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전시 경험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어떻게 변화했을까. 상대적으로 한적하고 안전한 전시공간들도 심각한 팬데믹 상황에서는 폐쇄와 단절을 면할 수 없다. 코로나19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국공립미술관은 잠시 개방되었다가도 이내 다시 닫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아트페어들은 줄줄이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사립미술관이나 상대적으로 작은 전시공간들은 사전예약, 방문자 기록명부 작성 등의 방식으로 운영을 지속해왔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속에서 운영이 안정적이지는 않다.

오프라인의 위기 가운데 미술기관들은 온라인 플랫폼의 적극적 활용 방법을 고안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전부터 SNS는 전시 마케팅과 관람 방식의 많은 부분을 새롭게 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었으며 ‘온라인 전시’의 시도 또한 있어 왔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은 아직까지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전시를 완벽하게 대체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판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대신 온라인 상에는 전시의 수많은 ‘예고편’과 ‘부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콘텐츠들은 온라인 선공개, 전시 해설 영상, 메일링 서비스, 전시와는 별도로 만들어진 웹 플랫폼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며, SNS를 통한 확산을 꾀하며 떠돈다.

업체×류성실, ‹Cherry Bomb›, 2018 ©유튜브 ‘Sungsil’

예고편
국공립미술관이 장기간 문을 닫게 되면서 여러 전시들이 영상으로 선공개되는 경우가 발생했고, SNS의 역할은 단순한 예고편 이상으로 중요해졌다.
아르코미술관에서는 7월에 SNS를 주제로 한 오프라인 전시 «Follow, Flow, Feed: 내가 사는 피드(이하 ‘내가 사는 피드’)»를 온라인 선공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미술관은 전시 오픈 예정일에 맞춰 문을 열지 못했고 아쉬움을 덜기 위해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게시한 것이다. 영상으로 전시의 예고편을 본 후 개인적인 감상은 하나였다. ‘이 전시는 왜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전시로 만들어져야만 했을까?’ 이후 오프라인 관람이 가능했던 기간 동안 전시장에 방문했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내가 사는 피드»는 SNS를 탐구 대상으로 삼거나 그 안에 침투하려는 동시대 미술의 경향을 정리해 보여주었다. 전시 작품 중 유튜브 채널에 직접적으로 침투하는 작업의 경우 사실 온라인에서 상시 관람 가능한 것들도 많았다. 김효재 작가의 ‹디폴트Default›와 관련 영상들, 치명타 작가의 ‹Make Up Dash 2017›, 업체×류성실 작가가 연출한 가상의 BJ “체리 장”은 모두 유튜브 검색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놓치기 아까운 작업들이니 모두 검색해보기를 추천한다!) 한편 손윤원×라나 머도키 작가의 ‹연결풍경›은 카카오톡으로 음성 파일을 전송해주는 작업이었다.1 이런 작업들을 접하다보면 QR코드와 링크로만 이루어진 전시장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왜 물리적 공간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회화의 경우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문제가 더 복잡하긴 하지만 예외는 있다. 이우성 작가의 ‹밤, 걷다, 기억›은 인스타그램 계정(@gawi_bawi_bo)에 업로드되는 드로잉 시리즈이며, 아르코미술관 전시장에서는 피드를 따라 걷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였다. 노상호 작가는 일찍이 웹사이트 ‹thegreatchapbook.com›에서 변화하는 이미지와 이야기가 하이퍼링크를 타고 흐르는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2 이렇듯 동시대 회화는 물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떤 식으로든 온라인의 디지털 이미지로 치환되거나 그 상태를 경유한다. 회화와 디지털이미지의 관계에 대해 이 글에서 다 논하기는 어렵겠지만 전시가 이러한 속성을 좀 더 파고들 수는 없었을까.

«내가 사는 피드»는 SNS를 주제와 매개로 삼는 작업들을 전시장의 오브제로 치환함으로써 ‘그래도 본편은 오프라인에서’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결과를 낳았다. 동시에 전시는 인스타그램(피드, 스토리, 라이브)을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사용했다. 온라인에 업로드되는 것이 전시 홍보 이미지가 아니라 전시 그 자체일 수는 없었을까? 결국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따라 전시가 조기 종료된 상황에서 콘텐츠의 특성상 충분히 코로나 시대의 훌륭한 ‘비대면 전시’가 될 수 있었을 거라는 미련이 남는다.

‹HOMEWORK›, 2020 ©아트선재센터

부록
다른 한편 온라인 플랫폼은 전시의 ‘부록’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한다. 동시대미술은 그 자체로만 설명되기보다 작업과 전시를 둘러싼 여러 담론과 맥락들을 필요로 하기에, 미술기관의 학예팀은 숱한 연구를 수행하는 팀이기도 하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이전만큼 전시가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하는 상황은 기획자의 일을 전시가 아닌 다른 형식으로 공개하는 많은 장을 열었다.
아트선재센터는 올해 5월부터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 ‹HOMEWORK›을 열었다(homework-artsonje.org). 오프라인 전시들도 진행되고 있지만 전시장 방문이 꺼려지는 관객들을 위해 소통의 창구를 늘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홈워크는 ‘스토리즈(Stories)’, ‘북스(Books)’, ‘2020’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스토리즈’와 ‘북스’는 아트선재센터의 기존 활동을 정리하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시 소개하는 챕터로 이전 전시와 활동들, 발간된 도록과 단행본 중 일부 내용을 웹에 공개하여 접근성을 높였다.3 즉 연구 자료와 책을 온라인으로 옮겨 놓은 셈인데, 가볍게 훑어보기에는 꽤 긴 열람 시간과 높은 집중력을 요하는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성실한 학생들이나 미술계 예비 일꾼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들이지만 온라인에서 작동할 수 있는 ‘가독성’의 범위를 뛰어넘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2020’ 챕터는 전례 없는 변화 속에서 흘러가는 2020년의 단상을 기록한다. 국내외 아티스트들과 저자들의 참여로 글, 드로잉, 사진, 음악 등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챕터가 작업을 전시하는 공간이라기에는, 이영준 기계비평가의 흥미로운 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과 여러 저자들의 ‘도서 추천 리스트’ 등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홈워크›는 전시 자체를 대체하는 공간은 아니다. 2020년의 남은 시간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될 이 공간은 바이러스가 일시적으로 열어 준 미술관의 확장된 부록, 개방된 도서관과 같다. ‘자, 우리의 일을 공개할게. 우리는 평소에 이런 자료들을 모아뒀어. 한 번 같이 보자.’

서울시립미술관의 ‹랜선 집들이› 영상 시리즈 또한 미술관을 열 수 없는 상황 가운데에서 미술관 사람들의 일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제작한 콘텐츠다. 큐레이터와 에듀케이터가 미술관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이를 토대로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과정을 애니메이션과 함께 공유했다.
한편 *c-lab은 올해 ‘언택트(UN+CONTACT)’ 관련 연구 자료들을 메일로 전송해 주는 서비스 ‹리서치 딜리버리›를 진행했다. ‘언택트’ 주제를 탐구하기 위한 학술자료, 예술 작품, 기사, 도서, 영화, 강연 등 온라인 상의 다양한 자료들이 5월부터 8월까지 매주 1회 구독자들에게 발송되었다.4 국내 뿐 아니라 해외 미술계의 다양한 활동들이 수록되어 구독자들이 스크린 앞에서 생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독자들이 미술관 측에 자료를 공유할 수도 있어 ‘함께 완성해 나가는 탐구의 과정’임을 강조했다.

이렇듯 미술관들은 전시 기관이자 연구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연구의 결과물은 대개 전시를 통해 집약되어 왔지만, 그것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은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SeMA_Link›, 2020 ©서울시립미술관

온라인 플랫폼은 ‘본편’이 될 수 없을까?
온라인을 통해 예고편과 부록이 강화된 현상에는 장점도 있다. 미술기관의 전문 인력들이 수행한 양질의 리서치 자료들을 더욱 간편하게 받아볼 수 있게 되었으며, 가만히 누워서도 수많은 미술 콘텐츠들을 쉴 새 없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어떤 면에서는 수혜다. 그런데 내가 원한 미술은 이것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진짜’ 미술, 전시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술은 여전히 공간을 점유하는 예술이기 때문일까?

‹리서치 딜리버리›, 2020 ©c-lab

반드시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더라도 미술 전시에서 SNS의 역할이 강화된 것만은 분명하다. 예고편이 예고편 이상의 역할을 하는 시대, 온라인에서 좋아 보이는 전시가 성공할 것이다. 홍보 이미지와 요약된 내용만으로도 흥미롭고 멋진 전시라야 발걸음을 당기게 된다. 또 얼마나 많은(또는 영향력 있는) 관객들이 전시의 정보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는지에 따라 성공(처럼 보이는) 여부가 갈리게 된다. 그런데 SNS의 이미지 상으로 좋아 보였던 전시를 직접 보러 갔을 때 가끔 마주하게 되는 실망감이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건 왜일까. 직접 봤을 때 여운을 남기는 전시가 진짜 전시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왜일까. 미술의 비물질화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미술은 아직도 이렇게나 물질적이어야 한다고, 짜임새 있는 동선이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일까. 단지 미술 시장이 판매 가능한 오브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일축하기에는, 디지털화에 적응하지 못한 시각 예술 자체가 노후화될 것이라는 경고5에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여러 전시를 보러 발을 바삐 움직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고민을 하게 된다. 시각예술 전시는 한편으로 더 촉각적이고, 연극적이고, 시간적이며, 경험적인 방식으로 변화한 측면 또한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전시는 전시 경험에서 다양한 감각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통일된 시각성과 정보 제공으로 일축해버린다는 한계가 있다. 아마 이 때문에 온라인 전시는 특정한 주제를 다룰 때에만 ‘본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글 김명진
1 ‹연결풍경›은 카카오톡 아이디 ssonyoun 또는 lanalana로 메시지를 전송하면 누구나 접근가능하며 전시기간동안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받을 수 있었다.
2 2016년 작업인 이 웹사이트는 현재 접근 불가능하며 디자인 스튜디오 ‘물질과 비물질’의 포트폴리오 사이트에서 이미지를 열람할 수 있다.
3 아트선재센터 인스타그램 (@artsonje_center)의 HOMEWORK 소개 글 참조.
4 코리아나미술관 *c-lab 네이버 포스트 참조. 현재 네이버 포스트에서 ‹리서치 딜리버리› 지난 호들을 모두 열람 가능하다. (http://naver.me/xncI8aSj)
5 클레어 비숍, “Digital Divide: Contemporary Art and New Media”(2012)에 드러난 논의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