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공연전시센터가 주관하는 2020 K-Arts ON-Road는 예비예술가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우수한 콘텐츠를 발굴해 현장 진출을 지원하는 공모 사업이다. 그중 완성형 작품을 지원하는 ‘ON-Stage’와 ‘ON-Space’는 ✓최대 1,000만원 창작지원금 ✓쇼케이스 준비금 ✓발표 공간 ✓멘토링 및 워크숍 ✓국내외 아트마켓 참가 등을 지원한다.

ON-Stage:
두 개의 연습실


당신은 공연의 스탭이다. 2020 K-Arts ON-Road의 ON-Space 공연팀으로 참가했다. 자, 이제 연습에 갈 시간이다. 어디로 가겠는가?

1 연극원 ‹ANNAK› 팀으로 간다.
“15페이지에 이 부분, 이거 두 개. 이렇게 읽어주고. 해설자가 그 부분을 읽을게요.”
연출이 배우들의 대본을 짚는다.
“잡아준다, 까지 해설. 그 다음에 이 액션을 저희가 해요?”
“아니, 거기서 움직임을 만들어가야 해요.”
대본이 사그락 사그락 넘어간다. 서로에게 제안하고 답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헛기침 소리와 밑줄 긋는 소리, 배우들의 낭독. 당신은 귀를 기울인다.
“잠시 쉬었다 합시다.”
“관객들이 ‹ANNAK›을 통해서 무엇을 볼까요?”
“재현 가능한 것과 재현 불가능한 것의 경계를 탐구하려고 해요.”
작가가 덧붙인다.
“폭력의 재현이 화두잖아요. 가정폭력을 다루는 우리 연극은 어떻게 구현될까요? 재현 가능한 것과 재현 불가능한 것의 경계에 대한 물음이 남은 것 같아요.”
“그 고민은 저도 현재진행형이에요. 다만 고통이나 아픔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욕망이 담긴 시선을 재현하는 거예요. 폭력적인 행위들이 무대에서 재연되는 것을 우리 모두 원하지 않잖아요. 소리나 인물들의 기억, 반응 등으로 대체될 거예요.”
“저는 무대 연출이 참 좋아요. 시간 존(zone)이 동시에 흘러가며 공간의 역할을 하는 거요.”
“시간을 공간적으로 분리해서 시각화하는 거죠.”
“이 연극에선 ‘시선’이 중요한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는 어떤 시선이 요구될까요?”
“피해자나 생존자에게만 이입하는 것을 지양했으면 해요. 연극에 복잡한 시선들이 혼재되어 있는데, 그 시선들을 관객들이 오롯하게 다 느꼈으면 해요.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의 시선은 어떤 시선일까, 반문해보는 거예요.”
“상징적인 도구들이나 암시적인 언어를 통해서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재현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에서 선택을 하고 싶었던 거죠. 그게 메디와 한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관객들과 닿았으면 좋겠어요.”

2 무용원 ‹Exi-Performing ART Project› 팀으로 간다.

퉁, 의자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무용수들이 유연하게 바닥을 쓸고 일어선다. 음악이 멎는다.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은 숨을 몰아쉬며 연습실 한쪽으로 향한다. 잠시 쉬는 시간이다. 안무가가 당신의 곁으로 다가와 커피를 마신다.
“관객들한테 저희 공연이 감각적으로 가 닿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게요. 제가 처음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부재에 대해서 생각하면서거든요. 사라짐에 대해서 우리 많은 이야길 했잖아요. 사실 관객들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받지 않아도, 이런 공허함만 가져가도 충분할 것 같아요. 각자의 스토리가 다를 것이고 이를테면 푼크툼 같은 거죠. 경험적으로 교감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인간의 움직임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휘발적인 것인데 역설적으로 부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재미있어요.”
“그렇죠. 움직임은 휘발되죠. 저희 안무도 그렇잖아요.”
“안무가님은 처음 저희 안무를 어떻게 기획하셨어요?”
“어머니랑 손을 잡고 수다를 떨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머니가 잠에 들었죠.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감정이 계기였어요. 부재에서 느껴지는 것들, 관계에 있어서도 계속 사라짐이 있고 물건 또한 휘발되고, 몸이 퇴화되고 낡아가고 그런 과정에서의 뭔가...‘없어짐’이라는 것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의 공허함, 허탈함이 크더라고요.”
“공감해요. 그런 의미에서 Misdirection기법이 주는 의미도 클 것 같아요.”
“Misdirection기법이 흔히 말하는 마술의 트릭 같은 거거든요. 원래 보여주려던 것을 숨기고 다른 것을 보여주다가 시선을 교차시켜 다시 보여주는 거죠. 간단한 제스처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연출에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당신이 커피 한 모금을 넘긴다. 쉬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무용수들이 의자를 재배치한다.
“근데 공연 준비 힘들지 않으세요?”
“무용은 연극처럼 업무가 세분화되어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연출이나 음향, 소품 등을 안무가가 다 책임진다는 부분이 어렵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서 더 제겐 도전적인 작품이고요. 나머지는 여러분이 잘해주셔서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안무가가 웃는다. “그런 역할들이 세분화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렇죠.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있으니까요.”

••••••

“수고하셨습니다.”
연습이 끝났다. 당신은 포스터 뭉치를 들고 연습실을 나온다. 포스터 한 장을 꺼내 꼼꼼히 붙인다.
“___________”
당신은 포스터의 스탭 명단에서 당신의 이름을 찾는다. 바라본다.

글 백설이

ON-Space:
점들의 집합이 그려낼 새로운 궤적


시각 예술을 지원하는 ON-Space 분야에서 작가들은 8월 28일부터 9월 4일까지 석관캠퍼스 갤러리에서 열릴 쇼케이스 전시를 준비 중이다. 프레젠테이션 심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선정된 두 프로젝트는 창작지원금을 받아 내년 2~3월 중 외부에서의 전시 기회를 얻는다.
또한, 공연전시센터가 추진하는 대외 교류 사업과 국내외 아트마켓에 참가할 수 있다.
이번 쇼케이스에는 김세진의 ‹A SCRIPT OF VECTOR (2020 Collection)›, 고경호의 ‹아들-되기/AAAdle-Positioning›(가제), 왕선정의 ‹슬픔에 처한 이의 아름다운 풍경›, 이승일의 ‹토프(Taupe)›, 강라겸의 ‹유한한 재료로서의 피부, 폭력의 역사를 기록하는 가이드›를 비롯한 총 9개의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제각각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가진 이 프로젝트들 중 대표적인 두 프로젝트의 준비과정과 그 성격을 소개한다.

1. 제약공장의 폐기된 오리알이 에그트레이로, 위켄드랩WKND lab의 ‹부산물 연금술(The Material Alchemy)›
4명의 디자이너가 모여 결성한 위켄드랩WKND lab의 ‹부산물 연금술(The Material Alchemy)›은 공동대표 전은지의 이전 프로젝트에서 확장된 형태다. 이들은 음식물 쓰레기로부터 카제인 단백질을 추출해 바이오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한다. 이는 전은지가 스위스에서 거주하며 낙농 폐기물과 식물성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생분해성 플라스틱 대체재를 개발해 지역 경제와 환경에 기여하고자 목표했던 것에서 시작된다.
이번 쇼케이스 전시의 ‹부산물 연금술›은 이전 프로젝트와 동일한 디자인적인 견지에서 식물성 폐기물 문제와 대체재 개발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국이라는 지역 사회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 바탕이 된다. 쇼케이스 전시는 ‘소재 라이브러리(material library)’를 테마로 소재 샘플을 인포그래픽과 함께 제시한다. 이와 함께 해당 소재를 활용한 오브제와 직접 바이오 플라스틱을 제작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바이오
플라스틱 레시피 북’도 마련된다. 이들의 연금술은 꽃시장에서 나온 화훼 폐기물을 프레스, 몰딩 등의 가공기법을 거쳐 새로운 오브제로, 제약공장에서 폐기된 오리알을 에그트레이로 바꾸어낸다. 위켄드랩은 쇼케이스 전시 이후에도 소재 샘플의 종류와 이에 따른 레시피북의 범주를 더욱 확장하고 이를 웹사이트 wknd-lab.com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바이오 플라스틱 레시피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의 성장을 목표로 지속적인 연구 기반을 다져나가고자 한다.

2. 길 잃은 이미지에 자리를 부여하기, 임희재의 ‹인플레터블 파라다이스(Inflatble Paradise)›
임희재 작가는 인간의 통제 대상으로 변형된 자연의 이미지를 회화를 통해 그려내고, 회화의 매체적 특성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작가가 ‘길 잃은 이미지’라 일컫는 이들은 박제, 다큐멘터리의 형태로 가공되고 분류된 시스템의 세계 속 자연이다. ‹Natural selection›(2016~2019) 연작은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약육강식의 순간적인 인상을, ‹Stuffed›(2017~2020)는 박제된 동물 표본과 그 전시를 소재로 삼아 평면 안에서 새로운 서사와 위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내년 전시를 목표로 한 쇼케이스 전시의 ‹인플레터블 파라다이스(Inflatable Paradise)›에서도 작가의 관심은 꾸준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상화된 일종의 기호로서 소비되는 자연에 주목한다. 그는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는 낙원과 같은 휴가지, 신선함을 상기시키는 초원 이미지를 회화 안에서 확장하고 새로이 고정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신작 ‹Eye stopper›와 ‹건강한 삶›의 목장의 가축과 질주하는 동물 이미지는 그에게 신선도, 속도와 같은 자본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소재다. 작가가 주목하는 또 다른 이들 ‘길 잃은 이미지’는 회화라는 매체를 통과해 인플레터블 파라다이스, ‘부풀어오르는 세계’로 들어간다. ‘낙원’으로서 시스템 속 자연은 그의 회화 속에서 납작해지는 것이 불가능한, 다른 차원의 ‘낙원’의 의미를 획득한다.
두 프로젝트 모두 지향과 그 결은 상이하나 자연, 인간, 예술 사이의 어딘가에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도래할 지형을 가늠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이번 호의 테마가 되는 ‘영토’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지면 관계상 출품된 프로젝트 모두를 소개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아쉽게 전시를 놓친 이들은 이후 최종 선정된 팀의 외부 프로젝트가 그려나가는 궤적을 기대해보자. 올해 처음으로 진행된 ‹2020 K-Arts ON-Road›는 내년에도 개최될 예정이다.

*8월 26일 현재, 예정되어 있던 ON-Space 분야 쇼케이스 심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10월 중 결과물을 제출하고, 11월 중 줌(Zoom)을 통해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ON-Space 분야의 공연 팀들도 예정된 공연 일정을 연기하였으나 향후 일정은 미정이다.

글 박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