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면 매년 빠지지 않고 치르는 행사가 있다. 입학식과 졸업식.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경우 졸업식, 즉 학위수여식을 2월 초중순에, 입학식은 3월에 가까운 2월 말에 치르고 있다. 올해는 2월 19일에 학위수여식을, 2월 26일에 입학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여전히 우리 생활의 위협으로 남아 있는 코로나19의 유행 때문이다. “그래도 봄은 온다”는 올해 입학식의 주제는 이런 변화를 너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는 뜻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봄은 수많은 시와 소설에서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계절로 묘사된다. 겨우내 가지를 앙상하게 비워 두던 나무들은 푸른 잎을 틔우고, 우리는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벚꽃잎을 밟으면서 봄이 되었음을 안다. 그러나 봄이 ‘온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2월 하순에서 3월 초순은 완연한 봄이라기보다 아직 봄을 기다리는 시기, 겨울과 봄 사이에 있는 시기다. 코로나 이후의 두 번째 봄을 기다리는 이 사이에서 사람들은 설렘과 동시에 이것이 우리가 알던 봄과 같을지 잘 알 수 없다는 불안을 함께 느낄 것이다.
돌아보자면 작년 봄에도 비슷한 불안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이라는 급작스러운 상황을 맞으면서 개강을 미루게 된 것은 물론이고, 타교와의 교류수학 제도, 해외 대학과의 교환학생 제도부터 지역 주민과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 등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다양한 대외 교류 사업들이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교환학생 중 일부는 파견이 미루어지거나 취소되었고, 실기 교육 프로그램은 대부분 중단되고 이론 교육으로 대체되었다. 그간 교외에 개방해 왔던 교내의 공연이나 전시도 취소되거나 그 규모를 축소해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코로나 이후 우리는 단절의 벽 앞에 멈춰 선 것 같다. 예술을 향유함에 있어 감각은 필수불가결 요소인데, 비대면, 즉 ‘접촉하지 않음’이 기본값이 된 현재 상황에서 우리의 감각은 봉쇄되어 쇠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극장의 객석에 앉아 관람하는 공연과 유튜브로 시청하는 공연 영상은 유사해 보이지만 그것이 제공하는 경험은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소리에 더욱 예민해지는 것처럼, 우리는 오히려 여기에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 상황에 대응하는 한예종의 몇 가지 대표 사업을 소개한다.
류연수 <우리아빠 환갑잔치>
조경호 <301 401>
임성혁 <퇴근길>
경연과 공연 사이
작년 11월, 누리 알림마당에 ‘K-Arts Audition’의 모집공고가 게시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공연전시센터와 전통예술원, 음악원의 공동 주최로 해당 원의 예술사 및 전문사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진행된 이 오디션은 11월 말 1차 심사를 거친 뒤, 협약을 맺은 네이버TV와 VLive를 통해 본선 무대를 생중계했다. 전통예술원 본선은 12월 21일에, 음악원 본선은12월 22일에 치러졌다.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도 처음 시도된 것이지만 학교 측에서 공연이나 인터뷰 등이 아닌 학생 지원 프로그램 선발 과정을 생중계로 공개한 것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적으로는 비공개로 치러지는 오디션을 온라인 중계를 통해 하나의 공연으로 만들면서 재학생들의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식을 만든 셈이다. 오디션에서 최종 선정된 우수자들에게는 외부 극장 대관을 통한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 넓은 범위의 활동 예산을 지원하는데, 이중 외부 공연에 해당하는 ‘올해의 K-Arts Young Artist’가 올해 8월에 예정되어 있다. 본선 생중계 영상은 네이버TV ‘한예종 예술극장’ 채널에서 다시보기를 제공한다.
옛것과 새것 사이
위의 ‘K-Arts Audition’ 전통예술원 본선 생중계는 VLive에서 2천 명 이상이 시청하는 등 관심을 모았다. 전통예술원은 이러한 관심과 다년간 이어지고 있는 한류의 인기를 동력으로 해외 진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예술한류’라는 이름으로 준비 중인 이 사업의 주요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세계 5대륙에 위치한 해외 주요 예술대학 및 기관과 MOU를 체결하여 이를 바탕으로 상호 교류 연주회 및 공동 학술·창작 워크숍을 진행하고, 전통예술원 출신 예술가 및 창작자들의 해외 진출 지원과 이를 위한 연구개발을 지원하며, 전통예술의 위상을 알리는 문화교육 강좌를 운영하는 것이다. 한류에 새로운 물결을 더할 신진 예술가 발굴뿐 아니라 졸업생들로 구성된 기성 공연 단체의 지원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어서 주로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종전보다 폭 넓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월 중 관련 홈페이지를 오픈 예정이다.
축소와 확대 사이
한편 최근 명칭을 변경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아트앤테크놀로지랩(구 미디어콘텐츠센터, 이하 AT랩)은 지난 2월 15일부터 21일까지 네이버TV에서 〈숨(호흡)〉이라는 이름으로 첫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했다. 주제는 작년 한 해를 거쳐 필수품이 된 마스크에서 착안한 것이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 의식조차 하지 않던 “호흡의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있”듯이, 새삼스레 느끼는 “익숙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담고자 했다.1 상영작은 AT랩이 배급을 담당하는 교내 제작 단편 영화들로, 영상원 영상이론과 재학생들로 구성된 상영기획팀이 AT랩과의 협업을 통해 주제에서 이어지는 네 개의 섹션을 프로그래밍했다.
특기할 점은 해당 영화제가 본래 지역 순회 상영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당초에는 서울 소재 극장과 지방 소재 극장 총 5곳과 계약하여 2020년 봄에서 여름 사이에 영화제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일정을 연기하다가 온라인 상영으로 전환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를 사업의 축소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AT랩의 기관명에 꼭 맞는 출발이기도 하고, 온라인에는 지리적 경계가 없으니 지역 순회 상영에 비해 잠재 관객층을 확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심민희 <해수탕 여인>
박제범 <안녕의 온도>
허승화 <아홉수>
끝과 시작 사이
무엇보다도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예술 전문 교육기관이다. 특수대학교로서 고등교육도 실시하지만, 부설기관인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그 예비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은 서울특별시에 본원을 두고 서울에서만 수업을 해오다가, 작년에 세종특별자치시와 경상남도 통영시를 협력기관으로 선정하여 해당 지역에서 교육과정을 시범 운영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부터는 세종캠퍼스와 통영캠퍼스를 정식으로 설치하여 예술영재 교육과정의 대상 지역을 확대 운영한다. 이 사업은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측에서 교육을 제공하고 각 지자체에서 공간을 제공하는 상호 협력 방식으로,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공 공간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지역 재생 사업의 성격도 띠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뜻밖의 성과 중 하나로 예술의 온라인화를 통한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를 꼽을 수 있는데,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경우 코로나가 계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오프라인까지 그 효과를 확대한 셈이다
글을 시작하며 ‘단절의 벽’을 언급했다. 다소 뜬금없지만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입학을 떠올려 보면 좋겠다. 해리는 호그와트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으로 향하는데, 그가 받아 든 티켓에는 9와 ¾ 승강장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킹스크로스 역에는 9번 승강장과 10번 승강장이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해리의 눈앞에 위즐리 가족이 나타나고, 프레드와 조지가 9번 승강장과 10번 승강장 사이의 벽으로 뛰어든다. 9와 ¾ 승강장은 그 숫자 그대로 9번 승강장과 10번 승강장 사이 마법 공간에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막힌 벽에 돌파구를 뚫어 그 사이로 뛰어드는 것이다. 앞에 벽이 있으니 잠깐 멈추되, 그 멈춤을 이제까지의 여정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숨을 고를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고 익숙한 세계 사이, 알려지지 않은 세계로 뛰어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다양한 시도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이룬 성과들이 멈춰 선 상태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벽을 뛰어넘을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