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전원은 꺼ㅈ....” 문장이 끊기더니 여우는 이내 잠이 든다. 무대에 더 큰 몸집의 무용수가 등장한다. 여우는 마치 꿈을 꾸듯 그와 몸을 접촉하며 관객을 몽환의 세계로 이끈다. 둘은 의식 깊은 곳에 머물러 있는 기억과 이미지들이 꿈의 수면 위로 떠오르듯이 춤을 춘다. 그들의 주위에는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기운들이 있다. 이 기운은 바라보는 사람에 의해 무엇으로든 바뀔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영국의 연출가 피터브룩은 이러한 잠재력을 가진 공연을 ‘성스러운 연극’이라고 칭했다. 혹은 ‘보이게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연극’이라고도 했다. ‘성스러운 연극’은 보이지 않는 것을 제시할 뿐 아니라 그것을 볼 수 있는 상황을 제공한다.1 즉, 두 존재가 주고받는 감정을 눈에 보이는 신체의 무게를 주고받는 것으로 표현하는 이 춤은 피터 브룩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스러운 춤’이다. 그 춤에서 두 사람은 상대를 완전히 신뢰하며 자신의 몸을 한껏 이완시키고 자신의 무게를 온전히 상대에게 맡긴다. 고블린파티2 의 춤은 ‘스토리’다. 이들은 추상적인 관념을 주제로 삼는 여타의 현대무용단과 달리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작품을 만든다. 일례로 해외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은장도›는 각각의 사연을 지닌 네 명의 과부가 은장도라는 섬에 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3 고블린파티의 무용수는 이 이야기 속 단어들을 자신의 신체 근육으로 표현한다. 그 몸짓은 춤의 본질이자 언어이자 카타르시스의 육체적 표현이다. 카타르시스란 곧 육체의 기운이 뻗어나가는 것이다.4

여우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돌고래는 갑자기 그녀의 잠꼬대에 의해 이마를 얻어맞고 퇴장한다. 잠에서 깨어난 여우는 관객에게 동화 한편을 들려준다. 꼬리가 잘린 슬픔으로 홀로 춤추다 도사님에게 친구를 소개시켜 달라 조르던 자신의 이야기다. 여우는 그렇게 다시 만난 친구 돌고래에게 자신의 과오를 고백한다. 문장을 리듬삼아 움직이던 모습과 서사에 따라 변화하는 제스처를 보니 그녀는 영락없는 도깨비다. 3년 전 졸업공연에서 처음 보았을 당시 작품에는 안무가로서 이경구가 바라보고 이해하는 춤이 무엇인지 여실히 담겨 있었다. 당시엔 그녀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된 스토리가 나의 머릿속에서 번역되는 신기한 체험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내 눈 앞의 그녀는 상기된 목소리와 과장스러운 표정으로만 이야기하고 있다. 돌고래가 다시 등장하여 무대를 유영한다. 그는 여우에게는 없는 꼬리를 갖고 있다. 돌고래는 묵직하면서 부드러운 스텝으로 단단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가 풍기는 포근함에 나도 여우도 취한다. 순간 나는 여우의 목소리와 표정으로만 표현되던 이야기가 돌고래를 통해 점점 움직임으로 변모하는 것을 목격한다. 내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물에 떠다니다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마치 돌고래가 헤엄치고 있는 무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숙성된 ‘간극’의 의미가 육지를 거니는 여우와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가 경계선에서 만나는 이야기 속에 담겨있었다. 그녀(여우)가 버티며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지구 반대편에 자신과 닮은 존재가 자신과 나눌 것들을 가득 가지고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상상했다. 상상 속에서 만난 그(돌고래)는 자신과 다른 흐름 속에 있다. 그 속에 발생한 틈을 느껴보고 살펴보며 둘은 마음의 기운을 주고받는다. 둘은 서로에게 기적이라 믿는 기운을 보내고, 헤어졌어도 함께 기운을 공유하는 중이라는 소망을 갖는다.

‹여우와 돌고래› ©고블린파티

여우와 돌고래는 하나의 펜을 서로 재치 있게 주고받으며 번갈아 벽에 그림을 그린다. 무대 위엔 밤하늘의 별이 떠오르고 때로는 자막이 등장한다. 이미지는 문자가 추상적인 몸의 언어로 전환될 때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5 그러나 이 공연에서 사용된 이미지들은 움직임의 정수와 어우러지지 않아 보는 내내 관객으로써 이질감을 느꼈다. 지난해 12월 이경구는 국립현대무용단 어린이 무용 ‹루돌프›에 안무가로 참여했다. 특화된 노하우를 갖춘 예술가와 기술진과의 협업으로 그녀의 안무는 수놓는 아름다운 이미지, 관객과 소통하는 창의적 연출이 더해진 무대 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오늘 공연은 무용단 내의 기술진이 자체 제작했다. 독립무용단으로써 주어진 환경에서 고군분투 한 모습이 보였다. 무용작업은 돈이 되는 일이 아니기에 작업이 즐겁기라도 해야 하는데 즐겁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겠다는 욕심보단 작업하는 과정이 즐거웠으면 하는 그들의 소박한 소망에서는 권위적인 무용계의 분위기와 척박한 환경에서 착취당하는 예술가의 절박함 끝에 도달한 긍정주의가 보이는 듯했다.6 그들이 진지함을 싫어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까. 앞서 언급한 ‹은장도›7 가 국내외에 그들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네 명의 여자무용수가 무대 위에 집을 짓고, 춤을 추고, 랩을 하는 모습이 도깨비들의 잔치 같다. 이는 현 사회가 갖는 슬픔과 부조리와 허점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익살과 위트, 유머로 승화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다.

여우와 돌고래는 접촉 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움직인다. 돌고래가 무대 중앙에 쓰러진다. 함께 더 놀고 싶은 여우는 쓰러진 무용수를 계속 일으키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스피커를 통해 ‘아빠’라는 단어가 반복하여 흘러나오며 무대는 암전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서 내 곁에 있을 때와 죽어서 내 곁에 있을 수 없을 때의 간극을 메꿀 수 있을까. 다만 나의 기억과 소망만이 잔재할 뿐. 여우는 마음으로부터 온 몸이 아빠를 향한 기억과 소망에 몰입하다 못해 터져버리기 직전이다. 이 몰입은 사랑을 향한 신념으로 무장한 태도로서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그녀의 춤에 나는 매료된다. 그녀의 육체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이 나의 몸과 마음에 들어온다. 극장을 나온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눈을 감는다.

글 서태리
1 피터브룩, ‹빈 공간›, 청하, 1989
2 2007년에 창단된 고블린 파티는 안무자라는 말 대신 방향제안자, 무용수라는 말 대신 공동창작자 라는 이름을 쓰면서 모든 사람이 함께 작업하는 재미있는 과정을 지향하는 단체이다.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존중하고자 노력한다.
3 배재휘, 고블린 파티 스토리: 현대무용단 고블린파티 인터뷰, 춤in, 2016
4 도리스 험프리, 현대무용 안무론, 현대미학사, 1999
5 다리아 할프린, 동작중심 표현예술치료: 움직임, 은유 그리고 의미의 세계, 시그마프레스, 2006
6 윤단우, 안무 리서치 견문록, ‘고블린파티’라는 독특함, 2019
7 인간으로서의 절대적 평등을 꿈꾸는 고블린 파티는 작품 ‹은장도›를 통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했다. 하지만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하고 존중하는 단체의 정체성을 담다 보니 여성을 다양한 모습의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게 만들기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