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S는 LG아트센터에서 기획한 시즌 공연으로 동시대 다양한 영역의 국내외 공연 예술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작년부터 여느 극장처럼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LG아트센터는 디지털 스테이지 COM+ON을 기획하여 기획공연을 지속하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방문한 공연장은 로비에 안내원의 수가 훨씬 많아졌다는 것을 제외하곤 모든 것들이 코로나 이전과 다름없는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객석이 암전되고 막이 오른 김재덕의 무대는 생각보다 많이 바래져 있었다.

〈시나위〉로 시작된 공연은 높은 천장을 울리는 묵직한 저음으로 극장을 열기로 달구기 시작한다. 무대 오른쪽 구석에서 무용수는 온갖 세상의 언어를 섞어 놓은 듯한 지베리쉬(Jibberish)1 를 지껄이며 천천히 등장한다. 15분간 김재덕의 솔로로 진행되는 〈시나위〉는 무속 음악에 뿌리를 둔 즉흥 기악합주곡 〈시나위〉와 같은 양식으로 그의 즉흥적인 표정과 움직임은 이내 춤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작품이 된다. 하지만 그의 얼버무림 끝에 명확한 단어로 던져진 ‘버거킹’을 들었을 때, 그리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대표적인 동작을 닮은 춤사위를 보았을 때 이를 보고 웃는 관객 사이에서 나는 그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한국적 춤사위”, “현대적인 음악”, “대중적 감성”이 무대 위에서 하나의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맴도는 모습이었다. 내가 듣고 있는 그의 소리와 보고 있는 움직임의 어우러짐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은 어려웠다.

14년 전 같은 공연장에서 〈신성한 괴물들〉(2006)이라는 작품을 올린 영국의 안무가 아크람 칸(Akram khan 1974~)은 인도 전통 춤인 카탁(Kathak)과 현대무용을 결합한 안무 세계를 구축했다.2 그가 사용했던 음악 속 지베리쉬는 동작의 리듬과 명확하게 들어맞았고, 이 직접적인 관계 때문에 나는 그 둘의 어우러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목소리의 강약과 높낮이에 맞춰 팔의 움직임이 공간에 날카롭고 부드럽게 뻗어 나가는 표현이 이 둘의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한국 춤의 리듬이 인도 전통 춤에 비해 일정하지 않지만 〈시나위〉에서 지베리쉬가 대중적 감성과 한국적 춤사위를 연결시키는 무대 장치로 사용되었다면 나는 그의 수식어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했을까.

15분간의 쉬는 시간 이후 이어진 〈다크니스 품바〉는 〈시나위〉와 함께 작년 하반기에 CoMPAS 기획으로 공연이 예정되었으나 취소된 작품이다. 〈시나위〉는 2013년, 〈다크니스 품바〉는 2006년 초연작으로 그가 운영하는 현대무용단 ‘모던테이블’의 레퍼토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크니스 품바〉는 걸인들의 노래인 품바 타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하드 락과 판소리의 융합을 추구하는 작품이다.3 작곡한 노래를 직접 부르며 하모니카와 카주 연주를 하고 춤을 추는 안무가와 6명의 춤꾼, 1명의 소리꾼, 3명의 연주자 모두 남성으로 검정색 양복을 걸치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 LG아트센터

〈다크니스 품바〉 같은 경우 초연 이후 2019년에만 30회에 달하는 장기 공연을 하며 안무가 고유의 정체성을 담아 단체와 함께 변화하고 성장해 온 작품이다. 보통 무대 위에서 실현됐던 안무가 재공연 될 때 재현과 동시에 수정과 보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전의 안무를 그대로 재현하기엔 무대의 크기가 달라질 뿐 아니라 이 작품에 대한 안무가의 생각 또한 변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변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변주할까? 나는 〈다크니스 품바〉를 11년 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객석 맨 앞자리에서 만났었다. 당시엔 25분 길이의 작품이었고, 지금과 달리 여성 무용수도 포함하여 각자의 체형과 스타일도 다양했다. 같은 동작을 다 같이 수행할 때 무용수들의 차이를 드러내 다채로우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군무가 인상적이었다. 무용을 이제 막 시작한 학생으로서 무대에 감동하여 앞으로 내가 안무할 작품을 상상하며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극장을 나섰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지금의 무대에서 아쉬움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내 객석의 위치가 달라져서일까? 흘러간 시간 동안 나의 관점은 달라졌다. 반면 그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을까?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기획한 공연이 취소됐을 때 CoMPAS와 김재덕은 이 계기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편으론 일 년간 이 작품을 기다린 관객은 이 무대를 보고 어떤 인사말을 건넬 수 있을까.

나는 그의 멋있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감상하기보다는 그가 작품을 통해 던지는 질문에 나 자신을 빗대어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보고 싶었다. 그 질문이 극장을 나서고 일상으로 돌아가 며칠 동안 나에게 머물면서 나의 생각이 변화할 때 관객으로서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안무하고 작곡한 것을 무대 위에서 직접 춤을 추며 노래하는 것은 분명 그만의 독특한 가치이다. 이 가치 안에서 그가 유지할 요소와 변주할 부분은 무엇일까. 11년 전 터질 것 같던 에너지 옆에 흘러가는 시간들이 존재했을까. 수많은 해외 투어와 30회의 장기 공연 등 11년의 시간 동안 견고해진 뼈대 위에 그는 어떻게 근육을 덧붙였을까? 이 근육이 움직이며 나타나는 힘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도착할까? 형성된 신체가 만들어 낸 움직임은 무용수들의 각기 다른 생김새의 신체로 표현된다. 그가 듣는 음악과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며 발생하는 센세이션이 나머지 무용수들에 의해 표현될 때 무용수들의 차이는 어떻게 작용할까? 더 나아가 11년의 시간이 담긴 10명의 변화된 신체는 이 안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대로 고착되어 굳어져 갈까 혹은 매 순간 새롭게 변화하며 순환할까. 영원히 지속할 수도 있는 이 위기 속에 그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까?

글 서태리
1 뜻이 없는 소리, 즉 의미가 없는 문장을 마치 말하듯이 읊조리거나 중얼거리는 것 
2 오선명, 〈아크람 칸(Akram Khan)의 '컨템포러리 카탁'-프랑스 파리에서〉, 《춤》, 438호
3 김채현, 〈새 시대 춤 품바, 유례없는 춤 팬덤이 오고 있다〉, 《춤웹진》, 1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