 선생님들이시고 그런 분들이 공모사업을 통해 작품들을 양산하신 거죠. 물론 작곡가 선생님들은 작품을 진심으로 쓰셨지만, 장르적으로 지금 그런 성격을 탈피했는가 물었을 때는 아쉬움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해 다양한 주제, 소재, 어법의 음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어려운 음악, 그런 아카데미즘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 음악의 목적이 뭘까, 국악작곡이라는 게 작곡가 본인의 세계를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음악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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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아악부가 일본 기원 2,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계획한 신곡 공모에서 당선된 곡으로, 일제의 지배가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이능화의 시를 가사로 하고 있다. “황화만년지곡”,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대음악으로서의 창작국악

창작국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 장르의 정체성과도 얽힌 역사와 현실을 듣고 있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국악작곡가는 국가에 의해 탄생한 음악, 자생하지 못하는 음악시장 안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지난 해 10월 베를린에서 열린 ‘2023 베를린한국창작음악페스티벌 Festival für KoreanischeNeueMusik’에서 정혁의 작품이 연주되었는데, 여러 숙제를 안겨주는 것 같은 우리의 창작국악을 해외에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자긍심 같은 걸 느꼈다기보다는, 유럽 현대음악의 현재를 인식하고 왔습니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도 그들한테는 전통음악이죠. 관객들이 대부분 독일 어르신이 많았고, 젊은 분들은 전공생밖에 없었어요. 우리랑 비슷하잖아요, 국악도 그렇거든요. 공연장에 가면 대부분 전공자들, 선생님들, 혹은 어르신들, 하지만 그런 분들은 창작국악은 안 들으시죠, 그런 것처럼 독일의 상황과 우리가 비슷한 점이 있더라고요.

국악기를 사용해서 음악을 만드는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들이 보기에 ‘이국의 악기로 곡을 썼구나, 재밌네, 흥미롭다.’ 정도일 것 같더라고요. 창작국악은 그저 그들한테 현대음악의 일부고, 어쩌면 그냥 월드뮤직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이 현대음악이라는 장르 안에서 국악기를 쓰는 것 자체를 메리트로 생각할 게 아니겠구나. 국악기를 쓰되 그 와중에 이게 어떻게 글로벌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됐어요. 순수예술도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내가 음악에 쓰는 방식과 어법은 무엇이며 그것들이 과연 트렌디한가, 동시대적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더 좋은 곡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거죠. 국악기를 사용하는 것과 별개로 나의 음악성을 고민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이 국악기에 관한 음악들이 훨씬 다채롭고 경쟁력 있는 음악이 될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작품을 쓸 거고요, 국악기를 운용하는 많은 음악인들도 그렇게 함께 써 가면 더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자신이 작품을 쓰는 일을 ‘국악 작곡’이 아닌 ‘국악기 작곡’이라 정의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단순히 과거의 민족주의를 탈피하여 음악성만을 추구하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닐 것이다. 민족적 정체성과 얽히고설킨 동시대 한국음악 안팎의 시선을 감지하며 음악성에 집중하고자 결론 내리는 젊은 작곡가의 고민은 창작국악의 현재를 고스란히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귀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대로 전통음악의 색채만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탐낼 만한 음악성을 향해 분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음악을 진정으로 일구어내는 길이라 생각된다.

글 김예현
서초캠퍼스 재학생이자 이문동 주민이다. 지하철로 한강을 건널 때마다 엇갈린 통학길이 주는 현타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지도에 이상하게 걸쳐 있는 나 또는 우리가 종종 훌륭한 글감이 되어줄 수 있음을, 봄호를 작업하며 깨닫는다.

진행 임지지 영상 엄혜진
진행 임지지 영상 엄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