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이나 건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의 구조를 이야기한다”1

모든 예술에는 생산과 재생산 수단에 의한 제약이 따른다. 건축 또한 건축 기술과 생산적 힘에 의해 그 형태와 내용이 발전해왔다. 건축사에서 근대와 현대의 시기를 구분할 때, 건축역사학자들은 현대 건축의 기원을 17세기 후반으로 추정한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비슷한 시기에 부상했으며 계몽주의 운동과도 그 시기적 맥락을 같이한다. 1747년 파리의 에콜 데 퐁제 쇼제(Ecoles des Ponts et Chaussees, 토목공과대학)의 창립을 시작으로 건축과 공학은 결정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한다.2 18세기에는 건축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인공 건축 재료인 철의 발명과 함께 전에 없던 기술적 변화가 잇달아 일어났다. 철은 증기 엔진 제작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18세기의 엔지니어들은 최초로 철을 구조 공법에 사용하며 산과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 도로, 운하 그리고 철도 기반 시설을 건설했다. 커다란 홀을 가진 시청, 아케이드, 기차역이 생기며 수평으로 확장된 파사드가 도시의 풍경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도큐먼츠프레스

폭이 넓은 강을 가로지르기 위한 철도 고가교의 건설 과정과 경험은 이러한 강철 구조물을 수직으로 세우기 위한 청사진이 되었다. 1889년 높이 300미터의 에펠탑이 프랑스 파리에 우뚝 섰다. 바람, 중력에 대한 재료의 저항력에 대한 기술 공학의 성취가 도시의 수직 축으로 입성하게 되었다. 19세기에 들어 강화 콘크리트의 발명과 더불어 미국 시카고에 철골 구조를 사용한 고층 건물3이 들어섰다. 정기적인 거주 또는 점거의 인력이 있다는 점에서 구조물(structure)과 구분되는 건물(building)이 탄생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높은 고층 건물을 뜻하는 마천루(skyscraper)가 들어서며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당대의 건축가와 엔지니어는 그들의 상상력과 기술력을 직조하여 새로운 형태를 도시로 불러들였다.

“ 중앙집중식 평면의 개념을
구조물로서 실체화한
르네상스 최초의 단독 건축물”
(파찌 체플)4

“ 수평축과 수직축의 성공적 통합한”
(빌라 로툰다)5

“ 이 탑의 구조로부터
외부 세계에 대한 이해가 변화”
(에펠탑)6

“ 극적인 형태의 구조적 제스처는
낭만적인 표현의 극치”
(낙수장)7

“ 기둥들이 이루는
다리 위에 통합된
몸체를 올린 조각 같은
이미지의 물질”
(시그램 빌딩)8


건축사에 기록된 찬란한 건축물의 소개는 이렇게 시작하기도 한다. 역사 서술의 규범이란 그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건축의 역사는 어떤 건축물을 기록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건축가 민현식은 건축과 건축의 역사에 대해 이러한 정의를 내린다. “건축은 힘의 흐름을 시각화한 힘의 다이어그램”이며 “건축의 역사는 힘이 어떤 통로로 흐르는가에 대한 당대의 해석이며 진화의 기록”9이라고.

힘의 여러 정의 가운데 건축학에서 다루는 힘이란 정지하고 있는 물체를 움직이게 하고, 또 움직이고 있는 물체의 속도를 변화시키거나 아주 정지시키는 작용을 뜻한다. 그러니까 건축에서 힘의 흐름이란 재료가 중력과 관계 맺는 방식을 의미한다. 건축의 여러 분야 가운데 힘과 가장 밀접한 영역은 구조다. 건축 구조는 힘의 질서를 형태로 구현한다. 달리 말해 구조는 건축의 형태를 발생시키고 결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사에 기술된 건축물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힘의 질서를 구축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더 높이, 더 길게, 더 가볍게』의 저자 박선우는 구조를 건물의 뼈대와 힘줄에 비유한다. 모두 잘 보이지 않는 신체기관이지만 분명히 존재하여 체형을 이루고 몸을 지탱하고 있다. 힘줄이 피부 위로 슬며시 드러나는 이가 있고 유독 툭 불거져 나오는 이도 있다. 그는 건축의 구조 역시 형태에 따라 완전히 감추어질 수도, 그 자체가 건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도큐먼츠프레스

박선우는 건물의 구조를 설계하는 건축가이자 건축 구조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육자다. 두 가지 직업적 정체성 가운데 이 책은 그가 1997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에서 구조 수업을 가르쳤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서 분류법에 따르면 이 책은 기술공학-건축구조와 대학교재-건축공학에 속한다.) 책의 목차는 구조 이해, 구조 역학, 구조 시스템, 구조 디자인, 기술 스튜디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건축과 1학년부터 5학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수업의 이름과 같다. 학생들과 함께 한 23년 간의 궤적을 살펴보면 학교 곳곳의 풍경이 떠오른다. 스쳐 지나가는 복도, 얼룩덜룩한 벽의 연습실, 잡목이 무성한 정원, 농구대와 폐자재가 놓인 빈터가 그의 수업에서 구조 실험의 무대가 된다. 학생들은 미술원 3층 옥상에서 달걀이 들어있는 구조물을 바닥으로 낙하시키며 구조적 안정성을 실험하고(1학년 〈구조 이해〉), 미음자 형태의 미술원 건물 중앙정원의 이편과 저편을 보행교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고안하며(3학년 〈구조 시스템〉), 과거 폐기물 적치장으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교내 유휴지로 남아있는 장소를 공공시설로 설계해보는(4학년 〈구조 디자인〉) 과제를 해야 한다.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인 학교를 대상지로 하여 이에 적합한 구조 시스템과 디테일10을 연구하는 것이 수업의 목표다.

이러한 목표를 가진 그의 수업은 모형으로 시작해서 모형으로 완성된다. 직접 구조물을 만들어보며 힘의 흐름을 느끼고 균형을 탐구하기 위해서다. 건축 모형의 경우 제작의 의도에 따라 실제 대상이 되는 건축물의 비율을 변용하여 만든다. 건축물 전체의 힘의 질서가 어떻게 형태화 되었는지 보기 위한 1:100비율의 모형부터 접합부11 디테일을 보기 위한 1:5비율의 모형까지, 하나의 수업에서도 다양한 비율을 가진 여러 개의 모형을 정성껏 만들어야 한다. 그의 수업을 거처간 수많은 학생들이 만든 모형이 지면의 대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연구실 역시 학생이 만든 구조물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더 높게, 더 길게, 더 가볍게’ 구현했는지에 대한 23년 간의 기록이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힘의 균형과 질서를 탐구한 교육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모멘트(moment)의 첫 번째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특정한 ‘순간’, ‘때’이다. 그리고 건축 구조 수업을 비롯한 물리학에서 모멘트는 ‘회전하는 순간의 힘’을 말하기도 한다. 이제 그는 교직 생활을 매듭짓고 자신의 건축 세계에 몰두하는 시기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 시간의 모멘트를 말미암아 도시 곳곳에서 그가 구현한 힘의 형태들을 마주치길 기대한다. 더 높게, 더 길게, 더 가볍게!

글 김다은
1 박선우, 『더 높게, 더 길게, 더 가볍게 —건축 구조 디자인을 위한 교육』, 도큐먼츠프레스, 2020, 47쪽.
2 케네스 프램튼, 『현대건축: 비판적 역사』, 마티, 2017, 9쪽.
3 1884년 미국 시카고의 주택 보험 빌딩(Home Insurance Building)을 말한다. 철골 구조로 지어진 42미터의 이 건물에서 사용된 설계 구조는 향후 몇 년간 고층 건물 구조설계의 표준이 되었다. 이후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등의 고층 건물이 들어서며 대도심의 마천루 시대가 도래했다.
4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이탈리아 피렌체, 1443
5 안드레아 팔라디오, 이탈리아 비첸자, 1566
6 귀스타브 에펠, 프랑스 파리, 1889
7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국 펜실베니아, 1936
8 미스 반 데어 로에, 미국 뉴욕, 1958
9 박선우, 같은 책, 51쪽.
10 저자는 건축에서의 디테일은 조인트, 단열재와 콘크리트 슬래브와 같은 상세 구조 및 이를 그려낸 단면도 등과 같이 건축 세부를 아우른다고 설명한다.
11 건축에서 통용되는 접합부란 부재와 부재가 연결되는 부분을 뜻한다. 부재는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요소가 되는 재료를 부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