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2024 SPRING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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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바보의 순정
〈세기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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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습에도 유행이 있다면, 김영미(이유영 扮)의 사랑은 세기말에나 볼 수 있던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사랑이라는 말조차 낯간지럽다. 그래도 지구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1999년 12월 31일 23시 59분이라면, ‘사랑...한다’는 끔찍한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기꺼이 예언된 멸망을 맞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미는 마지막 순간에도 이 말을 입에 올리지 못하고 새천년을 맞이한다. 호텔에서 구도영(노재원 扮)과 미적지근하게. 그리고 큰어머니의 장례식장과 경찰서 취조실에서. 김영미의 새천년은 착실한 공간이동과 함께 시작된다.

과장이던 김영미가 짝사랑하는 부하직원 구도영의 공금횡령을 눈감아주기 위해 사비를 털고 부업으로 밤새우며 얼마나 괴로웠을지 영화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재봉틀을 돌리다가, 깜빡 조는 순간 바늘이 손가락을 뚫을 뻔했던 아슬아슬한 순간을 한 번 보여줄 뿐이다. 공금횡령을 방조한 죄로 교도소에 들어가서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저 출소일, 새빨간 인주에 엄지손가락을 찍는 영미의 모습을 기점으로 흑백에서 컬러 화면으로 전환될 뿐이다.

영미가 사복으로 갈아입고 교도소 문을 나서는 순간, 영국 록밴드 Queen의 〈Under Pressure〉를 연상시키는 리듬이 발걸음에 추임새를 넣더니 몇 걸음 나서기도 전에 새빨간 차량이 등장한다. 쨍한 립스틱을 칠한 수상한 여자가 튀는 헤어스타일의 운전자와 동승하고 있다. 자신을 “구도영의 마누라”라고 소개하는 조유진(임선우 扮)은 구도영을 향한 영미의 사랑이 짝사랑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유난히 꼿꼿한 그녀의 태도는 영미를 더욱 주눅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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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휴게소는 유진의 꼿꼿한 비밀이 빠르게 밝혀지는 공간이다. 유전으로 인한 근육병(근이영양증)으로 몸 전체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 항상 뻣뻣한 자세를 유지했던 것이다. 엉겁결에 유진을 장애인 화장실에 바래다주게 된 영미는 화장실에 단둘이 있을 때에야 “구도영이랑 잤어?”라는 유진의 직설적인 질문과 맞닥뜨린다. 영미가 얼마나 숙맥인지 유진은 아직 모른다. 두 여자는 같은 남자를 사랑하면서 서로를 너무 모른다. 이대로 만남을 끝내기는 아쉬울 것이다. 혼자 가겠다는 영미에게 유진은 동행한 운전자의 명함을 남긴다.

구도영이 출소할 때까지만 유진의 집에 머무르게 된 영미는 만만찮은 유진의 성격을 맞닥뜨리게 된다. 사회복지사들은 유진에게 ‘지랄 1급’이란 별명을 붙인다. 이는 유진의 신체적 상태에 사회가 강제한 명칭인 ‘장애 1급’을 보다 생동감 있는 특성으로 바꾼다. 갖은 불의를 보며 참지 않고 내뱉는 유진의 ‘지랄’은 몇몇 장면을 거치며 결국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지랄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유진의 세 치 혀는 차분한 영미의 속을 몇 번 뒤집는데, 그런 엎어치기 능력으로 영미의 오랜 콤플렉스가 가진 의미 또한 반전시킨다. 오른쪽 손목 끝에서부터 시작해 등 전체까지 뻗은 영미의 커다란 화상자국을 발견하고 쿡 웃으며 “맨드라미꽃 같다”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흉터는 순식간에 ‘치정’이라는 꽃말을 지닌 꽃무늬가 된다.

치정. 그러나 구도영에게 고백 한 번 못 해보고 애꿎은 자기 돈과 노동력만 갖다 바친 김영미의 사랑은 굳이 표현하자면 호구의 순정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영미의 바보 천치 같은 마음도 앙칼지게 바라보는 유진의 각도에서는 치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할 테지만.

유진이 구도영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영미에게 들려줄 때, 유진의 독백은 그대로 영미의 독백으로 옮겨오기도 한다. “왜 나는 구해주고 싶었을까? 나 자신도 구하지 못하면서.” 사랑에 빠진 연인의 이야기 다음에 으레 기대할 수 있는 풋풋한 베드신이 나올 법한 자리에 유진을 목욕시키고 침대에 눕히는 영미의 맨드라미 모양 팔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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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장면으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유진이 도영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도영이 유진의 손등에 앉은 모기를 대신 잡아주려다 실패하는 장면이다. 처음에 유진은 철썩 자신의 손등을 다짜고짜 때린 도영에게 영문을 모르고 화를 낸다. 이 장면은 임선애 감독의 전작 〈69세〉(2020)의 어떤 장면과 비슷하게 겹쳐진다. 동인(기주봉 扮)이 효정(예수정 扮)을 걱정하느라 대뜸 팔에 붙인 밴드를 떼어 상처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애정에서 나온 표현조차 은밀한 폭력성을 띠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감독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 같다.

〈세기말의 사랑〉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도영의 행동에 유진이 ‘피식’ 하는 웃음으로 맞받아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언제나 어른처럼 먼저 웃는 것은 유진이다. 유진의 어른스러움은 ‘모른 척’을 통해 드러난다. 휴대폰에 ‘호구 2번’으로 저장돼 있는 오준(문동혁 扮)은 구도영의 옛 룸메이트로 헤어 디자이너다. 미용 대회 수상을 위해 유진의 생머리를 비롯해 영미의 곱슬머리까지 실습 대상으로 이용한다. 유진을 도우면서도 그녀의 많은 것을 이용해 왔다는 것이 점차 드러난다. 유진의 명의로 차량 할인 구매, 유진의 명품 구두를 짝퉁으로 바꿔치기한 뒤 내다 팔기 등. 모든 것이 유진의 ‘모른 척’ 덕분에 가능했다.

이런 성격은 영미와 유진이 유일하게 통하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유진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은 영미가 구도영에게 마음을 표시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영미 또한 구도영의 공금 횡령을 열렬히 ‘모른 척’하려다 방조죄로 감옥에 갔다. 알고 보면 구도영 역시 유진의 조카(사실은 딸)의 카드 값을 유진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금횡령을 하다 감옥에 갔다. 이들 세 사람의 사랑은, 두 고리만 두고 보면 무관하지만, 세 고리를 함께 보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보로메오 매듭처럼 ‘모르는 척’으로 얽혀 있다. 실상 이 모르는 척에는 엄청난 희생이 동반된다. 이들은 모두 상대방이 몰라주기를 바람으로써 사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제목에 ‘사랑’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이들의 감정을 너무 쉽게 사랑으로 단정하는 것은 아닌지 좀 더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먼저 영미가 도영을 사랑한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고개 끄덕일 수 있다면, 그건 영미의 어떤 모습 때문인가? 아니면 이렇게 질문을 바꿔볼 수도 있다. 영화는 어떤 모습을 통해 영미의 마음을 사랑이라 주장하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3인 3색의 사랑에 제각각 던져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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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김영미의 마음은 사랑인가: 영미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데에는 어떤 노력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영이 입사한 지 5개월이나 지나서야 겨우 입사 축하 인사를 건넬 수 있을 정도로 실질적인 감정 교류는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영미는 뒤에서는 도영을 위해 밤샘 부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말 한마디 제대로 걸지도 못하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호구 잡힘을 ‘사랑하기 때문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영화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너무 자본주의적인 시각이 아닐까. 하긴 세기말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본격 거세지는 시기이긴 한다. 그렇다고 해도 영미와 도영의 이어지는 만남이 채무 관계를 청산할 목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막을 내린다는 것은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도영의 채무 관계 덕분에 영미가 ‘표현하지 않고 전달하지도 않는 사랑’을 계속할 수 있기도 한 것이다.

❷ 구도영의 마음은 사랑인가: 도영의 유진을 향한 마음은 비교적 직설적으로 표현된다. 봉사활동을 통해 만나게 되었을 때 둘은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이때 도영이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좋아하는데요.”라는 간단한 말로 드러나버린 도영의 마음은 어쩐지 그가 감옥을 나와서도 유진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을 짙어지게 한다. 더불어 영미와 마찬가지로 도영의 공금횡령이 유진 딸의 카드값을 몰래 갚기 위해서였다는 점도 유진을 사랑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관객이 짐작할 수 있도록 영화는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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❸조유진의 마음은 사랑인가: 유진의 사랑의 방향은 그가 탄 휠체어의 바큇살만큼이나 다채롭게 표현된다. 조카라고 거짓말하지만, 사실은 ‘호구 1번’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향한 사랑이 하나, 구도영을 향한 사랑이 하나, 그리고 김영미에 대한 사랑도 하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임신을 하면 근육병의 진행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딸을 낳는 것을 선택했고, 그 딸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오자, 자신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될까봐 가슴 졸인다. 유진이 가장 화를 크게 내는 순간도 딸에 대한 애정이 과열되었을 때다. 구도영을 향한 사랑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유진은 도영처럼 굳이 말하지 않고도 애정을 표현한다. 심지어 서로 보이지 않아도 사랑을 전달하고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클라이맥스 장면인 화상 접견 신에서 유진은 드디어 감옥에 있는 도영을 화상 카메라를 통해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마우스를 움직이지 못해 자동으로 작동된 검은 화면 보호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된다. 유진이 바라보는 작은 컴퓨터 화면은 영화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확장된다. 과거의 윈도우 로고가 천천히 검은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조용한 충격을 남긴다. 이 순간 유진이 가장 보고 싶은 얼굴은 검은 화면 너머에 있다. 결정적인 순간을 생략하자 영화의 에너지가 유진의 얼굴에 집중된다.

유진이 영미 또한 사랑한 것이라 주장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나아가 영미도 유진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여자의 사랑이 영화의 불가사의한 동력이 되어주었을 터이다. 둘의 얼굴이 겹치는 듯 투 숏이 담긴 장면에서, 영미가 맨드라미꽃의 새로운 꽃말을 유진에게 고백하듯이 말했을 때 둘의 관계는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다. ‘시들지 않는 사랑’. 둘의 사랑이 그와 같다고 영화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여러 색깔 순정을 말하는 영화, 바보의 사랑이 나오는 영화다. 아주 오래된 것 같지만 아직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이야기다.

글 김주은
이곳저곳에 몰래 영화비평을 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