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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안에서
한예종 바깥 찾기

한예종 - ‘한예종’

“예술가가 되려면 남다른 재능을 지녀야 하며 평생을 바쳐 예술가로서의 길을 정진해야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학교는 위의 조건을 갖춘 학생만을 특별한 방법에 의해 선발한다.”

“창조적 전업예술가를 육성하기 위한 실기 및 제작 능력을 배양하는 전문교육 (중략)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당연히 탈락된다.”

“미래의 고전을 창작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1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 ‘학교소개’로 들어간 후 ‘설립이념’을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문장 중 일부다. 소개글을 읽다보면 이 학교에는 사람들이 예술만 하러 모여서 예술에만 전념하고 있을 것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는 이 문장들로 전부 설명될 수 있을까? 혹은 이런 설명이 적절할까?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빌ville’과 ‘시테cité’의 개념을 통해 ‘짓기’와 ‘거주하기’를 설명한다. 촘촘한 도시 계획하에 건립된 건물이나 도로처럼, 사람들의 움직임과 사고방식을 유도하거나 통제하려는 의도와 물적 조건이 빌이라면, 시테는 사람들이 직접 그 안에서 전개해 나가는 행동 양식이다. 빌과 시테는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지만, 지리적, 건축적 의도대로 사람들이 행동한다거나 사람들이 행동하는 대로 공간이 만들어져 있을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횡단보도와 신호등 체계를 두고도 예측 불가능하게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들을 보면 빌이 시테와 얼마나 자주 불일치하는지 알 수 있다. 세넷은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는지는 결코 빌을 가지고서 단정하거나 정리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도시를 이해하려면 다양한 빌들과 다양한 시테들을 서로의 관계 속에서 포개가며 바라봐야 한다. 행정가의 질서정연한 기획안, 도시 계획가의 조감도, 건축가의 설계도라는 하나의 권위적 지도(빌, 짓기)에만 기댈 때에는 시민들 개개인이 그려나가는 자신만의 약도(시테, 거주하기)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단일한 빌에 기대는 시각은 도시에서 경합되는 권력관계와 다양성의 실천을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못한다. 빌들과 시테들 사이의 불일치와 예측 불가능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다양성, 민주성, 새로운 시야각을 얻을 수 있다.

빌과 시테에 비유하자면, 한예종은 줄곧 설립 목적과 그 목적의 달성이라는 기준으로만 이해되고 재현되어 왔다. 한예종에서는 학생들이 예술 공부와 창작만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술학교의 목적(단일한 빌)이 학교 안에서의 삶(시테)과 그대로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바로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 2 한예종이 자신의 생존과 권위만을 목적으로 하는 상아탑처럼 홀로 서서 “예술 엘리트”3로서의 훈련만 시행하는 곳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예종 안팎으로 다양한 빌들과 시테들이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자 할 때에 우리는 학교를 성과주의적으로만 환원시키지 않고, 보다 다양한 일이 벌어지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좀 더 그러하도록 학교를 정체화하고 직접 운영해 나갈 수 있다. 국위선양하는 토종 천재가 밤낮으로 노력하는 곳 말고, 덜 목적 지향적이고, 좀 더 개방적이고, 일상적이고,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곳. 자신이 놓인 곳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는 유동적인 구성물로서의 학교. 이 글은 한예종 안의 삶, 창작, 경험들이 어떻게 학교 ‘바깥’들과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는지 들추어보고자 한다.

1
한국예술종합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다.
2
리처드세넷, 『짓기와 거주하기』, 김병화 옮김, 김영사(2019),10p.
3
한예종을 소개할 때 가장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러나 한예종이 양성해 내야 하는 ‘예술 엘리트’란 무엇인가? ‘권위 있는 상’을 받거나 높은 명성을 쌓은 예술가인가?

③돌곶이역에서 ①본관으로 가는 길(하늘색 선)과 ②별관으로 가는 길(주황색 선). 연두색 선은 버스를 타는 구간이다. ©카카오맵.

유동하는 빌과 시테

세넷을 빌려 석관동 캠퍼스 별관에서 주로 생활하는 학생의 하루를 생각해 보자. 석관동 캠퍼스가 조선 왕릉인 의릉을 사이에 두고 본관과 별관으로 나누어지는 바람에 돌곶이역에서 별관(미술원, 전통예술원)으로 가기 위해 본관을 거치는 긴 내리막길이 닦인 것은 빌의 영역이다. 한편, 한 조형예술과 학생이 쏟아지는 실기 과제 때문에 몇 십 분 걸려 그 길을 오르내리며 본관 학생식당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별관의 매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빠르게 끼니를 떼운 후 곧바로 작업실로 돌아가기를 택하는 것은 시테의 문제다. 아스팔트로 잘 닦인 길은 본관과 별관을 연결하기 위해 개설됐지만, 본관과 별관이 실제로 얼마나 연결되고 있는지는 학생들의 일상을 통해 검토해 봐야 한다. 무조건 계획과 의도를 신뢰하면, 본관과 별관이 잘 연결되어 있다고 단정 짓게 된다. 그러나 별관의 학생들은 생각보다 본관과의 접점이 좁다. 그 이유는 본관과 별관 사이의 길이라는 빌 외에도 다양한 빌들이 중층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별관 학생의 동선 속에 본관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돌곶이역에서 별관으로 가려면 본관을 거쳐 걸어가는 것보다 돌곶이역에서 버스로 갈아타 ‘한국예술종합학교’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는 편이 조금 더 빠르다. 따라서 바쁜 등굣길의 별관 학생은 본관을 거치는 빈도가 낮다. 둘째, 별관 건물 “내부는 자족적 공간이 되도록 꾸며졌다.”4별관에는 나무와 수풀이 가득하며, 자그마한 컨테이너 무인 매점과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는 중정이 있다. 중정이란 건물을 마치 네모난 도넛처럼 세운 후, 건물의 비어 있는 중심에 조성한 뜰을 이른다. 유럽의 수도원은 넓은 중정을 통해 수도사가 수도원 바깥과 접촉하지 않고서도 건물 내에서 식물을 기르고 바람을 쐬며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했다. 이와 비슷하게 별관의 중정은 학생들이 건물 내에서 대부분의 일(식사, 바람 쐬기, 필요한 물건 사기...)을 처리할 수 있게 만든다. 현재 중정은 자신의 작업을 설치해 보여주거나 다른 이들과 모이고 접촉할 수 있는 개방적인 교통의 장소이지만, 그 ‘다른 이들’ 중에 별관 집단 바깥의 사람들은 희박하다. 미술원 중정은 예전에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가 해당 건물을 사용했을 때도 그랬듯, ‘내부인’끼리는 만날 수 있지만 ‘외부인’과는 교차하기 쉽지 않은 장소다. 중정의 기능은 건물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건물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학생들이 늘 컵라면과 삼각김밥만 먹을 수는 없으며, 야간작업에 필요한 아메리카노를 찾아 바깥으로 어슬렁어슬렁 흘러나오게 된다. 셋째, 이때 별관에는 본관보다 더욱 가까운 선택지가 있다. 별관 건물 뒷편의 후문을 통해 5분 정도 걸으면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별관의 학생들은 ‘돌곶이역 맛집’ 혹은 ‘한예종 맛집’보다 ‘외대 맛집’을 검색하는 것이 더욱 실용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외대 근처에 형성된 비교적 ‘대학가’스러운 음식점들은 메뉴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별관으로 돌아가기에도 시간적 부담이 적다. 이러한 빌들 속에서, 한 번도 본관을 거치지 않는 시테를 전개하면서 하루를 마친 별관 학생도 있을 것이다.

4
2번 각주의 책, 220p.

중정에 놓인 돼끼와 흰끼 채색 부조. 촬영 2023.09.19.

중정이라는 빌은 바뀐 형태와 맥락 속에서 새로운 시테를 부르기도 하는데, 그 예가 중정에 살던 두 마리의 토끼 ‘돼끼’와 ‘흰끼(판다)’다. 10여 년 전 미술원 중정에서는 어느날 나타난 토끼들이 번식해 불어나기 시작했다. 토끼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뤄진 포획 작업 속에서 살아남은 한 마리의 갈색 토끼였던 돼끼는 학생, 교강사, 청소원, 동아리 ‘마음’ 등 학내 구성원들의 자발적 모금과 돌봄을 통해 중성화 수술과 급식을 비롯한 보살핌을 받아왔다. 이후 2020년에 흘러들어온 흰끼(판다)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중정은 우연히 찾아온 생명체가 정착해 살 수 있게끔 하기 위한 공동 돌봄이 이루어지는 공간, 새로운 공존재를 받아들이고 보호하는 우리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22년 여름, 흰끼는 사라졌고 2023년 봄에 돼끼는 생을 마쳤다. 이후 중정 가운데에는 돼끼와 흰끼가 부조로 조각되고 채색된 돌판이 세워졌다. 이때 중정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창작물을 통해 추모와 애도의 공간으로 잠시 변모했다.

장소를 재편하는 집단으로서의 학교

서초동 캠퍼스 또한 하나의 건물 안에서 많은 것을 해결하는 식의 내부 지향적인 면을 보인다. 반복적이고 긴 실습을 요구하는 무용과 음악은 특정한 조건이 갖춰진 학내 시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단체로 작품을 연습해야 하는 경우가 잦기에 재학생들은 학교의 시설뿐만 아니라 학교의 사람들과도 밀착된다. 학생들끼리 함께 모여 배달로 밥을 먹는 일이 석관동 캠퍼스보다 서초동 캠퍼스에서 잦은 것 또한 이러한 배경과 연관이 있다. 복도에선 단체주문한 대량의 도시락 포장 쓰레기도 종종 눈에 띈다. 몇 년 전 만들어진 서초동 캠퍼스 2층의 중정 공간도 석관동 캠퍼스 별관의 중정과 유사하게 단일건물 내부에 ‘외부’를 추가해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한편, 서초동 캠퍼스는 주변 지역 풍경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학교 지척에 있는 예술의전당과 국립국악원을 비롯한 주요 기관, 그리고 서초동의 악기 시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며 국가가 ‘문화도시 서울’을 외치던 때, 성장하던 강남을 배경으로 예술의전당이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음악당과 한가람미술관, 오페라하우스 등을 차례차례 개관했다. 1990년에 문화부가 발표한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에 의해 설립이 계획되었던 한예종 음악원도 1993년도에 예술의전당 건물의 남은 자리5를 학습장으로 지정해 개원했다. 이때 이미 예술의전당은 ‘고급 예술’의 거점이자 그것을 향유하러 가는 탈일상의 장소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한예종은 예술의전당이라는 빌과 그곳에서 형성된 특수한 시테를 배경 삼아 시작한 것이다.

②예술의전당 부지 안에 있는 ①서초동 캠퍼스. ③흰색으로 칠해진 구역에 수십 곳에 달하는 악기사와 연습실이 포진하고 있다. ©카카오맵.

그런데 예술의전당은 그 접근성에 대해 지적 받아 왔다. “정문의 어프로치는 개방적이거나 일반인을 수용하기보다는 예술의 전당이라는 나름대로의 영역을 확고하게 하려는 상징성이 더 두드러진다.”6 심지어 담이 둘러져 있어 “일종의 성(城)과 같은 느낌”을 주기에 권위적인 데다가, 자유로운 동선을 그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에 일상적 산책을 위해 들릴 만하지도 않다. 따라서 산책을 원하는 거주민은 예술의전당이 아니라 바로 그 뒷편의 우면산 산책로를 이용할 것이고, 괜히 예술의전당까지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전당은 공공장소이지만 입장 자격을 티켓으로 증명한 군중은 공연 때에만 모였다 각자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흩어진다. 운영 시간이 끝나면 예술의전당은 공적인 기능을 폐쇄한다.7 그렇다면 서초동 캠퍼스의 학생은 석관동 캠퍼스의 학생보다 더 많은 학교 외부인과 마주칠 수 있지만, 그들은 매일 다른 익명의 군중이지, 서초동의 이웃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음악원은 지난 4년간 외부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음악회 ‘K-Arts 런치 콘서트’를 이강숙홀에서 개최해 왔다. 이를 통해 티켓을 구매하지 않은 사람, 즉 소비를 통해 입장 자격을 확보하지 못 한 사람도 예술의전당 부지 안쪽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 이러한 무료 정기 콘서트는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가 위치한 예술의전당을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도록 개방한다. 나아가, 학교가 일회적 소비자가 아닌 이웃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져온다.

허나 여전히 예술의전당이 마치 공항이나 호텔과 같이, “주로 해당 국가[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되었고, 동시에 이들의 특정한 관심사가 재현되는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8 이때의 특정한 관심사란 예술의전당에서 주로 다루는 분야의 예술 장르, 즉 클래식 음악과 성악 콘서트, 오페라와 무용 공연, 미술 전시일 것이다. 분명히, 예술의전당을 예술의전당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원심력 아래 모인 군중이다.

5
이때 음악원은 자체 건물 없이 예술의전당 기존 공간 중 914.18평을 학습장으로 지정해 음악원으로 운영했다. 서울오페라극장의 342.33평, 서울음악당의 471.85평, 서울예술자료관의 100평을 사용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부지 확보방안 보고서」(1993)
6
송정화·김영욱·이현수, 「도시맥락적 관점에서 본 문화공간의 의미 -예술의 전당을 중심으로-」,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21권 1호(2005), 21p.
7
마르크 오제가 개념화한 ‘비장소’는 초현대성을 체현하며 여러 특수한 특징을 지니는 장소다. 예술의전당을 비장소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소비를 통한 입장 자격 획득, 제한적인 공공성과 같이 예술의전당은 ‘비장소’의 특징 중 일부를 지닌다. 마르크 오제, 『비장소』, 이상길·이윤영 번역, 아카넷(2017), 123, 133p.
8
정헌목, 「전통적인 장소의 변화와 ‘비장소(non-place)’의 등장」, 『비교문화연구』 제19집 제1호(2013), 125p.

예술의전당은 예술 외의 것은 다루지 않는다. “잡다한 형태와 용도는 잡다한 사용자들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꼭 필요한 것만 있는 환경, 즉 보다 단순하고 명료하고 간명한 형태일수록 누가 그곳에 소속되고 그렇지 않은지가 더 잘 규정된다.”9 예술의전당이 주력으로 다루는 공연과 음악 계열의 고급 예술을 중심으로 향유자, 생산자, 관련 업계의 동질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이 되면서, 예술의전당은 관련 ‘내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시설을 불러 모으게 되었다. 1987년부터 서초동에 청사를 새로 짓거나 옮겨오기 시작한 국립국악원과 서초동 악기거리가 명료한 예시다. 서초구청의 소개에 의하면, “예술의전당 맞은편, 거리와 골목길에 악기상이 줄지어 있다. 이 곳에 악기 상점이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은 예술의전당 서예관과 음악당이 준공된 이듬해인 1988년부터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과 무용원이 이전해오면서 악기상과 수리점이 하나둘 옮겨왔다.”10 서초동 캠퍼스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3호선 남부터미널역 부근에는 피아노, 금관악기, 국악기를 비롯한 다양한 전문 음악 학원과 악기사, 기악·무용 전용 연습실이 다수 운영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음악원 실기 재학생들이 남부터미널역 근처의 악기사와 개인용·합주용 연습실을 이용한다. 이렇듯 동질적인 집단과 인프라가 한곳에 모여있게 되면, 그곳에서는 접근성과 경험의 질이 보장된다. 서초동 자체가 유의미한 인프라가 되어, 학생들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과 리허설을 자주 관람하며 공부하고, 근처에서 악기를 수리하고 관리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빌은 예술의전당이 먼저 형성해둔 것이기도 하지만, 학교가 다시 그 영향을 강화해온 측면도 있다. “한예종 입시의 실기 세부 일정이 발표”되면 근처 “연습실 섭외 예약 문의가 확 늘기 시작”한다고 말하며 한예종 재학생이 쓰던 연습실을 “좋은 열정의 에너지가 깃든(?)”곳이라고 홍보하는 한 연습실 업체의 블로그 글이 그 예시가 되겠다. 서초동이 예술 향유와 생산뿐만 아니라 입시의 현장으로도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석관동 캠퍼스 근처에는 미술 입시 전문 학원이나 전통예술 관련 레슨 학원, 연습실이 딸려 생겨나지 않았다. 서초동 캠퍼스 근처의 풍경이 학교와 그 근처 거대한 기관이 함께 주변의 풍경을 재편해나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면, 석관동 캠퍼스는 학교 주변의 풍경이 교내에 어떻게 다방면으로 녹아 들어오는지에 대한 사례가 풍부하다.


9
2번 각주의 책, 192p.
10
서초구청 공식 홈페이지

양은서(방송영상과 재학), 〈서울세탁소〉, 10’43’’, 2023, 스틸컷.

지역과 밀착하기

서초동에는 석관동보다 더 많은 거대 기관과 기업체가 사옥을 두고있다. 자연히 직장에 통근하는 바깥의 사람들이 생활인구로서 서초동에 매일 유입된다. 반면 석관동은 오래된 주택가와 상가 그리고 재개발 아파트가 더욱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이 매일 유입되고 빠져나가기보다는 안정된 지역 구성원이 거주를 위해 오랫동안 머문다. 이는 서로 모르는 익명의 개개인이 스쳐지나가는 대도시의 특징을 석관동이 덜 체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재학생들이 과제나 창작의 기회를 통해 지역에 밀착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반이다. 석관동 캠퍼스의 학생들이 만들어온 과제물이나 창작물 속에서 석관동의 풍경과 이야기를 골라 모아보면, 석관동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아카이브가 완성될지도 모른다.

특히, 영상원 학생들은 지역과 살결을 맞대는 학교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11 학생들은 무거운 장비를 학교에서 빌리고 반납하기 용이하면서도 재학생들을 모르는 척하거나 적대하지 않는 석관동을 대상으로 많은 과제물을 제작하게 된다. 그중 일회성 과제에 그치지 않고 한 학기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들이는 경우가 있다. 2023년도 가을학기 방송영상과의 ‘영상기초제작WS’ 강의에서 과제작으로 만들어진 양은서의 다큐멘터리 〈서울세탁소〉와 이혜린의 〈놀이터를 다루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 그 예다. 〈서울세탁소〉는 성북구의 상월곡역 부근에 위치한 세탁소 ‘서울세탁’을 운영하는 할아버지 이찬봉의 노동 현장을 관찰하고 그의 삶을 알아가는 다큐멘터리다. 〈놀이터를 다루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어엿한 모습으로 놀이터의 놀이 규칙을 운영해 나가는”12 석관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애정 어리고 수평적인 카메라로 쫓았다. 마라톤을 뛰는 근육질 몸을 가진 세탁소 사장 할아버지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초등학생을 따라가며, 카메라는 석관동 골목골목에서 전개되는 작은 역사를 기록한다. 이러한 실천은 ‘최고 수준 교육을 받아 엄청난 실적을 내는 천재 예술가’를 배출하는 ‘한예종’이라는 빌의 궤적에서 벗어나 있기에 가능하다. 학생들이 한예종 ‘바깥’으로 눈을 돌려, 자신이 시테를 전개해 나가는 곳을 학습과 창작의 현장으로 삼았기 때문에.


11
학교에는 실기뿐만 아니라 이론 영역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과 밀착할 수 있는 강의가 마련되어 있다. 가령, 방송영상과에 개설된 강의 ‘인터뷰방법론’을 수강한 한 학생은 석관동에서 오랫동안 장사해 온 소상공인들을 인터뷰해 지역 상권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12
창작자 이혜린의 작가 노트에서 인용.

이혜린(서사창작과 재학), 〈놀이터를 다루는 가장 완벽한 방법〉, 8’23’’, 2023, 스틸컷.

석관동 캠퍼스의 학생은 지역민, 즉 석관동의 이웃과 마주칠 기회가 풍부하다. 석관동 캠퍼스는 방문객을 제한하는 듯한 건축적 경계가 덜 선명하고, 관광객보다는 거주민의 일상적 근린 공간으로 기능하는 공유지인 의릉과 천장산이 함께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교양과 전공 강의들이 석관동에 개설되고, 교류 수학하는 학생들도 석관동에 더 많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살을 맞대는 경험이 석관동 캠퍼스에서 비교적 많이 일어난다. 또한 케이시네의 무료 상영 행사 ‘수요영화관’은 재학생이나 교직원뿐만 아니라 학교에 속하지 않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기에, 다양한 사람들을 학내로 불러들일 수 있는 요인이다. 뿐만 아니라 석관동 캠퍼스의 예술정보관은 2023년 하반기 이래 도서관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기 시작했다. 서초동 캠퍼스와 석관동 캠퍼스 사이에 존재하는 학내 시설, 재학생 규모, 행사 빈도의 차이가 두 캠퍼스가 ‘학교 바깥’과 맺는 관계의 양상을 상이하게 만든다.

한예종+‘한예종 바깥’

어쩌면 한예종은 한예종 바깥에 위치한다. 한예종은 실적이 아니라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고, 일상은 학교 안팎으로 맺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빚어진다. 그럼에도 ‘한예종’에 집중하다 보면 서초동과 석관동은 학교가 ‘속한 곳’이 아니라 ‘배경’에 불과하게 축소되어 버린다. 이러한 시각에 더해 ‘한예종’이 보도될 만한 실적을 내는 사람과 작업으로 과잉 대표되기까지 한다면, 한예종은 학교 자신만이 ‘학생’을 ‘천재’로 양성해 내는 유일한 변수라고 믿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맥락 속에 있다. 학교를 그저 기관이 아니라, 지역과 소통하고 공동체적인 관계를 맺는 곳으로 파악해야 한다. 한예종은 보다 더 ‘바깥’을 향해 개방되고, ‘바깥’과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의도하거나 인식하지 못했음에도 우리가 어떻게 학교 안팎과 관계 맺어왔는지를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이 글은 한예종의 석관동 캠퍼스 별관, 본관, 서초동 캠퍼스에서의 일상 곳곳에 스며 있는 ‘한예종 바깥’을 찾아내고자 했다. 헌데, 한예종 바깥이란 게 있을까? 학생증을 찍어야 들어갈 수 있는 굳건한 보안문 앞에서 매우 선명해 보이는 학교 ‘안팎’의 경계를 넘어 바깥이 안으로, 안이 바깥으로 상호침투되고 있다면 말이다. 모든 것을 학교의 업적과 권위로 흡수해 버리는 자기 중심적 태도에서 벗어나,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 중 하나로 학교/바깥을 바라볼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는 학교를 더 적극적으로 ‘우리 학교’ 바깥과 함께 구성해 나갈 수 있을까? 한예종의 지도를 어떤 다른 지도와 포개어 볼 수 있을까?

글 김선진
처음 청탁받은 분량은 최대 35매였다. 어느새 60매를 넘어간 초고를 영차영차 줄였다. 혼자서 줄이다 한계를 마주하고 편집자님과 함께 줄였다. 여전히 길다. 반쯤 죄송하고 반쯤 민망한 마음으로 매번 할당된 지면을 초과하는 다작, 아니 초과작 글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