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성

《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1채널 비디오, 1,969장의 움직이는 그림, 6분 32초 루프, 2021

처음 가보는 길이다. 바다 냄새가 났다.
바람은 부드러웠고 고요했다.
하늘은 연 파란색, 회색,
코랄색, 연분홍 그 사이였다.
깊은 바다를 향해 일자로 나있는
부둣가를 따라서 걸었다.
부두의 높이만큼 멀리 볼 수 있었다.
바닷물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쭈-욱 쭈-욱 밀려가고 밀려가는 파도를 보았다.
점점 어두워져갔고 바람도 조금 더 불었다.
천천히 더 짙은 회색, 짙은 파랑,
짙은 다홍색으로 변했다.
부둣가 끝자락에 닿을 즈음,
서핑 보드 위에 앉아있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잔잔한 물결을 타며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파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 2016년 4월 13일 수요일.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OHP 필름 위에 오일 파스텔, 각 21 x 29.7cm (25점), 2021 (사진 전명은)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1채널 비디오, 1,969장의 움직이는 그림, 6분 32초 루프, 2021

전시장의 한쪽 벽면 가득 나열된 OHP 필름 드로잉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의 제작 과정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우성이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장소,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풍경, 직접 대면하고 싶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기’라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극복하는 방식과도 같다.
한편 두산갤러리의 윈도우 갤러리 유리 위에 그려진 드로잉은 전시가 끝나면 사라지는 일시적인 그림이자, 오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우성의 소통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이우성이 제시하는 바다의 모습이 익숙하거나 평범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멈추지않는 바다의 이미지는 지금 작가가 우리와 같이 보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자 지극히 사적이고 특별한 순간이다. 그림의 소재이자 동기였던 ‘일상’을 통째로 잃어버린 이우성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그가 대적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다시 그림으로 정면돌파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두산갤러리 전시소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