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온몸으로 어떤 장소의 분위기를 감각한다. 몸과 세계가 만나며 전율하는 그 떨림으로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따라서 나 자신의 몸과 더불어 전체 공간을 떨게 하며 지각한 그 연결들로 어떤 날을 기억하곤 한다. 예를 들어 영화제의 경험을 생각해보자.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경험에 대해서 기억할 때, “줄 서 있던 시간이 무색하게 보고 싶은 영화들은 이미 매진이었다고, 남아있던 영화를 서둘러 발권하고 우연히 들어간 상영관에서 온전히 영화의 시간을 접하며 감흥을 느끼고, 같은 상영관에 있던 사람들과 기쁨으로 호흡하며, 해가 진 뒤엔 해운대 바다 근처를 걸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조우가 있는데 첫째로 해당 장소와, 둘째로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영화적 순간과의 만남이다. 이 모든 연결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영화 경험으로 기억된다.
올해의 영화제들은 다소 다른 온도의 연결로 다가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 의미 생산의 장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갔다. 매체의 변화로 관람조건이 달라짐에 따라 시네마에 대한 논의는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배제, 혹은 극장은 죽었다는 비관적인 시각에서 논의되었다. 그러나 두 시각은 시네마를 극장이라는 특정 조건에 한정하거나 시네마에 대한 고민을 포기해버린다는 점에서 단편적이다. 일전에 몇몇 영화제에서 OTT 플랫폼을 배제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OTT를 영화관의 잠재적 경쟁상대로 여겼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올해 영화제들의 불가피한 이 결정은 오히려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시도로 다가온다. 또한 문화의 장인 영화제의 변화된 형태를 통해서 우리는 ‘영화를 본다는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마주한다.
01 우리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최근 국내에서는 세 개의 영화제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열렸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웨이브,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왓챠,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네이버 시리즈온을 통해 관객과 만난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웨이브에서 온라인 상영회를 실시한 것은 국내・국제 영화제를 통틀어 최초의 시도였다. 영화제 기간 동안에만 웨이브에서 작품별 개별 결제로 출품작 관람이 가능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팟캐스트와 랜선토크, 뉴스레터 등의 콘텐츠가 업로드되었고, 이후엔 장기 상영회를 개최하여 전주와 서울에서 영화제 작품들을 상영했다. 또한 그동안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하던 프로그램은 극장이 아닌 «영화보다 낯선+»이라는 전시로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웨이브라는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3전주국제영화제만의 특징이 다소 희미해 보였지만, 오프라인의 행사를 통해서 그것을 보완하고자 한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를 포함한 20개의 해외 영화제들은 ‘WE ARE ONE’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대규모 온라인 영화제를 진행하였다. 영화는 무료로 공개되고, 관객들은 댓글 창을 통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온라인 영화제에서 VR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VR의 관람 특성이 개별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VR HMD(Head Mounted Display)만 있다면 어디서든 VR 영화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온라인 영화제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모든 영화제가 이 유튜브 채널로 행사를 그친 것은 아니다. ‘WE ARE ONE’에 참여했던 토론토국제영화제는 이후 오프라인 상영, 드라이브인 상영과 함께 온라인으로 실행하는 레드 카펫과 산업 토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또한 영화제 맞춤형 디지털 플랫폼을 출시하여 디지털 상영, 토크, 스페셜 이벤트를 계획했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또한 ‘헤리티지 온라인’이라는 플랫폼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공식 기간 중에 출시했다. 두 영화제는 영화제 내부에서 플랫폼을 출시하여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활용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
02 새로운 온도의 연결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온라인 영화제라는 형태의 변화를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영화제(혹은 극장)와 플랫폼의 대립 문제라기보다는 관객의 경험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고찰이며, 시네마적 체험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관객의 능동성에 집중하는 것은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시네마가 보여주는 변화들을 포착하는 데에 중요하다. 이제까지 영화연구 및 비평에서 ‘영화는 무엇인가’, 최근엔 ‘영화는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 제기되었지만 ‘관객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 떠도는 관객들의 능동성을 설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갖는다. 다시 말해, 관객 경험을 살피는 것은 ‘영화 세계’와 ‘관객의 세계’가 어떻게 교차하는지에 대해 역동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관객의 측면에서 이러한 변화를 살핀다면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경험의 지속성과 새로운 공간의 배치들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달라진 형태의 문화의 장은 새로운 배치의 연결을 요청받고 있다. 동시대의 영화 이론과 디지털 미디어의 실천 양식이 제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변화된 매체의 시공간을 살펴보자. 문화를 즐기는 장이 온라인으로 옮겨감에 따라 각자 미디어 환경에서의 상상적 시공간은 더욱 다양해지고 개별화되었다. 마누엘 카스텔은 네트워크 사회의 특성이 “흐름의 공간”과 “무시간성”에 의해 작동한다고 보았다. 새로운 생산관계가 점점 더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 분산되고 파편화된 가상적 공간들로부터 형성된다. 카스텔은 네트워크에 의한 연결 관계의 형성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흐름의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실질적으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시간성을 담지한다. 이러한 흐름의 공간과 무시간성은 온라인 영화제의 영화를 보는 관람 조건의 인지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 영화제의 관객들은 경계를 넘어 네트워크라는 가상공간에서 댓글과 빠른 피드백을 통한 새로운 생산관계를 형성한다. ‘흐름의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각자만의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읽고 소비하는 수용 행위가 개별적, 파편적, 그리고 다층적인 시간과 공간 차원으로 생산된다. 네트워크 플랫폼에서 리뷰, 글, 영상을 재생산하고 문화적 스타일, 취향, 가치를 공유하며 확장된 가상 공동체를 이룬다. 팟캐스트와 랜선토크, 댓글 창 등은 통상 우리가 사용하는 영화관이라는 물질적 공간에서 벗어나 비물질적 공간을 형성하면서 각각의 관객은 과정적이고 실천적인 문화 스타일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관객과의 대화(GV)가 강연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며, 확장된 공동체의 장으로 기능할 가능성의 영역을 넓힌다.
그러나 영화제의 텅 빈 극장이라는 위기적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시네마의 존재론적 조건을 찾는 지점도 역시 관객이 경험하는 체험의 영역에서다. 이 지점에선 시네마의 특정성을 보존하고 지속시키려는 노력을 강조하고자 한다.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영화제가 기존의 영화제의 완전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플랫폼에서 영화를 볼 때 손쉽게 시간을 일시정지하거나 되돌리는 것에 비해 영화를 함께 보는 사람들과 호흡하고 영화가 축적하는 시간을 고스란히 새기며 발견하는 감흥은 ‘영화를 본다는 경험’이 무엇일까 고민을 남긴다. 이러한 영화 관람의 물리적 조건을 탐색하는 태도를 포기한다면 온라인 영화제가 기존 영화제를 대체할 수 있다는 손쉬운 결론을 내리게 된다.
우리는 영화라는 시간의 바다를 체험하면서 느끼는 당혹스러움과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어떤 감흥, 그 감흥으로 3세계와 내가 맺는 관계를 포착한다. 물론 이 감흥이 극장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과 호흡에 관련된 것이다. 영화의 주어진 시간에서 함께 관람하는 사람들과 호흡하고, 시간을 새기며 발견하는 시네마적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영화의 시간도 쉽게 되돌려지지 않는다는 것, 삶과 영화가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은 축적되는 시간을 체험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텅 빈 극장이라는 위기적 상황은 앞으로의 관람 조건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어떤 형태일지에 대해서 고민을 이어가게 한다.
‘흐름의 공간’과 텅 빈 극장이라는 공간에 겹쳐져 놓인 앞으로의 영화제는 이러한 시네마적 특정성과 네트워크 플랫폼의 다층성을 동시에 고민해야 할 과제를 부여받았다. 앞으로의 영화제는 이 두 요소를 지속하고 변형하는 방향으로 고민할 듯하다. 여전히 영화는 어떤 언어로 관객과 만남을 갖게 될 것인지, 관객은 어떻게 영화 내/외부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남아있다. 시-공간을 넘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영화제의 장에서 감각의 여러 배치와 조합들로 이루어질 연결은 무엇일까. 지금의 아슬한 호흡은 앞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어디서 지속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있다. 가까스로 붙어 있는 숨들을 이어 우리들의 세계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교차점은 어떤 모습일까. 그 교차 지점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몸을 맞닿는 상상으로 서로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