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매일 아침 코로나 확진자 숫자를 안부처럼 건네고 오늘의 날씨를 공유합니다. 폭염과 장마, 태풍, 다시 폭염과 태풍, 그리고 화창한 가을하늘 너머 언뜻 보이는 서늘함까지.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상용구같은 말이 실체적으로 느껴지는 시기라 자연이 주는 경고에 자꾸 시선이 쏠립니다.
이전까지 보지 못한 형태로 쏟아진 올여름 물폭탄의 원인은 식물들이 살기 위한 반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지구의 이산화탄소가 급증하면서 식물이 기공을 조금만 열어도 되었고, 이는 증산작용을 약화시켜 오히려 기온은 상승시키고, 냉각효과는 감소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식물의 기공 열기가 감소하면서 땅이 가열되고, 그 영향으로 북극해 얼음이 녹으며 기온은 상승하고, 또다시 식물이 기공을 더 닫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물폭탄과 폭염, 고온현상의 이면에는 마냥 푸르러 보기에 좋았던 식물들의 생존 투쟁이 숨어 있습니다. 남극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종과학기지에 따르면 올해 1~3월 평균 기온은 영상 1~3°C였는데 이는 지난 30년 평균 기온보다 1°C 높아진 것입니다. 온통 눈이 덮여 있는 게 마땅했던 남극에는 이제 거의 눈을 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적도 부근인 서부 열대 태평양 지역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남극으로 따뜻한 공기가 유입됐기 때문입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눈 없는 남극의 풍경은 이미 현실화되었습니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데쓰 밸리는 지난 8월 중순 55°C까지 올라 107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소위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 자주 떨어져 산불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며 지구 온도 상승을 가중시킵니다. 그 결과 현재 살고 있는 도시, 그 지역에서 55%의 인구가 앞으로 거주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은 두려움을 넘어 무섭기까지 합니다.
A, R, T, S. ARTS의 세 번째 주제 T. Territory, 영토.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시대, 코로나시대 예술의 영토는 지구의 기후 변화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어느덧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공연과 전시, 영화제, 포럼, 프리젠테이션까지 적응 완료한 듯합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예술가들의 작업의 변화를 지켜보니 예술의 영토가 카메라 안으로, 모바일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예술의 새로운 영토를 만들며, 그 곳을 지키고 확장하면서 시공간을 점유해 나가고 있습니다. 곤경에 처해서도, 곤혹스런 상황에서도 창작은 지속되고 작품은 볼 사람을 찾아 계속 이동을 시도합니다. 기존 작업을 재구성하거나 본편을 보지 않으면 안되게 예고편과 부록을 흘리면서, 심지어 가상의 인물과 공간을 만들면서 말입니다. 꾸준히 오래 준비한 시간에 대한 허탈함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을 뿐 적어도 창작의 한계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예술의 영토는 굳건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그리곤 원로 작곡가가 그동안 예술의 영토를 만들고, 지키고, 확장해온 방법에 귀기울입니다. “사람을 키워야 한다. 그것만이 힘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은 코로나 이후 바쁜 연주 생활에 지친 몸을 회복하는 규칙적인 일상을 얻어 좋았는데 “어느날 바이올린 소리가 없으니 나 자신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고,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은 안무를 맡은 ‹허난설헌› 공연 취소에 착잡하고 아득한 기분이지만 “아무리 지쳐도 무기력해지면 안 되겠다”며 예정된 공연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소리를 찾고, 움직임을 찾길 간절히 바랍니다. 식물이 더 이상 기공을 닫지 않기를, 불타는 죽음의 계곡을 얼른 빠져 나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