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와 네이버TV를 보고 있자니, 무대를 잃은 예술가들이 난민이 되어 온라인 속으로 망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은 현실과 가상, 그 ‘사이’다. 공연예술계에 신조어로 등장한 ‘무관중 생중계’도 이제 정식적인 공연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극장과 집 ‘사이’에서 오늘의 예술을 관람하고 소비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나는 발터 벤야민(1892~1940)이 떠올랐다. 그는 오랜 역사를 지배한 회화의 끝과 사진의 시작, 그 ‘사이’에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의 운명을 점쳤던 사상가였다. 그는 사진의 복제기술을 통해 작품은 특정공간을 넘어 속세로 퍼져나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미술관이라는 미학적 성소(聖所)에 놓인 특정 작품이, 새로 등장하고 발전을 거듭하는 사진 기술을 통해 미술관 밖으로 나가 일상에 놓인다는 것이다. 예술의 민주화는 이러한 복제기술에 힘입어 진화해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루브르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모나리자의 미소를 만날 수 있고, 베를린에 가지 않아도 카라얀이 지휘한 연주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술작품은 아우라를 상실한다고 말한 이도 벤야민이었다.
지금 우리의 상황도 이와 같을 것이다. 저녁 7시 즈음이 되면 공연장의 공연이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배달된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소수만 즐기던 예술이 공공재로 전환되는 것 같아 긍정적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뭔지 모르게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아우라의 상실이 두렵다. 사실 우리는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 공연장과 미술관이라는, 세상과 단절된 탈(脫)세속적 공간에 스스로를 감금시킨다. 그 감금, 몸의 속박 끝에 우리가 얻는 것은 ‘감동’이라는 감성적 보상금이다. 이러한 무관중 생중계 같은 공연 형식이 안착되기보다 다만 스쳐가는 임시적 대안이길 바랄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사상가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건 야만이다”라고 말한 아도르노(1903~1969)이다. 예술이란 시대의 아픔이 담겨 있는 가슴팍에 들이댔을 적에, 그 소리를 듣게 해주는 청진기와도 같다. 그림에는 아픔이 그려져 있고, 음악에는 음표로 치환된 비명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을 통해 참상과 아픔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그저 힐링, 위안, 위로와 동의어로 생각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스스로 예술이 지닌 다양한 기능을 축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년 여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헬가 라블 슈타들러 대표와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모차르트와 카라얀의 고향 잘츠부르크는 100주년의 생일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졌다. 진행될 축제와 참혹한 현실, 그 ‘사이’에서 많은 이들이 축제의 진행 여부를 점쳤다. 하지만 축제 측은 헬가 대표의 뜻과 함께 전진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유럽 전역이 폐허로 변했던 1914~1918년, 군주제가 사라지고 제국이 무너졌으며, 수백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페스티벌을 창설한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는 이 축제를 통해 전쟁의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했다. 나 또한 예술을 일상생활을 위한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삶의 의미로 보기 때문에 이러한 축제의 정신에 따라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싶었다.” 축제란 여흥만을 일삼는 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돌아보고 전쟁과 고통으로 흐트러진 삶의 질서를 잡기 위한 사유의 장이라는 것이다. 전후(戰後)의 고통 속에 태어난 축제이기에, 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지금의 고통과 함께 간다는 것이다.
얻는 것이 ‘기술’일 때에 잃어버리는 것은 ‘예술’일 수 있고, 힐링의 기능으로만 예술을 대할 때에 우리는 예술이 지닌 보다 넓은 의미와 기능을 외면하게 된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코로나가 만든 여러 갈래와 길목 ‘사이’에서 오늘의 예술에 대해 진지하고 입체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