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은 ‘타자’라는 다른 세계와 접촉하는 순간이다. 타자의 새로운 세계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세계를 믿어 본다면,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은 무한하게 넓어지게 된다. 서로의 세상을 나누며 알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경이로움과 존경, 상처와 따뜻함으로 일상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요즘같이 타자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는 시기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을 하게 된 지 세 학기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익숙하게 수업 시간에 맞춰 선생님이 보내 주신 줌(ZOOM) 링크를 타고 들어가 수업을 듣고 사각형 화면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웃음이 터지면 화면에서 그 친구가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현재로서 확인할 수 있는, 누군가 그곳에 존재한다는 지표이다.

거리 두기가 미덕이 된 지금, 물리적 접촉을 제한받고 있는 상황에서 타자는 어떻게 감각될 수 있을까? 타자와 접촉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타자의 세계를 믿을 수나 있는 것일까? 믿어 보겠다는 용기 자체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우리의 신체는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방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사실 싸이월드부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클럽하우스까지 자신과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나르시시즘 시대의 고독을 SNS를 통해 타자와의 관계로 채워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타자의 존재가 더더욱 절실해진 오늘날, 더욱더 깊어진 고독감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상호작용이 가능한 가상 현실의 기술을 보다 빠르게 확장시켰다. 현실에서 만나지 못한다면 물리적 접촉 없이도 어디든 갈 수 있는 가상 현실에서 만나 보자는 것이다. 그 사례 중 하나가 메타버스다.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와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뜻한다. 국내 메타버스 대표 플랫폼인 제페토는 얼굴 인식과 증강현실(AR), 3D 기술 등을 이용해 ‘3D 아바타’를 만들어 다른 이용자들과 소통하거나 다양한 가상 현실을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취미 활동, 업무, 생계 활동까지 그 영역은 무한하다. 가고 싶었던 남미에서 친구와 타코를 먹으며 셀카를 찍고, 몸치였던 내가 댄서가 되어 공연을 펼칠 수 있다. 상상하는 세계가 펼쳐지고, 어디든 갈 수 있으며 신체의 제약이 한계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실제로 네이버 신입사원 연수를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페토를 이용해 단체 옷을 맞춰 입고 미션을 수행하도록 한 뒤, 팀워크를 다질 수 있는 아이템을 나눠 주기도 했다. 메타버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셀카도 찍고 춤도 췄다면, 이제 우리는 고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을 적절하게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코로나로 인해 보다 빠르게 다가온 가상 현실에서 타자를 감각할 수 있는 접촉이 가능한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웃음을 참는 친구의 리액션을 확인하고 나도 참았던 웃음만큼 실제적으로 나의 신체에서 타자를 감각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까? 가상 현실에서 우리의 신체는 얼마나 확장될 수 있고,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세상을 확장할 수 있을지 질문하며 가상 세계로 접속해 보자. 현실에서 한곳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신체와는 달리, 가상 현실에선 어떤 곳이라도 제한 없이 돌아다니며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을까?

세계를 함께 창조하는 일
가상 공간에서 타자와 관계 맺기 위한 시도로 도착한 곳은 〈가상 정거장 (Virtual Station)〉이다. 공연, 전시 프로젝트 〈가상 정거장〉에 공공 이벤트로 참여했던 오영진의 〈에란겔: 다크 투어〉는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 메타버스에서 진행된다. 기존의 배틀 그라운드는 좁혀지는 자기장을 피해 한 명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 서로를 죽이며 싸움을 벌이는 게임이다. 그러나 〈에란겔: 다크 투어〉에서는 원주민(이경혁), 이주민(권보연), 이방인(이영준)의 각 세 인물이 초대된 관객(이하 퍼포머)을 인도하며 게임 공간을 돌아다닌다. 게임의 가상 공간에서 산책하는 퍼포머들과 이들의 상호작용이 소련 붕괴 후 버려진 동구권의 섬이라는 설정을 가진 에란겔의 가상 공간에서 맺는 타자와의 만남이다.

영화 〈배틀로얄〉(2000)은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영화로 섬에 중·고등학생을 몰아넣고 서로를 죽여 살아남는 한 명만을 보여 준다. 이 영화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일본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배틀 그라운드는 영화의 세계관을 그대로 게임에 옮겨 왔다. 〈에란겔: 다크 투어〉의 인물들과 퍼포머들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설정의 가상 공간에서 무기를 소지한 채로 서로를 만난다. 즉 가상 공간에서 특별한 이벤트로 관광을 위해 만났다고 하더라도 총을 실수로 쏘거나 동료 여행자들을 차로 치거나 수류탄을 사용할 위험에 처한다.

〈에란겔: 다크 투어〉에서 세 명의 인물과 초대된 퍼포머들은 게임이라는 가상 공간을 산책한다. 이들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더라도 서로를 죽이거나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있다. 원주민(이경혁), 이주민(권보연), 이방인(이영준)은 각각 폐허가 된 건물 배경에 퍼포머들을 모으고, 안내한다. 이들은 다크 투어1를 시도하며 폐허가 된 핵 발전소, 학교, 공장을 살피면서 그 의미를 짚어 본다. 세 명의 안내자와 퍼포머들은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의 설정을 전복하고 전투를 하지 않을 때 배틀 그라운드의 가상 공간이 어떤 의미로 바뀔 것인지 함께 만들어 간다.

또 다른 메타버스 동물의 숲에서 이주 온 이주민(권보연)은 체르노빌로 피해를 당한 학교를 배경으로 모인다. 게임에서 게임으로 혹은 현실에서 게임으로 이동한 것을 ‘이주했다’고 표현하며, 학교의 강당에서 자신이 살던 동물의 숲의 세계는 협력이 중요했고 평화로웠다고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기존 배틀 그라운드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현실 세계로 확장하여 살필 수 있는데, 현실 세계에서 이주 온 삼성동 주민(장병호)은 현실에서 고립되어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 그래픽 카드를 사재기하는 것이 마치 게임에서 아이템을 끊임없이 파밍(Farming)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이방인(이영준)이 소개하는 곳은 파괴된 원자력 발전소 건물이다. 그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것이 새로운 인간관의 주체성 획득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주체성의 획득은 가상 현실에서 성찰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의 규칙에서 새로운 인간 존재를 설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이방인(이영준)은 배틀 그라운드를 인간 실존에 관한 암묵적인 성찰의 장으로 확장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과 비판적인 시선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의 가상 공간은 다크 투어를 통해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감각과 동시에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타자의 존재를 감각하게 한다. 나를 제외하고 다 죽여야 했던 세계의 설정으로부터 퍼포머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관을 재창조한다. 즉 안내자들의 안내에 따라 비판과 성찰이 되었을 때, 그들이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 게임의 규칙을 위반하고 산책을 한다는 행위에 주목하면 새로운 관계의 실천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자기장이 마지막으로 좁혀지는 최종 집결지에서 함께 춤을 추며 연대의 뜻을 보여 준다. 이는 동료를 신뢰하여 최종 종착지에 와서 게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이들의 교류는 게임이 끝난 이후에도 가상 정거장 공식 홈페이지에 등록되어 있는 노션2을 통해 지속되었다. 시적이고 일회적이었던 만남을 지속해 보고자 하는 노력으로 퍼포머들은 산책을 하는 동안 찍었던 사진과 리뷰를 아카이브하기 시작한다. 게임에서 누군가를 죽이며 느꼈던 희열과는 달리 새로운 세계의 규칙을 창조함으로써 경험하는 서로의 존재를 감각하는 체험인 것이다.

가상과 현실에서 마주친 몸들에게
영화제에서 VR 영화를 볼 때 VR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 현실을 경험하는 것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마련된 자리에 앉아 누군가와 같은 VR 영화를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회전 의자에 앉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감상의 시간 동안 서로의 신체에 개입하는 것은 금기시되며, 헤드셋을 착용한 관객을 몰입하도록 두는 것이 예의다. 그런데 VR헤드셋을 착용하고 움직이는 나의 신체가 가상 현실 속에서 안무가 되고 그 관객의 움직임이 다음 관객의 움직임의 레퍼런스가 된다면 어떨까.

참여형 퍼포먼스와 가상 현실을 결합해 타자를 감각하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또 다른 경험으로 나아가는 권하윤의 신작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번째 시도〉는 이를 적용한 것이다. 권하윤의 이번 작업은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2021: 멀티버스〉에서 첫 번째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VR헤드셋을 착용하고 공간을 움직이는 관객의 ‘몸’이 가상 현실 속 안무의 일부가 된다. 또한 가상 현실을 체험하는 관객 옆에 헤드셋을 착용하지 않고 관객의 동작을 따라 하는 두 명의 퍼포머가 있다. 이 공간에선 네 명의 사람들과 이후의 관객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관객의 움직임을 관찰한 이후 다음 관객들은 그 동작들을 레퍼런스 삼아 참여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 시간차에서 오는 장면들이 소통 가능한 접점을 찾아내는 모멘텀”이라고 작품을 설명한다. VR 작품을 감상하는 것 외부에 또 하나의 퍼포먼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즉 헤드셋을 착용한 VR 작품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관객 간의 소통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가상 현실의 내부에서만 발생했던 관람 경험을 외부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확장시키는 시도다. 동시대 예술이 제안하는 시각성, 시간성, 신체성, 공간성 등을 실험해 보는 것이다. 현실의 공간과 가상 공간이 연장되는 교차점들을 찾아낸 이 작업은 ‘현실의 몸’에 주목하게 한다. 현실의 몸들이 만들어 낸 타자의 감각들 말이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 혼자 있는 몸이 가상 공간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 세계의 규칙을 만들기도 하고, 타자의 몸을 감각하는 현실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가상 공간과 현실이 만나는 곳에 다시 몸을 움직이는 타자가 존재하고 있다. 〈에란겔: 다크 투어〉와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번째 시도〉의 작업에서 기술은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데려갈 뿐만 아니라 다시금 서로를 인지하고 우리의 몸들을 감각하는 마주침을 발생시킨다. 이는 가상 공간을 통해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우리의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세계와 세계의 관계를 묶으며, 실체를 추상적인 관념 세계에서 구체적인 기술/예술 세계로 끌어내리려는 시도”3이다. 즉 가상 공간에서 우리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새로운 몸을 발견할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에란겔: 다크 투어〉에서 원주민(이경혁)이 지적했듯 기술적 인프라와 고사양 그래픽 카드에 접근할 수 있거나 없는 환경 자체에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계속해서 나를 증명해야 하기에 자기 자신과만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나르시시즘 시대이다. 타자와 진정으로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의 존재를 감각하고, 새로운 마주침의 세계를 상상하며
우리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졌을 때 다시 돌아보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관계를 맺었던 방법들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 용기, 내 기준대로 함부로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을 자제력,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 등이다. 이러한 방법들이 가상과 현실의 공간 속에서 계속해서 시도되고 있다. 우리의 신체가 가상 공간에서 접합하며 분절되고 다시 기계와 관계를 맺는 과정을 통해 새롭게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이 여전히 나 자신과만 관계를 맺는 나르시시즘이 아닐지는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가 사람들 간의 엄청난 소통을 가능케 했지만 그 소통의 과잉이 오히려 나의 행복을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됨으로써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기계와 관계 맺고 또다시 그 공간에서 타자와 관계 맺기를 시작한 우리는 나의 성공을 확인할 때만 필요한 타자가 아니라 함께 위로하고, 안부를 묻는 타자를 발견하고자 한다. 코로나로 인해 타자의 안녕을 응원하는 것이 물리적 접촉을 통한 세계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디지털 세계에서 더 안전하게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가상 현실과 현실 세계가 함께 교차하는 지점들에서 마주치는 몸을 발견하고 그 신체들이 하는 일을 감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실종되는 타자성을 다시금 인식해 타자를 온전히 느끼고 감당할 용기를 내어 보는 것은 타자와 만날 수 없는 현실에 처한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새롭게 접속한 세계에서 타자와의 마주침을 발견하고 지속해 보며 모두 안녕하기를 바란다.

글 김연주
1 다크 투어(Dark Tour)란 일반적 관광과 달리 학살이나 전쟁, 재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그 기억을 되새기고 교훈을 얻기 위한 여행을 말한다. 
2 https://www.notion.so/03-20-21- 14-00-15-00-2-4652d0e6c4724 38595a27e889dd55b70 
3 http://multi-vers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