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그저 밥을 먹는다. 이 한 문장은 지난 8월 첫 번째 에피소드가 상연된 연극 ‹연극과 일상성에 관한 명상›에서 관객이 마주하게 된 모든 것이다. 연출을 맡은 무대미술가 여신동은 무대 안에 난파선과 수영장을 들여올 정도로 누구보다 과감하게 극적인 환경을 연출했던 무대미술가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화려한 허구보다 조용한 현실이 오히려 더 극적이라고 말한다. 그가 지나온 무대미술가이자 연출가로서의 궤적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았다.

무대미술을 시작한 계기와 대학 시절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원래 예고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었어요. 그러다가 대입 준비할 때 같은 반 친구로부터 한예종의 자유로운 입시 방식과 재학생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지원했어요. 원서 내러 갔을 때 연극원 무대미술과 복도에서 연극 소품 같은 것들을 보게 됐어요. 입체적이면서도 회화적인 의상이나 무대 미니어처가 무척 멋졌어요. 그때 무대미술에 대한 마음을 굳히게 됐죠. 저는 무대미술을 디자이너가 아닌 미술가로서 하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 때문에 입학한 뒤에 고생을 좀 했죠. 미술을 공부하러 왔는데, 연극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읽어야 할 책도 많았거든요. 게다가 당시 우리학교 무대미술과에서는 모든 작품에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요구했어요. 저는 제 색을 발견하러 학교에 왔는데, 색이 자꾸 만들어지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많이 들었죠.
그렇게 무대미술을 포기하거나 전공을 바꿀 생각을 하던 중에 추민주 누나를 만났어요. 그때 누나가 ‹쑥부쟁이›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저한테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며 미술감독을 맡겼어요. 그때 비로소 미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소품부터 옷까지 직접 다 만들어 봤어요. 진짜 뭔가를 해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받아보지 못한 인정도 받았었죠. 그동안 무대미술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했는데, 마음 맞는 연출가와 하니까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졸업 이후에 ‹모비딕›, ‹헤다 가블러› 등 작화 중심의 상징주의적인 무대미술 작업을 하면서 활발히 활동하셨는데요. 당시부터 세워온 작업 원칙이나 특별한 작업 방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업을 위한 원칙 같은 건 없어요. 지금도 작업하면서 계속 발견하고 변화해요. 나름의 철학을 세우기보다 이렇게 계속 변화하는 게 좋아요. ‹모비딕›, ‹헤다 가블러›에 참여했던 2010년대 초반은 정말 바쁜 시기였어요. 6년 동안 무대미술을 공부했으니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고 마음먹었을 때였어요. 그래서 정말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쓰려고 했어요.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백 년 된 나무를 가져오기도 하고 ‹모비딕›에서는 난파선을 만들려고 나무를 물에 오랫동안 담갔다가 빼기를 반복하기도 했고요. 뮤지컬 ‹빨래›는 여러 차례 새롭게 만들었는데, 그 경험은 무대에서 배우의 동선을 고려하는 데에 많은 공부가 됐어요. 원칙을 고수하면서 발전 되는 건 없다고 봐요. 그러니까 저는 죽을 때까지 발전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셈이에요.

‹연극과 일상성에 관한 명상›, 2020

2014년 ‘양손프로젝트’와 함께 작업하면서 작업 방향이 크게 달라졌다고 알고 있는데요. ‘양손프로젝트’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나요?
2014년 전후로 매너리즘이 찾아왔어요. 무대 디자이너, 미술감독이라고 불리는데 어느 순간 제가 연출가가 할 일까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연출의 방향이나 형식이 분명해야 무대미술가도 작업을 할 수 있는데 당시 연출가들은 대부분 텍스트만 고민하고 동선, 장면의 변화, 암전의 길이 같은 것은 전혀 생각을 안했죠. 물론 독자적인 미학을 가진 연출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저 현장에 와서 무대디자이너와 상의만 하는 정도였어요. 뭔가 빼앗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일 년 정도 일을 쉬게 됐어요.
양손프로젝트가 협업을 제안했던 건 그때였어요. 서로 짧게 대화를 나눠본 적도 있었고 그 친구들 작업도 알고 있었죠. 무대도, 조명도, 의상도 필요 없는, 연기와 텍스트만 있는 집단. 제가 함께 작업해 볼 만한 이유도 충분했고, 그 친구들이 저를 필요로 하는 이유도 타당했죠. 그 뒤로 한동안 양손프로젝트하고만 연극을 했어요. 좋았죠. 그때 무대디자이너가 아니라 미술가로서, 그리고 연극판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배우를 세트나 오브제로 상정하는 그들의 성격을 잘 살리면서 제 작업을 해보려고 했어요. 생각으로만 해오던 걸 본격적으로 실험하고 공부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들과 작업하면서 지금까지 무대미술이란 걸 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이전 작업에서 무대미술이 기능적이었거나 연출의 시각적인 부분을 해결해주는 해결사에 가까웠다면 양손프로젝트는 저에게 진짜 협업을 알게 해줬고, 무대미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준 팀이에요. 공연에서 무대미술가는 시각적인 부분을 맡잖아요? 여기서 시각적인 것을 단순히 보는 것뿐만 아니라 듣는 것, 경험하는 것 등을 포괄하는, 감각되는 것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된 거죠.

혁오 콘서트에 참여하는 등 무대미술에 대한 생각이 확장된 이후 공연예술 전반으로 작업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 것 같은데요.
양손프로젝트와 작업하면서 관객들의 감각을 다루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공연장에서 우리는 단순히 보고 듣는다기보다 어떤 정서를 느끼면서 그 시간 속에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관객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이에요. 혁오 콘서트의 경우에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건 음악인데, 단순히 조명이나 전광판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를 통해 그들 음악만의 색을 만들어주는 게 저의 역할이겠죠. 공연예술은 결국 시간을 다루는 거예요.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이 정확히 있죠. 전시가 과거를 향해 있다면, 공연에서 중요한 건 현재에요. 내러티브는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지금 인터뷰 하는 중에도 시간은 나름대로 드라마틱하게 흐르고 있어요. 공연예술은 모든 감각을 고려해서 현장감을 만들고, 현재의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요.

‹배신›, 2019 ©양손프로젝트

지난 8월에 ‹연극과 일상성에 관한 명상›의 첫 번째 에피소드 ‘식사편’이 상연됐습니다. 어떤 작품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제 나름의 장기 프로젝트에요.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허구가 아닌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해 사유하기를 원했어요. 그동안 허구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가짜를 통해 사유하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고민이 생겼어요. 그런 고민은 양손프로젝트와의 작업에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 그러니까 현장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죠. 그리고 국립극단에서 만든 작품을 보면서도 작품이 제 삶과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느낌이 싫어서 일상을 돌아보니까 제 일상이 극보다 더 드라마틱해 보였어요.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삶과 일상이 더 중요하고 드라마틱해요. 이 작품을 통해 일상에서 시작되는 그런 판타지나 드라마틱한 부분들에 주목하고 싶었어요. 첫 번째 에피소드 ‘식사편’은 제가 식사 중에 하게 된 어떤 행동이 평범한 밥 먹는 시간을 완전히 다른 시간으로 바꿔버렸던 경험에서 시작된 작업이에요. 두 번째 에피소드는 대중교통에서의 시간을 다뤄요. 학창시절 버스에서 짝사랑을 그만두기로 했을 때, 창밖의 모든 풍경이 다르게 보였던 강렬한 기억에서 출발했어요. 세 번째는 장례식장에서 보내는 시간이에요. 제가 올해 초 상을 치렀는데, 그때 상주가 쉬는 방에서 경험했던 일에서 착안했어요. 그곳에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면서 떠드는 소리를 듣는데, 죽은 사람을 기리는 공간과 무척 역동적인 삶의 공간이 포개져 있는 묘한 경험을 했어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게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슬픔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첫 연출작 ‹사보이사우나›부터 ‹연극과 일상성에 관한 명상›까지 정체성, 허구, 온전한 개인 등의 주제와 관객의 반성적 성찰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공연예술이란 장르에 특별히 기대하는 역할이 있나요?
공연예술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공연예술도 하나의 예술 장르이기 때문에 작가들이 적어도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잖아요. 정체성, 온전한 개인 등은 제가 조금 집착하는 주제이기도 해요. 이번 기획도 명상이라는 콘셉트를 들여와서, 우리가 예술을 향유하거나 바라볼 때 뭔가를 대면하고 성찰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우리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 공연을 볼 때 과연 사유란 걸 하고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뭔가를 비판하거나 정치적인 작업을 할 때 정말 나에게 되돌아오는 작업은 얼마나 될까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연극이 많은 걸 대변해야 할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많은 예술가가 자신부터 성찰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어떤 것부터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이런 고민에서 시작하면 다양성이 더 많이 생길 거 같아요.

혁오 콘서트, 2018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젊은 예술가들과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후배들이라면 대부분 학생이겠죠? 한예종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도 자주 했던 말인데, 마음 가는 대로 학교생활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한예종에 다녔던 시간이 정말 소중해요. 좋은 커리큘럼 때문에 많은 걸 배웠다기보다 뭔가가 보장된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그때 저는 한예종을 다니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 마음이 좋은 기반을 가져다줬고. 그렇게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됐어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어요. 학교 안에 음악하는 분들, 무용하는 분들,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과 만나서 얘기도 하고, 자신이 어떠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어떤 사람들과 있을 때 즐거운지 학교 다니면서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여신동 무대미술가의 고민은 어떻게 관객에게 허구를 전달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허구에 가려진 실재를 되돌려줄 것인지로 이동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무대를 꾸리며 허구를 위한 장소에 머문다. 일상이 아무런 일도 없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인 것처럼, 실재는 아무것도 아닌 허구를 통해서만 드러난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이제 우리는 실재를 위한 더 나은 허구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글 이관민 | 사진 김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