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방」으로 서늘한 문체와 서스펜스를 작품에 녹여내며 단단하게 등장한 강화길은 현재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다. 각종 매체에서 각광받는 ‘로맨스릴러’ 장르의 주역이기도 하며, 여성-퀴어-폭력의 재현 문제에서 빠짐없이 논의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 전문사를 졸업하고 지면과 강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강화길 작가를 만났다.
소설적 재능을 언제 발견했는지 계기가 궁금하다.
그냥 소설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막연하게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냥 글을 쓰고 싶었다. 표현의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꽤 용기가 필요했다. 그저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 현실적인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으니까.
첫 번째 단편집 『괜찮은 사람』과 두 번째 장편소설 『다른 사람』처럼 ‘사람’ 연작에서 드러나는 알레고리가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 장편을 쓰던 중, 단편 청탁이 들어왔다. 그때는 연작을 쓰겠다는 방향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미 「벌레들」과 「괜찮은 사람」, 「니꼴라 유치원」을 썼지만, 이게 연작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수」를 쓰면서 어떤 문제의식이 잡혀 나가는 걸 느꼈다. 거기서 알레고리가 만들어진 것 같다. 세계관을 확장하며 여성의 내면을 깊게 쓰는 것. 그런 작업에 크게 관심이 생겼다.
86년생 밀레니얼 세대의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있다면? 더불어 최근 90년대생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생겨난 문학적 경향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이런 흐름에 둔감한 편이다. 그래서 내가 밀레니얼 세대로 불린다는 걸 꽤 최근에 알았다. 세대론적 비평감수성, 세대론적인 감각은 분명 내재해 있겠지만, 결국은 결과적으로 해석되는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런 걸 분석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90년대생 작가들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그들을 묶어서 읽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작가들의 개별적인 작업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 페미’로 호명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작품 대다수가 페미니즘-퀴어 서사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이 출간되면 소개할 수 있는 프레임이 필요하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건 작품이 시대와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내 작품에는 당연히 페미니즘적 성격이 있다. 하지만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은 늘 있어왔는데, 지금 세대만 묶어서 영 페미라고 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앞선 질문에 대한 대답과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세대, 흐름을 묶어서 보는 건 분명 중요하지만, 그게 그들을 가두는 한계가 되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메시지가 명확하다”라는 건 잘 모르겠다. 어떤 분들은 너무 모호하다고 하시던데. (웃음)
Ⓒ문학동네
강화길 소설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비린내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 컴컴한 비린내의 정체를 추적하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
학창시절의 어떤 경험이 근원인 것 같다. 하굣길에 하천이 있었다.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길이었다. 그 냄새가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다. 엄마는 그 길이 위험하다며 걸어오지 말라고 했다. 호수 이미지를 만들 때, 학창시절의 하천 이미지가 내게 강렬하게 남아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항상 쓰기 전에는 모른다. 쓰면서 안다. 내가 그런 걸 두려워했다는 것을. 당시의 분위기, 걷던 길, 어렴풋한 유치원의 기억같은 것들이 쓰면서 감각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 같다.
강화길의 소설에는 서늘한 서스펜스가 있다.
서스펜스를 추구하니까. (웃음) 공포와 긴장. 이런 감각을 특별한 곳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늘 현실에 있는 것 같다. 처음 자취방을 구했을 때 일이다. 친구가 우리 집으로 오는 길이 무섭다고 했다.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나는 몰랐는데, 그 이후로 밤에 이어폰을 끼고 걷기가 꺼려지더라.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왜 공포를 느낄까. 나는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다. 내 일상을 지키고 싶은데, 어떤 균열이 일어나고 뭔가 파괴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무서움을 느끼지 않나. 그리고 나는 죽은 사람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다. 죽은 사람의 원한은 결국 산 사람의 원한이라고 생각한다. 해소되지 못한 원한이 남는 것이니까. 소설을 쓸 때마다 이 화자에게 가장 무서운 건 뭘까, 이런 걸 늘 생각한다. 예를 들면, 친구가 린치를 당했고, 주변 모두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상황. (「호수-다른 사람」) 그런 상황에서 덩치도 크고 좋아하지 않던 사람과 단둘이 길을 걸어야 한다면?
특히 「음복」은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소재나 주제 측면에서 수많은 독자들, 특히 여성 독자들을 포용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음복」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줄 몰랐다. 그게 좀 씁쓸하더라. 게다가 정우를 그렇게 미워할 줄도 몰랐다. (웃음)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그 소설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음복」을 쓸 때 균형 감각에 많이 신경 썼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미움을 받거나 지지를 받는다면, 내가 쓰려는 이야기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소설의 모든 인물들에게 이유가 다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그 입장들을 다 이해할 수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은 세나에게 이입할 수밖에 없는 것 같긴 하다. 아마 제 3자로 그려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타인을 보면서 나를 보게 되니까.
여성으로 산다는 것, 그 괴로운 일상을 소설로 재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작업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작업은 늘 힘들다. 사실 소설 쓰는 것 자체가 힘들다. 학교 다닐 때는 김경욱 선생님이 공장장이라고 놀릴 정도로 과제도 뚝딱 해내고 그랬다. “이거 써야겠다” 하면 바로 쓰고 버리고 그랬다. 겁이 없고 거침없던 시기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알았다. 소설 쓰는 게 어렵다는 것을. 세계관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만큼 욕심을 내고,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한계에 도전하는 게 힘든 것 같다. 남들이 모르고 나만 아는 것이라 더 힘들다. 쓰다가 슬쩍 발을 빼고 싶어진달까. 여기서 포기한다고 누가 알겠어? 그 순간을 마주칠 때 가장 힘들다. 나 자신을 견뎌야 하니까.
최근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다룬 작품들이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재현한다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폭력과 재현의 문제에 당도하는 것이다.
글쎄. 재현의 문제에 한계가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이 나쁜 작품인가? 내가 읽고 싶은 게 없다고 나쁜 작품일까? 내가 보고 싶은 게 없다고 이상한 작품일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기는 한다. 결국,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재현 자체보다 재현 불가능성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소설은 애초부터 내가 선택하고 배제하면서 가공한 것이지 않은가. 시간이 갈수록 더 그렇게 된다. 예전에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배제한 것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한다. 왜 이것을 떨쳐냈을까? 결국 배제한 것을 다음에 또 쓰게 되더라.
등단작 「방」은 여성서사이면서 퀴어서사로 주목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소재는 비주류였다고 생각한다. 용기도 필요하셨을 것 같다.
「방」은 졸업 작품이었는데...... 졸업 작품 일자에 못 맞췄다. 많이 고쳤다. 이 구도를 진짜 많이 고민했고. 굉장히 갈팡질팡했다. 중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인물을 이해하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수연과 재인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확신을 얻자, 소설이 빠르게 고쳐졌다. 그때의 희열이 지금도 남아 있다. 특별히 어떤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뭔가를 얻기 위해 쓴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수연과 재인을 알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쓰고 싶은 걸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다.
평소 공포 소설이나 추리 소설을 자주 읽는지 궁금하다. 강화길 특유의 오싹함을 주는 기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를 좋아했다. 데니스 루헤인, 레이몬드 챈들러가 쓴 하드보일드 소설도 좋아한다. 루스 렌들, 마가렛 밀러, 길리언 플린 등도 좋아하고 많이 찾아 읽는다. 특별히 내 스타일을 찾기 위해서 읽었던 건 아니고, 그냥 좋아해서 읽었다. 그런데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걸 쓰게 되더라. 공포영화도 좋아하는데 최신영화보다는 <주온>이나 <링>, <엑소시스트> 같은 옛날 영화를 좋아한다.
소설가뿐 아니라 다양한 공연전시 분야의 예술가들, 후배들에게 작가로서 주실 팁이 있으시다면?
나도 배우는 중이라서...... (웃음) 내가 내 작품을 제일 아껴야 한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합평 한 번 하고 나면 곪아 터지고 서럽지 않나. 사실 자기 작품을 아끼는 게 쉽지 않다. 지금 나도 그렇다. 그런데 학교 다닐 때는 오죽하겠나. 작품은 당연히 미숙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미숙함에만 신경을 쓰면,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걸 쓸 수 없는 것 같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가 나를 아껴야 한다. 솔직히, 학교 다닐 때 나는 그걸 못했다. 그때로 돌아가면 나를 좀 아끼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