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에서 보내는 4년 + a의 시간 끝에는 졸업전시라는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필자도 졸업까지의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졸업전시가 마냥 부러울 때도, 엄청나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저 평소와 같은 스스로와의 싸움과 끝없는 피드백을 몇 배의 강도로 견디는 시간이었다. 작년 한 해 코로나와 함께 더더욱 지난한 4학년을 통과한 동료들 중 일부는 졸업전시를 온라인으로 준비했다. 꽃다발과 선물이 놓이고, 지인들과의 소소한 이야기가 오고갔을 그 자리가 화상으로 옮겨졌다. 어떤 기쁨과 슬픔이 있었을까. 온라인 졸업전시를 진행한 조형예술과, 무대미술과, 애니메이션과의 졸업전시를 옮겨보았다.1
한봄, 〈a-ni〉 이정수, 〈Where am I〉
하나를 향한 충동
: 미술원 조형예술과
미술원 조형예술과의 졸업전시 제목은 〈크라운 샤이니스(Crown Shyness)〉. 개별적 몸짓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을지에 관한 물음을 담았다. 오프라인 전시는 제한된 인원만 예약을 미리 받아 진행했고, 학생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참여하고 싶은 형태의 전시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온라인은 모두 참여, 오프라인은 선택이 되어 온라인만 참여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조형예술과 김성연에 따르면, 작가 입장에서 온라인에서의 전시는 보다 더 예측불가능하다. 작품을 어떤 환경에서 어떤 기기를 통해 보는지에 따라 관객의 경험이 달라져, 작가가 개입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긴다. 이 때문에 많은 전시자들이 작업과정과 기록들을 프리소스로 만들거나 개인페이지에 연동시켜 함께 감상하도록 했다. 그는 〈Second Skin〉이라는 제목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전시를 동시에 진행했는데, 오프라인에서는 공간 자체를 크게 구획하여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고려한 반면,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스틸컷과, 원본과 다르게 편집한 사진들을 추가로 전시했다고 한다.
이에 따른 장점은, 감상자들이 온라인에서 작품에 관한 배경과 맥락을 파악하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형예술과 홈페이지에서는 어렵지 않게 바로 작가 정보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었다. 작가에 관한 정보나 다른 작품들에 즉각적으로 연결되기 어려웠던 오프라인 전시와 비교했을 때 번거롭지 않았을 뿐더러 충분한 컨텐츠를 제공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전체 전시 홍보에 있어 최근 유행하는 성향 테스트를 차용한 매칭 시스템을 만들어 작가와 같은 선택지를 고른 관객에게 해당 작가의 전시를 추천한 점이 흥미를 끌었다.
민혜인, 〈untitled〉
14개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
: 연극원 무대미술과
〈일시거주 - 극장에서 거주하는 열네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준비한 무대미술과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일시거주’의 장소로 설정했다. ‘거주’라는 공간과 ‘일시’라는 시간성을 결합한 제목은 무대미술과 학생들의 창작공간과, 그 무대가 확장된 온라인 사이트까지도 포함한 비유다. 전시자들은 코로나로 폐쇄된 연극원 실험무대를 청소하고, 각 사람에게 거주공간을 할당했다. 실험무대 지하 1층, 1층, 2층으로 나누어 꾸민 전시와, 작품소개 및 인터뷰와 온라인 형태의 전시를 업로드한 홈페이지, 이렇게 두 트랙으로 분리되어 구성된 셈이다.
실제의 공간감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한계도 분명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던 전시였지만, 역설적으로 무대미술과의 온라인 홈페이지가 가장 친절하고 섬세하며 촘촘히 설계되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개인 페이지에는 단순한 공간 스케치만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만든 이야기를 순서대로 따라가게끔 구성되어 밀도가 매우 높았다.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부분은 공통적이었지만 전시를 담은 형태는 다양했다. 윤서영, 허재인의 〈극장생존일지〉는 1인칭 시점에서 공간 곳곳을 차례대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한 영상을 제공했고, 정결의 〈실험무대재개발추진위원회〉처럼 이야기를 따라 공간을 이동하는 주인공을 비추며 관찰자의 시점으로 전시를 편집한 경우도 있었다. 정해리의 〈영원의 섬〉은 공간을 담은 영상이 아닌 그림책 형식으로 작품 전체를 음악과 함께 직접 게시함으로써 온라인에 최적화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었다.
변화를 건너 저 넓은 바다로
: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위기는 우리를 더 넓은 곳으로 데려간다는 의미에서 ‘항해’를 주제로 삼은 애니메이션과 정기·졸업전시는 공식 홈페이지와 온라인 스트리밍(1/18~1/24)을 기획했다. 홈페이지 프로필에는 감독 개인 페이지 혹은 SNS 계정을 연결했고, 작품 소개와 스틸컷, 더불어 감독 인터뷰도 함께 전시되었다. 전시 공식 굿즈와 개별 굿즈는 스마트스토어, 구글폼, 텀블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달했다.
오프라인 상영의 현장감은 덜했으나,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을 통한 상영회는 다른 전시들에 비해 내용 전달에 어려움이 없었다. 애니메이션과 졸업준비위원이었던 이예빈은, 대부분 짧은 러닝타임의 독립애니메이션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과 졸업전시가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빠른 흐름과 잘 어울렸다고 평가했다. 개인용 기기로 컨텐츠를 감상하는데에 익숙해진 대중들이 가볍게 관람할 수 있어 접근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제작자는 유튜브의 실시간 채팅창을 통해 관객의 반응과 의견을 볼 수 있어 실시간 소통이 불가능한 현장 상영회에서보다 오히려 연결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영상물의 저작권 침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유의해야 했지만, 이번 상영회에서는 샌드박스라는 기업과 협업하여 불법복제를 예방했고 이에 따라 불법 유포에 대한 불안감을 없앨 수 있었다.
허재인, 윤서영, 〈극장생존일지〉
전례 없음의 아쉬움,
그럼에도
인터뷰이들에 의하면 모두 이전에는 졸업전시를 온라인으로 기획해본 적이 없었다. 공식 트레일러 영상을 제작하거나, 전시로 유도할 수 있는 발판 정도로는 이용했으나 비중이 크진 않았다. 그런데 졸업전시 준비시즌이었던 12월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대다수의 전시가 온라인으로 기획되었고, 졸업전시자들은 방향성 설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추상적인 형태에서부터 정보 전달에 집중한 깔끔함 사이에서, 오프라인의 실물을 대체하려는 시도부터 온라인만이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사이에서, 아주 좋은 예시나 충분한 예산 없이 4년의 마무리를 선보여야하는 부담감은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세 전시는 모두 변화에 최적화되려는 수용력과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애니메이션과는 VR, AR, MR등의 기술과 융합된 작품들을 최소 하나씩은 포함했고, 무대미술과와 조형예술과 역시 영상 혹은 이미지를 통한 전달을 적극적으로 탐구하여 관객들과의 접점을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태도는 혼란스러운 외부적 상황들과 이를 마주하고 대응하는 과정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각 전시의 제목들이 암시하고 있듯 만남과 이별, 현재와 미래, 그 사이 ‘아직’이라는 가능태로 존재하는 삶에 대한 성찰도 여기저기 엿보였다. 끝과 시작 사이를 헤매게 될 졸업 이후의 모습을 예감한 듯 말이다.
임도연, 〈세라믹 바디 시리즈〉
하지만 과연 지난 4년간의 단련을 거친 그들의 앞날에 부유와 방랑만이 기다리고 있을까? 자신만 모를 뿐, 어쩌면 그들은 어느 때보다도 준비된 모습일지도. 그것이 실패였든 성장이었든 간에, 무언가를 향해 분투했던 흔적들은 분명 사라지지 않은 채 그들을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