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현상〉은 2000년대 초반의 광고와 뉴스 푸티지로 시작된다. 요요 붐이 일었던 시대다. 이마가 드러나도록 캡을 돌려 쓴 아이들의 손가락엔 저마다의 요요 줄이 끼워져 있다. 영화가 따라가는 다섯 인물인 윤종기, 곽동건, 이동훈, 문현웅, 이대열 또한 그와 같은 요요 키즈에 속했다. 이들은 소모임에 참석해 얼굴을 알리고 요요경연대회의 챔피언 자리를 석권하는 데서 나아가 직접 팀을 짜서 거리 공연을 기획하기까지 한다. 팀 ‘요요현상’의 탄생이다.

이대열이 주최가 되어 만든 요요공연 팀 요요현상은 2011년 고두현 감독의 카메라와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부터 이른바 ‘아름다운 마무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상태였다. 요요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사실을 거듭 입 밖에 내는 곽동건과 이동훈은 영국 에든버러에서 개최되는 프린지 페스티벌 참여를 마지막으로 팀 활동을 접고 생계전선에 뛰어들겠다고 다짐한 상태다. 문현웅과 이대열의 생각은 다르다. 두 사람은 아직 요요로 공연을 더 해보고 싶고,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윤종기는 여타의 멤버들과는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하고 있다. 윤종기에게 요요는 활동이고 장기이기 이전에 완구 산업의 일부다. 윤종기는 누구보다도 요요를 잘 다루고 제대로 이해하는 자신이야말로 요요 산업계의 선봉자가 될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요요현상〉은 한때 같은 꿈을 꾸었으나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된 다섯 사람의 궤적을 8년에 거쳐 좇는다. 영화는 윤종기가 사업상의 고저를 겪으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모습과 마냥 말갛던 곽동건의 표정이 투쟁자의 그것으로 단단해져가는 과정, 팀 요요현상에 잔류해 함께 공연하던 문현웅과 이대열이 요요와 인형극이라는 각자 다른 분야의 공연예술인으로 갈라지게 된 사정을 보여주며, 요요공연이 가져다주는 삶의 희열과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계노동 중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이동훈의 마음고생 또한 담아낸다.

그중 이동훈은 현대사회인들이 심적으로 이입하기에 가장 용이한 인물로 그려진다. 칼 마르크스는 『경제학-철학 수고』(1844)에서 노동을 인간만의 고유한 선택적 실현으로 정의한 바 있다. 마르크스가 바라본 노동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유적(類的) 존재인 인간의 보편성을 발현시키기 위한 자유롭고 의식적인 활동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간은 많은 경우 오직 생존을 목적으로 노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노동자의 활동은 자기 활동이 아니다. 노동자의 활동은 타인에게 속해 있고, 노동자 자신의 상실인 것이다.”2 마찬가지로, 동훈은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면서도 직장을 섣불리 그만둘 수는 없다는 점을 안다. 동훈의 딜레마는 〈요요현상〉에서 유독 이질감이 느껴지는 한 씬을 만들어낸다. 원룸 매트리스 위에 잠든 동훈과 빌딩 숲 앞에서 와이셔츠 차림으로 요요를 하는 동훈의 모습이 교차되어 나타나는 장면이다. 바닥에 가깝게 고정된 카메라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이 두 개의 쇼트가 동훈의 꿈과 현실을 오르내리는 장면이라는 추론에 확신을 보탠다. 해당 씬은 동훈이 휴대폰 알람에 얼굴을 움찔거리기 전까지 그의 전의식적인 소망을 만천하에 공지하기라도 하는 양 계속된다. 어쩌면 〈요요현상〉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동훈과 동건, 다시 말해 요요를 경제‘활동’의 일부나 예술‘노동’과 같은 일과로 지속하지 않는 두 사람이 어떻게 제시되고 있는지, 그로써 이 영화가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일 게다.

위에서 말한 씬이 동훈의 꿈-소망의 반영이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다큐멘터리 이론계의 거장 빌 니콜스의 대전제를 토대로 한 사분면 이론을 영화의 장면 분석에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빌 니콜스에 따르면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적)소망-성취를 지향하는 힘과 사회적 재현이라는 이질적 벡터의 합력’이다. 소망-성취의 벡터와 현실원칙의 벡터 이외에도 진실의 축(x)과 허위의 축(y)이 있다. 진실과 허위는 다큐멘터리의 특정 장면이 인물이 처한 상황에 내재한 차이와 모순을 드러내는지, 혹은 봉합하고 은폐하는지에 따라 판별된다. 이렇게 보았을 때 다큐멘터리는 단일평면이 아니라 소망성취-진실, 소망성취-허위, 현실원칙-진실, 현실원칙-허위라는 사차원의 구조를 갖추게 되는 셈이며, 네 가지의 벡터가 만들어내는 공간 내의 4개 분면에 걸쳐 존재하게 된다.”3

4개의 분면 중 곽동건이 위치할 영역은 명료하다. 본인이 요요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온 동건의 인터뷰는 처음부터 현실원칙의 분면에 자리해왔다. 동건이 현실원칙-진실과 현실원칙-허위의 두 분면 중 확고하게 진실의 방향으로 좌표를 이동시키게 된 계기는 요요가 아닌 투쟁을 통해서다. 동건은 언론비리의 모순에 개탄한 뒤, 사내에 대자보로 반성문을 써 붙이고 파업 현장에 동참하는 등 사명감을 가진 언론인으로 거듭난다. 현실적인 노동조건의 개선과 자아의 실현을 일치시켜 사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후반 동건의 발언들은 소망-성취의 양상을 띠게 된다. 그렇다면 이동훈은 어떠한가? 앞서 언급했던 동훈의 꿈 장면은 소망-성취의 욕구와 허위의 비율이 함께 높다는 점에서 4사분면에 해당한다. 그러나 동훈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원칙을 직시하고 있기도 하므로 현실원칙-진실의 1사분면에도 좌표를 찍고 있다. 각각의 좌표를 이어보면 원점을 가로지르는 대각선이 만들어진다. 주말마다 요요 공연을 병행하는 직장인이란 극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아슬아슬한 ‘꿈’이 맞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의 동훈은 소망성취-허위 분면과 현실원칙-진실 분면의 간극을 줄타기하는 대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요 활동을 일과의 일부로 끼워 넣는 보다 균형 잡힌 방식을 선택한다. 직장이 오히려 요요를 손에서 놓지 않도록 만들어준 게 아닐까 싶다는 영화 말미의 대사에서 관객은 동훈이 지금까지 찍고 건너왔을 무수한 선과 점의 개수를 가늠해보게 된다. 동훈은 요요를 자아실현의 수단만이 아니라 애착을 느끼는 활동 그 자체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동건은 노동을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활동으로 인식한 뒤 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반복 실행되는 꿈의 평야에 갇힌 와중에도 점은 이동했고 선은 뻗어나가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장의 지표이자 영화가 궁극적으로 재현해내고자 한 인간의 고유한 본성,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엄이다. 루프에서 나온 사람, 나오지 않은 사람, 그 안에서 길을 찾는 사람, 루프 밖을 내다보는 사람, 심지어 루프를 설계하고 싶은 사람까지도 다 제 삶의 모양새를 일구고 살아간다. 이들은 모두 자부심을 가질 만한 자기 생활의 공연자다.

Ⓒ씨네소파

다섯 사람에게는 요요인 그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글쓰기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영화일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연기일 것이다. 예술은 이 명제에 있어서 요요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주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수지에 맞지 않는 고생을 하게 되는 이유를 동훈, 대열, 현웅과 같은 동력에서 찾는다. 똑같이 예술가로 살면서도 문현웅의 표현대로 “한 사람은 나무를, 다른 사람은 반대쪽의 꽃을 볼” 수도 있으며, 설령 그 활동을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자신이 “너무 좋아”했던 것에 대한 마음을 환멸로 전이시키지 않고 평생토록 사랑을 연마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요요현상〉은 예술학교를 거쳐 간 모든 사람들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영화다. 우리 모두는 의식주를 위한 강제적인 생계 노동의 루프만 무한한 것이 아님을 알지 않나. 긴 번뇌와 번뜩이는 희열을 맞바꾸는 꿈의 루프 또한 못지않게 막강하다. 그 집합에 속할지 빠져나갈지를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대상의 활동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대상의 선택에 대한 정중한 거리감이 공존하는 〈요요현상〉의 태도에서 각자 다른 삶의 모양새에 대한 응원을 감지할 수 있으리라. 우리에게는 우리가 특별한 존재임을 만끽하게 해주는 활동이 있었다. 그 활동들은 우리를 매번 다르게 살게 만들었다. 반복 실행되는 삶 속에서도.

글 이상현
1 루프(loop) : 프로그램 중 지정된 조건이 만족되고 있는 동안 또는 종료 조건이 성립할 때까지 반복 실행되는 명령의 집합. 잘못된 명령에 따라 같은 부분이 한없이 반복되는 경우에도 루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 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초고/자본론/공산당 선언/철학의 빈곤』, 동서문화사, 1994, 69쪽.
3 2019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과정 영상이론과 신입생 모집 2차 시험, [문제 3]의 〈지문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