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봄이 시작될 줄은 몰랐습니다. 회의를 할 때마다 수첩에 올해의 연도를 잘못 쓰길 수십 번, 잘못 썼는지조차 모른 채 지나가기도 여러 번, 그렇게 코로나 시대 두 번째 봄이 온 것이지요. 우리는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이전과 다른 환경에서 낯선 예술의 매체로 이동하느라 바빴습니다. 새로운 매체로 예술을 발신하기 위해 관심 없던 기기와 만나 사용법을 익히고, 보다 나은 방안을 찾느라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요? 곳곳에서 열리는 문화포럼과 예술심포지엄에서는 경쟁하듯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는데,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 ‘사이’에서 틈새를 들여다보며 예술의 가능성을 봅니다. 의미있는 변화의 징후들을 포착하다 보면 희망이 보일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이’들이 보입니다. 예술과 기술 사이, 현실과 가상 사이, 옛것과 새것 사이, 유한함과 무한함 사이, 지속과 사라짐 사이, 생존과 예술 사이... 만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 관객과의 만남을 간절히 기다리는 예술가들은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실제 공간에서의 관객과 퍼포머의 위치와 행동이 컴퓨터로 생성된 디지털 가상현실에 반영되어 음악, 무용, 미술, 영상 등 다양한 예술의 영역이 만나는 VR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경험하지 않은 재난의 재현, 굴절된 현실과의 괴리감을 드러내는 전시는 지금의 현실과 맞닿아 규모는 아주 작지만 큰 울림을 안겼습니다. <일시거주>, <항해>, <생존>, <숨(호흡)> 등 ‘전례 없음’을 아쉬워하며 새로운 전례를 만든 온라인 졸업작품 발표회의 성과도 주목할 만합니다. 변화에 최적화하려는 예술가의 수용력과 상상력이 집약되어 오히려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였습니다. 예술가들의 지나간 삶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며 유적 존재이나 영원히 사는 희열을 맛보게 합니다. 코로나 덕분에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국민 성악가와 평소 지면에 모시기 어려운 소설가, 직관적이고 분석적인 눈으로 공공건축의 방향을 제시하는 건축가를 마음놓고 인터뷰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또한 예술가를 위한 사회적 제도도 강화됩니다. 예술인고용보험 시행으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인정받고 법적·제도적 틀 안에서 예술가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디딤돌이 놓아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겨울’, ‘이미 봄’, 어디쯤에 서 있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캠퍼스를 누비며 목련과 개나리가 이미 피었음을, 진달래의 봉오리가 터지고 있음을, 벚꽃나무에 물이 올라 있음을 목도합니다. 봄비를 맞으며 사이사이 초록 새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정체되지 않기 위해 자신과 싸우며 과감히 도전한 시간으로 지금을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