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시대 미술에 대한 강연이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에 올라왔다. 인기 없는 채널에 비해 꽤 열띤 댓글 공방을 펼쳤는데 이 얼토당토않은 행위가 미술이냐는 분개와 당신이 느끼지 못한다고 그 미술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는 옹호로 나뉘었다. 이 같은 실랑이가 한때 일반과 전문가 간의 관계를 나타냈지만 이마저도 동시대 미술 안에서는 점점 이례적인 일이 돼간다. 아마도 끊임없이 팽창하는 미술의 탄력성과 개별 존재로서 경험을 중시하는 넓은 미적 아량을 품은 지금의 미술이 관람자의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유연함과 감각 경험에 바탕을 둔 효능감 높은 미술이 현재의 문화경제 지형에서 이미지 만들기와 공간 구성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지표는 다음의 전시에서도 마주하게 된다.
“현실과 허구의 시간이 동시에 공존하는 ‘조형적 상상의 공간’을 미술 작품, 음악, 퍼포먼스, 조명 디자인 등 장르를 아우르는 하나의 극적인 연출로 선보인다.”
- 전시 «너머의 여정» 소개 중
서울시립미술관(SeMA)벙커에서 열리는 전시 «너머의 여정»은 혼종성의 전형을 함축한다. 이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라이브 전시의 표명이다. 전시는 일회적이거나 어떤 흐름에 안착하기 위한 책략으로 퍼포먼스를 소비하지 않는다. 전시 기간 촘촘히 배치된 퍼포먼스 일정1은 다양한 예술 장르의 구성을 통해 몰입을 위한 하나의 연극적인 기획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린다. 이 기획은 시간성에 대한 해석에 따라 그 초점을 달리하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장르 예술은 독립적으로 비치기보다는 각자의 장치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결합한다. 특히 시각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미술 작품은 연극의 캐릭터를 수행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그 작품이 가진 의도와 연관 짓기 보다는 형태, 컬러, 배열과 같은 물리적 특성과 효과를 통해 구획된 공간에 각기 다른 환영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크게 울리는 사운드와 퍼포먼스는 몰입을 극대화하고 여러 예술 사이에 이미지화된 공간이 가득 찬다. 총체적으로 퍼포먼스는 구경거리로 가득한 공간을 새롭게 환기하고 기획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았던 관람자의 경험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우발, 이미지-이벤트로 쉽게 소모되는 것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위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며 관조를 넘어서는 기능으로 동작한다.
“전시는 상식적인 시간 논리의 대척점에 있는 예측불허의 삶을 고찰하며, 이 과정이 환기하는 감정, 기억, 트라우마, 깨달음 등의 가치에 주목한다.”- 전시 «너머의 여정» 소개 중
«너머의 여정» ©서울시립미술관
그렇다면 우리는 경험을 온전히 스스로 감지할 수 있는 은총의 상태인가? 이 전시가 강조하는 ‘경험으로서의 전시’는 구경꾼에게 다소 혼잡한 방식이지만 작품을 구성하고 창조할 수 있다는 특권을 부여한다. 이 경험은 전적으로 관람자에 의존하며 각자의 입장으로 분산시킨다(확실히 이 특권은 어떠한 논변도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인식과 지각은 지금만이 있는 감각성의 세계로 향하고 감성의 전유가 피로로 전환될 때 쯤 관람자는 약속된 기호들이 오가는 공간 속에서 무엇을 경험해야 할지 다시 서성인다. 이때 지연된 스펙터클이 작용한다. 이것은 경계하더라도 거부할 수 없게 이미 존재한다. 일상이 미학화된 문화경제지형 속에서 전시 공간은 셀피의 배경으로 우아한 테마파크의 용도가 된다. 찍힌 인증샷은 구경꾼에게 작품을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는 자신의 응시를 되돌려준다. 구경꾼은 작품 자체에 매료되기보다는 작품과 함께 있는 이미지화된 공간 속 타자가 구성해준 또 다른 자신에게 사로잡히고 경험은 미완에 그칠 위험에 처한다. 결국 이 열린 결말이 남긴 찜찜함은 각 장르 예술가의 정체를 모호하게 하고 실험적인 연출을 하는 무대 경영자를 돋보이게 부추기는 효과로 변질한다.
“이주리 작가의 전시 «리패키지»는 디지털 환경의 혼재된 시공간성을 대중문화에서 이루어지는 리패키지(re-package) 형식을 차용하여 작가 자신의 과거 전시 데이터(공간, 작품, 텍스트 등 전시를 둘러싼 제반 요소 전반)를 작가, 음악가, 에디터와의 협업으로 재구성한다.”
- 전시 «리패키지» 소개 중
«리패키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SeMA)창고 A 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리패키지»는 표면 위, 이미지가 가리키는 상징과 서사를 의미로 동일시하여 볼 때 읽을 것이 거의 없는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내용이 아닌 이미지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봐야 한다. 그 핵심에는 ‹선셋 밸리› 이미지 시뮬레이터가 있다. 이 작품은 일종의 이미지 자동생성 프로그램으로 위치, 크기, 색상, 회전 등의 설정값2의 변화에 따라 이미지를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생성 조건은 스크린에만 머물지 않고 벡터 그래픽3의 디지털 출력술을 통해 3차원적인 공간과 사물에 달라붙는다. 즉 작가는 전통적인 회화의 모델처럼 이미지는 어떤 고정된 사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설정된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가 변형되면서 다른 것이 되는 그 과정 자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정은 지난 전시의 데이터를 재구성함으로써 좁은 프로그램 환경을 넘어 이미지 공동구역이라는 확장된 버전으로 업데이트가 가능하며, 더 나아가 작업 방법론을 공유하는 수평적인 이미지 공동체4를 제안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분절적 체계에서 모든 이미지는 하나의 데이터로서 동등한 자격을 갖고 교환 가능해진다. 그로 인해 이미지는 유연하고 무한히 증식할 수 있다. 분명 이것은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산시키는 요술램프 같다. 하지만 이내 관점을 뒤집으면 무한루프loop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달라야만 하는 이미지가 연쇄 반응하며 가산의 차원에서 추가된다. 기계적인 생산의 논리에 의해 축적된 거대한 데이터 덩어리는 이미지 간의 상관관계에 따라 동질화된 형상, 세상사에 무신경한 텅 빈 패턴의 배열로 남는다. 그렇기에 전시에서 보여준 느슨한 공조로 이루어진 이미지 협력체는 상관성correlation의 울타리 안에서 작은 소우주라 티를 낼 뿐5이다. 어쩌면 작가는 역설적이게도 «리패키지»라는 전시 제목처럼 우리가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면서 일정한 방향의 이미지 변주(포장 꾸러미)만이 가능하다고 웃음기 없이 농담을 던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